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바닥 안 스마트폰의 혁명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①] 실마리 풀기: 스마트폰
    2019년 03월 13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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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 진짜?

1-1. 실마리 풀기 : 스마트폰

1-1-1. 나와 스마트폰
1-1-2. 스마트폰의 네 가지 특징
1-1-3. 스마트폰의 위력
1-1-4. 또 하나의 특징
1-1-5. 인류사적 변화?

1-2. 나침반과 잣대

1-2-1. 나침반 : 노동 삼위일체
1-2-2. 이론적 잣대 : 노동과정 알고리즘
1-2-3. 역사적 잣대 : 기반기술

[필자 주] <붉은 오늘>은 붉은 어제를 되새김질 하고 있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다. 그렇다면 내일은? 붉은 내일이 없는 붉은 오늘이 있을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은 붉은 내일에 대한 토론을 제안한다. 토론을 알차게 준비하기 위하여 독자들의 동참을 부탁드린다. 댓글과 반박,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지런한 퍼나르기는 토론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첫 번째 오프라인 토론은 금년 5~6월에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심화학습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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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 진짜?

1-1. 실마리 풀기 : 스마트폰

내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자. 누구나 하나씩 손에 들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볼 수도 있고, 귀로 들을 수도 있다. 손바닥으로 문질러볼 수도 있고, 손가락으로 두드려볼 수도 있다. 궁금하면 다시 볼 수도 있고, 호기심이 발동하면 하나하나 뜯어볼 수도 있다.

인간의 생각이란 손에 들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세상을 한 바퀴 휘돌아 다시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돌아와서 끝난다고 한다. 한 차례로 끝나버릴 수도 있지만, 나선형을 그리면서 여러 차례 되풀이될 수도 있다. 그렇게 손바닥과 세상을 왕복하는 동안 인간의 생각은 점점 더 깊어지게 된다.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이론처럼 허황하지도 않고, 사상처럼 거창하지도 않다. 허구도 거품도 아니다. 두개골보다 더 단단하고, 가죽보다 더 질기다. 장난감처럼 재미있지만, 요긴하기로 따지자면 이보다 더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1-1-1. 나와 스마트폰

나는 매일 아침 스마트폰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깬다. 40년 전에는 그것이 아날로그 알람시계였는데, 20년 전에 디지털 알람시계로 바뀌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다.

어젯밤 나는 “내일 아침 6시에 일어나겠다”는 나의 의지를 스마트폰에 옮겨 심은 뒤 침대에 누웠다. 나는 곧 잠이 들었지만 기계는 밤새 잠들지 않았고, 정확하게 오늘 아침 6시에 나를 깨웠다. 나의 외부 두뇌가 내부 두뇌를 깨우는 것일까? 나는 눈을 감은 채 팔을 뻗어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폰 홈버튼을 눌러 알람을 끈다. 후~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나는 스마트폰을 쥔 채 끙~ 소리를 내며 돌아누우면서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유리를 문질러 홈 화면을 불러낸다.

내가 아침마다 가장 먼저 찾는 앱은 달력 앱이다. 그날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침부터 바쁜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은 발딱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은 날은 누운 채 몇 개의 앱을 뒤져본다. 스마트폰 화면은 어둠 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 우선 간밤에 전화나 문자가 온 것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어서 텔레그램을 열어본다. 요즘은 문자 대신 텔방을 통하여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잦다. 한 번에 여러 사람에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카톡은 앱을 깔아두었지만 사용하는 일은 별로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이 주로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안 때문이라나 뭐라나…

여기까지 진행되어도 아직 눈꺼풀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주말이나 휴일이라면 스마트폰을 다시 머리맡에 던져두고 침대 속에서 두어 시간쯤 더 꾸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평일에는 바로 일어나야 한다. 다시 한 번 끙~ 소리를 내면서 침대에서 일어나서 스마트폰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변기에 걸터앉아서 가장 먼저 열어보는 앱은 밴드이다. 나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구민중의집’ 등 여덟 개의 밴드에 가입해 있다. 이어서 검색엔진을 두드린다. 첫 화면에 뉴스가 뜬다. 출장을 가야 하는 날은 뉴스를 읽기 전에 먼저 날씨를 검색한다. “화장실에서도 쓸 수 있겠군.” 30년 전, 아이폰의 첫 실물모형을 검토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예언은 나에게도 적중한 셈이다.

