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주의' 독일이 수입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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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24일 08: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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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월드컵 광기 때문인지 희한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 독일 월드컵 분위기를 보고 독일이 한국의 거리응원 문화부터 애국심까지 수입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독일에서는 술도 마시고, 훌리건도 있고, 쓰레기도 치우지 않아서 “우리(한국)보다 한 수 아래”이지만, ‘수출품’이 잘 활용되고 있다는 식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비슷한 모습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입됐다”는 주장은 착각일 것이다.

물론 거리응원에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은 지적할 만하다. 이러한 응원은 특수하다기보다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런 지적을 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민족주의’나 ‘애국주의’로 묘사되는 현상을 주목하기 위해서이다.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독일

월드컵을 개최한 독일에서는 지금까지 축구대표팀이 괜찮은 성과를 얻고 있어 독일인들의 축제분위기가 솟아나고 있다. 지금 독일인들은 두 가지 점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 지난 13일 서울광장에서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한국팀의 동점골이 터지자 열광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하나는 ‘열심히 일하고 진지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던 기존의 독일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사람들도 흥분하고 열정적이고 재미있게 놀 줄 아는구나’라고 세계가 감탄하고 있다. 요즘 독일인들의 거리응원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실은 이번 대회에 참여한 독일 축구대표팀의 경기 스타일에도 비슷한 면이 있다. 옛날에는 철저하고 정확한 수비가 독일팀의 핵심과 강점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공격수들이 골잔치를 이끌고 있다. 효율적이지만 색깔 없고, 재미없었던 축구가 다색적이고, 재미나는 축구로 바뀌었다.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독일인들의 ‘새로운 애국주의’(?)다. 독일 신문들의 기고와 방송들의 토론프로그램은 이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주요 매체들도 이번 월드컵을 중계하면서 이전에 찾기 어려웠던 독일인들의 애국주의 부활(?)을 짚어보고 있다.

“도이칠란트” 외쳐도 좋다고?

여기서 필자가 또 다시 놀랐던 것은 세계의 신문과 방송 매체들이 독일인의 애국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르 몽드>, 스페인의 <엘 빠이스>, 영국의 <가디언> 등이 이구동성으로 “드디어 독일인들의 애국심도 정상화되고 있다”고 기뻐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디아리오 데 노티시아> 신문은 “수출챔피언이고 풍부한 사회복지제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정체성 콤플렉스를 겪고 있는 독일인들에게 월드컵이 가장 좋은 단체치료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멕시코의 <엘 우니베르살> 신문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 전역이 흥분해서 흑-적-황(독일 국기의 색깔)을 둘러쓰고 있다. 집단적인 참회가 61년이나 걸렸다. 축구의 마술이 참회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참으로 놀랍다! 16년 전만 해도 독일통일을 앞두고 특히 가까운 영국, 프랑스 등이 통일된 독일 대국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를 표명했는데, 지금은 이웃나라들이 독일의 전 사회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전에 그렇게 금기시되었던 독일 국기를 휘날리면서 “도이칠란트!”라고 외쳐도 좋다고 한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2차 대전에 패하고 주요 전범재판인 뉘른베르그 재판을 거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비판의식은 6백만 명에 달하는 유태인들이 학살을 당한 수많은 수용소에 대한 진실이 공개된 60년대초가 돼서야 생기기 시작했다.

“다시는 독일이 없어야 한다”

이후 68운동을 거치면서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산업국가들의 가치관 전환이 이뤄지고, 신사회운동이 등장하면서 철저한 과거청산이 시작됐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타고 등장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구호는 바로 “다시는 독일이 없어야 한다(Nie wieder Deutschland!)"는 것이었다.

이후 두 독일이 통일되면서 독일인들의 정체성을 정상화(?) 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통일의 고통은 아직도 완치가 되지 않았지만, 몇 년 동안 나라를 통합시키느라고 애를 쓴 결과 중 하나가 2001년에 두드러졌다.

"나는 내가 독일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는 말은 원래 신나치들이 독점으로 사용한 말이었는데 이 말을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한 정치인이 하더니, 1년 동안 독일의 ‘주도문화’에 대한 논쟁(Leitkultur-Debatte)이 벌어진 것이다. 3년 뒤 또 다시 기민당 당대회에서 집권당인 사민당의 정치인을 향해 애국심이 결여됐다는 비판에 제기돼 이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나치 민족주의처럼 위험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리고 2006년 여름, 월드컵이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 독일인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해도 되는 이유>라는 책이 발간되고 마침내 ‘애국심의 유령’이 독일의 거리에서 살과 뼈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에서의 히틀러

물론 지금의 현상이 나치시대의 민족주의와 같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국가상징에 대한 열정은 이번 월드컵으로 국한된 현상이며, 다른 하나는 대중이 맹목적으로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점은 독일인들의 정체성에 관련한 것이다. 독일 사회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의 구성만 봐도 옛날의 편협한 민족주의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민자인 클로제, 포돌스키, 아사모아 등과 같은 골잡이만 봐도 분명하다.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은 독일의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즉 이미 독일인들의 정체성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자기 나라와 세계에 대해 이처럼 비판적인 의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하버마스 등 이론가들이 제시한 헌법애국주의(Verfassungs-patriotismus)도 바로 이러한 성숙한 세계관을 말해준다.

월드컵 상업주의의 광기

하지만, 지금의 현상이 팽창적이고 배제적인 민족주의나 인종주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걱정할 부분이 있다.

옛날에 군인은 군주에게 돈을 받아 방어를 해줬지만, 나중에 민족국가가 생긴 후에는 민족을 위해서 ‘공짜’로 목숨을 바쳤다.

축구국가대표팀의 팬은 처음에는 공짜로 자기의 국가를 응원했지만, 요즘에는 시장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동원되어 이것저것 응원 액세서리를 사게 되고 대기업이 ‘마련’해준 ‘공공’장소에서 대표팀을 응원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일종의 ‘퇴화의 발전’이다.

요즘은 정말로 광기의 시대인 것 같다. 원 안에서 ‘유희’를 해준 ‘검투사’들로는 모자라 콜로세움의 관객들마저도 기업들이 먹어버리는 ‘빵’으로 전락했다. 이 현상은 역사는 다르지만 독일과 한국에서 똑같아 보인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 현상이 수입품은 아니더라도, 일단 ‘대~한민국주의’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강미노_한네스 B. 모슬러라는 독일 이름을 갖고 있는 이방인. 76년 독일에서 태어나 95년 브레멘대학에 입학했다. 이듬해 베를린 훔볼트대로 전학해 문화학과 한국학을 전공했다. ‘한국 민족주의 논쟁에 대하여’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와서 <이코노미21> 객원기자로도 활동했다. 현재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의 정당체제’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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