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 닮은 꽃송이들은
    초록 바람을 쓰다듬는다
    [한시산책] 고계 '벗을 찾아가는 길'
        2019년 03월 14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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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피는 날

    – 용혜원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나무 한 그루 서 있다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어나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피어나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이유를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이 있지요.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에 활동한 관료이자 시인인 동방규(東方虯)의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옵니다. 중국의 전설적인 미녀 왕소군(王昭君)이 한나라 때 정략적인 이유로 흉노의 왕(선우, 單于)에게 시집갔는데, 그 슬픔을 노래한 시입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남산길

    시의 유래는 몰라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시 구절은 봄 같지 않는 봄을 맞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매년 봄마다 이 구절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봄을 너무나 갈구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아직도 너무 많은가 봅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목숨을 걸거나 내놓기도 하였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함께 하자고 방안을 내놓습니다. 저는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들이 돈과 시간의 여유가 주어질 때 잠시만이라도 자기 일상에서 스스로 실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내놓는 이론은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회색(灰色)’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따뜻한 봄날을 맞았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이번 한시산책은 좀 더 명랑하게 꾸며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한시(漢詩)는 봄의 기쁨을 경쾌하게 그린 고계(高啓) 「벗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한시는 대개 ‘우수(憂愁)’를 중시하기에 이런 시는 보기 드믑니다.

    벗을 찾아가는 길

    – 고계(高啓)

    내를 건너 또 내를 건너
    꽃을 보다 다시 꽃을 보고
    봄바람 부는 강길 따라가니
    문득 그대 집이 나타났구려

    尋胡隱君(심호은군)

    渡水復度水(도수복도수)
    看花還看花(간화환간화)
    春風江上路(춘풍강상로)
    不覺到君家(불각도군가)

    봄날 창경궁 춘당지

    高啓(고계, 1336-1374)는 중국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에 활동한 시인이자 학자입니다. 명나라가 건국한 다음 해인 1369년(홍무(洪武) 2) 주원장의 부름을 받아 한림국사편수관(翰林國史編修官)이 되어 전 왕조인 원나라 역사인 『원사(元史)』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아마도 학자로서도 전국적인 명망이 있었나 봅니다.

    한족(漢族) 차별정책을 펼쳤던 몽골족 원나라가 1368년 북경에서 몽골고원으로 완전 철수합니다. 당시 고계의 나이 33세입니다. 다재다능한 천재 고계는 몹시도 해방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 시기에 짓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시는 따로 얘기할 것 없습니다. 봄바람 불고 꽃이 한창인 봄날 자연에 숨어 사는 벗을 찾아가는 기쁨을 그냥 느낄 수 있으니까요. 시를 보면 그의 성품도 자유분방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자유분방함이 시대와 불화했기 때문일까요. 39살 젊은 나이에 역모의 모함을 받고 사형당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애송되고 시집(詩集)이 여러 차례 간행된 것을 보면 아마도 나중에라도 복권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이왕 명랑한 한시(漢詩)를 보았으니 당나라 시대 대중가요인 「보살만(菩薩蠻)」을 보겠습니다.

    보살만(菩薩蠻)

    구슬 같은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
    미인이 꺾어 뜰 앞으로 다가가네
    미소를 머금은 채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아님 제가 예뻐요?
    낭군은 부러 고민하는 척 하다가
    뜸 들이며 짐짓 꽃이 예쁘다 하네
    이내 뾰로통하게 토라진 미인
    꽃잎 헤지도록 낭군을 때리네

    牡丹含露眞珠顆(목단함로진주과)
    美人折向庭前過(미인절향정전과)
    含笑問檀郞(함소문단랑)
    花强妾貌强(화강첩모강)
    檀郞故相惱(단랑고상뇌)
    須道花枝好(수도화지호)
    一向發嬌嗔(일향발교진)
    碎挼花打人(쇄뇌화타인)

    보살만(菩薩蠻)은 기방(妓房)에서 유행하던 유행가를 말합니다. 물론 이 제목으로 여러 사람들이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당나라 때 시라고 하는데 작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수광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당나라 16대 황제 선종(宣宗, 재위 846–859)이 이 노래를 애창했다고 전합니다.

    이 시 또한 유행가답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쉽지요. 젊은 미남 미녀 커플이 모란이 핀 따스한 봄날 서로 사랑하며 희롱하는 모습이 그려지니까요. 다만 ‘단랑(檀郞)’에 대해서 부연설명 해야겠습니다. 중국에 전설적인 미녀가 있듯이 전설적인 미남이 있는데, 그 중 최고가 중국 삼국지 시대 말기에 활동한 반안(潘安, 247-300)이라는 사람입니다.

    당시 여인들은 사모하는 남자에게 과일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반안이 거리에 행차하면 여인들이 그에게 과일을 던져 타고 있던 수레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고사성어가 ‘여자가 준수한 남자를 흠모한다는 뜻’인 ‘척과영거(擲果盈車)’입니다. 줄여서 ‘척과(擲果)’라고도 합니다. 반안의 어릴 때 이름이 단노(檀奴)였습니다. 그래서 젊은 미남자를 ‘단노’ 또는 ‘단랑’이라고 지칭합니다.

    봄날 초록바람이 일렁이는 마장저수지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봄날과 꿈결 같은 사랑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신계옥의 「인연」을 읽으면서 한시산책을 마치려고 합니다.

    인연

    – 신계옥

    청보리밭을 스쳐가는
    연한 바람에
    온통 초록물이 들어

    바람이
    써 내려가는 일기마다
    살랑이는 잎새를 틔우는 날에

    흰 구름을 안고 가던
    바람에도
    솜사탕 같은 구름이
    소담스레 묻어난다면

    구름 닮은 꽃송이들이
    몽실몽실 피어나
    뽀얀 꽃향으로
    초록 바람을 쓰다듬을 테지

    누군가 나의 빛깔로
    물들어 가고
    내 마음도 그의 색을 따라
    물드는 것은
    소복소복 꽃송이 피우는 것은

    그것은 꽃봄
    그것은 사랑

    필자소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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