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노회찬, 내가 이어가겠다"
    보수 결집 뚜렷···쉽지 않은 싸움 될 것
    [당당히 앞으로 ⑥-1] 여영국 창원성산 보궐선거 후보
        2019년 03월 18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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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국은 196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돈 없이도 배울 수 있는 국립 부산기계공고에 입학했다. 고3 때 담임선생께서 삼성, 현대, 대우 중 한 곳을 선택하라고 했지만 친한 친구가 다니는 창원 통일중공업에 들어갔다. 그의 지금을 있게 만든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거기서 노동조합 운동을 만났다.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한 해 전인 1986년 해고의 쓴맛을 봤다. 당시 그들의 변호는 노무현, 문재인 두 변호사가 맡았다. 그는 이후 복직을 하지 않고 노동운동을 하면서 20~30대를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40대 중반 진보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경남도의원에 두 번 당선됐고, 한 번 낙선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노회찬 의원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만들어진 정치 상황이 그를 급작스럽게 불러냈다.

    3월 15일, 창원 성산구 창원광장 인근에 있는 평화상가 오피스텔 11층의 여영국 선거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무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일을 보고 있었다. 공간은 다르지만 상근하는 사람들만 보면 중앙당 사무실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중앙당 당직자들이 많이 내려와 있었다.

    선본 사무실에서의 인터뷰 모습(처음과 맨 아래 사진=김태현. 나머지는 여영국 선본 )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불만 많아

    이광호 : 현재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여영국 : 보궐선거인 탓에 아직 사람들이 선거가 있는지를 잘 모른다. 최근 창원공단 사정이 워낙 힘들다. 이런 어려운 사정을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불만,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도 노동시간이 단축되면서 소득이 줄었다는 불만이 많다. 정규직 노동자도 연장근로에 수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의존했는데 실소득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선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반감과 불만을 가지게 했다.

    현 정부의 탈핵 정책도 그렇다. 두산중공업은 원전 설비를 생산하는 곳이다. 직접 타격을 받는다. 관련 업체들 대부분이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중심으로 이 부분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얼마 전부터 ‘개성공단이 아니라 창원공단을 살려라’는 내용의 거리 현수막이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의 선동정치인 것은 사실인데, 촛불과 지방선거 이후, 경제적인 문제와 함께 이러 저러한 요인으로 보수층 결집 현상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런 현상이 지표로 나타난 게 최근 자유한국당 지지율 상승이다.

    이 지역 시민들은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민주당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는 양면적 요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아직까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만일 단일화가 돼서 ‘보수’ 대 ‘개혁/진보’ 대격돌 판이 된다 해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50:50 민주노총서 먼저 비공식 제안

    이광호 : 단일화 전망은 어떤가?

    여영국 :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 임하면서 노회찬 의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숙명적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대일 구도가 중요하다. 이번 국회 남은 임기 1년 만이라도 이어갈 수 있도록 정의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 민중당이 후보 낸 상황이다. 여기는 과거 권영길 의원 때부터 현재까지 이런 구도(일대일)를 만들어서 선거를 치렀다. 지역 유권자들도 그런 부분에 학습돼 있다. 단일화 요구 높다는 의미다.

    진보진영 단일화가 우선이라는 요구가 많았다. 우리는 진보진영 단일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민주당 포함한 단일화로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야 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노총과 지역 사회단체가 원탁회의를 열어 조정 기구 역할을 했고, 그곳을 통한 진보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다.

    우리는 진보개혁 진영이 이기는 선거 위해 성산구민에게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주민 여론조사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민중당은 당론에 따라서 노동자 직접 정치를 위해 창원 지역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서 결정하자고 했다. 이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데, 현재 민중당 당원이기도 한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이 비공식적으로 우리에게 타진해 온 게 있다.

    그는 민주노총 조합원 투표 50%, 여론조사 50%라면 받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 제안이 민중당 쪽과 교감을 가진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쪽 사람들은 이 제안에 대해 거부하는 의견이 아주 강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후보의 입장에서 승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또 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단일화 성사가 중요하다고 보고 이 방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공식화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민중당 쪽에서 여론조사 1도 못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진보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결렬 상태로 보면 될 거 같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이 3자 원샷 단일화를 제안했다. 우리는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민주당의 제안이 나온 후 며칠 지난 3월 10일 민중당은 여기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우리는 바로 민주당에게 2자 단일화를 비공식적으로 제안했고, 지난 12일 주민 여론조사 방식 통해서 25일까지 단일화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서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는 성사될 것으로 낙관한다. 누가 단일 후보로 될 것인가. 성산구 구민들은 노회찬 의원을 먼저 보낸 것에 대한 아픔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영국을 통해서 이 아픔을 치유하고 싶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노 의원이 걸어왔던 정의로운 정치에 대한 성산구민의 자부심이 강하고, 동시에 이런 정의로운 정치를 여영국이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탈원전 정책 주요 쟁점 될 듯

    이광호 :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가?

