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인원의 비극'
    긍정적 경험 함께 나누기
    [행복칼럼] 함께 음미하기의 즐거움
        2019년 04월 09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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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회사원이 집에 일이 생겼다며 회사에 결근계를 냈다. 회사가 가장 바쁠 타임이었다. 사실은 동창들과 필드로 골프 치러 가는 약속이 있어서였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 그렇게 오매불망하던 올인원이 터졌다. 다른 누구보다 회사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거짓말을 한 터라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자랑거리는 오히려 고통이었다. 비극적인 홀인원이 되어 버렸다.

    간호사로 근무할 때는 환자나 보호자, 간호사에게 말을 많이 하며 살았다. 학교로 와서는 대부분이 말로 이루어진 강의를 하며 살고 있다. 교수는 물에 빠져서도 물 속 물고기와 얘기하느라고 엉덩이가 물 위로 뜬다는 우스갯소리가 남의 말 같질 않다. 게다가 MBTI 성격유형이 ‘친선도모형’이라 본능적으로 남들에게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인지 재충전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혼자 떠나는 것을 선호한다. 말 듣느라, 말 하느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므로 여행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점이 없는 건 세상에 없는 법. 홀로 여행의 한계는 불편함과 쓸쓸함이다.

    병원을 그만 두고 혼자 떠난 미국 여행의 첫 행선지는 하와이였다. 섬이니까 어디를 가도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20일 가까이 머물렀지만 한 번도 바다에 본격적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고작 바지를 무릎까지 걷은 채 바닷물에 발 담근 게 다였다.

    숙소가 바다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서 소지품을 최소한으로 줄여도 교통비며 비상금이 들어 있는 지갑은 늘 소지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갔으니 지갑이며 벗어 놓은 옷은 누가 봐준담. 낯선 곳에서 지갑이며 옷을 모래 위에 덜렁 놔두고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신경 써야 할 누군가가 없어 마음이 편한 반면 혼자만의 여행에서 치러야 할 불편함이었다.

    샤모니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몽블랑, 뜻도 모르면서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냥 좋았다. 몽(Mont)은 불어로 산을 뜻하고, 블랑(Blanc)은 흰색이다. 하얀 산이란 뜻의 몽블랑은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프랑스 여행 여정에 몽블랑이 있는 마을 샤모니를 추가했다.

    드디어 몽블랑 샤모니. 케이블카로 해발 3천 미터 넘는 에귀 디 미디((Aiguille du Midi) 전망대에 도착. 만년설로 덮인 장엄한 몽블랑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탄성을 지르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일행의 대화가 들려왔다. 가슴 벅찬 느낌을 나누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혼자인 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나도 누군가와 “와~ 참 좋다!”는 감탄사를 나누고 싶어졌다. 좋은 느낌을 표정과 말과 사진으로 마음껏 나누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멋진 풍경이나 미술 책에서만 보았던 진품 예술품을 대하면서 감상을 같이 나눌 수 없는 것은 혼자 여행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음미는 행복감을 증진시켜 준다. 음미의 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함께 음미하기’이다. 긍정적인 경험을 나처럼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와 나누면 음미하기가 더 깊어진다. 즐거움 또한 고조된다. 함께 음미하기가 절실하게 그리웠던 프랑스 여행을 접으며 다시는 혼자서는 긴 여행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성공과 성취와 같이 기분 좋은 사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축하를 주고받음으로써 그 즐거운 사건이 주는 기쁨을 더 만끽할 수 있다. 웰빙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중한 무형재산으로 축적되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도 더 강화할 수 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성공도 똑같이 축하해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함께 음미하기’란 상호적인 것이므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지도할 때 적용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졸업반이기에 빠르면 1학기에 취업이 결정된다. 지도학생 중에 제일 먼저 취업이 결정된 학생은 취업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나머지 친구들에게 아이스 바 같은 간단한 한턱을 쏘게 한다. 왜냐면 취업이 결정된 학생은 취업이 안 된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취업의 기쁨을 내색하지 못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그 친구가 얘기를 하지 않으니 축하를 해줄 수가 없다. 취업한 학생은 한턱 내며 자신의 좋은 소식을 당당하게 알리는 한편 다른 학생들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가 있다.

    얼마 전에 첫 번째 책의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2014년 발간한 책 ‘마음 극장’의 4쇄를 찍을 예정이라고.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이다. 즉시 가족과 직장 동료들에게 알렸다. 한턱을 내고 축하를 듬뿍 받았다. 알뜰한 편이지만 작건 크건 좋은 일이 생기면 한턱을 내곤 한다. 아마 남들과 좋은 일을 나누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사실을 이미 깨우치고 있나 보다.

    사람들은 기쁜 일에 충분히 좋아하지 못하고 심드렁하게 지나치곤 한다. 그날이 그날이니 훗날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게 아닐까

    타인의 존재는 긍정적인 추억의 힘을 강화시킨다. 다른 사람과 기억을 함께 나누는 상호 회상을 하면 즐거움, 성취감, 만족감, 자부심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풍부해진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노인들이 집단모임에서 젊은 날에 대해 회상을 많이 할수록 더 긍정적이 되며 사기가 높아졌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회상요법의 효과가 높다는 연구결과는 무수히 많다. 누구나, 특히 삶의 경험이 풍부한 할수록 추억 속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년퇴직을 일 년 남짓 남겨놓고 있는 시점이라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여행을 많이 하게 될 텐데 국내든 국외 여행이든 혼자 여행에서는 고독을 오롯이 즐기고, 맘에 맞는 사람과의 여행에선 ‘함께 음미하기’를 마음껏 즐기리라.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라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 인디언 속담 –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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