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루한, 어려운, 독특한, 아주 흥미로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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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23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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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의 영화가 극장 스크린에 펼쳐질 때, 그것이 하나의 돌돌 말린 긴 필름(“릴” 혹은 “스트립”이라고도 하는)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가 스크린 위에서 보는 이미지는 바로 그 즉물적 필름을 투과한 빛이 그려내는 환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최소한 우리는 그들의 얼굴이 만져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이미지들이 아무리 진지한 고민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아무리 무자비한 삶의 깊이로 우릴 빠뜨린다 하여도, 그 몸뚱이는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우리가 봐왔던 그토록 잘생기고 위대한 이미지들이, 이토록 가볍고(빛이 여러 사진들을 투과한다는 이 초라함) 납작한(그리고 그 사진이란 단지 셀룰로이드 조각에 불과하다는 이 비천함) 못난이의 사생아에 불과했단 말인가! 차라리 비대하고 울퉁불퉁한 못난이였으면!

    <시네마 천국>이 제시한 삶의 진실

    여기서 우린, 아직도 종종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는 영화 <시네마 천국>이 제시했던 그 삶의 진실로 되돌아간다. 알프레도가 선취하고 토토가 허겁지겁 깨닫길: 삶의 진실이란, 환영일 뿐인 귀족적 화려함(삭제된 키스 신)에도 있지 않고, 물질성 자체이긴 하지만 그 대신에 구질구질할 뿐인 계급적 비천함(알프레도의 좁고 지저분한 영사실)에도 있지 않으며, 바로 그 둘의 콘트라스트에 있다는.

       
     

    화려함과 초라함, 풍만과 빈곤, 꿈과 물질성, 깊이와 납작함, 왕자님과 못난이, 오색영롱한 브레인과 빼빼 여윈 몸뚱어리… 이 잔인한 콘트라스트를 견뎌내고 있는 영사실의 또 다른 알프레도를 위해, 상영이 이미 시작된 경우에는 영사실로부터 스크린에게로 뿜어져 나오는 그 헌신의 빛에 우리의 대가리 크기만한 그림자를 섞지 않음을 핑계 삼아 고개를 조아리며 존경심을 표하기는 해도, 상영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경우에는, 혹은 상영이 아예 끝나버린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의 헌신성과 그것이 끝내 중얼거리고 있는 <시네마 천국>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그의 비장한 삶에 우리의 오만함의 크기만한 계급적 그림자를 되섞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진실은 계급적 진실임을 깨닫고 컴백한, 그러나 사실 그것이 그의 성장이 외면하고자 했던 키스 신만큼이나 순진한 가설임을 깨닫지는 못한 토토가, 여전히 수염을 기를 태세지만 요즘은 왠지 면도를 꼬박꼬박하고 다니는, 그러나 여전히 구질구질하여 아직은 우리를 실망시킬 정도로 귀족적이지는 못한, 한국 시네마테크의 끈질긴 알프레도, Mr.Q에게 묻길:

    계급적 진실 깨달은 토토와 영사기사 Mr.Q

    컴백한 토토: (상영시간에 지각했을 때 하는 형식적인 인사를 일부러 피하기 위해, 상영이 이미 끝난 뒤에 찾아가 고개를 조아리며) “오늘….첫 출정인, 내 셔츠 어떤가.”
    Mr.Q: “핑크색이 유행이다”
    컴백한 토토: “요즘 건강은…”
    Mr.Q: “마음도 안 아프다”

    컴백한 토토: (좀 더 그의 헌신성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요즘 재미있는 일은?”
    Mr.Q: “한국-토고전보다, 호주-일본전이 더 재미있다”
    컴백한 토토: “(꽥. 당황하며)… 그, 그럼 짜증나는 일은? 가슴이 찢어지는 일은 없는가.”
    Mr.Q: “영사하다가 필름이 찢어지는 일이 있다. 그 때는 짜증난다.” [노후 된 필름은 영사기 안에서 찢어지기도 하며, 이 때 영사기사인 그가 어느 정도 책임을 떠맡게 된다. 그런 필름은 수축 혹은 팽창하여 상영 시 계속해서 포커스를 맞춰줄 수고를 요구하기도 한다: 졸라 짜증나겠다.]