뉴스를 대충 훑어보면서 배설을 끝낸 뒤에는 곧장 식탁으로 가면서 TV를 켠다. 거기서도 뉴스가 진행되고 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나의 눈은 스마트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아침 시간은 비몽사몽 스마트폰과 함께 지나간다. 기상→배설→식사→샤워→출근…

나의 출근길은 인천 검암역에서 서울 불광역까지, 공항철도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1시간 정도 걸린다. 예전에는 전철 안에서 주로 신문이나 잡지를 읽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우선 스마트폰 달력을 열어 그날 일정과 약속시간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연락해야 할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어서 그날 처리해야 할 은행 업무가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송금을 한다. 가끔 바쁘게 주문해야 할 물건이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하기도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오프라인 매장에 가본 것이 언제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 것 외에는 오프라인 매장에 가는 일이 별로 없다. 자투리 시간은 주로 페이스북을 본다. 300명쯤 되는 페친들이 전날 저녁부터 그날 아침까지 올려놓은 소식들로 페이스북은 늘 그득하다. 그러는 동안 1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승객들도 그러는 듯하다.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스마트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꼽은 채 두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고, 손가락 춤을 추며 문자를 입력하는 사람도 있다. 검색엔진을 서핑하는 사람도 있고, 동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다. 아침부터 게임에 영혼을 빼앗긴 사람도 있다. 아무튼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 안으로 고개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통째로 스마트폰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잠이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도 스마트폰이다. 침대에 누운 채 잠이 들 때까지 검색엔진이나 페북을 뒤적인다. 마침내 잠이 눈꺼풀을 내리누르면 스마트폰에 충전 잭을 물린 뒤 머리맡에 밀쳐둔다. 후~ 오늘도 하루가 끝났다. 내일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나는 또 눈을 감은 채 팔을 뻗을 것이고, 그 자리에 스마트폰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나의 하루는 스마트폰과 함께 시작되고, 스마트폰과 함께 끝난다.

어쩌다 스마트폰이 없는 날은 활동이 거의 마비되어 버린다. 아침에 출근할 때 깜빡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오는 날이 있는데, 전철을 타고나서 아차 해봐야 이미 때가 늦었다. 이런 날은 하루가 거의 먹통이 되어버린다. 사람들과 연락을 해야 하는 업무는 포기해야 한다. 모든 연락처가 스마트폰 안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다. 휴대폰을 시작한 뒤부터는 머리로 외우는 전화번호 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지금은 아내의 번호조차 외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날은 그날 잡혀 있는 약속을 어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모든 일정이 스마트폰 일정표 안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를 먹통으로 보내는 동안 그날 나와 약속을 잡아두었던 사람들은 열불이 난다. 다행히 나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은 사무실로 연락을 해오지만, 내가 출장 중일 때는 그조차 허탕이다.

아무튼 이제 스마트폰 없는 생활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스마트폰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걸까? 분간하기 어렵다. 나만 그럴까?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것은 12년 전이다. “이따금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혁명적인 제품이 등장합니다.” 2007년 1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폰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였다. 스티브 잡스와 그날의 프레젠테이션은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로부터 불과 12년,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그동안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이다.

