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민심 해석의 계급적 토대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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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21일 04: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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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40대 남자 세 명이 모이면 부동산 얘기로 시작해서, 자녀 교육으로 화제를 이어갔다가, 노후 문제로 끝낸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의 삶에서 부동산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말일게다. 부동산 문제는 요즘 같은 선거시즌을 전후해서는 그야말로 핫이슈가 된다.

    5. 31 지방선거의 결과를 둘러싼 정치권과 언론의 복기에서도 단연 맨 앞줄을 차지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여권은 여권대로 선거 패배 원인과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대로 선거 승리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부동산 이슈를 두고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동산 때문에 선거에 졌다?

    여권 내부에서는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간에, 그리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격론을 벌이고 있는 참이다.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실용파와 초선 의원 일부를 중심으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수정 요구가 드센 반면, 청와대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 와중에 신임 당의장의 입지는 어렵기만 하다. 한편 한나라당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아예 ‘세금폭탄’으로 규정하면서, 부동산 관련 각종 세금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일부 언론은 세금 정책과 더불어 부동산을 “5. 31 지방선거에서 집권 열린우리당을 사실상 몰락시킨 최대의 요인(문화일보 2006년 6월 9일치 사설, 「부동산·세금정책 밀고 가겠다는 독선 정부」)” 으로까지 꼽고 있는 실정이다. 한데 정치권의 논쟁이나 언론의 사설 및 기사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방향 수정을 요구하는 논거는 대개 여론조사인 경우가 많다.

    앞의 문화일보 사설이 인용하고 있는 리서치 앤 리서치의 여론조사가 언론(6월 7일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 실린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헤럴드 경제는 6월 9일치 기사에서 「국민 70%, “부동산정책이 與선거참패에 영향 줬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여당의 부동산 및 세제정책 고수 입장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 앤 리서치가 지난 7일 전국의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4.4%가 노 대통령의 부동산 및 세제정책 유지 방침에 반대한 반면 찬성 의견은 30.4%에 그쳤다.

    특히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8.9%가 “영향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영향이 없었다”는 응답은 21.9%에 그쳤다. 사실상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부정책 기조에 대한 반감을 표심으로 전달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왜곡일 뿐

    조사 자체야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나아가 언론에서야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조사결과를 두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과, 그 반감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리서치 앤 리서치의 조사(리서치 앤 리서치 주간 정치여론조사 「에포크」 2006년 6월 13일 제 95호)는 단지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 및 세제 정책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것이며,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및 세제 정책”의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 참패”에 대한 영향의 유무를 물은 것이다.

    이 결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어떤 사람들이 뭔가 반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는 여론일 뿐,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어떤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 조사 결과만을 놓고 반감의 내용까지 해석하려 든다면, 그것은 여론조사의 왜곡일 뿐이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발 이유는 계층별로 달라

    국민들이 부동산 정책에 대해 가지는 반감의 유무가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국민들의 여론을 좀 더 들어보아야 한다. 한길리서치 연구소는 월간 정치지표조사인 한길리뷰 71호(6월 9일~10일 전국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참여정부가 펴온 부동산 정책을 놓고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으며, 이 중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집값 급등으로 서민의 삶을 어렵게 했다”는 의견에 대한 공감이 47.2%로 “주택관련 세금이 너무 올라 집 소유자들의 삶을 어렵게 했다”는 43.1% 보다 약간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감이란 실은 세금 인상에 대한 불만과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 다시 말해 부동산 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한 반감과 정책의 실효성 부족에 대한 반감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는 경제적 계층귀속감별로 가장 크게 엇갈렸다. 표1을 보면 “집값 급등으로 서민의 삶을 어렵게 했다”는 의견에 대한 공감이 경제적 수준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난 반면(중하층이하:51.3%, 중간층:46.1%, 중상층이상:42.3%), “주택관련 세금이 너무 올라 집 소유자들의 삶을 어렵게 했다”는 의견은 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높게 나타났다(중상층이상:53.4%, 중간층:44.9%, 중하층이하:36.8%).

    이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감이라는 여론이 실은 기득권층 저항 더하기 서민층 실망의 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이는 계층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른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발 여론을 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한 반발로만 해석하는 것은 잘해야 반쪽짜리 왜곡을 벗어나기 어렵다.

       
     
     

    조사의 객관성과 해석의 객관성

    부동산 문제는 그 자체로도 한국사회 갈등의 많은 부분을 포괄하는 난제임에 틀림없다. 정당 정치는 사회적 이해 갈등의 제도적 표현이어야 한다는 정치학 교과서의 명제를 따른다면,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정치가 사회적 갈등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정치 또한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인 이해 갈등의 명분으로 동원하는 것이 현실이라 한다면, 부동산 정책 논쟁은 단지 해법을 찾기 위한 정책 논쟁일 뿐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 논쟁이 된다.

    이러한 논쟁의 과정에서 너나할 것 없이 민심을 논하며, 또 대개는 민심의 근거로 여론조사를 인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여론조사 자체의 객관성은 물론, 정치권과 언론에서 이뤄지는 조사 결과 해석의 객관성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반영하는 거울일 수는 있지만, 제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민심을 왜곡하는 마술거울에 불과하게 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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