    컴백한 토토: (마치 그가 보여주는 <시네마 천국>의 진실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졸라 짜증 나겠네요.”(갑자기 존댓말)
    Mr.Q: “늦게 들어온 놈들이 대가리로 스크린 가릴 때보다는 덜 짜증나요.” (여기도 갑자기 존댓말. 토토의 안도의 한숨. 휴~ 난 컴백할 때 대가리로 빛을 가리지는 않았어.)

    토토, 다 넘어간 숨 간신히 되찾아오다

    컴백한 토토: (자신의 컴백의 이유를 찾기 위해, 엄한 사회과학적 배경을 괜히 드러내 보이며) “루카치는 계급의식 내에 있는 모순형태들을 구분했고, 레닌은 이에 상응하듯 실천의 의식성과 즉자성을 구분했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구분할 수 있는가? 당신의 분별력은 무엇인가?”
    Mr.Q: “필름 포맷을 구분한다: 씨네마스코프(2.3:1), 비스타비전(1.85:1), 그 외에도, 스탠다드(1.37:1), 유로피안(1.66:1)… 나의 분별력은 바로 이것이다. (토토의 숨이 넘어가기 시작한다: 꼴까닥) 내가 영사실에서 영사를 할 때,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구분이란 없다. 필름의 즉물적인 구분이 있을 뿐이다.”

       
     

    컴백한 토토: (토토가 거의 다 넘어갔던 숨을 겨우 되찾으며 내면독백: ‘바로 이거야! 내가 컴백한 이유, 오늘 내가 그를 인터뷰했어야 했던 그 이유! 그래! <시네마 천국>의 진실이야! 귀족적 화려함과 계급적 초라함, 그리고 그 콘트라스트!’) “다… 다… 당신 방금 뭐… 뭐라고 했소?”
    Mr.Q: “왜 반말 하냐. 내가 영사하는 데 있어서 영화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위대한 영화와 후진 영화는 감독과 관객의 몫이며, 내가 신경 쓰는 부분은 사운드 포맷, 밝기 등이다. 사운드는 의도대로 잘 나오고 있는지, 영상의 밝기는 적당한지, 혹 포커스는 맞아 있는지, 그런 것들에 신경 쓴다”

    컴백한 토토: (그는 자신의 구도에 인터뷰 내용을 끼워 맞추기 위해 틈틈이 그를 초라한 못난이로 몰아가기로 한다) “그… 그래, 시… 신경 쓰시겠지. 그리고 그것도 그 구질구질한 영사실에서 말야!”
    Mr.Q: “좀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른 극장에 가도, 그런 것들만 보이게 된다. 이 극장은 이렇게 영사를 하는데… 이것은 좀 잘못 되었군 등. 직업병이다. 나도 영화 좀 재미있게 보고 싶다”

    나도 영화 좀 재미있게 보고 싶다

    컴백한 토토: “(정신재무장을 하며) 나… 나도 생각이 정리되었다. 엄청난 질문이다: 당신은 직업 상, 영화의 내용(이미지의 화려함: 캐릭터, 미장센, 내러티브, 알레고리…)과 영화가 영사되는 조건(비천함: 필름포맷, 사운드 포맷, 종횡비, 필름의 상태, 포커스…) 사이에서 어떤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가? 나아가, 모두 다 영화의 내용에 빠져들면서 꿈을 꿀 때, 1.85:1 인가, 1.37:1인가 종횡비나 따지는 당신은… 그러한 그들로부터 소외된 듯한 괴리감을 느끼지는 않냐고!?”
    Mr. Q: “종횡비, 필름포맷, 사운드포맷 등은, 엄연한 작품의 일부이다. 그것도 연출자가 의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반영되지 않고 인식되지는 않더라 하더라도, 그것은 최대한 반영되어야 마땅한 인식의 조건인 것이다” (우문현답: 그는 원래 포맷을 충실히 반영하는 DVD라는 매체가 보급됨에 따라, 이 인식의 조건 또한 인식의 대상으로 되어간다고, 관객들이 이제는 비천함마저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어간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화려함과 비천함의 콘트라스트에만 집중하던 우리의 토토는 당혹스러움에 봉착한다. Mr.Q의 영사철학은 이미 그 ‘콘트라스트론(論)’보다 심오한 지점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천함조차 화려함의 부분이며, 심지어는 토대라는, 어디서 많이 듣던 구도이나 인터넷과 디지털 TV 앞에서 종종 망각하곤 했던 바로 그 구도!