1-1-2. 스마트폰의 네 가지 특징

스마트폰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그날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1984년 우리는 매킨토시를 선보였습니다. 그것은 애플 회사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컴퓨터 산업을 통째로 변화시켰습니다. 2001년에 우리는 첫 번째 아이팟을 선보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만 바꾼 것이 아닙니다. 음악산업을 통째로 변화시켰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이 정도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세 가지 혁명적인 제품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터치 컨트롤이 되는 넓은 화면의 아이팟입니다. 두 번째는 혁명적인 휴대전화입니다. 세 번째는 획기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기입니다. … 그런데 이 세 가지 제품은 세 개의 서로 분리된 기기가 아닙니다. … 세 가지 제품은 하나의 기기이며, 그 이름은 아이폰이라고 합니다.”

흔히 스마트폰의 특징으로 네 가지를 꼽고 있다. 휴대성, 연결성, 범용성, 대중성이 그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휴대성, 연결성, 범용성을 강조하였다. 대중성은 아직 미지수였다. 그러나 곧 확인되었듯이, 스마트폰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전세계 대중들이 그것을 하나씩 들고 다니게 되었다.

이 네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도구가 스마트폰 말고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 네 가지 장점을 모두 갖춘 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네 가지 장점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주면서 스마트폰을 세상에서 가장 편리하고도 강력한 도구로 만들고 있다.

스마트폰의 첫 번째 장점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휴대성을 꼽아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은 작고 가벼워서 휴대하기 좋다. 호주머니에도 들어갈 수 있고, 핸드백에도 들어갈 수 있다. 전철 안에서도 꺼내볼 수 있고, 화장실에 들고 갈 수도 있다. 수업시간 중에 꺼내볼 수 있고, 수십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장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 만약 스마트폰이 냉장고나 자동차만큼 크고 무겁다면 아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장점이 너무 커서 종종 낭패스러운 경우도 생긴다. 앞서 언급했듯이, 깜빡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은 하루를 공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스마트폰의 단점이 아니라 나의 단점이다. 스마트폰을 탓할 수는 없다.

스마트폰의 두 번째 장점은 연결성이다. 연결성은 휴대성의 장점을 증폭시켜준다. 연결성이 없다면 휴대성의 가치도 반감될 것이다. 나는 언제든,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음성통화나 영상통화를 할 수도 있고, 문자나 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카톡이나 텔레그램은 한꺼번에 여러 사람과 연결시켜준다. 가족방을 만들 수도 있고, 친구방을 만들 수도 있다. 업무상 자주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람들끼리 새로 방을 하나 만들 수도 있다. 업무가 끝나면 그 방을 지워버리면 된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가장 긴 끈으로는 단연 SNS를 꼽아야 한다. 가능성으로 보자면 수십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연결시켜줄 수도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을 보자. 2018년 현재 매일 한 번 이상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세계 인구는 15억 명이나 된다.

그동안 여러 가지 SNS가 생겨나서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맺어주고 있다. 서로 소식을 전달하기도 하고, 감정을 전파하기도 한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첨부하여 ‘공유’를 누르면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한 장면을 전달할 수도 있다. 언론이 통제된 곳에서는 대중매체를 능가할 정도이다. 2010년 중동에서 이른바 ‘재스민 혁명’ 또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 폭발할 수 있었던 것도 스마트폰의 연결성 덕택이라고 한다.

