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vs 정보자본주의
    지금 시대 가리키는 이름은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⑥] 패권 장악한 정보자본
        2019년 04월 09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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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4차 산업혁명과 정보자본주의

    3-1. 신자유주의 대 정보자본주의

    3-1-1. 신자유주의 쇠퇴
    3-1-2. 정보자본주의 축적체제

    3-2. 정보자본주의 현재

    3-2-1. 패권 이동 : 플랫폼 기업
    3-2-2. 자본구성 변화 : 유형자산 대 무형자산
    3-2-3. 플랫폼의 마술 : 네트워크 효과
    3-2-4. 플랫폼 기업의 파괴적 혁신

    3-3. 정보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3-3-1. 플랫폼 노동
    3-3-2. 인간은 필요 없다?
    3-3-3. 기술적 실업 : 특이점?

    [필자 주] <붉은 오늘>은 붉은 어제를 되새김질 하고 있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다. 그렇다면 내일은? 붉은 내일이 없는 붉은 오늘이 있을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은 붉은 내일에 대한 토론을 제안한다. 토론을 알차게 준비하기 위하여 독자들의 동참을 부탁드린다. 댓글과 반박,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지런한 퍼나르기는 토론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첫 번째 오프라인 토론은 금년 5~6월에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심화학습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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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 회의 글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⑤]인공지능 혁명과 인간의 미래

    3-1. 신자유주의 대 정보자본주의

    3-1-1. 신자유주의 쇠퇴

    2019년 3월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은 무엇일까?

    신자유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패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 시대의 이런저런 사건을 설명하는 근거로 여전히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기독교도들이 세상의 모든 사건을 설명하는 근거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한편에는 신자유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21세기 현재를 가리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이름을 제안하고 있다. ‘자본주의 4.0’, ‘자본 없는 자본주의’, ‘플랫폼 자본주의’, ‘인지 자본주의’, ‘정보 자본주의’ 등등의 이름이 제안되고 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가 끝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후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정말 죽었을까, 아니면 아직 살아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저마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 식으로 대답할 수 있다. 다리를 만져본 뒤 죽었다고 대답할 수도 있고, 코를 만져본 뒤 아직 살아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논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반(反)신자유주의라고 강조한다. 그에 맞서서 예컨대 노동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가 맞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토론은 헛말싸움으로 이어질 뿐이다. 양쪽 모두 무엇을 잣대로 삼고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 식의 토론을 피하자면 먼저 토론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잣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저마다 자신의 잣대를 공개해야 할 것이다.


    코츠(David Kotz)는 “신자유주의가 끝났다”고 진단하면서 자신의 잣대를 공개하고 있다. ‘사회적 축적구조 이론’이 그것이다. 코츠는 조절이론의 업적을 계승하면서 수정보완하고 있다. 그의 잣대는 장님들의 일면주의·주관주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하여 코끼리의 여러 부위를 동시에 만져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코츠는 사회적 축적체제를 당대의 사회경제사상, 세계경제질서, 정부의 성격과 역할, 기업의 조직구조와 관리방식,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등 여러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서 작동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이전의 축적체제를 ‘규제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는데, 조절이론은 그것을 ‘포드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수정자본주의’, ‘혼합경제’, 또는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코츠의 잣대는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역사적 변동을 일목요연하게 구별하고 있다. 나는 부분적으로 코츠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장님 코끼리 더듬기를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에 동참하고 싶다. 나는 그의 잣대를 원용하면서 다만 한 가지만 보충하고자 한다.

    코츠는 생산기술 발전과 축적체제 변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건너뛰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보완하고자 한다. 나는 사회적 축적체제의 변화가 우선 생산기술의 영역에서 촉발된다고 본다. 그 토대 위에 경제질서와 정치질서가 적응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증기엔진 기술과 기계 기술이 추동한 1차 산업혁명의 토대 위에는 자유방임주의 정치경제질서가 자리를 잡았었다. 이어서 전기 기술과 석유화학 기술은 2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로 자리를 잡았고, 그 위에서 독점자본주의 정치경제질서가 번창하였다. 한편,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은 3차 산업혁명의 토대를 구축했으며, 그 위에서 잠시 사민주의 정치경제질서가 발전하였고, 이어서 신자유주의가 꽃을 피웠다.

    코츠의 잣대를 사용하여 2008년 이후 시기를 재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정부 역할의 변화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선진국 정부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신자유주의 전선의 사령관 역할을 했던 미국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금융기관과 제조업체를 국유화하는 특단의 조처까지 취했다. 일본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하여 2008년 이후 10년 동안 마구 돈을 찍어 뿌렸는데, 그 결과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규모가 GDP의 20% 수준에서 100% 수준으로 늘어났다. 일본보다는 덜하지만 유럽과 중국도 같은 기간 동안 엄청난 규모의 양적 완화를 단행하였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한 증거로 이보다 더 명쾌한 증거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규모로 돈을 풀었지만 정부의 개입은 별로 약발이 없었다. 세계경제는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악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만약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그동안 풀려나간 돈을 다시 거두어들인다면 경제는 어떻게 될까? 어느 나라 정부도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로 되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로버트 고든은 미국 경제의 장기저성장 국면이 21세기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장기적 추세를 계산한 뒤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4차 산업혁명은 존재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4차 산업혁명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처럼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허구론’을 주창하는 한국의 수많은 논자들은 2016년에 출간되어 이듬해 한국어로 번역된 고든의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를 유력한 논거로 내세우고 있다. 뒤에 이 책을 다시 한 번 정독하기로 약속하고 여기서는 일단 건너뛰기로 하자.