    여영국 : 방금 말한 것처럼 지역 경제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다. 특히 두산중공업 중심으로 탈원전 정책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게 큰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창원공단이 힘들다는 것을 빌미로 이를 문재인 정책 탓으로 돌리면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몇 가지 지표로 보면 황교안 대표가 국무총리 할 때였던 2015~2016년 창원공단 성장률은 한자리 수도 안 되는 0.5% 수준으로 그때부터 창원공단의 위기가 시작됐다. 제대로 된 진단과 올바른 대안 모색보다는 대결 정치 확대를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창원공단을 살릴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광호 : 도의원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비교해 볼 때 뭐가 다른가?

    여영국 : 확연하게 다르다. 도의원 할 때는 유권자들께서 (후보가) 조금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크게 지적하지 않았다. 지금은 옷이 어떻다, 머리 스타일이 어떻다, 얼굴이 까맣다, 관리 좀 해라, 국회의원 될 사람이 그게 뭐냐, 정말 여러 가지 요구들이 많다. 도의원 선거 때는 없던 일이다.

    선본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의 요구와 압박도 상당히 많다. 이정미 대표 강요로 얼굴 화장도 하게 됐다. 매일 화장하는 남자가 돼 버렸다. 나도 태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품위와 예의를 갖추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편하게 하던 농담도 꼬투리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 언행이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압박과 부담이 적지 않다.

    이광호 : 경쟁 정당에서 현 정권에 불만이 많은 것으로 평가되는 자영업, 중소상공인과 이 지역 여론 주도력이 있는 30대 엄마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하던데.

    여영국 : 자영업이나 중소상공인들이 경제가 어려워서 불만이 고조돼 있긴 해도 저에 대한 신뢰는 높다고 본다. 도의원 8년 하면서 자영업 문제 대해서 조사도 하고 책(<상남동 사람들-자영업자, 그들의 빛과 그림자>)도 펴내면서 호흡을 같이 했다. 지역 대형 유통점이 들어올 때도 가장 앞장에 서서 그들 편에 서서 목소리를 냈다. 주민들의 상당수가 자영업자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람이 저라는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다 보면, 최저임금 인하가 대안이 될 수 없고, 자녀 세대를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올라가야 한다는 점에 동의를 한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이 타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점을 사전에 예측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되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다. 내가 당선 되면 보완책을 만들기 위해 힘쓸 것이다.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각을 세우는 것은 맞지 않다.

    여영국 도의원이 펴낸 자영업 실태 조사 책자 ‘상남동 사람들’

    권영길, 노회찬 이어갈 장점 가지고 있다

    이광호 : 권영길과 노회찬을 당선시킨 곳이다. 바탕이 된 힘은 무엇이고, 그 힘이 이번에 여영국 후보에게도 적용될 것으로 보나?

    여영국 : 이 지역에서 36년째 살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여기서 공장 생활을 했고, 25년 넘게 노동조합 운동을 했다. 지역 사정은 나름 잘 파악하고 있다. 창원은 국가산업단지로서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해온 곳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민주노조 운동의 발원지가 된 곳이 바로 여기다. 전노협 모태가 된 지역노조협의회(마창노련)도 마산 창원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을 겪으면서 때로는 성과를 때로는 한계를 경험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 노동자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민주노동당을 통해서, 권영길과 노회찬의 당선을 통해서 이를 실천한 것이다. 이것이 진보정당의 중요한 토대다.

    나아가서 제조업 분야의 조직된 노동자뿐 아니라 이곳에 많이 살고 있는 공무원, 의사, 교사 등 전문직과 중산층의 합리적 사고와 정치적 성향이 함께 어우러져서 진보정당을 성장시킨 토대가 됐다고 본다.

    이런 힘과 염원이 나를 통해서도 발휘되는 것이 가능할까, 나 스스로 이런 자문을 많이 해봤다. 권영길과 노회찬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진보정치 운동의 큰 인물이고 기둥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정의로운 정치를 상징하는 두 분이다. 이 두 분을 통해 성산구 주민들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쳐다보면서 눈높이 다르다고 느낄 수 있고, 실제 그런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는 36년 동안 이 지역에서 살면서 밑바닥부터 호흡을 같이 해왔다. 두 분이 가지지 못한 장점들을 갖고 있다. 비교할 수 없는 두 분의 장점과 여영국과의 사이에 있는 한계를 다 메울 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오랜 시간 피, 땀, 눈물을 함께 해왔던 경험들이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 8년 동안 도의원 하면서 진보적 지역 정치인으로서 나름 공신력을 쌓아 왔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나를 통해서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왼쪽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오른쪽은 후원회 행사에서 발언하는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

    노동운동 경력 큰 도움 돼

    이광호 : 2010, 2014년 도의원 선거에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진보신당, 노동당 당적으로 출마했다. 정당 지지율 몇 배 뛰어넘는 득표였는데, 위에 말한 지역구 특성과 함께 후보 요인도 작용한 것 아닌가?