연결성을 실감해보자. 현재 나의 스마트폰에는 500개 정도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데,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을 사용하면 한꺼번에 연결될 수 있다. 페이스북 친구는 300명쯤 된다. 나는 페북에 가입한 직후 한동안 페친 수를 늘리는 재미에 빠졌었는데, 요즘은 가급적 페친 수를 늘리지 않고 있다. 페북을 읽어내기가 너무 산만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현재 8개의 밴드에 가입해 있는데, 회원 수가 가장 많은 것은 250명쯤 되고, 가장 적은 것은 4명이다.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내가 스마트폰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웃기지 말라는 투다. “흥, 그건 너무 적은 거야. 수십만,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도 수두룩해.” 맞는 말이지만, 나 같은 뱁새가 그런 황새들을 부러워하다간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나는 트위터는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재미 삼아 자료를 찾아봤더니, 2018년 12월 30일 현재 전세계 최다 팔로워 기록은 미국 가수 케이티 페리가 차지하고 있는데, 1억7백만 명이 팔로우 하고 있다. 1억7백만 명? 정말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정치가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단연 돋보인다. 3위에 올라 있으면서, 1억2백만 명의 팔로워 수를 자랑하고 있다. 트위터 중독자로 널리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7위를 차지하고 있고, 5천5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12월 18일, 트럼프는 트위터로 분통을 터뜨렸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은 너무 민주당 편을 들고 있다. 웃기는 짓이다! 실제로 트위터는 사람들이 나를 팔로우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수많은 이름을 지워버렸고, 순위와 속도가 매우 느리게 증가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스마트폰의 세 번째 장점은 대중성이다. 대중성은 연결성과 짝을 이루고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는 만큼 연결성도 커진다.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도구들 중 이만큼 대중화에 성공한 도구가 또 있을까? 2018년 현재 세계 인구는 77억 명이다. 그 중 휴대폰 사용자는 50억 명인데, 그 중 스마트폰 사용자는 25억 명이다. 전세계 인구의 33%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구석구석까지 스마트폰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남극 연구기지에서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스마트폰을 하나씩 들고 있고, 아프리카 오지의 원시인들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다.

한국은 스마트폰 침투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2017년 말 현재 한반도 남쪽에는 4천9백만 대의 스마트폰과 7백4십만 대의 피처폰이 깔려 있다. 전국민이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https://www.netmanias.com/ko/mobile-statistics/mobile-connections-in-korea/1340/

스마트폰의 네 번째 장점은 범용성이다. 대다수 기계는 한 가지 특정 용도로만 사용될 수 있다. 난로는 방을 덥히는 용도로만 사용될 수 있고, 다리미는 옷을 다리는 용도로만 사용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스마트폰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우선 전화로 사용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할 수도 있다.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은행 잔금을 확인할 수도 있고, 송금을 할 수도 있다. 기차표를 예약할 수도 있고, 쇼핑을 할 수도 있고, 쇼핑한 것을 반품할 수도 있다. 유투브 앱을 통하여 인공지능 강의를 볼 수도 있고, 귀농을 준비하면서 농기구 사용법을 배울 수도 있다.

한편, 스마트폰은 나를 사람들과 연결시켜주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사물들과도 연결시켜준다.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아파트 전등을 끌 수도 있고, 가스밸브를 잠글 수도 있다. CCTV를 불러내면 집안에 홀로 남은 강아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고,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은 부엌일도 대신해준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음식배달 앱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른 뒤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쯤 배달되어 오도록 주문하면 저녁식사 준비 끝! 짜장면도 시킬 수 있고, 김치찌개도 시킬 수 있다. 피자를 먹을 수도 있고, 떡볶이도 먹을 수 있다. 그날 입맛이 당기는 대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집에 도착하면 곧 라이더가 벨을 누른다. 내가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그 사람은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싣고 오토바이를 달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아파트에 도착한다. 라이더는 아직 따끈한 음식을 꺼내주고, 나는 그것을 받아서 식탁 위에 벌려놓기만 하면 된다.

도대체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어떻게 셀 수 있지?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앱의 수를 세어보면 알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은 저마다 특화된 일을 수행하고 있다. 검색 앱은 뉴스를 찾아주는 일을 수행하고, 메신저 앱은 소식을 전달해주는 일을 수행한다. 쇼핑 앱은 물건을 구매하는 일을 수행해주고, 은행 앱은 송금하는 일을 수행해준다. 기차표를 예매하자면 코레일 앱이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앱 숫자는 스마트폰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와 같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나의 스마트폰 홈 화면에는 내가 자주 사용하는 앱이 깔려 있다. 처음에는 몇 개밖에 안되었는데, 그동안 숫자가 점점 늘어나서, 지금은 50개가 넘는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처리하고 있는 일의 가짓수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앱스토어에서 앱을 하나씩 다운로드 받을 때마다 내 스마트폰의 일 처리 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스마트폰이 처음부터 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출시된 아이폰에는 불과 몇 개의 내장앱만 탑재되어 있었다. 외부개발자의 앱은 탑재할 수 없었다. 처음에 스티브 잡스는 외부자의 앱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고집하였다. 그러나 곧 정책을 바꾸어 외부개발자들의 참여를 허용하면서 앱스토어를 열기로 한다.

