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이명박 시대, 녹색정치가 필요하다
    2008년 01월 21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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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사실 달력을 보았기에 한 달이 지난 것을 알았지 피부로 느낀 기간은 두서너 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교육정책의 변화를 필두로 정부 부처 통폐합, 각종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 경부운하를 비롯한 한반도대운하 추진 등 대선기간 동안 우려만 했던 일들이 불과 한 달 사이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권의 독주를 막거나 최소한 속도를 늦추기 위한 진보진영의 대응은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선 결과를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진보정치 재구성의 논의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민주노동당, 사회당, 초록당 등 다양한 진보정치의 흐름들은 아직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예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초록당 창당씨앗대회. 2007년 10월 20일 (사진=초록당)
 

이는 시민운동진영도 마찬가지여서 한반도대운하를 비롯해 벌써 세 명의 희생자를 만든 서해안 기름누출 사고에 대한 대응도 사회적 파장력에 비해 충분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무언가 사건이 많이 생기고 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바쁜 나날들이지만 뭔가 속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직은 대오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지만 반드시 ‘대오’의 문제라고만은 볼 수는 없는 현실. 이러한 현실이 2008년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대선 이후 인터넷 상에는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댓글놀이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명박 후보의 높은 지지율을 빗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글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표절기사에는 “표절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고 쓴다거나 불륜기사에는 “불륜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고 쓴다는 것이다.

각종 비리사건에 대한 의혹을 받는 이명박 후보에 대해 “비리사건 있으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고 쓴 것이 확대된 댓글놀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2005년 중저준위 방폐장 주민투표에서 “먹고 죽을 농약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안 좋은 방폐장이라도 유치하자”며 지역주민들을 선동하던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핵폐기물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도 민주적 절차의 문제도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던 지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오직 ‘지역개발’, ‘보조금’이 난무하였고 결과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89.5%의 높은 지지율로 경주가 결정되었다.

새만금은 또 어떠했나? 갯벌의 중요성, 생태적 가치, 정치인들이 이용한 새만금 간척의 문제, 경제성 논란 등 많은 논란과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네이버 검색에서 새만금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부동산 중개업소가 먼저 나오는 것처럼 새만금은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었고, 이제는 두바이에 버금가는 투자 중심지로 포장되고 있다.

‘경제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은 단지 이명박이라는 ‘CEO 출신 정치인’이 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는 사회의 여러 가치에 비해 ‘경제’,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본주의적 가치를 더 높은 우선순위에 놓기 시작했고, 이명박은 이를 적절히 잘 이용한 정치인 중 하나일 뿐이다.

진보정치 재구성 논의에서 빠진 것

그럼 진보진영은 어떠한 가치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대선이 끝나고 진보정치 혁신, 재구성, 진보정당 재창당, 신당론 등 다양한 논의들이 각 정당 홈페이지와 진보적 인터넷 매체에 가득차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화두는 ‘진보정당의 선거 참패에 대한 원인 분석’에 머무르고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종북주의’나 ‘패권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 내용의 맞고 틀림을 떠나 미래를 언급함에 있어 과거에 대한 평가와 지적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또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논란은 그 동안 진보운동진영 내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보다는 내부적으로만 지적되던 내용으로 언젠가는 짚고 넘어갈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언급이 아닐까?

현재 상황은 개발주의에 온 국토가 산산조각나고 자본의 의도대로 공공부문이 조각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암묵적 동의를 표하거나 오히려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표현은 이명박 정권을 빗대어 비판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정권을 높은 지지율로 선출한 국민들을 향한 비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진보정치 재구성 논의는 과거보다는 미래로, 진보진영 내부보다는 외부를 향해야 할 것이다.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보면, 진보정당 내에서 어떻게 비대위가 구성될지, 대선평가가 어떻게 진행될지, 조직이 어떻게 개편될지 등은 매우 지협적인 문제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비된 조직을 바탕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라는 문제일 것이며, 따라서 지금까지 진보정치 내부 문제로 한정된 논의는 점차 한국사회 전체를 향한 이야기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녹색정치는 대안이 될 수 있나?

이러한 측면에서 녹색정치는 분명 새로운 진보정치를 구성하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다양성, 평등, 평화, 생명, 성평등, 풀뿌리, 나눔 등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는 녹색정치는 ‘경제’에 대한 맹신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맞서 싸우는 좋은 무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폭력에 맞서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면에서 이뤄질 것이며, 폭력에 대한 대안은 단일한 형태로 제시되기보다는 다양한 가치를 담는 형태가 더욱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뜻 녹색정치를 대안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아직 녹색정치가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녹색정치는 운동진영 내부에서조차 환경운동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정도로 이해도가 낮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언론이 서구 유럽의 녹색당을 환경운동당으로 소개했던 것처럼 녹색정치의 다양한 가치를 보기 보다는 구성원의 이력이나 환경파괴에 맞서는 활동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녹색당의 모습이 알려진 이후에도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직 국내에서 녹색정치가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론적 수준에서만 다양한 가치를 설명하거나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만 강조할 뿐 성평등이나 나눔 등이 녹색정치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녹색정치는 아직 제대로 ‘정치세력화’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아직 정당으로 등록하지 못한 초록당(준)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아직 진보정치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기엔 갈 길이 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치 재구성에서 녹색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직은 조심스럽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단지 강령 몇 줄을 첨가하거나 토론회에서 논객들이 주장을 펼치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층에서부터, 지역에서부터, 풀뿌리로부터 이해와 요구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해도 부족하고 제대로 세력화도 되지 못한 녹색정치의 흐름들이 섣불리 진보정치의 대안으로 지목되어 자신의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까 내심 두렵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가 있다 할지라도 녹색정치는 진보정치의 새로운 대안으로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녹색 정치의 세력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많은 이들이 적절한 때만 되면 ‘생태주의’와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해 오지 않았던가? 단지 현안을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 생태주의의 다양한 가치를 정치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녹색정치를 하나의 대안으로 놓고 검토하는 과정은 매우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진보정치의 재구성 논의를 단지 누가 당권을 잡을 것인가, 지금 국면은 누구의 책임인가와 같은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논의로 국한 지을 것이 아니라면 포괄적인 대안 논의에서 녹색정치를 검토하는 과정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녹색정치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의 세력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묵묵히 환경운동을 계속해 온 많은 활동가들, 진보정당에서 생태주의를 고민해 온 많은 당원들, 녹색정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초록당(준) 동지들 그리고 녹색정치를 고민해 온 많은 이들이 모여야 한다.

이후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진행되는 것과 무관하게 녹색정치를 꿈꾸는 이들의 흐름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서로가 서로를 확인하고 녹색의 깃발에서 모일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진보정치 재구성의 가장 큰 성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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