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혁명의 역사-2 : 디지털 혁명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④] '정보 전환의 시대'로
        2019년 03월 25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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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산업혁명의 역사

    2-1. 농업혁명 : 문명의 발생
    2-2. 1차 산업혁명 : 기계 혁명
    2-3. 2차 산업혁명 : 전기 혁명
    2-4. 3차 산업혁명 : 디지털 혁명
    2-5. 4차 산업혁명 : 인공지능 혁명

    앞 회의 글 “산업혁명의 역사-1 :문명의 발생-기계혁명-전기혁명”

    [필자 주] <붉은 오늘>은 붉은 어제를 되새김질 하고 있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다. 그렇다면 내일은? 붉은 내일이 없는 붉은 오늘이 있을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은 붉은 내일에 대한 토론을 제안한다. 토론을 알차게 준비하기 위하여 독자들의 동참을 부탁드린다. 댓글과 반박,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지런한 퍼나르기는 토론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첫 번째 오프라인 토론은 금년 5~6월에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심화학습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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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컴퓨터 기술은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발되었다. 컴퓨터의 상용화는 인간의 노동방식과 생활방식에 또 한 번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넓이를 계산하는 곱셈표. 기원전 27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 최초의 수학문서

    컴퓨터 이전의 기계는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해줄 뿐이었다. 달리 말해서, 인간의 노동과정 중에서 육체적 실행과정을 대신해주는 것들이었다. 증기엔진은 인간의 팔다리를 대신해주었다. 방적기계는 물레를 잣는 팔을 대신해주었고, 방직기계는 베 짜는 팔을 대신해주었다. 기차는 인간의 다리를 확장해주었고, 자동차는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장해주었다. 전화는 파발마를 달리는 노동을 대신해주었다. 이처럼 기계가 인간의 육체능력을 대신하거나 확장시켜주는 모든 과정은 에너지 형태를 전환시키는 과정을 동반했다.

    기존의 모든 기계와 달리 컴퓨터는 아무런 에너지 형태도 전환시켜주지 않는다.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꿔주지도 않고,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컴퓨터는 증기엔진도 전기모터도 해줄 수 없는 일을 해줄 수 있다. 계산하는 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컴퓨터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나 컴퓨터는 에너지 형태를 전환시켜주는 기계가 아니다. 정보를 전환시켜주는 기계이다.

    고대 로마 시대 주판

    계산하는 노동은 정보를 전환시키는 노동이다. ‘2+3’이라는 정보를 ‘5’라는 정보로 전환시키는 노동이다. 계산노동은 매우 고생스러운 노동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뒤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늘 이 지긋지긋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해왔고, 마침내 계산기계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기계가 인간의 두뇌노동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들자면 우선 두 가지 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 첫 번째 기술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수치로 표현하는 기술이다. 궁극적으로는 ‘0’과 ‘1’의 조합으로 표현해야 한다.

    실물세계에는 아날로그 신호만 존재한다. 인간은 아날로그 신호를 식별할 수 있다. 색깔을 보고 ‘노란색’인지 ‘빨강색’인지 식별할 수 있고, 음성을 듣고 ‘밥’과 ‘국’을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는 아날로그 신호를 식별하지 못한다. 기계가 구별할 수 있는 신호는 ‘꺼짐(Off)’과 ‘켜짐(On)’뿐이다. 그러므로 기계가 아날로그 정보를 인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0’(=Off)과 ‘1’(=On)의 조합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처럼 실물세계의 모든 아날로그 신호를 이진법 수치(=디지털, Digital)로 번역하여 기계가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을 ‘수치화(=디지털화, digitizing) 기술’이라고 한다.

    세상만물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주장한 인물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를 꼽아야 할 것이다. “만물은 수(數)이다.” 그가 2천5백 년 전에 내세운 이 공식은 뒤에 컴퓨터의 발명과 더불어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컴퓨터의 발명을 가능하게 만든 또 한 사람의 철학자로 라이프니츠를 빼먹을 수 없다. 그는 모든 수치를 ‘0’과 ‘1’의 조합으로 치환하는 2진법을 개발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주역>의 괘상도에서 2진법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701년, 중국 북경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스 신부가 라이프니츠에게 괘상도를 보내주었는데, 그것을 연구하여 라이프니츠는 2진법 원리를 터득할 수 있었다. 주역 괘상도는 단 두 개의 기호, 즉 긴 막대 ‘―’와 짧은 두 막대 ‘–’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단 두 개의 숫자 ‘0’과 ‘1’로 모든 수치를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라이프니츠는 괘상도를 보는 순간 아마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부베가 라이프니츠에게 보낸 괘상도, 라이프니츠 아카이브

    디지털화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 한 업적으로는 1836년 발명된 모스 부호를 꼽을 수 있다. 모스 부호는 인간의 언어정보를 단 두 개의 기호, 즉 점(·)과 선(-)을 이용하여 2진법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하였다.

