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를 보면서 기억해낸 노동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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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28일 09: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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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오필리어) / 독자

중앙일보가 1면까지 빌어 비난했다는 포스터를 뒤늦게 보았다. 내 느낌을 말하자면 세간의 평가대로 디자인이 촌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진과 배경의 불분명한 경계와 강렬한 빨간색 배경과 흰색, 노란색과 오렌지색 글자의 배치는 세련되고 간결하게 느껴진다.

집회 참가자의 결연한 표정과 목에 둘러진 빨간 스카프의 강렬한 대조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컨셉이 약간 모호하지만 이전의 노동계 포스터에서 강하게 읽혀지는 가독성의 불친절함은 말끔히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이 포스터는 명백히 월드컵의 컨셉을 표방하고 있다. 빨간색과 흰색은 대표팀의 유니폼 색깔이고, 사진 속의 빨간 모자와 스카프는 두말 할것없이 붉은 악마의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히딩크에게 보내는 교보생명의 메시지를 벌써 잊어버렸단 말인가? 게다가 ‘서울시청앞 광장’. 노동절 기념대회나, 월드컵 거리 응원이나 모이는 장소는 똑같다.

   
  ▲ 민주노총 노동절 포스터
 

‘노동자, 당신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또는 ‘국민, 혹은 히딩크, 당신의 힘을 보여주세요’. 두 메시지는 내용은 다르지만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전자가 후자의 스타일을 표절한 셈이다. 후자의 언술은, 다들 알다시피 월드컵이라는 장을 빌어 국민의 정체성을 호출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국민이라면, 시청앞 광장으로 나오셔서 히딩크와 박지성을 응원해 주세요. 또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여중생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것이 당신의 ‘힘’을 보여주는 길입니다. 이 호명의 목적이 어찌됐건 이데올로기적이며 허구에 가득차 있다는 사실은 두번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호명이 우리 앞에 실체적으로 보여준 기적에 가까운 힘과 유토피아적인 환상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램프를 비벼 주문을 외듯,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이 주문을 왼다. 이 포스터도 월드컵과 붉은악마라는 램프를 비비며 주문을 외우며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힘을 보여주세요.’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오셔서 당신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와서 촛불을 들어주시든, ‘결연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노려보시든 상관이 없습니다.

   
  ▲ 한국 국가대표팀의 붉은 색,흰색 유니폼과 붉은 악마 ⓒ연합뉴스
 

그러므로 국민으로서의 호명방식과 노동자로서의 호명방식 두 가지 모두 빨간색과 흰색,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강렬한 분노와 흥분의 감정에 포장되어, 동일한 디자인과 컨셉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국민’이 누구인지 누구도 사색해본 적이 없듯, 이 포스터 또한’노동자’가 누구인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소원을 이루기 위해, 유토피아을 다시 보기 위해, 강렬한 빨간색, 그 대중적인 빨강의 힘을 빌어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시청앞 광장으로 호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 과연 노동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붉은 악마’라고 생뚱맞게 대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포스터 기획자를 탓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노동자이기지만, 아무도 자신을 노동자로 지칭하지 않는다. 태극전사를 응원할 수 있는 국민은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외국인과 여성이 뒤섞인 노동자는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붉은악마와 월드컵을 위장하지 않으면 호명할 수 없는 게 노동자이다. 이것이 내가 이 포스터에서 읽을 수 있는 진실이다.

그러나 나 또한 보고 싶다. 월드컵의 주문을 외워서라도, 자신을 노동자라고 부르는 이들을 보고 싶다. 노동자들이여, 당신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붉은 악마로 위장해서라도 부디 나와주십시오. 그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와서, 당신들이 누구인지 제발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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