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의 행동대원 아닌
    주체적인 독립전사로서의 윤봉길
    [책소개] 『윤봉길 평전』 (이태복/ 동녘)
        2019년 03월 17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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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길은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이지만 사실 윤봉길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또 연구조차 많이 되지 않았다. 윤봉길 사전·사후의 기록과 자료 확보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김구 측근들의 ‘1932년 4월29일 의거 행동대원 프레임’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윤봉길 의사가 구속되어 일제로부터 고문, 폭행 등의 가혹한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나온 이 ‘행동대원 프레임’의 근거가 되는 1932년 5월10일 김구 성명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거사는 김구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윤봉길은 이를 수행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상하이 거사의 주모자는 김구이고, 윤봉길은 행동대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이 자신의 지시에 따라 윤 의사가 거사를 했다고 기록했기 때문에 윤 의사의 의거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조차 가장 빛나는 의열투쟁인 윤봉길 상하이 거사가 윤 의사의 주체적인 의거였다는 사실과 관련한 여러 자료가 나왔지만,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런 김구 측근으로부터 나온 ‘프레임’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 바로잡고 싶었기에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여러 사실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 김구의 ‘행동대원 윤봉길’ 프레임이 허구였다는 것을 밝혀낸다. 4·29 상하이 의거에 대한 『백범일지』의 기록은 백범의 측근 그룹이 김구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안창호 등에 집중되는 중국 측의 후원을 자신들에게 돌리려는 책동책의 일부였다는 것을 실제로 밝혀낸 것이다.

    중요한 근거로 김구 측근들이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략하는 투서를 중국 언론에 흘렸다는 사실을 든다. 김구 측근들의 의도대로 안창호는 구속되어 본국에서 대전 감옥으로 가고, 지도자를 잃은 상하이 임시정부는 유랑 속에서 김구 체제가 유지됐고, 김구 측은 윤봉길 거사를 명분으로 장제스 정부의 든든한 재정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김구는 동의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김구 측근들의 모종의 음모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윤봉길 의사의 4·29 상하이 폭탄 투척 의거는 윤봉길 의사의 주체적인 독립전쟁 선포였다고 확신한다. 윤봉길 의사의 살신성인의 투쟁 의지, 안창호 등 상하이 독립지사들의 노력, 김구 선생의 적극적인 안내가 어우러진 안중근 의거 이후 최대의 성과를 낸 의열투쟁이라고 매듭짓는다.

    저자는 그렇다고 김구 선생의 불굴의 항일투쟁 정신이 훼손된다고 보지는 않으며 그런 면에서 균형 잡힌 역사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는 “안중근에 이은 최대의 의열투쟁을 한 윤봉길 의사를 계속 김구의 행동대원 정도로 묶어두는 것은 윤 의사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한 역사적 진실도 아니기 때문에 이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윤봉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윤봉길은 과연 무슨 폭탄을 던졌을까?

    우리는 모두 일제시대 상하이에서 ‘도시락 폭탄’으로 의거를 한 윤봉길을 잘 알고 있다.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행사에서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이 던졌다고 알려진 ‘도시락 폭탄’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고, 윤봉길이 체포되어 압송되는 현장 사진도 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의사 윤봉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윤봉길이 던진 것이 진짜 ‘도시락 폭탄’이었을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사실은 물통 폭탄을 던졌다. 물통 폭탄을 먼저 던졌고 후에 도시락에 숨긴 폭탄을 더 던지려 했지만 체포되고 말았다. 사소한 문제로 보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윤봉길이 의사에 대해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다.

    알려진 것처럼 김구의 지시로 단순히 행동대원으로서의 역할만 했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 어떤 계기에 의해 그런 결심을 한 걸까. 거사를 진행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어떤 결심으로 윤 의사가 그런 거대한 투쟁을 했는지,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의 간극만큼이나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윤봉길 의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그동안 밝혀진 새로운 자료들을 토대로 상하이 임시정부와 각 분야의 독립운동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작업도 함께했다. 윤 의사의 4·29 상하이 의거가 갖는 의미와 성과, 영향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책이다. 저자인 이태복 월진회 회장은 오래 전부터 백범 김구 선생 측의 자료로 윤봉길 의사의 4·29 상하이 의거를 해석해온 관행의 부당성을 주장해왔다. 오랫동안 윤 의사의 주체적 결정 과정에 관한 자료 수집을 해왔고, 이런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이번에 이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평소에도 윤 의사의 상하이 생활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참조해야 하고, 무엇보다 중국 측의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윤 의사의 상하이 의거 시기에 대한 우리 독립운동의 객관적 정세 분석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이 책은 윤 의사의 죽음부터 시작한다.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다루는 시간적 흐름의 기술을 뒤집었다. 시간적 배열의 역순이 독자들에게 낯선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집을 떠나기 전에 남긴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의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윤봉길의 다짐과 결의를 온전히 대면하고 집중하기 위해서다. 또한 저자는 “처음에 윤 의사의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윤 의사의 유해를 쓰레기장 주변에 암장해 일본인들이 13년간 그 유해를 짓밟고 다니게 한 일본군부의 만행을 먼저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야학 선생님, 농촌운동가, 시인, 모자 공장 노동자…
    우리가 몰랐던 청년 윤봉길의 진면목

    열아홉에 농촌에서 야학 문을 열고 농민 계몽에 힘쓴 윤봉길, 농촌 공생 사업 추친하며 월진회를 조직한 윤봉길, 어렸을 적부터 서숙에 다니면서 한문을 익혀 한시에 능했던 윤봉길 등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윤봉길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선 인민들의 억압과 고통스런 현실을 「슬프다 고향아」와 같이 한시로 쓰기도 하고, 칭다오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나 네 살 아들 모순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독립전사가 되기로 한 윤봉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어머니에게 보낸 다음의 편지는 또 윤봉길의 나라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산다.
    이상이란 무엇이냐.
    목적의 성공자이다.
    보라! 풀은 꽃이 되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나도 이상의 꽃이 되고,
    목적의 열매를 맺기를 다짐했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더 한층 강의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했다.

    -윤봉길, 「칭다오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윤봉길 의사는 우리시대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한 사랑이 있다고 인식하고 오로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강의한 사랑이 넘치는 태도로, 일군지휘부를 척살하고 겨레의 불꽃이 되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오래 전 한 청년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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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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