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의 실체 여부,
나의 나침반은 ‘노동해방’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②
    2019년 03월 15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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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 진짜?

1-1. 실마리 풀기 : 스마트폰

1-1-1. 나와 스마트폰
1-1-2. 스마트폰의 네 가지 특징
1-1-3. 스마트폰의 위력
1-1-4. 또 하나의 특징
1-1-5. 인류사적 변화?

1-2. 나침반과 잣대

1-2-1. 나침반 : 노동 삼위일체
1-2-2. 이론적 잣대 : 노동과정 알고리즘
1-2-3. 역사적 잣대 : 기반기술

[필자 주] <붉은 오늘>은 붉은 어제를 되새김질 하고 있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다. 그렇다면 내일은? 붉은 내일이 없는 붉은 오늘이 있을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은 붉은 내일에 대한 토론을 제안한다. 토론을 알차게 준비하기 위하여 독자들의 동참을 부탁드린다. 댓글과 반박,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지런한 퍼나르기는 토론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첫 번째 오프라인 토론은 금년 5~6월에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심화학습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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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침반과 잣대

스마트폰이 촉발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모든 갑론을박과 설왕설래는 결국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게 된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은 진짜 혁명인가? 실체가 있는가, 아니면 거품일 뿐인가? 만약 실체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가?

지금부터 나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의 실체를 찾아볼 것이다.

‘혁명’이라는 말은 그것을 쓰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 다양한 뜻을 가질 수 있다. 한쪽에는 사소한 변화를 볼 때마다 ‘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오지 않는 것은 ‘혁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다른 쪽에는 경제성장을 가져오더라도 사회적 평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지 않는다면 ‘혁명’이라고 불러줄 가치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혁명’이라는 말을 저마다 자기 뜻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에 대한 토론은 흔히 실물에 대한 토론에서 벗어나서 말뜻에 대한 토론으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나는 말꼬리를 붙들고 다투는 소모적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혁명’이라는 말을 가급적 두루뭉술한 뜻으로 사용할 것이다.

‘혁명’이란 넓고, 깊고, 빠른 변화를 뜻한다.

혁명의 실체 유무를 확인하자면 우선 변화의 방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천재지변도 우리의 삶에 넓고 깊고 빠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천재지변을 ‘혁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변화의 방향을 판단하자면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나는 ‘노동해방’을 나침반으로 삼을 것이다.

이어서 변화의 범위, 심도, 속도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잣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두 개의 잣대를 제안한다. 이론적 잣대와 역사적 잣대이다.

먼저 나는 오늘날의 생산기술을 분석하여 거기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볼 것이다. 생산기술의 질적인 변화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있을까? 나는 ‘인간 노동과정 흐름도’를 작성하여 그것을 이론적 잣대로 삼고자 한다.

이 잣대를 사용할 경우 우리는 오늘날 인간의 노동과정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 덕분에 노동과정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을 ‘산업혁명’의 증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잣대는 특히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변화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어서 나는 생산기술의 역사적 변천 단계를 살펴볼 것이다. 나는 다음 세 가지 사회경제적 사태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경우 그것을 ‘산업혁명’의 역사적 증거로 삼고자 한다.

첫째, 기존의 생산기술들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전혀 새로운 생산기술의 등장하여 인간의 사용가치 생산력이 획기적으로 증대될 때

둘째, 그로 인하여 인간의 노동과 경제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셋째, 그 변화를 기존의 사회제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이 잣대는 특히 변화의 범위와 속도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잣대를 사용할 경우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적어도 서너 차례의 산업혁명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다시 한 번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2-1. 나침반 : 노동 삼위일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자면 우선 인간의 노동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노동과정은 육체활동과 두뇌활동이 결합된 과정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노동이 다른 동물들의 먹이활동과 다른 점, 질적인 차이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두뇌활동이 노동과정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좀 더 분명하게 밝혀낼 필요가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주로 두뇌노동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른 동물들의 먹이활동과 달리 인간의 노동은 목적의식적 활동이다. 이 점을 철학적으로 가장 명료하게 규명해낸 사람으로는 맑스를 꼽을 수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노동과정의 끝에 가서는 처음에 노동자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던 결과물, 즉 관념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결과물이 나온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은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목적을 자연물에 실현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머릿속에 설정해둔 목적은 마치 법률처럼 그의 실행방식을 규제하는데, 노동자는 자신의 의지를 그 법률에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복종은 결코 순간적인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지는 노동하는 신체기관들을 긴장시킬 뿐만 아니라 두뇌도 긴장시키는데, 이런 긴장은 노동과정을 통틀어 요구되는 것이다.”(맑스, 경제학 철학 원고, 1844)

맑스의 설명을 오늘날의 용어법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알고리즘을 담고 있다. 노동의 목적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설정된다. 노동의 과정은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따라 진행된다.

