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정치 라디오에서 시작…최다출연 노회찬
    2006년 06월 22일 09:49 오후

Print Friendly

정치 문제에 관심 많은 30대 중반의 회사원 A씨. 그는 매일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들으며 출근한다. 점심 식사를 마친 A씨는 포탈사이트에 올라 있는 뉴스를 훑는다. 여기저기 ‘귀’에 익은 기사들이 올라와 있다. 출근길 라디오의 인터뷰를 다룬 기사다. 일을 마치고 귀가한 A씨는 저녁 뉴스에서도 같은 내용의 보도를 접한다.

월드컵 중계를 보다 늦게야 잠자리에 든 A씨는 이튿날 오전 자명종 소리와 함께 일어난다. 정신을 차리고 조간 신문을 펼쳐든 A씨는 전날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던 내용을 녹여낸 기사를 또다시 보게 된다. 이렇게 A씨는 만 24시간 동안 같은 내용을 다룬 기사를 4번 접한다. 물론 이들 기사의 내용이 똑같지는 않다. 라디오에서 시작된 뉴스는 인터넷과 TV, 종이신문을 거치면서 파문처럼 확산된다.

출근길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정치뉴스의 제1 공급처

출근길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정치뉴스의 제1 공급처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먼저 하루 중 가장 이른 시간에 생산되는 뉴스다. 대개 프로그램 편성 시간대가 오전 6시부터 8시까지다. 다른 매체의 기자들이 출근하는 시간대다.

또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직접 당사자의 육성을 들려준다. 이들 프로그램의 인터뷰는 사건에 대한 ‘해설’이나 ‘전달’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다.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철영 PD는 "정치인과 청취자를 직결하자는 게 프로그램의 취지"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어떤 인물을 불러 어떤 얘기를 나누느냐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른다. 김철영 PD는 "현안에 따라 출연자를 섭외한다"며 "중량감 있는 인사보다는 현안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현안을 꿰고 있는 인사를 주로 섭외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정책 문제를 가급적 많이 다루려는 추세에 따라 각 당의 정책통 의원들이 주로 출연한다고 한다.

이런 기준은 다른 방송도 비슷하다. 실제 각 방송사별 출연자 수를 뽑아보면 이들 프로그램이 선호하는 인물군이 대체로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 김근태, 이재오, 정동영, 노회찬, 심상정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경우 올 들어 지난 21일까지 대략 160여명의 정치인(각 부처 장관은 제외)이 출연했다. 출연자의 정당별 분포를 보면 열린우리당 71명, 한나라당 60명, 민주노동당 18명, 민주당 8명 등이었다. 의석수에 비해 민주노동당 출연자가 많은 것이 눈에 띈다.

개인별로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5회), 정동영 전 의장(4회),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5회),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4회), 심상정 의원(4회) 등의 출연 횟수가 많았다. 행정부에서는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3회로 가장 많았는데, 올 상반기에는 대북 문제가 주요 이슈였음을 알 수 있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 : 이재오, 유재건, 노회찬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는 열린우리당의 출연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올 들어 지난 21일까지 정당별 출연자 수는 열린우리당 54명, 한나라당 34명, 민주노동당 6명, 민주당 3명 등이었다. 개인별로는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4회), 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원(3회),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3회) 등이 높게 나왔다.

<열린세상 장성민입니다> : 노회찬, 심상정, 손학규, 맹형규

평화방송의 <열린세상 장성민입니다>는 한나라당 출연자 수가 가장 많은 것이 이채롭다. 타 방송에 비해 민주노동당, 민주당 출연자의 비율도 높다. 올 들어 지난 21일까지 정당별 출연자 수는 한나라당 42명, 열린우리당 40명, 민주노동당 15명, 민주당 9명 등이었다. 개인별로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5회로 가장 많았고, 심상정 의원 4회, 손학규 경기지사 4회, 맹형규 의원 4회 등이었다.

여러 방송에서 특정인들이 이처럼 선호되는 이유가 뭘까. 심상정 의원은 "정책과 현안에 대한 개입력이 높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말 한 마디로 흥하고, 말 한 마디로 망하는

이들 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출연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자칫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수습 불가의 파문을 불러올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열린우리당 이원영 의원이다. 그는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평화방송 열린세상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질서유지 차원에서 군이 투입됐다"고 말했다가 당은 물론 자신에게도 씻기 힘든 오점을 남겼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당시 여당의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의 전력을 감안하면 단순한 ‘말 실수’일 가능성이 컸다. 

노회찬 "발언이 뉴스가 되어 파급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자신의 생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출연자들은 어떤 준비를 할까.

여야를 통틀어 가장 많은 출연 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노회찬 의원은 "사안에 대한 당론이 뭔가, 당론이 분명치 않을 경우 관련된 기존의 주요 정책이 뭔가를 살펴본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특히 짧은 몇 마디에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이 뉴스가 되어 파급될 수 있도록 표현에도 신경을 쓴다"며 "방송사에서도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출연자를 부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표현을 사전에 따로 구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순간순간 "즉석에서 말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당황한 적은 없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 없다"며 "내가 원체 얘기를 세게 하다 보니 앵커가 당황하는 경우는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사람들이 무겁고 진지한 것을 싫어한다는 건 편견일 뿐"

이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뉴스의 유통방식을 바꿨다. 라디오 방송을 마친 다음 인터뷰 전문을 인터넷에 올리면, 그걸 인터넷 언론이 받아 기사화하고, 이를 종합지들이 활용하는 일련의 공정이 거의 정착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의원은 이를 "뉴스가 이중, 삼중의 검증을 거치게 됐다"고 표현했다. 심상정 의원은 "국민들이 뉴스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프로그램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김철영 PD는 ‘역발상’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사람들이 무겁고 진지한 것을 싫어한다는 건 하나의 편견"일 뿐 "실은 정치적, 정책적인 이슈를 가지고 정치인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존재했던 것"이라고 했다. 편견을 깨고 숨어 있는 욕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바로 ‘역발상’이라는 얘기다.

내용의 깊이와 대중적 너비를 조화시키는 게 숙제

매일 현안을 챙기고 적당한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공격적으로 인터뷰를 하다보니 출연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다. 정치인들은 그래도 낫다. 직업적 생리상 욕 먹는 것 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걸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들은 다르다. 특히 말 한마디의 파급력이 큰 경제 부처 관료들은 출연 요청을 해도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앞으로 보완할 것도 많다. 정책 현안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하려면 공부를 좀 더 많이 해야 한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전문가들에게 휘둘릴 수 있다. 잘못하면 인터뷰가 인터뷰이의 홍보마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용만 준비해서 되는 게 아니다. 대중적인 톤을 유지해야 한다. 자칫 딱딱하고 지루한 인터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철영 PD는 "정책적인 문제를 다루더라도 가급적 쉬운 언어로 다루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