2008년 7월 앱스토어는 500개의 앱을 갖추고 문을 열었다. 그랬던 것이 불과 10년 만에 4천4백 배로 규모가 커지게 된다. 위키피디아를 따르자면, 2017년 1월 현재 애플 앱스토어에는 2백2십만 개의 앱이 업로드 되어 있으며, 누적 다운로드 수는 1천3백억 회이다. 애플에 이어 구글은 2008년 10월에 안드로이드 마켓을 열었고, 2012년 3월 ‘구글 플레이’로 이름을 바꾸었다. 여기에는 2017년 2월 현재 2백7십만 개의 앱이 업로드 되어 있다.

외부개발자들이 개발한 아이폰 앱은 앱스토어를 통하여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판매될 수 있는데, 이때 애플은 판매액의 30%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 앱이 한 번 씩 다운로드 될 때마다 판매액의 30%가 애플의 금고로 들어가 쌓이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앱스토어 수수료는 애플 수익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앱 전문분석업체 ‘앱애니’를 따르자면, 2017년 전세계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1,781억 건의 앱을 다운로드 하였고, 거기에 들인 돈은 817억 달러이다. 5년 뒤인 2022년에는 2,582억 건을 다운로드 하고, 거기에 1,565억 달러를 들일 것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한 대 당 2017년 한 해 동안 앱을 다운로드 받는데 들인 비용은 20.9달러이다. 2022년에는 그것이 25.7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역시 게임 앱이다. 앱 구매 비용의 3/4 정도는 게임 앱이 차지하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전세계 평균의 6배 정도를 앱 구매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1-1-3. 스마트폰의 위력

스마트폰이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에 크고 작은 변화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2015년 에쓰오일 TV 광고 ‘가족행복’ 편은 스마트폰이 가족관계에 불러일으킨 변화를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는데, 장면은 채 10초도 되지 않는다.

날씨가 화창한 휴일 늦은 아침이다. 아들과 아빠가 함께 식탁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다. 둘 다 오른손에는 숟가락, 왼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엄마는 뒤쪽 싱크대에 붙어 서서 달가닥 달가닥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아들은 밥을 가득 뜬 숟가락을 오른손에 든 채 왼손 엄지손가락만 사용하여 능숙하게 문자를 입력하는데, 자판 소리가 매우 경쾌하다. 아빠가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아들을 노려보면서 한 마디 한다. “핸드폰 좀 그만 하지?”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다. 아들은 들은 척도 않고 얼른 자판을 몇 개 더 누르는데, 띵똥~ 아빠의 스마트폰에 문자 도착 알림음이 울린다. 아빠가 얼른 자신의 스마트폰을 쳐다보자 아들의 프로필 사진이 떠 있고, 방금 도착한 대답이 달려 있다. “왜요?” 대답 옆에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오전 10:05. 아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아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아들은 불만 섞인 눈초리로 아빠를 흘겨본다.

이 광고를 보면서 나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마트폰 시대의 정곡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찔러낼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팔꿈치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 있는 사람들조차 말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스마트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도구가 있을까?

무엇을 잣대로 삼아 측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가장 간단한 잣대를 사용해보자. 사용 시간과 용도가 그것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을 따르면, 2017년 현재 한국의 만3세 이상 인구 중 87.8%가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다. 연령별로 보자면 10대부터 50대 인구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거의 100%에 달한다.

