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가장 커다란 선물은?
    [행복칼럼] ‘지금’ ‘여기서’ 시작하자
        2019년 03월 22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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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을 서두르면서 화장대 앞에 선다. 화장대 거울엔 유학 중인 큰딸아이 사진이 붙어있다.

    복잡한 친정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게 될 거라는 어마어마한 착각에 빠져 결혼을 했다. 얼떨결에 결혼은 했지만 워낙 모성애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일찌감치 알아챘기에 아기는 낳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아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제발 낳기만 해라, 키우는 건 자기가 다 하겠다고 애원하였다. 머리가 좀 나쁜, 아니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 덕분에 아기를 낳았다.

    웬걸, 그 당시 산업선교를 하던 남편은 늘 밤 12시가 다 되어 귀가하는가 하면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나도 직장에 다니고 있던 터라 많이 망설이시는 시어머니에게 간청하여 집으로 모셨다. 워낙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시어머니이셨고, 집안일을 도울 일손까지 마련하였는지라 마음 놓고 직장 일에 전념하였다. 오죽하면 근무하던 병원에서 내 별명이 ‘왕~가포녀(가정이 포기한 여자라는 뜻)였겠는가

    그 바쁜 중에도 남편은 모처럼 쉬는 날에는 두 딸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다녀오는 등 애를 자기가 다 키우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나름 애썼다.

    아무리 할머니가 맡아 키웠어도, 바쁜 아빠가 틈틈이 애들을 데리고 놀아주었어도 엄마의 무관심이 자녀에게 미친 영향이 어마무시하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타국에서 유학 중이던 딸아이가 한밤중에 너무 힘들다며 울먹이며 전화를 했을 때 덜컥 겁이 났다. 당장 집으로 오라 했다. 딸아이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의 빈자리로 인한 딸의 상처가 깊음을 알게 되었다.

    노동 목회에 전념하는 남편을 대신하여 집안 경제를 책임지겠노라고 했던 결혼 당시 약속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그 역할에 열심을 다 했다. 잘 한다는 소리 듣고 싶어 스스로를 들볶아가며 바깥일에만 몰두했다. 엄마를 대신하는 할머니가 계시니까 문제가 될 게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외로웠고 엄마의 심리적인 부재는 생각보다 훨씬 컸나 보다.

    세월이 흐를수록 지나온 삶을 돌아볼 기회가 많아졌다.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었다. 단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에 가슴이 저몄다. 제일 중요한 자녀 양육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딸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원하는 대로 머리도 예쁘게 빗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있었던 일들을 종알거리는 얘기를 들으며 저녁밥을 차려줄 수 있다면 딸애의 얼굴은 미소로 빛날 텐데….

    “그 남자랑 결혼했어야 더 행복할 텐데”, “다른 대학에 갔더라면 내 인생이 폈을 텐데”라며 과거에 발목 잡혀 있기 쉽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는 있으나 거기까지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원하는 직장에 다니게만 된다면 신나게 지낼 텐데”, “결혼만 하면 외로움 끝 행복 시작일 텐데”라며 미래만 고대하며 지내게 될 때도 많다. 이 지상에서의 날이 얼마나 더 주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영화 ‘쿵푸 팬더’에서의 대사처럼 과거는 역사고, 미래는 미스터리이며, 보장되어 있는 시간은 ‘현재’뿐이다. 현재를 선물(Present: 현재·선물)이라 부르는 이유다.

    애석하게도 백일기도, 아니 10년을 기도한들 인생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전부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 대신 딸아이를 위해서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아침저녁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시고 원하는 공부 계속 할 수 있게 해주십사….’

    오늘도 화장대 거울에 붙여 놓은 사진 속 딸아이의 얼굴을 보며 소리 내어 고백한다.

    “사랑한다,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한다!”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 나태주의 시 ‘선물’ 중에서 –

    추가: 내 생애에서 가장 잘 한 일은 혼자 살리라는 생각을 접고 결혼해서 두 딸을 낳은 것을 이라고 생각한다, 모성애 용량이 부족하여 두 딸에겐 많이 미안하다…..

    필자소개
    주혜주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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