    영사기사들, 당신들은 얼마나 잘났냐

    컴백한 토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너무 잘해주는 엄마한테 투정부리는 꼴이다) 그… 그렇게 많이 아는, 당신들은 얼마나 잘났냐?”
    Mr.Q: “또 반말하네. 영사기사들도 잘난 건 없다. 예를 들어보면, 기존의 영사기사들, 즉 90년대 이전까지 영사기술들을 독점하고 있던 영사기사들은, ‘장인’으로 취급되어 왔지만, 사실 그들은 그것밖에 모르는 이들이다. 필름 릴을 영사기에 걸고 정해진 포맷대로 렌즈를 걸고 포커스를 적당히 맞추는… 라인을 타는 노동자처럼 반복 노동”

    컴백한 토토: “자본주의의 선봉대인가?”
    Mr.Q: “오히려 자본주의의 희생양이다. 새로운 포맷과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독점적으로 반복하고 있던 기술이 뽀록나기 시작했으니깐. 예컨대 스탠다드 포맷의 경우, 그에 맞춰서 스크린에 영사되는 그림을 잘라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던 대로 그냥 영사해버린다.

    사람들은 어색한 액자틀도 같이 보게 되는 것. 연출자들이 그러한 포맷에 맞는 영사렌즈와 마스크를 가져와도 막무가내다. 그들은, 마치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영사기가 폭발해버릴 것이라는 공포에 떨 듯이 행동한다.

    잘난 거 없다. 숙련공인 척하는 비숙련공일 뿐

    그들은 숙련된 장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숙련공이라기보다는 숙련공인 척하는 비숙련공인 것이다. 그들은 변해가는 매체와 그에 따라 변화가 요구되는 노동조건에 적응하는 것을 실패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영사시스템이 자동화가 되면서 한 명이 여러 영사기를 다루는 시스템도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그는 이른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쓰는 ‘맷돌처럼 생긴’ 플래터flatter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릴을 되감는 시간을 줄임으로서 연속적으로 여러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화 장치이다).

    그에 따라 이번엔 완전한 비숙련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학생도 간단한 기계조작을 통해 영화 상영을 콘트롤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면허가 없는 그들은, 법적으로는 35mm 필름을 영사할 수 없다. 그러나 복잡한 조작이 필요 없는 이 기계의 도입으로, 결국 그들은 영사기사가 아니라 영사보조로 취급되며, 고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컴백한 토토: (토토가 큰 맘 먹고 오랜만에 훌륭한 멘트를 날린다) “한 쪽에는, 숙련인 척하는 비숙련공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대놓고 비숙련공이 있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영사철학자는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이는 지금 영화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 양극화와도 닮아 보이지 않는가.”
    Mr.Q: “(분노한 Mr.Q가 토토의 말을 씹는다) 더욱 싫은 것은, 그들의 ‘실력 부재’보다는,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관행’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반복노동에 의해 ‘무지[온통 검은 색인 화면. 으레 영화 처음과 끝에 쓰인다]’를 두려워하는 습관을 연습했는데, 예컨대 영화제에서, 여러 영화를 연속으로 상영해야 할 경우, 그들은 영화들을 앞뒤로 다닥다닥 붙여서 틀어버린다.

