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시토신,
    인류 번성의 일등 공신
    [행복칼럼] 또 하나의 '사랑의 묘약'
        2019년 03월 14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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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해서 반했어요

    한 드라마에서 장모가 인사하러 온 장래 사위감에게 자기 딸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자, 남자가 대답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장인 장모의 얼굴은 한마디로 얼척 없다는 표정이다. 자기 딸인데 남 앞에서 그것도 딸아이의 신랑감한테 대놓고 말 못할 뿐 평소 집에서는 까칠하기 그지없는 딸인 건 집 식구가 모두 동의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비단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은 커플들에게 상대의 어떤 점에 반했냐고 물으면 “착해서요”라고 대답하는 걸 자주 본다. 그 말을 듣는 친정식구들은 “헐~ 눈이 삐어도 단단히 삐었지, 걔가 어디가 착한가?”라고 반문하기 일쑤다.

    많은 연인들이 자신의 상대를 부를 때 엔젤(anger:천사)이라는 애칭으로 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왜 많은 커플들은 상대의 장점이 ‘착한 것’이라고 이구동성 얘기하는 걸까? 연애하는 동안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혼신을 다해 의도적으로 착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일부러 연인 앞에서 착한 척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면 착해진다. 사랑을 하면 얼굴만 이뻐지는 게 아니라 착해진다 왜일까?

    매혹의 단계가 지나면 커플들은 불같이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덜해지지만 따뜻하고 포근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바로 애착단계이다.

    학자들은 열정이 사그라지고 애착이 증가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새로운 화학적 작용이 발생한다고 확신했다. 우리 몸에는 화학적으로 모르핀, 아편제, 마취제와 유사한 엔도르핀(endorphine: ‘내생적 모르핀(endogenous morphine)’의 줄임말)이 생성된다.(관련한 앞 회의 글)

    엔도르핀은 페닐에틸아민인 도파민과 달리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통을 누그러뜨리며 근심을 없애 준다. 사랑의 애착 단계에 들어선 커플은 서로에게 엔도르핀 생성을 촉진시켜 안정감과 아늑한 평온함에 빠져든다. 사랑을 하면 좋은 점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제일로 꼽는 연인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때 발생되는 물질이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여성의 출산과 밀접한 호르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산에 필수요소인 자궁의 수축을 도와주며, 젖 분비를 촉진시켜 모유 수유를 가능하게 한다. 아기엄마가 아기에게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옥시토신 덕분이다. 이 호르몬이 모성애가 효과적으로 발휘되도록 돕는다. 옥시토신 덕분에 그 힘든 육아를 많은 엄마들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비단 여성뿐 아니라 옥시토신을 투여 받은 남성들은 아이 사진을 볼 때 보상 및 공감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옥시토신은 페닐에틸아민이 씌운 콩깍지를 벗긴다. 편안함을 느끼기에 자신의 부족한 점까지도 기꺼이 내보이는 현실적인, 그러나 탄탄한 사랑의 단계에 접어들게 한다. 단순히 상대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서로에 대한 애착심이 증가하는 한 마디로 성숙한 사랑의 단계다.

    옥시토신은 또 하나의 ‘사랑의 묘약’이다. 누군가를 포옹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도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기분을 진정시키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포옹 화합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한 타인과의 유대감, 신뢰감,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옥시토신에는 사회 통합과 애착 형성을 위한 초강력 접착제라는 별칭도 따라 다닌다.

    남을 배려하게 하는 옥시토신의 영향 아래 있는 연인들은 당연히 착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라는 가요가 1절이라면, ‘사랑을 하면은 착해져요’라는 노래가 2절이 되는 셈이다.

    슈만과 클라라

    역사상 최고의 사랑은 자타가 공인하는 희대의 커플 – 슈만과 클라라 – 특히 클라라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지독한 반대로 무려 3년 가까운 법정싸움 끝에 결혼한 슈만과 클라라. 결혼생활 16년 만에 남편 슈만은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슈만이 죽은 후 40년 동안 클라라는 재혼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연주와 레슨 그리고 작곡 생활로 일곱 자녀의 교육과 생활을 책임진다. 그리고 1896년 슈만의 묘지 옆에 나란히 묻힌다. 긴 세월 클라라가 겪었을 외로움과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녀의 일기 한 구절에 실린 슈만을 향한 클라라의 깊은 사랑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아마도 클라라에겐 ‘특’옥시토신이 분비되었나 보다!

    슈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그의 숨결을 느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온몸이 그의 음악 속에 녹아내리는 듯하다

    – 클라라의 일기 –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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