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에서 '느리고 평화롭게' 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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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22일 07: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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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 밤하늘의 별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대도시는 전기 빛으로 물들어 별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1일 밤 9시.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 하지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 건너편엔 하나둘 ‘느림과 성찰’의 촛불이 켜졌다. 이와 함께 우뚝 속아 밤새 불을 밝히던 도심의 상징물 33층 종로타워의 불이 꺼지고, 보신각, SC 제일은행의 불도 꺼졌다.

    휘황한 인공조명이 꺼지고, 별빛과 달빛의 자연조명이 켜졌다. 눈부신 조명 대신 소박하고 작은 촛불을 켜고 숨 가쁜 삶의 속도를 반성하며 자연을 노래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여성환경연대와 환경재단이 주최한 ‘캔들 나이트 인 코리아’이다.

       
     

    이날 바닥에 그려진 대형 오선지 위에 관객들이 제각기 작은 촛불을 음표처럼 올려놓아 악보를 완성하면 즉흥 연주를 하게 되는 ‘뮤직 퍼포먼스’도 열렸다. 시민들은 촛불을 밝힌 달팽이 모양의 대형 조형물 주위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보며 느림의 미덕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배우 이하나(드라마 연애시대 출연)씨는 ‘캔들 나이트 인 코리아’ 선언을 통해 슬로우라이프(slowlife), 환경, 평화 등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번 행사는 1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간과 행동의 주인이 되는 하지’라는 주제로 열렸다. 여성환경연대는 ‘나만의 캔들나이트’ 계획을 인터넷 사이트(http://town.cyworld.com/CandleN) ‘이벤트 등록’ 게시판에 예쁜 촛불사진과 함께 남기면 추첨을 통해 도토리 20개와 밀랍초를 나눠줬다.

    행사등록을 하면 세계 캔들나이트 지도(www.candle-night.org)에 촛불을 올려준다. 세계 캔들나이트 지도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조명을 끄고 느림과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며 촛불을 밝히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점점 밝아지게 된다.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간사는 “‘이번 행사가 느림의 미학을 생각해보고 이를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대안 문명 운동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에 열리는 ‘캔들 나이트’ 행사는 일본, 대만, 캐나다 등 전 세계 12개국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작은 초에서 시작한 물결이 도시인의 마음 속에 ‘느림과 성찰’의 기적을 일으킨 셈이다.

    ‘캔들 나이트’ 행사의 유래

    핵을 끄기 위해 촛불을 켜다

    행사의 기원은 지난 2001년 미국에서 시작된 자발적인 ‘자주 정전 운동’이다. 미 정부의 핵발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에 항의하며 미국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동참해 조명을 자발적으로 끄는 운동이 벌어졌었다. 지난 2002년에는 일본에서 나무늘보클럽 등 환경단체와 비영리조직 ‘대지를 지키는 모임’의 주도로 ‘캔들 나이트’ 행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현재는 세계12개국에서 조명 끄기 운동, 촛불 켜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백만인의 캔들 나이트’ 는 가장 대중적인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다. ‘백만인의 캔들나이트’는 자연의 속도에 맞춰 하지와 동지 밤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전기를 끄고 촛불을 밝히며 느림의 가치를 되새기는 생활실천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환경단체의 제안으로 소규모로 시작된 뒤 현재는 정부(환경성)가 공식 후원하며 다양한 단체와 개인, 기업이 동참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환경단체와 개인, 정부 및 지자체, 기업 등이 동참하는 ‘백만인의 캔들나이트 실행위원회’가 결성돼 ‘전기를 끄고 슬로한 밤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행사를 진행한다. 2005년 6월 19일-21일 진행된 행사의 경우, 도쿄타워와 오사카성 등 도심의 중요 랜드마크와 대형 백화점 등 전국 3만3559개소의 주요 시설이 소등을 했으며 다양한 촛불 행사가 진행됐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했으며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전국에서 64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피에르 상소 교수의 ‘느리게 사는 방법’

    프랑스 폴 발레리대 교수였던 피에르 상소는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
    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그가 제시한 느리게 사는 방법들이다.

    한가로이 거닐기: 나만의 시간을 내서 발걸음이 닿는 대로, 풍경이 부르는 대로 나를 맡겨 보면 어떨까?
    듣기: 신뢰하는 이의 말에 완전히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권태: 이는 아무것에도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인정하고 애정을 느껴 보면 어떨까?
    꿈꾸기: 우리의 내면 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희미하면서도 예민한 의식을 때때로 일깨워 보는 것은 또 어떨까?
    기다리기: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지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어 보는 것은?
    마음의 고향: 내 존재 깊은 곳에서 지금은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린 부분, 시대에도 맞지 않는 지나간 낡은 시간의 한 부분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면?
    글쓰기: 우리 안에서 조금씩 진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의 소리를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
    포도주: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 그 순수한 액체에 빠져 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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