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이겼습니다"
        2006년 06월 25일 1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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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정경진 조합원은 비정규직 노동자 120명 집단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해 10월 24일과 올해 4월 19일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의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현대하이스코 측이 복직약속을 지키지 않자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 125m 타워크레인에 올라 13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끝에 비정규직 해고자 108명 전원복직,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노조활동 보장 등에 합의했습니다.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1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가는 7월 1일을 앞두고 정경진 조합원이 왜 노동조합을 만들고 크레인에 올라야 했는지를 <레디앙>에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저는 서울 양재동 신축사옥 125m 타워크레인 위에서 13일간의 투쟁을 마무리하고 서울구치소에 구속되어 옥중에서 동지들과 만난 날을 기대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광주에서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다섯 살 때 폐암으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에 소질이 있어 축구부원에 발탁됐고, 축구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가정형편상 축구를 그만두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금호타이어 협력업체에 취직해 1년여 동안 일하며 등록금을 모았고, 2년제 대학에 입학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를 몇 곳을 거쳐 2000년 5월 현대하이스코 사내하청 협력업체인 (주)태광계전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잔업을 하지 않으면 4대 보험·점심값·상조회비 떼고 한 달에 80만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왜 이 정도의 월급이 나와야 하는지 월급계산법을 몰랐습니다.

     1년마다 계약을 하니까 노무관리 부장한테 잘 보여야 했고, 불만이 있어도 내색하지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거의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순천에서 혼자 살았지만 광주에 계시는 어머니께 생활비 올려보내면 한 푼도 저축하기 어려웠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한 달에 80만원

    회사는 점점 성장하는데 우리는 연·월차도 없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현대하이스코 원청이 하청에 주는 기성금 공개와 기성금 68.5% 지급을 요구하며 싸우게 되었습니다. 현대하이스코 원청에 생산 차질이 생기자 하이스코는 태광계전을 폐업해 우리를 길거리로 내쫓았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소문이 돌자 우리를 본보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현대하이스코 13개의 하청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6월 13일 마침내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설립의 기쁨도 잠시, 현대하이스코 원청과 하청회사의 탄압은 무지막지했습니다. 시골에 계시는 조합원 부모님께 전화해 "너희 자식 전과자 된다"고 협박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게 만들고, 임신한 조합원의 아내 세 명이 유산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에게 했습니다. 정말 너무 화가 났고 억울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런 억울하고 비참한 삶을 살수는 없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꼭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걸 많이 깨달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비정규직 해고자 투쟁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장시간 집회도 아니고 삼보일배도 아니었습니다. 내 마음이 흔들려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생활고에 힘들었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많이 얻었고 옆에 있는 동지들이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날들이었습니다.

    1차 크레인 점거농성으로 해고자 복직 약속

    지난 해 10월 24일 새벽 우리 조합원 61명은 순천공장 B동과 Q동 크레인 점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B동 31명 Q동 30명으로 나누어져 공장 안의 모든 기계를 멈춰 세웠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민주노조 인정과 해고자 전원 복직이었습니다. 크레인이 멈춰 서자 공장 안은 모든 조명과 전기가 Off 상태로 전환되었고 경찰병력이 공장 밖에 깔렸습니다. 공장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우린 20m 높이 크레인에서 입구를 막고 2인 1조로 돌아가며 보초를 섰습니다. 하루하루를 라면 쪼가리와 생쌀을 씹어먹으며 버텼습니다. 가족들이 매일 찾아와 음식물 반입을 요구하며 철조망을 붙잡고 울부짖었습니다. 경찰 특공대가 지붕을 뜯고 사진 채증을 했고 출입구를 봉쇄했습니다. 우린 안에서 갇혔습니다. 20m 지상의 상황은 LPG 가스통 2통과 기름으로 범벅이었습니다.

    위에서는 최후 통첩이라는 강제진압종이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우린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고 맹세하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고 그리움과 싸우고 우리 자신과 동지들의 미래를 위해 싸웠습니다. 드디어 교섭이 성사되었습니다. 민주노조인정, 해고자전원복직, 민형사상 손해배상 최소화를 함께 싸인했습니다. 교섭내용이 양에 차진 않았지만 점차 투쟁해서 쟁취하자며 농성을 풀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크레인 점거농성으로 인해 구속자가 속출했습니다. 나는 풀려나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지회장님을 비롯해 여러 동지들이 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정말 눈물도 남 모르게 많이 흘렸습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현대하이스코 원청과 약속한 확약서는 6개월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2차 투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공장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시민들에게 호소문을 돌리고 하루에 5Km씩 걸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잊혀져가고 있었습니다.

       
     
    ▲ 4월 19일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B동 크레인 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2차 크레인 점거농성 강제진압으로 사기는 떨어지고

    4월 19일 새벽. 이번엔 33명이 B동 크레인을 멈춰 세웠습니다. 크레인 위는 기름범벅으로 떨어지면 목숨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경찰특공대는 전자총과 전기충격기를 쏘았고, 구사대는 물대포와 쇠파이프로 우리 농성자들을 마구 짓밟았습니다. 40분만에 우리는 경찰특공대에 진압되었습니다. 순수한 우리 노동자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피가 거꾸로 치솟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강제진압으로 인해 세 명이 구속되었고 우리는 다시 불구속으로 풀려났습니다. 이렇게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조합원 삼분의 일이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구속된 동지들과 가족들 생각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이대로 포기해야 된단 말인가? 고민도 많았습니다. 조합원의 사기는 밑바닥까지 떨어졌고 승리의 자신감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의지가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125m 타워크레인에 오르며

    조합원들은 결합도 잘되지 않았고 흔들렸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월 1일 노동절에 조대익 동지와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신축사옥에 있는 125m 타워크레인에 올랐습니다.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 5월 1일부터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125m타워크레인 위에서 2명의 노동자가 농성을 벌였다.(사진 금속노조)
     

    하지만 오직 조합원들의 기나긴 투쟁을 조속히 승리하기 위해, 옥중에 있는 동지들에게 대한 의리를 다하기 위해,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저는 크레인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추위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가족들 생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 동지들을 생각하며 이겨냈습니다. 타워크레인 밑에서는 동지들이 매일 투쟁문화제를 했습니다. 우리도 크레인 위에서 함께 했습니다. 5월 13일 마침내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졌습니다. 민주노조 인정, 해고자 전원복직, 72억 손배가압류 철회를 우리는 해냈습니다.

    처음 노동조합 시작했을 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너희는 이길 수 없다." "빨리 다른 일자리 찾아봐라." 그러나 우리는 해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고 실천했습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은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승리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노동형제 여러분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하이닉스매그나칩, KM&I, 기륭전자, KTX여승무원 등 지금도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며 옥중에서 정경진 드림 (서울구치소 7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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