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 살아있는 학살자가 지나간다"
    [소설로 읽는 한국사회] 이청준 『자서전들 쓰십시다』
        2019년 03월 26일 03: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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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 ‘폭동’으로 표현한 전두환 회고록이 2017년 출간되었다. 광주지법 민사는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를 왜곡했다”며 5월 단체와 유가족이 제기한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인용 결정을 내린다.

    그는 ‘광주사태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회고록에 썼다. 고(故)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거짓이라 주장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전두환은 광주에서 재판을 받는다. “고령으로 광주까지 갈 수 없다”며 재판부를 서울로 이송 요청했지만 대법원은 광주지방법원에서의 재판을 확정한다. 30년 만에, 그를 광주로 보낸 것은 그가 제 스스로 써낸 회고록 덕분이다.

    재판에 앞서 알츠하이머라는 전두환의 주장이 술수로 느껴질 법도 하다. 정정한 걸음으로 골프장을 누비는 장면은 지금-여기를 환기한다. 잊힐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알츠하이머 전두환과 광주는 사뭇 대조적이다.

    19세기 헤겔은 나폴레옹 행차를 보고 ‘저기 살아있는 시대정신이 지나간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광주지검 옆 이한열 열사 모교 창문을 열고 초등학생들은 외쳤다 ‘저기 살아있는 학살자가 지나간다’.

    자서전(自敍傳)은 자신의 생애를 소재로 하여 스스로 쓰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한 전기다. 자서전은 작가의 기억에 의존하는데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5.18 유공자는 폭동, 괴물이란 말이 버젓이 나돈다면 출판시장에서는 시대의 십자가를 운운하며 자기 식대로 과거를 회고한 회고록이 자주 출간된다. 이른바 해석의 다양성을 들먹이는 역사적 “자기 피아르”(p. 101)의 시대다.

    이청준 『자서전들 쓰십시다』에 수록된 단편들은 「언어사회학설」의 연작이다. 이청준은 언어와 소외 그 틈에 서 있는 ‘쓰는 인간’을 중심인물로 세운다.

    「자서전들 쓰십시다」의 화자 지욱은 남의 자서전을 대필하며 갈등한다. 코미디언 피문오씨와 일평생 청렴하게 산 최상윤 선생의 자서전 대필을 두고 고민한다. 지욱은 자서전이 실상 “자기 상찬의 넋두리와 다를 바 없다”(p. 100)는 것이며 “자기 과거의 상처와 실패를 그의 책의 금박처럼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말로써 길이길이 도배질해 덮어 버리는 일”(p. 58)이라 깨닫고 코미디언 피문오 자서전 대필을 거부한다. 코미디언의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말이자 웃음이듯, 자서전 대필업자인 지욱도 자신이 쓴 글의 주인이 자신일수 없어 자괴감에 시달린다.

    “자기 시대에 대한 정직한 증언이 없는 자서전이란 물론 이 사회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뼈를 깎는 참회의 아픔으로 다시 들춰내 보일 수 있는 정직성이나 그럴 용기 없이 씌어져 나온 자서전이란, 그 자서전 집필자 자신의 삶마저도 과거의 상처나 아픔 (실패와 아픔의 경험이 없는 삶이 있으랴)에서의 후련스런 해방을 마련해 주지 못한다.” (p. 100)

    자서전 의뢰는 계속됐다. 세상에 “망각만으로 부족한 사람”(p. 58)은 넘쳐났다. “자서전은 한번 씌어지고 나면 거꾸로 그의 살아 있는 주인공을 사로잡고 그를 지배하는 이상한 힘”(p. 58)이 있었다.

    지욱은 차라리 청렴한 인생을 사는 최상윤 선생의 자서전 쓰기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취재에 나선다. 최상윤은 세상일을 무엇이나 외곬으로 이해하고 주장하며 신념과 행위가 일치한 일상을 지켜왔다. 게다가 자신의 수련생들에게 현실의 정치나 사회상에 눈을 감고 종교에만 의지할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지욱은 확신했던 최상윤 선생의 자서전 집필마저 망설여진다.

