8년 후, 그들과 갈라서야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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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8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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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나?’ 호기롭게 탈당하지 못한다는 한 당원의 질문이다. 공교롭게도, 아마도 8년 전엔 당원이 아니었을 당학생위원장도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물론 자주파와의 결별, 진보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이들이 8년전 민주노동당의 창당시부터 그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그 생각의 차이는 당을 쪼개야 하는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나는 이 판단에 동의하며, 자주파와의 결별, 신당창당에 동의한다. 하여 왜 8년 전,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을 함께 하고자 한 이들과 지금 갈라서려 하는가에 대해 나름의 답을 하고자 한다.

8년 전과 바뀐 것-민족주의의 성취

자주파의 주된 이념은 민족주의다. 본래 진보의 이념이 되기 어려운 민족주의가 한국에서 진보가 된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숭미-반북을 이념으로 하는 세력이 압도적 주류로서 이 나라의 민중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국민승리21의 이름으로 권영길이 처음 출마했던 1997년 대선에서, ‘범통일세력’인 온건보수야당이 최초로 집권에 성공했다.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처음 치렀던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남북정상회담 계획을 발표했고, 그 해 6월, 자주파에겐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민족적 사변’인 6·15공동선언이 있었다.

그 해부터 자주파의 축제였던 통일대축전은 정부행사가 되었고, 통일은 이전 정권이 내세웠던 명분상의 당위를 넘어 실질적인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당의 도약의 발판이 되었던 지방선거가 치러진 2002년 6월, 민족주의는 월드컵이라는 계기를 통해 광장으로 나와 그 폭발적 에너지를 유감없이 과시했고, 그 에너지는 주류 언론을 통해 철저히 긍정되었다.

당의 이름을 국민에게 확실히 인식시켰던 대선이 치러진 그 해 12월,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촛불시위가 전국을 뒤덮었다. 월드컵을 통해 강화되고 긍정된 민족주의의 에너지는 ‘반미’에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반미면 어떠냐’는 당당한 언사를 구사하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

자주파의 문제의식은, 그들의 노력의 결과이든 아니든 간에, 2000년 이후로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었고, 긍정되었으며, 성과를 얻어왔다. 한국 사회의 압도적 주류이데올로기였던 숭미·반북주의를 민족주의가 차츰 극복해간 과정이, 민주주의의 확대와 레드컴플렉스의 극복으로 진보정치의 토대에 일정 정도 기여한 바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이미 주류 이데올로기로 편입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독도 사태와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민족주의는 그 폐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자체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자주파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내놓은 입장은 주류 언론이나 보수정당의 입장과 별다를 것이 없거나, 더 극우적인 것이었다.

북핵사태가 이와 좀 다른 점은,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민족주의는 대체로 남한을 그 범주로 하는데 비해 자주파의 민족주의는 북한을 포괄하는, 혹은 더 중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을 민족의 단위로 사고하는 국민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 이는 ‘통일되면 우리도 핵보유국’이라는 근거로 북핵에 찬성하는 일부 네티즌 여론에서 확인된다.

민족주의를 최우선의 판단 기준으로 하는 입장은 더 이상 진보의 범주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8년 전과 바뀌지 않은 것 – ‘반한나라당’의 망령

자주파의 보수적 성격은 민족주의가 폭발하는 특수한 국면에서만 드러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현재 ‘종북주의’로 표현되는 일부 극우 민족주의자만을 배척하면 될 일이다.(자주파에 대한 혁신파의 대응은 이 정도에서 멈춘다. 물론 그마저도 쉽진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에 관심이 높지 않은 국민이라면 (다행히도) 모르고 지나쳤을 이러한 비상식적 행태들보다 민주노동당의 몰락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자주파의 통일전선론, 반수구전선론, 쉽게 말해 ‘반한나라당’론이었다.

2002년 자주파가 본격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성하기 전까지, 비판적 지지에 갇힌 당 밖의 통일운동세력이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는 것 자체가 ‘반수구전선’을 버리고 진보정치에 복무하는 의미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환영했다. 2002년 대선에서 당내의 일부 자주파가 노무현을 지지했으나 그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더 이상 그들에게 무언가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민주노동당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렸다. 자주파의 과제가 대부분 온건보수정당에 흡수된 이후에도 그들은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만들기보다 여전히 반수구전선을 고집했고, 그에 복무하는 방법엔 온건보수정당에 대한 비판적지지 외에도 진보정당을 그들의 2중대로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한나라당과 더욱 비타협적으로 싸운다면 1중대가 될 것이라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이미 중요한 것은 1중대와의 경쟁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싸우는 것이었고, 민주노동당의 고유한 정치를 만드는 일은 뒷전이었다.

열린우리당의 ‘4대개혁입법’, 특히 국가보안법 ‘개정’에 자주파는 모든 것을 걸었다. 2004년말 국회 앞의 천여대오는,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열린우리당 개혁파 당원들의 모습이라 해도 어색할 것이 없었다. 그 후로도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이슈를 만들기보다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개혁’ 이슈에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이는 자주파의 반수구 전선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07년 대선,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린 민심은 그의 2중대 노릇을 하던 민주노동당에게서도 돌아섰다.

정치는 연합과 분열의 과정이다

1만 명의 사람에게는 1만 개의 사상이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상에 100% 일치하는 당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당 내에는 정파가 존재한다. 서로 생각이 다른 정파들이 당이라는 정치조직으로 연합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일정정도 양보하면서 공동의 지향,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연합으로서 얻어지는 이점보다 희생되는 가치가 크다면, 정파연합으로서의 당은 분열하는 것이 당연하다.

8년 전에 같이 했다해서 지금도 같이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자주파는 과거에 진보정당 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온건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해왔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서 이에 대한 반성을 한 적이 없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과 정책연대를 했던 전국연합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로 했다 하여 그것을 ‘배신’이라 할 수 있는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일관된 정치적 기준에서 택해진 전략전술이라 보는 것이 맞다. 정치는 원래 파당적 주체들간의 경쟁과 협력, 연합과 분열의 과정이다.

자주파와 같이 하기로 했던 8년 전과 지금은 많은 조건들이 달라졌고, 하여 그때와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분열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라?

자주파와 갈라서는 것은 ‘진보의 분열’인가? 자주파는 때로 진보이긴커녕 극우이고, 민주신당 개혁파에 비해서도 결코 진보적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을 ‘진보’라 말하며 계속 함께 해야 한다면, 차라리 통크게 민주신당, 민주신당 탈당파, 창조한국당과 합당을 주장하는 것은 어떤가.

그들도 진보를 말한다. 지지율 합산 20% 미만의 한줌도 안되는 (자칭)진보세력들이 갈라져 있을 이유는 무엇인가. ‘독도 파병’이나 ‘북핵은 자위용’ 정도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한미FTA 찬성’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공동의 목표라 하면, 그들도 국가보안법 ‘개정’을 주장하고, 이라크파병 철군을 (어쨌든 말로는)주장하며, 비정규직 ‘보호’를 주장하는데, 왜 그들과 ‘진보대연합’을 이루어 구동존이 하려하지 않는가. 자주파 내에도 건전한 세력이 있음을, 그들과 같이 가야함을 주장하는 이들은, 왜 구여권 내에 존재하는 건전한 세력은 보지 못하는가.

자주파와 갈라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라. 그 대답이, 바로 자주파와 갈라서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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