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대상 운영’ 명시
녹지병원 행정소송의 자기모순
범국본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 내 영리병원 개설 허가 삭제해야"
    2019년 03월 13일 08: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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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그룹이 제주녹지국제병원에 관한 사업계획서에 녹지병원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한다고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제주도의 ‘내국인 진료 제한’ 방침에 반발하며 제기한 녹지그룹의 행정소송도 정당성을 잃게 됐다.

녹지병원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대상’ 명시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등은 ‘녹지병원 사업계획서’ 전부를 입수해 13일 공개했다. 이 사업계획서는 영리병원 설립을 위해 녹지그룹이 보건복지부 등에 제출한 것으로 정부와 제주도, 녹지그룹이 철저히 비밀리에 붙이며 공개를 거부해왔다.

범본국이 400쪽에 달하는 사업계획서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녹지그룹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엔 처음부터 끝까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사업계획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녹지국제병원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의료기관’, ‘한국을 방문하는 주요 국가의 의료관광객의 특성을 분석, 미용성형·건강검진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시장성을 확보한 중화권, 일본 의료관광객을 일차적인 Target군’으로 선정한다고 적시돼있다.

녹지그룹은 외국인 진료만 허용하는 제주도의 방침이 부당하다며 이를 철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 대상’을 명시한 사업계획서가 공개됨에 따라 녹지그룹의 행정소송도 정당성을 잃게 됐다.

범국본은 “따라서 녹지그룹이 제기한 ‘내국인 진료 제한은 불법’이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은 자신이 낸 사업계획서 내용을 전부를 부정한 것”이라며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스스로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업계획서 일부 캡처(출처=범국본)

녹지병원 사업계획서 작성에 제3의 세력 개입했나

다만 녹지그룹이 언젠가는 공개될 사업계획서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점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녹지그룹은 일관되게 ‘우리는 한국인 진료를 금지했다는 것을 그 어떤 조건으로도 합의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업계획서 작성자가 녹지그룹 외에 국내 파트너이자 영리병원 사업 발주처인 제주개발센터(JDC)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국본은 “영리병원의 국내 사업시행자인 JDC가 작성한 내용이지 않고서야 녹지그룹이 스스로 낸 보고서의 내용을 부정하는 내국인 진료 제한 조치가 위법하다는 소송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마디로 녹지그룹과 JDC는 하나의 사업시행자였다가 국민의 영리병원 반대 여론과 항의운동이 커지면서 서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형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더 큰 문제는 현행법 위반인 사업계획서를 정부와 제주도가 유권해석과 행정조치로 승인했다는 점이다. 현 의료법상 의료기관이 내·외국인을 구분지어가며 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데다,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다는 조항도 없다. 녹지그룹이 스스로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부정했다는 문제와는 별개로, 정부와 제주도는 책임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벌 ‘비자금 통로’ 의혹 제기된 의료기관이 모범사례…국내 첫 영리병원의 민낯

녹지병원은 사업계획서에 한국의 ‘외국인 영리병원 도입 모범 사례’로 원진성형외과와 BK성형외과를 꼽았다.

범국본은 “BK성형외과는 여러 언론에 SK의 불법자금 통로로 이용된 바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고, 세금 탈루로 실형을 받은 병원”이라고 주장했다. BK성형외과는 사업계획서 상에 녹지병원과 협약을 체결하기로 한 영리병원인 중국 BCC와 일본 IDEA의 홍성범 원장이 전 원장으로 있던 병원이기도 하다. 홍성범 원장은 녹지병원 국내자본 우회 투자 의혹의 핵심인물로 거론돼왔다.

범국본은 “돈벌이 성형수술로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병원들이 버젓이 자랑스럽게 인용된 것만으로도 사업계획서에 담긴 영리병원 운영 목적의 본질을 드러내준다”며 “중국 등지의 영리병원을 통해 우회투자를 시도하고, 이를 이용해 자금 세탁과 보톡스 등의 판매와 주식 거품을 만들고 정치인의 비자금 세탁으로 이용되는 병원이 영리병원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러한 네트워크형 영리병원들이 우회투자의 방식으로 경제자유구역 8군데와 제주도에 국내 영리병원 설립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단 하나의 영리병원도 용납할 수 없는 이유”라고 짚었다.

영리병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영리병원 설립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 범국본의 주장이다. 범국본은 “국회와 제주도의회는 이 모든 정치적 국가 재정적 논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 내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삭제하는 입법과 조례변경을 추진해야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자치행정 핑계 말고 영리병원 철회해야”

한편 노동·시민사회·의료·법조·학계·여성·정당·종교 등 각계각층도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문재인 정부에 “영리병원은 의료 공공성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시발점”이라며 “제주 영리병원 허가를 철회하라”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이날 발표했다.

특히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정부는 영리병원 허가는 제주도지사의 권한이라며 이 논란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

각계는 “문재인 정부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개발센터(JDC)는 녹지그룹 영리병원 사업의 주체였으며, 심지어 작년 석 달 동안 시행된 영리병원 공론조사 과정에서는 아예 녹지그룹을 대신해 영리병원 찬성자로 참여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지자체의 자치행정을 핑계 댈 수 없는 이유”라고 짚었다.

이들은 “그럼에도 시민사회가 영리병원 철회를 외치고 싸울 때 정부 차원에서는 중앙정부 관할이 아니라는 변명 이외에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며 “문재인 정부는 녹지영리병원의 승인 철회와 공공병원으로의 전환 모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병원비 걱정을 넘어 재난적 의료비 지출로 고통 받는 국민이 전체 20%가 넘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리병원이 아니라 의료 공공성이며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공병원”이라며 “단 하나의 영리병원도 이 땅에 들여선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각계 각층의 뜻을 모아 엄숙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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