    여영국 : 2010년 출마할 때는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한 거다. 그때는 정말, 아주 정말 열심히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지역을 구석구석 돌면서 유권자들에게 인사하고 다녔다. 참 부지런하다, 열심히 한다, 이런 말 많이 들었다. 정치인으로서 내 이미지를 구축하고 확대하는 과정이었다.

    선거 운동 중반에 접어들 때 그동안 지켜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과 나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다가왔다. 해고 이후 87년부터 이 지역에서 노동 상담으로 해왔고, 투쟁이 벌어진 곳에 직접 가서 지원을 했다. 그때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아직 일부는 현장에 남아 있지만 다수는 나이도 들고 여러 사정으로 현장을 떠났다. 기업체 사장이 된 사람도 있다. 이런 분들이 그때 당신한테 큰 도움 받았는데 이제 은혜 갚겠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직원이 100명 넘는 공장을 하고 있는데, 내게 명함을 많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노동운동 하면서 만난 인연도 토대가 되고 승리를 견인하는 중요한 변수였다.

    물론 첫 선거였던 2010년 경우 새누리당 현역 후보가 자만한 측면도 있다. 여론조사 1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런데 투표일 3~4일 남겨놓고 뒤집힐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선거본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어차피 안 될 거다, 선거 자금 보전만 받으면 된다, 이런 분위기였다. 사실 내 처도 그렇게 생각했다. 거의 나 혼자만 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500여 표 차로 가까스로 이겼다.

    자영업 종사자들 지지 견고

    2014년의 경우 당선된 이후 인터뷰 하면서 “상남동 사람들 때문에 이겼다.”고 얘기했다. 당시 통진당 사태 일어나고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던 부동산 사장님, 미용실 원장님들은 내게 무소속 출마를 강권했다.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게 제안하는 한 분에게, 그건 나 혼자 당선되기 위해서 그동안 함께한 동지를 버리라는 요구다, 떨어지더라도 그렇게 못하겠다, 노동당 이름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답했다. 그분이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지, 하면서.

    이 지역 정치인들 중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영업자들을 직접 만나 자신들을 인터뷰하고 실태를 조사한 적이 없었다. 내가 도의원하면서 자영업자들의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노력했던 것에 대한 진정성을 알아 준 거다. 상남동 유권자들이 나를 지지해 준 이유다. 실제 투표 당일 가장 큰 두 개 전통상가 회장이 아침부터 마치 노조가 조합원 투표 독려하는 것처럼 지원 활동을 해줬다.

    2015년 무상급식 중단 철회 촉구 여영국 도의원 농성 모습

    도민과 함께한 무상급식 투쟁 가장 큰 성과

    이광호 : 도의원 하면서 이 지역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어떤 기여를 했나?

    여영국 : 작게는 공원 의자 배치, 체육 시설 설치, 도로 개선부터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투쟁, 경남지역 무상급식 투쟁까지 다양하다. 내가 처음 도의원 출마했을 때 슬로건은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경남’이었다. 그러자 엄마 유권자들이 엄마가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거창한 것보다 함께 어울리는 공간을 제대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실제 마을도서관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새로 만들거나 기존 시설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약을 실제로 이행했다. 적잖은 성취를 이뤘다. 진보정당 정치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하고, 이를 주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게 한 것에 만족한다.

    그러다가 홍준표 지사를 만나서 동네 사업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돈(예산)을 안 줬으니까.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투쟁 때는 의원직이 날아가더라도 싸워야 된다고 다짐했다. 대중 투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단식, 천막 농성, 본회의장 점거 같은 선도적인 투쟁을 했다. 노조 운동 할 때 배운 투쟁 경험이 도움이 됐다. 관련된 노조는 물론 경남지역 주민과 의회 안에 머물지 않고 함께 투쟁한 것이 진보정당 정치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무상급식의 경우도 경남도민 힘으로 풀어나가야 된다고 판단하고 학부모 대회를 미리 잡아 놓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1000명 규모의 학부모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단식을 해제하고 경남 전 지역을 순회하면서 설명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내 지역구 주민들 일부는 적당하게 싸우고 홍 지사와 타협해서 지역 예산 가져오라는 요구도 적지 않았다. “다음 선거와 관계없다”, “동네 사업이나 잘 해야 한다”며 이러저러한 유혹과 제안도 있었고, 주민 압박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대의에 맞게홍 지사와 싸우고 투쟁했다.

    돈 몇 억 원 가지고 와서 내 지역구 환경 개선하는 것보다 수백억 원 예산을 가지고 무상급식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사업 아니냐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께도 그런 관점에서 설득하면서 계속 투쟁했다. 이 기간 동안 홍준표 지사한테 돈 10원도 못 받았다. 도비가 필요한 곳 있는데 한 푼도 없어서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싸워서 불완전했지만 무상급식을 다시 회복시켜 냈다.

    내가 도의원 임기 끝내고 나오면서 ‘마지막 쓴소리’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6월에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했다. 진주의료원, 무상급식 등 주요 현안을 얘기하면서 김경수 지사가 이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했다. 도민과 함께 한 싸움이 바탕이 돼서 경남지역에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할 수 있었다. 8년 도의원 활동 가운데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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