    관객들은 한 영화를 보고 그 잔향과 여운을 충분히 음미하기도 전에, 다른 영화로 허겁지겁 진입해야 한다. 심지어 이들은 아무렇게나 멋대로 프린트에 손도 댄다. 자기 임의대로 필름을 잘라내기도 하며, 한 번 붙여놓고 떼어낼 때는, 그 테입 떼는 게 귀찮은지, 테입 양 옆에 있는 한 프레임 씩을 몽땅 잘라내기도 한다!” [필름 릴이 잘라져서 영사실에 들어온 경우, 영사기사는 그것을 붙였다가 떼어낼 수 있는 일시적 권한을 갖는다.]

    여러 번 씹힌 토토 화를 내기 시작하다

    컴백한 토토: “(얼추 장단을 맞추려고 화를 참으며)참 나쁜 사람들이네요…”
    Mr.Q: “그 사람들이 나쁜 것 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배급사와 제작사가 이를 방임한다는 것이다.(토토가 다시 한번 씹히다) 개봉하고 약속된 상영일수를 다 끝내면, 그러한 프린트 필름들은 모두 폐기 처분하기 때문이다. 외국 직배사에서도 폐기처분이 원칙이니깐. 그렇다면 영사기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차피 폐기될 필름, 조금 손댄다고 뭐… 하는 식이다”

       
     

    컴백한 토토: “(여러 번 씹힌 토토도 인터뷰의 본 취지를 잃고, 슬슬 화를 내다) 현대는 복제시대다… 그것이 그 사람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가.”
    Mr.Q: “(이것마저 씹으며) 그들은 필름을 복제물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컴백한 토토: “필름이 복제물 이상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쿨한 CEO와는 대조되는, 수구적인 박물학자(그는 사실, 이른바 ‘수구개그’의 창시자였다: 찢어진 청바지 패션을 보고, “넘어지셨나 봐요”라고 묻는 식이다)처럼 행세하려는 것인가?!!”
    Mr.Q: “시네마테크가 원래 박물관이다. 우리는 박물학 혹은 고고학을 추구한다. 예술영화 전용관과 시네마테크가 차이가 나는 것은, 전자와 달리, 후자는 보존한다는 데에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과 시네마테크의 차이점

    컴백한 토토: “형, 나도 내 영화를 기증할래요, 꼭 보존해주셔요!”
    Mr.Q: “예컨대 박물관에서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삐라도 보존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이 훼손되지 말아야 할 것처럼, 삐라 역시 훼손되지 않아야 마땅하다.”

    컴백한 토토: “(대충 무너진 그는 이제 인격적으로 그의 알프레도를 상처주고 싶다) 그, 그래… 너넨 얼마나 잘했냐?”
    Mr.Q: “보존하기 위해서, 박물관이 제대로 박물관이기 위해선, 많은 물질적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프린트를 보관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맞춰야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우린 아직 그러할 여건이 못 되며, 따라서 여긴 아직 박물학 중 전시만을 담당하는 기형적인 박물관이다. 화내지만 말고, 이 난국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물어봐다오”

    컴백한 토토: “어… 어떻게 하면 그 난국을 벗어날 수 있는가”
    Mr.Q: “돈 줘”
    컴백한 토토: “아카이빙[프린트 필름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작업, 즉 DB 구축 작업을 의미] 얘기가 오랜 전부터 많이 나왔을 텐데… 돈이 왜 안돌았나?”
    Mr.Q: “DB 구축안하는 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악습 아닌가?”

    인터넷 강국? 포르노 강국이지

    컴백한 토토: “인터넷 강국이 왜 그럴까?”
    Mr.Q: “인터넷 강국은… 포르노 강국이지. 백지영 비디오 유출 때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높아졌었다.”
    컴백한 토토: “정전 많을 때 출산율 높아지는 거랑 비슷하군.”
    Mr.Q: “그거랑은 다르다”

    컴백한 토토: “….” (혹시나 해본 화해, 역시나 파국)
    Mr.Q: “우리나라의 그러한 고질병, 그것은 프린트 필름들이 문화자본이라는 것을 모르는 데에서 시작한다. 자본주의라도 잘했으면 좋겠다. 당장 회수되지 않으면 자본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자본주의에 충실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천민자본주의에 불과하다. 시네마테크에 고정적으로 오는 사람들은 1,000명에서 2,000명사이다.(연간 2만 명 정도가 다녀가지만, 그건 이 사람들이 졸라 다녀간 업적이다) 공적 자금도 공적 자본인지라, 당장 회수되지 않는 부분에다가는 투자하지 않는다. 밤섬에다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면서…”