    모스 부호. 1836년 개발

    기계가 인간의 두뇌노동을 대신하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 두 번째 기술은 인간이 계산노동을 수행하는 복잡한 절차와 방법을 기계가 그대로 재현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프로그래밍 기술’이라고 한다.

    수치화 기술과 프로그래밍 기술, 이 두 가지 기술을 결합하여 계산 기계를 최초로 발명한 인물로는 튜링을 꼽아야 할 것이다. 튜링이 발명한 최초의 컴퓨터는 2차대전 중에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생성기계 ‘에니그마(Enigma)’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암호해독기계였다. 최초의 기계 스파이였던 셈이다.

    에니그마. 26개의 톱니를 가진 3개의 회전판은 26×26×26=17,576개의 설정상태를 가질 수 있다. 회전판을 한 개 더 붙일 경우 가능한 설정상태는 456,976개로 늘어난다. 이어서 플러그보드에서 6쌍의 플러그가 치환되면, 경우의 수는 1천억 가지로 늘어나고, 10쌍의 플러그가 치환되면 159조 개의 설정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수동타자기에 회전판과 플러그 판을 합쳐놓은 모양의 에니그마는 간단한 조작을 통하여 설정상태를 변경할 수 있었는데, 변경 가능한 경우의 수가 무려 1.59×1020 에 달했다.

    암호문을 해독해내자면 암호문을 읽은 뒤 에니그마 설정상태를 역산해낼 수 있어야 했다. 1.59×1020 경우 중 정답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연합군은 암호문을 입수했지만 그것이 생성될 때의 에니그마 설정상태를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해독할 수 없었다.

    튜링이 컴퓨터를 발명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한 사람이 1분에 한 가지 설정상태를 계산한다고 치면, 열 사람이 매달려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하루 24시간 꼬박 일한다고 하더라도, 2천만 년이 걸린다.”

    튜링 컴퓨터 ‘봄브’.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게다가 독일군은 매일 한 번 씩 에니그마 설정상태를 바꾸었다. 그러므로 암호를 해독하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머리로 계산하여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도록 만든 사람이 튜링이었다. 튜링은 인간의 머리로 계산하여 암호문을 해독하는 기존의 모든 기술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전혀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눈에는 눈, 기계에는 기계’, 이것이 튜링의 발상이었다. 암호문을 생성하는 기계에 맞설 수 있기 위해서는 암호문을 해독하는 기계가 있어야 한다! 그는 ‘봄브(Bombe)’라는 이름의 계산기계를 발명하여 그의 발상을 구현하였다. 기계에게 고생스러운 계산노동을 떠넘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는 계산기계이다. 그러므로 기계의 한 종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컴퓨터가 불러일으킨 혁명도 기계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컴퓨터는 기존의 모든 기계와 질적으로 확연하게 구별되는, 전혀 새로운 기계이다. 기존의 모든 기계는 에너지 형태를 전환시켜주는 일을 하였다. 그에 반하여 컴퓨터는 정보를 전환시켜주는 일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컴퓨터는 기계혁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혁명, 디지털 혁명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과정 흐름도 ③ (인간+기계+컴퓨터)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노동과정 알고리즘을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노동과정 중에서 컴퓨터가 수행하는 몫은 두뇌노동을 대신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발명과 더불어 인간은 두뇌노동의 일부를 기계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되었다. 골머리를 썩게 만드는 계산노동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과정 흐름도 ③ 참조)

    그뿐만 아니라 컴퓨터는 다른 기계와 결합될 경우 마치 그 기계의 두뇌처럼 작동할 수 있다. 인간은 기계에 컴퓨터를 장착함으로써 기존의 기계들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노동과정을 기계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컴퓨터가 장착된 기계를 ‘로봇’이라고 한다.

    011년 1월 가동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 연간 20만대 생산 가능, 로봇 47대가 시간당 45대를 만들어내는 차체 조립 라인

    디지털 기술이 대중적으로 상용화되도록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으로는 아마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을 꼽아야 할 것이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발명한 ‘애플1’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합판 박스에 몇 가지 부품을 담고 그 위에 키보드를 얹어 만든 애플1에는 모니터조차 없었으며, TV 브라운관에 연결시켜 사용해야 했다. 이 보잘것없는 기계가 불과 한 세대 만에 온 세상을 뒤바꾸어놓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애플 1, 1976년

