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어야 할
    노동자 민중의 교과서
    [기고] 백기완의 『버선발 이야기』
        2019년 04월 05일 01: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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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게나마 신년 인사를 드리러 지난 2월 21일, 백기완 선생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작년 큰 수술을 받으신 이후 기력이 쇠약하셨지만 그래도 파인텍 75미터 굴뚝 농성장 기자회견, 고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추모 집회 등에 여전히 참석하시어 짧지만 노동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시원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은 여전하셨습니다. 크거나 작거나,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았거나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의 자리에 늘 함께 해주시는 그 모습이 존경스럽고, 경외스러웠습니다.

    찻상으로 나온 상이 고척상으로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얼마 전 다 쓰셨다는 책, 『버선발 이야기』 중의 한 대목을 그때 처음 말씀 들었습니다. 버선발은 양말이나 신발조차 없이 맨발로 살아야 했던 노예 머슴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 노예들의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삶, “그래도 죽어라 하고 뿌리를 내리고자 하면 어절씨구 그 뿌리를 내리고자 하면 어절씨구 그 뿌리를 허리째 섬뜩 잘라버리고, 그래도 죽어라 하고 끝내 뿌리를 내릴라치면 그 뿌리와 함께 목두가지(목)를 뎅겅….”(책, 58쪽 중에서) 잘려야 했던 그 옛날 노동자들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모순을 온몸과 연대로 이겨내 가는 민중해방의 서사였습니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살되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 ‘내 것’이라는 소유와 독점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흘린 모든 땀의 결실이 이 사회와 자연의 공동의 것이 되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민중사상의 원형을 담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뺏기고 억압당하는 것은 같다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머슴’이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폭력의 내용은 같았습니다.

    “얘야 버선발아, 머슴이란 말이다, 그건 딴 게 아니란다. 바로 내가, 네 에미가 머슴이다. 네가 보고 싶어 대뜸 달려오고 싶어도 끝내 달려오질 못하는 네 애비, 네 에미의 그 피눈물이 바로 머슴이라니까. … 왜 그러는 줄 알아? 왜 그러는 줄 아느냐구. 제멋대로 마구 빼앗아놓구선, 그 때문에 아무것도 못 가진 머슴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제 마음대로 부려먹고, 제 내키는 대로 볶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알가먹고(갉아먹고), 짜대먹고, 배틀어먹어도 될 한낱 목숨 없는 쓸 거(물건)라는 거다, 쓸 거. 그러니까 그런 머슴이 낳은 아들딸들도 제 거라면서 빼앗아 제 마음대로 부려먹다간 죽이고, 때로는 딴 데다 팔아먹고. 죽일 놈들…. 그러니까 네 또래 그 어린 코흘리개 개암이를 머슴으로 끌고 간 것은 그 개암이의 엄마 아빠가 머슴이라 그러는 거다. 그러니까 버선발아, 머슴이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사람으로는 살질 못하게 하는 사갈이다 그 말이다. 죽일 놈들의 사갈 짓(범죄) 말이다.”(책, 58쪽 중에서)

    1932년생인 선생님은 제 아버지와 동갑내기셨습니다. 평범하게 가족만을 위해 사셨던 제 아버지에 비해 근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다 겪으신 선생님.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자 민중의 새세상을 위해 온갖 고초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걸어오신 선생님은 우리 모든 노동자 민중의 아버지로 늘 우리들에게 끝없이 내리사랑을 하신 분이십니다. 때로는 투쟁의 현장에서 토닥토닥, 외롭고 힘들 때는 속 시원한 비나리로 쓰담쓰담 하시며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소중한 동지셨습니다.