    자본주의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토토는 다시 한번 놀란다: 그가 인터뷰 컨셉으로 잡았던 ‘비천함’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함과 비천함의 콘트라스트, 그것을 견뎌내는 Mr.Q에겐 또 다른 ‘비천함’의 개념이 있었다: 좋은 비천함과 나쁜 비천함이라고나 할까: 예컨대, 화려함의 일부분이자 토대인 비천함은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받아들여야할 사실이었으나, 화려함이 은폐하고 있는 비천함은 받아들여야할 사실이기는커녕 저항해야할 대상이다.

    요컨대 나쁜 비천함은 좋은 비천함을 죽인다. 좋은 비천함의 빛에 대가리를 들이미는 것, 그것은 바로 나쁜 비천함. 토토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반성할 생각은 안하고 쓸데없는 질문만 더한다. 덕분에 우린 Mr.Q의 영사철학 중 가장 마지막 부분인, 그의 실천철학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컴백한 토토: “천민자본주의를 어떻게 때려잡나?
    Mr.Q: “천민자본주의에서 본격적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일, 난 회의적이다. 정부가 이미 기업이다”
    컴백한 토토: “희망을 염원하는 <레디앙> 독자들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냐?”
    Mr.Q: “의회민주주의 안 된다. 직접 민주주의 해야 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안 믿는다.”
    (이제 Mr.Q마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의회 민주주의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안 믿는다

    컴백한 토토: “너무 친노동이다. 사실 이 코너가 친노동 성격 좀 지워보려고 꾸민 코너인데, 너무 한다. 재미있는 얘기 해주라”
    Mr.Q: “마오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나는 영화는 영사기 렌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것은 ‘말짱 황’의 철학이다. 아무리 영화 잘 만들어봐라. 잘못 영사되면 말짱 황이다. 영화의 최종권력은 영사기사에게 있다(그렇다고 해서, 영사기사가 권력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영화의 본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최종생산자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컴백한 토토: “그래도 영화 내용을 생산하는 것은 감독이며, 최종생산자보다는 최초생산자가 더 우대받는다. 안 티껍나?”
    Mr.Q: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
    컴백한 토토: “감독들이 미워본 적은 없는가?”
    Mr.Q: “헛소리할 때 밉다. 기술적 조건을 모르고, 아예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무리한 요구만 할 때. 최초생산자와 최종생산자, 감독과 영사기사는 위치가 다르니, 좀 얘기를 해봐야 하는데, 얘기를 안 하려고 할 때, 그럴 때 밉다.”

    컴백한 토토: “영화제작에서 배우와 감독 간의 관계는, 상영에 있어서 영사기사와 감독 간의 관계다”
    Mr.Q: “(인터뷰가 끝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씹으며) 독립영화 같은 경우는 더 심하다. 감독과 내가 직접 마주치니까. (그의 분노가 폭발한다) 또 ***의 경우, 양아치가 많다. 어차피 방송, MTV, 광고 쪽으로 갈 애들이 ‘뽀대’만 찾는다.

    특히 **파의 경우, 지네 친구들 다 데려와서 시끄럽게 떠들기나 하고, 저희들 영화니깐 대가리는 안가리더라… 어쨌든 서로 모를 때 서로 어렵다. 나도 색 보정 등의 제작과정을 공부한다. 사실 싸우기 보다는 서로 도와야 한다. 그게 서로 속편하다. 그런 면에서 독립영화가 상업영화보다 더 즐겁기도 하겠지만.”

    싸우는 것보다 서로 돕는 게 서로 속편하다

    이 때, 한참 열을 올리던 Mr.Q가 거대한 허무를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고, 노을이 그를 덮쳤다. 토토는 자신이 존경하던 영사철학자의 어깨가 수축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떨고 있었다.