    디지털 기술은 곧 모든 기술의 기반기술로 자리 잡아 나갔다. 컴퓨터는 우선 기존의 여러 가지 기계들을 디지털 기계로 변화시켰다. 태엽시계는 디지털시계로 바뀌었고, 다이얼 전화기는 디지털 전화기로 바뀌었으며, 타자기는 데스크탑 컴퓨터로, 이어서 노트북 컴퓨터로 바뀌었다. TV에도 컴퓨터가 심어졌고, 전기밥통에도 컴퓨터가 심어졌다. 기관차에도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고, 비행기도 컴퓨터로 제어된다. 이렇듯 오늘날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는 기술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과연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생산력을 얼마나 증대시켰을까? 여기서는 일단 ‘혁명적으로 증대시켰다’고 해두고 넘어가기로 하자. 넘어가기 전에 한 마디만 보태면 이렇다. 역사학자들이 계산해낸 수치를 참고하자면, 튜링의 암호해독기 한 대가 2차 대전을 2년 단축시켰고, 1천4백만 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한다. 이 정도면 ‘혁명적’이라는 이름에 값하고도 남지 않을까?

    컴퓨터의 막강한 능력이 인간의 노동과정과 일상생활 속으로 넓고, 깊고, 빠르게 스며들도록 만든 또 하나의 기술이 있다. 인터넷 기술이다.

    인터넷 기술은 이 기계의 컴퓨터와 저 기계의 컴퓨터를 서로 연결시켜주었고, 이 공장의 컴퓨터와 저 공장의 컴퓨터를 서로 연결시켜주었다. 이 나라의 컴퓨터와 저 나라의 컴퓨터도 서로 연결시켜주었다. 이렇게 연결된 컴퓨터들 사이에는 빛의 속도로 정보가 교환될 수 있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노동자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로는 단연 ‘생산의 자동화’를 꼽아야 할 것이다. 생산자동화는 노동자들의 고용형태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공장자동화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동과정을 로봇으로 대체하였고, 사무자동화는 사무관리직 노동자들의 노동과정을 컴퓨터에게 넘겨주었다. 오늘날 노동과정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단순반복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일수록 일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커피자판기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노동자를 밀어내었고, 현금인출기는 은행에서 창구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대신하였다. ‘철밥통’ 시절은 가버리고, 항상적 고용불안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생산의 자동화’가 동전의 한 쪽 면이라고 한다면, 동전의 다른 쪽 면은 ‘시장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 자동화는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그럴수록 국내시장은 비좁아졌다. 자본은 흘러넘칠 정도로 쌓였다. 세계 어느 곳이든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갈 수 있는 기술적 토대도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는 국가들 사이의 경제국경선을 높게 유지하고 있었고, 각국의 산별노조는 자본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판 싸움이 불가피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재정을 탕진한 닉슨 정부는 1971년 금본위제를 폐지한다고 선언했는데, 그것은 사민주의 세력에 맞선 신자유주의 세력의 선전포고였다. 1976년 수립된 킹스턴 체제는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함으로써 세계시장의 기본질서를 뒤흔들었다. 1979년 영국에서 대처 수상이, 1980년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세력의 공세는 점점 더 거세졌다.

    신자유주의는 금융 산업과 디지털 기술을 무기로 삼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었다. 인터넷 기술은 자본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팽창하였다.

    본래 금융자본은 실물자본에 매여 있었고, 실물자본은 국경선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금융자본은 실물자본으로부터 유체이탈을 해버렸고, 국경선도 허물어버렸다. 이렇게 형성된 유령자본이 신자유주의 시대 내내 지구 이곳저곳을 휩쓸고 다녔다.

    디지털 기술은 세계 정치질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하였다. 사회주의 진영은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산력 경쟁에서 자본주의 진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이어서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서방세계의 자본들은 새로 열린 시장을 정복하기 위하여 물밀 듯이 몰려 들어갔다. 한편, 사회주의 혁명의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재빨리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도입한 중국은 21세기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오늘날 미국과 어깨를 겨룰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일상생활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생활공간, 즉 온라인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그 결과 예전에는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수행할 수 있었던 수많은 생활 활동이 이제는 점점 더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몸소 시장이나 마트로 가서 물건을 구입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있다. 몸소 은행창구로 가서 돈을 찾던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아무데서나 ATM으로 현금을 인출하고 있다. 이제는 은행건물도 은행원도 없는 은행, 인터넷은행까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웹2.0 기술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수동적인 정보 검색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정보 생산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이제 인터넷 이용자들은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개인 신문을 출간할 수도 있고, 개인 방송국을 운영할 수도 있다. 점포를 열고 상인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한편,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공동체들이 형성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전세계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이른바 ‘초연결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인간은 점점 더 ‘시티즌’에서 ‘네티즌’으로 변모해갔고, 크고 작은 네티즌 공동체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높은 산맥도 깊은 강물도, 넓은 바다도 삼엄한 국경선도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럴수록 오대양 육대주는 점점 더 단일한 지구촌으로 발전해나갔고, 인간은 저마다 자기 집 안방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지구 전체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조만간 모든 인간이 지구촌의 모든 관심사에 직접 개입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계속>

    필자소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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