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초월한, 사유하고 행동하는 지식인
[책소개]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지은이)/ 최지원(옮긴이)/ 더숲)
    2019년 04월 06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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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20세기 최고의 정치사상가이자 현대 철학과 정치이론에 빠짐없이 인용되는 인물이다. 사망 무렵 학자들 사이에서 제한적인 명성을 누렸던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와 위상이 높아져, 그의 저작은 거의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출간되었을 만큼 그 영향력은 가히 전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 앞에 존재하는 지금 꼭 알아야 할 인물인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은 그런 그녀의 삶과 사상을 그린 최초의 그래픽노블이다.

전설적인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유대인, 여성, 난민으로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한나 아렌트. 그의 사상은 20세기를 넘어 난민·인종차별·소수자 문제·극우주의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금 시대에도 매우 의미 있는 지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깊이로 인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책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감각적인 그림을 통해 독자들과 한나 아렌트를 한층 더 가까이 만나게 한다.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인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그래픽노블인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등장은 아렌트가 이미 대중적 관심사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악의 평범성, 전체주의,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등 정치사상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개념들은 물론, 기존 한나 아렌트의 저작에서는 알 수 없었던 삶의 내밀한 면모까지 들여다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에는 나치의 박해 속에 여러 나라를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면서도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한나 아렌트의 삶이 속도감 넘치면서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또한 1,2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가 휩쓸어간 격동의 시대와 함께, 일생의 사랑이었던 철학자 하이데거를 비롯해 발터 벤야민, 프로이트, 알버트 아인슈타인, 장 뤽 고다르 등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모습을 한편의 영화처럼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 폭력과 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사상가이자 인간 한나 아렌트의 모습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세 번의 탈출, 그 속에 담긴 한나 아렌트의 불꽃 같은 삶과 열정

이 책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전 생애를 함축적이고 밀도 높게 그리고 있다. 1906년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칸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동경했던 유년기, 마르부르크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만난 평생 그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승이자 연인인 하이데거와의 이야기, 두 번의 결혼,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파리로, 다시 뉴욕으로 도망쳐야 했던 목숨을 건 탈출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전반부가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뉴욕으로 이주한 후를 그리는 후반부에서는 정치사상가로서 그의 사상이 궤도에 오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체주의’라는 개념으로 한나 아렌트를 일약 주목 받는 정치사상가로 떠오르게 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을 넘어선 대답을 담은 『인간의 조건』,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묘사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같은 책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도 그 시기다. 후반부는 20세기 인문학과 정치학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개념들이 세상에 등장한 과정을 한나 아렌트 삶과 함께 그리고 있다.

감수를 맡은 김선욱 교수는 책의 제목이 말하는 ‘세 번의 탈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방점은 ‘세 번째 탈출’에 있다. 독일에서의 탈출, 그리고 파리에서의 탈출이라는 앞선 두 번의 탈출과 세 번째의 탈출은 서로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세 번째 탈출 이야기는 그녀의 삶을 넘어 그녀의 핵심적 사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자는 이 세 번째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가 가진 사상의 핵심인 듯 그려내는데, 나는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책은 그 세 번째 탈출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볼 기회를 제공한다.”

왜 지금 한나 아렌트인가
– 한 개인이자 시민으로서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법

이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그의 삶은 용기 있는 여성 지식인이자 20세기 최고의 정치사상가의 표본을 보여준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망명 생활을 했던 난민 철학자,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 ‘전체주의’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으며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이 모든 것에 속하면서도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유하고 행동했다. 사유의 자유 앞에서는 민족, 국경, 성별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고, 1975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폭력과 악의 본질,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광포한 시대 속에서도 공공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나 아렌트. 국가에서 추방 당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집단이었던 유대인에게 비난 받고 외면을 당하면서도 인류와 개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삶 전체로 진정한 지식인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불안한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20세기 최고의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한 개인이자 시민으로서 불안한 시기를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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