    화려한 노을빛 앞에서의 비천함 때문이었을까? 그가 그토록 견뎌내야 했던, 알프레도의 고뇌가 어제처럼, 오늘 저녁에도 농밀해지려는 것일까. 우리는 오늘도 키스신을, 과거 혹은 미래의 잔상으로만 목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컴백한 토토: “(약간의 동정심을 섞어서)박물학자로서의 광범위한 체험이 사랑스럽지는 않는가? 많은 영화들을 볼텐데”
    Mr.Q: “헐리우드 시스템 이전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무성영화들, 그것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실험성을 지니고 있다. 지나간 과거지만. 고다르가 말하길 유성영화가 영화를 죽였다. 영화는 태생 자체가 실험인 매체이다. 에이젠쉬쩨인이 형식주의자라고 비판받았지만, 그러한 형식주의자들 이후에 나온 소비에트 영화들은 스탈린 후광이나 칠하기에 바쁘지 않았나.

    전위대(실험영화)와 후방(상업적 극영화)의 간극(그는 ‘콘트라스트’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가 토토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을까)을 상정하는 것이야 말로 보수적인 사유이다. 심지어는 노동영화도 실험적일 수 있다.

    ‘얼마나 빨리’보다는 ‘얼마나 효과적인가’가 더 중요한 시점에서는.(그는 쿠바의 한 다큐멘터리를 예로 들었다) 실험영화와 프로파간다, 형식적 실험성과 실질적 관객동원은 결코 유리된 것이 아니다. 어떤 위대한 영화도 이 둘을 유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적은 없다. 예를 들어….”

    서울아트시네마 영사기사 ‘원규 형’ 또는 ‘원Q 형’

    토토: “(동정심이고 나발이고, 에라) 그래, 널 사랑하기로 했어… 왜냐하면, 너가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는 것보다, 너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게 더 어렵거든” (그는 멋진 독백으로 이 인터뷰를 끝마치고 싶어 했었다)

    컴백한 토토는 이쯤에서 펜을 놓았다(그래서 아쉽게도 Mr.Q의 ‘실험성’에 대한 논의는 여기에 실을 수 없었다).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Mr.Q의 또 다른 철학이, 이 지면이 커버할 수 없는 더욱 심오한 디테일들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화려한 컴백이 여전히 비천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화려함과 비천함은 더 이상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꿈과 꿈을 꾸는 육체의 관계였으며, 오히려 콘트라스트는, 좋은 육체와 나쁜 육체, 즉 건강한 육체와 병든 육체에 있었다.

    그는 순간, 모든 키스신이 삭제되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키스신이 삭제될 때 그의 영사실도 같이 삭제되었으며, 그가 더 건강한 육체를 가질 때, 더 건강한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싸움을 붙여야 할 것은 꿈과 육체가 아니라, 건강한 꿈과 병든 꿈, 건강한 육체와 병든 육체가 아닐까(토토는 건강해진 육체로, 다시 건강한 영사실을 건설하고, 건강한 키스신들을 회집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할 때, 그에게도 삭제된 무엇이 있었다. 그의 컴백이 좌절되고 취소되고 철회되어야 했다. 아직 덜 건강했었던 것일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실험론’을 떠들고 있는 Mr.Q, 그리고 그의 언제나 돼지털 같은 수염을 뒤로 한 채, 시네마테크 건물을 나와, 낙원상가 밑에 있는 족발집이 내뿜고 있는 삶은 돼지머리 냄새를 관통하여, 종로3가로 향하고 있었다. 토토가 Mr.Q의 돼지털을 더 이상 오해하지 않기를, 싸구려 면도기를 탓할 게 아니라, 그것의 건강미를 어떻게든 칭찬할 수 있기를.

    [본 인터뷰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서울 종로구 낙원동 284-6 낙원상가 4층)의 영사기사인 ‘원규 형’과의 대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물론 필자는 ‘원규 형’을 ‘원Q 형’이라 부르진 않습니다. 차라리 그는 수구개그를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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