이 보고서는 스마트폰 소지자 중 97.8%가 하루에 한 번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사용시간은 1시간 28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사기관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곳도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보고서를 따르자면, 한국 스마트폰 이용자의 주중 하루 평균 이용횟수는 24.7회이며, 1회 평균 이용시간은 7.2분이다. 주중에는 하루 평균 3시간씩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주말에는 두 배 정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말 하루 평균 이용횟수는 37.4회, 1회 평균 이용시간은 8.8분이다. 하루 6.5시간을 스마트폰 이용에 퍼붓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한국정보화진흥원도 아직 현실을 잘못 진단하고 있는지 모른다. 보고서는 스마트폰을 하루 50회 이상 이용하는 사람이 전체 이용자의 12.2%라고 한다. 그런데 세계 4대 조사기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딜로이트(Deloitte)의 보고서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 이용자 중 36%는 하루에 50회 이상 스마트폰을 체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뺀다면, 이들은 20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셈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스마트폰 인구 중 20% 정도가 하루에 50회 이상 스마트폰을 체크한다고 한다. 특히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인도 등 개발도상국 이용자들이 선진국 이용자들에 비하여 훨씬 자주 스마트폰을 체크하고 있다.

출처 : Deloitte, 2017, Global mobile consumer trends

다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보고서를 인용해보자. 스마트폰 이용자의 주된 이용 콘텐츠는 메신저(95.2%)이며, 다음으로 게임(77.4%), 웹서핑(74.7%), 뉴스검색(74.6%)이 이어지고 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유아동은 게임 콘텐츠(79.7%), 청소년·성인·60대는 메신저(각각 99.0%, 99.3%, 95.1%)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고 있는 콘텐츠는 인스턴트메신저, 게임, 웹정보, 뉴스, SNS 등이다.

한국의 스마트폰 이용자 61.3%는 “스마트폰만큼 유용하고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청소년이 66.8%로 가장 높다. “스마트폰만한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59.6%나 된다. 연령별로 보면 청소년과 유아동이 63.9%와 63.5%로 비슷하게 높다. 끝으로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고 말하는 사람이 무려 70.0%나 된다. 여기서도 청소년이 73.5%로 가장 높다.

여기까지 나는 스마트폰이 오늘날 한국인의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장님 코끼리 더듬기 식으로 잠깐 더듬어보았다. 그러나 아직 골치 아픈 얘기는 시작도 못했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가장 심각한 면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일자리에 대한 영향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른바 ‘플랫폼 노동’, ‘긱 노동’이라고 불리는 일자리들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동은 대부분 스마트폰 앱을 통하여 고용과 해고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과정도 스마트폰 앱을 통하여 통제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해온 수많은 일들이 빠른 속도로 앱 노동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정규직 일자리가 남아날 수 있을까?

골치 아픈 얘기는 뒤에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얘기의 실마리나 좀 더 풀어보기로 하자.

1-1-4. 또 하나의 특징

불과 10년 만에 스마트폰의 영향력이 이처럼 엄청나게 커진 있는 것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네 가지 장점이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주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성-연결성-범용성-대중성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스마트폰은 온 세상을 지배하는 막강한 기계로 발전하였다. 이 네 가지 특징에 덧붙여서 오늘날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첨가되고 있다. 지능성이 그것이다.

스마트폰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앱들에 인공지능이 장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인공지능이 스마트폰을 통하여 우리의 일상활동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내가 내비게이션 앱의 명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운전할 때도 거기에 있고, 대리기사를 불러 자동차 키를 넘겨줄 때도 거기에 있다. 뉴스를 검색할 때도 거기에 있고, 상품을 검색할 때도 거기에 있다. 자음과 모음 한두 개만 입력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이 어느새 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여러 단어를 추천해준다. 내가 오타를 입력하면 얼른 나타나서 교정해준 뒤 ‘어라?’ 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없다. 꿈결처럼 나타났다가 꿈결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포착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나의 활동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때때로 나를 충동질하기도 한다. 물론 눈치 채지 못하도록… 스마트폰 사용 중에 수시로 끼어드는 광고는 대부분 인공지능이 나의 구미에 맞게 선별하여 보내주는 맞춤형 광고들이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몇 가지 생활공구를 구매하고 나면 그때부터 스마트폰은 비슷한 공구들에 대한 광고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하는 짓이다. 몇 권의 책을 검색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김없이 가장 비슷한 책들을 광고한다. 이번에도 인공지능의 짓이다.