    그 선생의 신념을 두려워한 것은 그의 너무나도 일사불란한 언동이나 생활 방식에서 오히려 어떤 씻을 수 없는 가식의 냄새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도대체 이럴 수가 있을까. 한 인간의 생애에서 이처럼이나 말끔하게 후회나 의구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이 깐깐하고 결백스런 노인에게서라도 어찌 따뜻한 아랫목과 좋은 음식에 대한 바람이 전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엄격한 극기의 세월이었던들 그것이 어찌 감히 사람의 가장 사람다운 욕망까지를 송두리째 근멸시켜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노인은 어찌하여 그것을 끝끝내 시인하려 들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진실로 그의 부끄러움이 될 수는 없단 말인가.(p. 76)

    결국 이청준은 “자기 비석 앞에 억지 절을 시키고 싶어 날뛰는 자서전”(p, 100)을 일컬어 “희한한 꼴불견”이라 일갈한다. 어떤 글도 지나친 신념의 우상을 세워 “만인 속에서 자기의 뜻을 펴 실현하고 완성해 내려는 주장” (p. 79)이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고의 글쓰기란 무엇인가. 절대적인 것, 완전한 것을 부식시키는 시간의 개입 앞에 과거를 다시 불러내는 일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 누가 과거에 대해 말한 것인가. 세계와 나를 잇는 고리를 상실한 평범한 개인들이 역사라는 거대담론에 의해 찢긴 자아를 추슬러 증언에 나서는 일. 상실에 맞선 순전한 회고로 기억 투쟁에 동참하는 재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른바 집단 증언의 개인적 서사만이 역사의 베일을 벗기는 순간이 아닐까.

    자서전이 작가와 독자의 관계라면 증언집은 증언자, 작가, 청자 이 세 사람을 넘어 그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소환한다. 증언집은 개인들의 서사이자 역사의 승리 혹은 희생이라는 추상적 말로 수렴될 수 없는 날것의 언어다. 억지로 봉합된 공동의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약자의 고통이 마치 역사의 불가피한 현실인 양 섣부른 화해를 강요하는 현실과 맞선다.

    증언은 공동체의 근간이었던 폭력의 민낯을 드러낸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5월 민주 항쟁의 기록』(2017, 창비)의 개정판 출간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대로 적어도 “우리는 어느 쪽이 진실한가 하는 물음”의 단초를 제공한다.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을 이어붙이는 과정이자 진실의 전모를 파헤치는 도정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초판 2배, 도면까지 삽입하며 당시 상황을 최대한 재현한다. 계엄군의 광주청문회(1988)에서 이루어진 진압작전 참여 군인들의 증언과 국회 제출 군 자료, 12·12, 5·18 재판(1995~1997)과 수사기록 신군부의 내란 모의와 실행 과정의 불법성 등의 법률적 판단을 다룬다. 부록 각주 후주 자료만 200매에 달하는 분량을 첨부했다. 이 필사의 기록이야말로 역사의 번역이자 정치적 수행성을 갖는다. 개인의 증언을 피해 사실의 축적, 주관적 경험으로 간주한다면 증언집은 단순히 진상 규명의 도구로 소급된다. 증언의 착오와 시차를 볼모삼아 참, 거짓 논란에 휘말리도록 한다. 법적 판결만 진실로 믿는 현실은 경험적 진실 안에 깃든 인간의 외침을 공허하게 만드는 일이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이 하나의 스펙터클로 생산되고 소비돼 볼거리로 전락하는 일을 우려했다(『타인의 고통』 (2005, 이후)). 수전 손택의 질문은 우리에게 증언을 대하는 청자, 청자를 둘러싼 사회의 역량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심문한다. 증언이 증언 그대로 자기 존립 근거를 확보할 때 또 다른 증언을 불러내 역사에 참여한다. 자기 고통을 공동체적 명상으로, 보편적 인간 정신의 질서로 확대해 저들이 세운 말의 감옥에서 해방될 개인들의 증언은 계속돼야 한다.

    광주 동산 초등학교 학생들은 전두환이 광주에 출두한 날 5.18 기념 주간에 익힌 훌라송을 불렀다.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30년 전 12살 전재수 학생은 마을 앞산에서 계엄군의 총에 죽었고 30년이 지난 지금 발포 명령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구세력의 ‘집단 알츠하이머’는 국회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증언의 증언은 소설로 시로 영화로 현현했다. 그리고 이한열 후배들이 저도 모르게 우렁우렁 불러댄 노래는 아마도 역사에 대한 성찰적 주체의식, ‘저기 살아있는 학살자가 지나간다’는 공동의 증언 덕분일 것이다.

    필자소개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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