    한국 경제도 이미 장기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과 한국은행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한편, 그동안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에 일어난 또 하나의 변화를 꼽으라면 세계금융질서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추동한 핵심 동력은 금융자본이었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기한다고 선언하였고,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대신하는 ‘킹스턴 체제’가 정립된다. 이때부터 자본은 실물경제로부터 마음대로 이탈할 수 있게 되었고, 파생상품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때마침 개발된 인터넷 기술은 거대한 투기자본이 빛의 속도로 세계를 휩쓸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중력을 무시한 투기자본의 거품은 조만간 터질 수밖에 없다. 2008년 터져나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순식간에 세계적 금융위기로 확산되었고, 이어서 실물경제도 위기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로 구성된 국제결제은행(BIS)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은행감독위원회(BCBS)는 세계의 은행들에게 새로운 규정을 시달하였다. 이른바 ‘바젤3’으로 불리는 이 규정의 핵심은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강화하여 투기자본의 고삐를 죄는데 있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포퓰리즘’ 현상도 신자유주의 몰락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6년 영국 보수당 정부는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같은 해 11월 미국에서는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1980년대부터 두 나라 지배세력은 앞장서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이끌어왔는데, 두 나라 국민은 뒤늦게 신자유주의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홧김에 장독을 깨버린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시장에서는 신보호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관세율이 높아지고 있고, 무역량은 줄어들고 있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보호주의를 표방하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도발하고 있다.

    지식정보기술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미국은 상품무역을 축소시키더라도 정보산업을 통하여 축적위기를 돌파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지식정보기술에서도 중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미국을 바짝 따라잡게 되자 미국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중국 무역전쟁의 진짜 이유는 무역수지의 불균형 해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지식정보기술의 패권 다툼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3-1-2. 정보자본주의 축적체제

    모든 사회체제는 생산영역, 분배교환영역, 조절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고대사회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생산영역은 ‘기업’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고, 분배교환영역은 ‘시장’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조절영역은 ‘민주주의 정치’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앞서 인용한 코츠의 분류표를 인용한다면, ‘정부의 경제적 역할’과 ‘세계경제질서’는 조절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조절영역의 변화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생산영역과 시장영역의 변화이다. 달리 말해서,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의 변화이다. 코츠의 분류표에서는 ‘기업부문’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본-노동 관계’는 생산영역·시장영역과 조절영역 양쪽에 걸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부터 기업부문과 노자관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장기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 흐름을 역행하면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예외적인 기업들이 있다. 정보산업 기업들이다. 에너지자본, 제조업자본, 금융자본 등 신자유주의 시대를 빛냈던 전통적 자본들이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새로 등장한 정보자본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그 결과 자본들 사이의 판도가 크게 변하였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에너지산업, 제조업, 금융업 부문의 기업들이 글로벌 시가총액 10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보산업 기업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만이 거기에 낄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왕년의 익숙한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10개 중 6개는 새로 등장한 정보산업 기업이다. 불과 10년 사이에 이른바 ‘듣보잡’ 기업들이 세계경제의 판도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런 추세가 장차 자본주의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까?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걸었지만,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은 이런 변화가 조금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는 기업들 중 정보산업 기업으로는 네이버가 유일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한국이라고 해서 세계적인 추세를 비켜갈 수 있을까?

    오늘날 생산영역과 시장영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지식정보기술이다. 그에 상응하여 기존의 질서가 저물고 새로운 질서가 떠오르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서 무슨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자본주의 4.0? 자본 없는 자본주의? 플랫폼 자본주의? 인지 자본주의? 정보 자본주의?

    나는 ‘정보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제안하는 사람들을 따르고자 한다. 1~2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한 세력은 제조업 자본이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여기에 금융자본이 가세하였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다. 새로 등장한 정보자본이 패권을 장악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보자본은 아직 유소년 단계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제외한다면 나이가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정보자본의 몸집은 나이를 뛰어넘고 있다. 2018년 10월 현재 금융산업 7대 기업의 시장가치는 1.7조 달러이며, 석유산업 7대 기업은 1.5조 달러에 불과하다. 그에 반하여 정보산업 7대 기업의 시장가치는 7조 달러가 훨씬 넘는다. 장차 정보자본의 위력은 얼마나 더 커질까?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정보자본주의가 번창하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적 축적체제를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보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실감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 구성요소들과 비교해보면 좋을 것이다. 어제는 없었는데 하룻밤 새 새로 생겨난 특징들을 찾아낸다면 오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일을 예측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코츠가 제안한 준거점들을 참조하면서 정보자본주의 구성요소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소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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