첫째, 인간의 두뇌는 노동의 목적(=생산물)을 설정한다. 노동 생산물은 물건일 수도 있고 상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청소 노동은 지저분한 상태의 공간을 깨끗한 상태로 바꾸어준다.

둘째, 인간의 두뇌는 설정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절차와 수단방법을 모색하고 결정한다. 육체가 실행에 착수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과정은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에 대한 많은 학습을 요구할 때도 있다.

셋째, 육체가 실행에 착수한 뒤에도 두뇌는 쉴 틈이 없다. 머리 바깥에서 진행되는 절차와 방법이 머리 안에서 진행되었던 절차 및 방법과 일치하도록 육체를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행과정의 매 단계마다 생성되는 중간생산물이 머릿속에서 생성되었던 것과 일치하는지 검사하고 판단해야 한다. 목적에 견주어서 오차가 발생할 경우에는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절차와 방법을 변경해야 한다. 달리 말해서, 노동과정은 두뇌와 신체 사이에서 끊임없는 되풀이되는 피드백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뇌는 노동과정을 통틀어 긴장을 늦출 수 없으며, 목적은 노동과정이 끝날 때까지 실행 절차와 방법을 규제하는 법률처럼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노동과정을 분석해봄으로써 우리는 인간의 노동을 동물의 활동과 구별시켜주는 근본적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노동과정 중 물리세계 안에서 육체를 통하여 진행되는 몫은 매우 작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몫은 실은 두뇌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1-2-2. 이론적 잣대 : 노동과정 흐름도

두뇌는 노동의 목적을 설정할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도 미리 시뮬레이션 한다. 두뇌 속에서 시뮬레이션 된 것을 두뇌 바깥의 물리적 현실 속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실현하는 과정은 단계마다 피드백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된다. 목적에 견주어서 오차가 발생할 경우에는 다시 머릿속에서 절차와 방법을 시뮬레이션을 해야 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목적은 노동과정 내내 실행 절차와 방법을 규제하는 법률로 작용하게 된다. (노동과정 흐름도 원형 참조)

노동과정 흐름도를 잣대로 사용하여 생산기술의 발전 단계를 구분해보면 크게 네 개의 단계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단계 : 육체활동을 인간이 수행하는 단계
둘째 단계 : 육체활동을 기계에게 떠넘기는 단계
셋째 단계 : 두뇌활동의 일부를 기계에게 떠넘기는 단계
넷째 단계 : 두뇌활동의 거의 전부를 기계에게 떠넘기는 단계

1-2-3. 역사적 잣대 : 기반기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대하여 이름을 붙여주고 있는 작명가들이 있다. ‘제3의 물결 시대’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도 있고, ‘제2의 기계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최근에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이름을 제안하는 사람도 등장하였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기준을 제시하면서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를 다르게 구분하고 있다.

나는 질적으로 새로운 기반기술의 등장을 시대구분의 잣대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나의 잣대로 재어보면, 인류 역사는 다음과 같은 발전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생산기술의 역사를 보면, 질적으로 새로운 것의 출현은 새것이 헌것을 대체하는 식으로 진행되어온 것이 아니라, 헌것에 새것이 중첩되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에 새로 등장한 기계기술은 그전까지 존속해온 손기술을 밀어내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손기술에 덧보태지면서 자리를 잡았다. 19세기에 출현한 전기기술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기계기술에 중첩되었다.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디지털기술도 마찬가지로 전기기술에 덧보태졌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넓게 보자면 ‘제2의 기계시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고, 좁게 보자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생산기술들 중에서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꼽으라면 나는 인공지능 기술을 첫손가락에 꼽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의 혁명성은 기계의 지능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우선 인간 노동과정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기술은 새로운 기반기술의 지위를 빠르게 확보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모든 길은 인공지능으로 통하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해서, 인공지능기술은 사회경제를 넓고 깊고 빠르게 변화시켜나가는 핵심 추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사회경제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사회경제질서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물질적 토대가 갖추어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던 것은 아니다. 언제나 사회경제질서의 변천은 거대한 정치적 투쟁을 거치면서 진행되어왔고, 투쟁의 결과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달라져왔다.

4차 산업혁명은 사회경제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 내가 볼 때, 신자유주의 시대는 저물고 있고, 정보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신자유주의 토대를 허물고 그 자리에 정보자본주의 토대를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정보자본주의는 장차 어느 쪽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벌써 성급하게 호모 데우스의 출현을 예언하는 사람도 있고, 인류의 멸망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예언과 걱정을 과학적 예측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보자본주의 사회의 내부적 모순과 역동성을 고려하면서 지금 우리가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매우 소박한 두 문장이 전부일 것이다.

조만간 거대한 정치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서 변화의 속도와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이 예측에 따르면, 인간의 미래는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정보자본주의에 대한 나의 연구도 바로 이 예측에서 시작되고 있다.

필자소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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