    선생님은 투쟁만 해오신 투사가 아니었습니다. 민족문화, 민중문화의 지킴이로 살아오시기도 했습니다. ‘동아리’, ‘새내기’, ‘모꼬지’, ‘달동네’ 등 아름다운 우리말이 모두 선생님의 우리말지키기를 통해 살아난 말들입니다. ‘맞뚜레’라는 좋은 우리말을 놔두고 ‘터널’이 뭐냐고 했다가 당시 개발독재에 나섰던 박정희의 중앙정보부 분실에 끌려가 죽도록 맞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

    이미 널리 쓰이며 익숙한 우리말에 이어 이번 “버선발 이야기”는 선생님의 또 다른 역작으로 빛을 본 순우리말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니나노, 늴리리야’의 ‘니나’가 민중의 우리말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운 우리말들이 선생님의 이번 책을 통해 다시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새름(정서), 갈마(역사), 든메(사상), 하제(희망), 달구름(세월), 가슴탈(심장병), 때결(시간), 온이(인류), 얼짬(잠깐), 내둘(표현), 글묵(책), 건건이(반찬), 가시(구더기), 아다몰(이상한), 사릿(아리까리), 얼떵(곧바로), 말째고(괴롭고), 물찌(물똥), 촐랑(재미), 맞대(대답), 가물(신비감), 텀삐알(산자락), 뜬먹(감격), 날멋(촉감), 솟내(기분) 등 낯설지만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우리말의 보고가 이 책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들처럼 노동자는 노동자의 자기 언어, 자기 사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께서 10시간에 이르는 심장 대수술을 마치고나서도 목숨을 걸고 이 책을 집필하셨다는 까닭이었습니다.

    최근 촛불항쟁의 정신과 요구를 외면하고 급격히 노동배제, 친재벌로 경도되고 있는 정부·여당의 기류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노동·친자본 적폐의 노골화를 보면서 더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선생님의 <버선발 이야기>는 저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과거 땅을 가진 지주와 현재의 돈을 가진 사장은 똑같거나 더 교묘해졌을 뿐입니다. 그런 지배자들에 맞서 수많은 민중들이 도성인 ‘서울’을 향해 행진해 나가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시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그렇게 나아가야 하겠지요. 마치 버선발이 온갖 지배권력과 싸우며 나날이 깨우쳐 나가듯이 이제는 우리가 한판의 역사적 투쟁을 다시 준비해야 하겠죠.

    그런 마음을 모아 금속노동자들은 <버선발 이야기> 읽기 운동에 동참하기로도 했습니다. 부디 이 책이 억눌리고 짓밟힐수록 더 벌겋게 타오르는 우리 시대의 ‘서돌’들에게 힘이 되는 민중들의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마지막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의 원본이기도 한 선생님의 시 「묏비나리」 중 다음 구절을 다시 새겨봅니다. 5.18 광주 학살 당시 전두환 군부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독방에 갇혀 계실 때 필기구도 없어 감옥 천정에 입으로 쓰셨다는 시입니다.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춤을 얻나니

    벗이여
    저 비록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껴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 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 「묏비나리」 중에서(시집 『젊은날』 수록)

    함께 읽어요!
    백기완의 민중서사 『버선발 이야기』문화재청장을 지낸 나로서는 선생은 전승도 이수도 불가능한 인간문화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버선발 이야기』의 핵심인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세상)를 말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버선발 이야기』는 신분사회와 계급사회의 비인간적인 현실과 억압, 착취를 우화로, 가상의 이야기로, 신화로 그리고 있다. 일종의 ‘마술적 사실주의’이다. (손호철 서강대명예교수)

    – 단체, 노조, 지역, 모임 등 단체구매 가능합니다.(20권 이상)
    – 주문처 : 통일문제연구소(채원희, 010-3665-2779, busimi@hanmail.net)
    – 입금 계좌 : 국민은행_통문연(031-01-0331-930)
    * 단체구매 20권이면 택배비 무료
    * 책 받을 (주소, 이름<단위>, 연락처) 알려주시면 됩니다.

    ○ 출판기념마당 : 2019년 4월 23일(화) 19시, 프란치스코회관( 정동 경향신문사 옆)

    필자소개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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