인공지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보기 위해서 가상비서 앱을 사용해보자. 요즘 나는 네이버 클로바를 사용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처음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클로바, 내일 날씨가 어때?”

“내일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은 하루 종일 맑을 전망입니다. 최저기온은 오늘보다 1도 낮은 마이너스 7도, 최고기온은 오늘과 같은 마이너스 1도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음성으로 대답하면서 화면으로는 날씨 그래픽을 보여준다.

“여기서 불광역까지 어떻게 가?”

“현재 위치에서 불광역 3호선까지 자동차 추천경로로 33.8킬로미터, 약35분이 예상됩니다.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강변북로, 내부순환로를 거치는 경로입니다.”

이번에도 화면에는 그래픽이 뜬다. 지도에 출발점과 도착점이 표시되어 있고, 주요도로 이름과 함께 자동차경로가 표시되어 있다.

“칸트의 주요 저작이 뭐야?”

“칸트의 책 정보입니다.”

이렇게 음성으로 대답하는 동시에 화면으로는 10권의 책 표지를 보여준다. 어쭈, 꽤 똑똑한데? 그러나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누가 자본론을 썼어?”

“누가 자본론 썼어에 대하여 찾아봤어요.”

그러면서 한국일보 기사와 경향신문 기사를 각각 하나씩 검색해서 보여주는데, 내용은 자본론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다.

“누가 자본론을 썼느냐고?”

“원하시는 대답을 찾지 못했어요. 네이버에서 검색해보세요.”

클로바가 멍청한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물어본 걸까? 달리 물어보자.

“자본론 저자가 누구야?”

“자본론 3/하의 저자는 칼 마르크스입니다.”

이렇게 음성으로 대답하면서 화면으로는 텍스트를 보여준다. “자본론 3/하 (2015, 개역판, 정치경제학 비판) 칼 마르크스.”

이 정도면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해야 할까, 못 알아듣는다고 해야 할까?

클로바가 사람보다 훨씬 더 잘 하는 일이 있다.

“1시간 뒤에 알려줄래?”

“한 시간 뒤에 타이머를 해드릴 께요.”

뚜뚜뚜뚜~ 1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1시간 뒤에 알람 소리를 들려준다. 절대 까먹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어처구니없이 멍청한 면도 있다. 아직 소수점 숫자를 알아듣지 못한다. 2018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7년이다. 이것을 초 단위로 환산해보자.

“82.7 곱하기 365 곱하기 24 곱하기 60 곱하기 60은?”

이렇게 물어보면 ‘82.7’을 소수점 숫자로 알아듣지 못한다.

“82점 7 곱하기 365 곱하기 24 곱하기 60 곱하기 60에 대하여 알아봤어요.”

네이버를 검색해도 이런 정보가 나올 리 만무하다. 멍청한 놈! 그러나 소수점을 빼고 자연수로 물어보면 귀신같이 해낸다.

“83 곱하기 365 곱하기 24 곱하기 60 곱하기 60은?”

“26억 1748만 8천입니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는 숫자를 보여준다. 2,617,488,000. 대답하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인간보다 훨씬 빠르다. 계산기를 두드려 검산해보았다. 83×365×24×60×60=2,617,488,000. 맞다.

요약하자면, 클로바는 알아듣는 말도 있고, 못 알아듣는 말도 있다. 잘하는 일도 있고, 못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2018년 12월 30일이다. 1~2년만 지나면 클로바는 훨씬 더 똑똑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클로바는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스마트폰 안에? 아니다. 나는 클로바 앱을 불과 며칠 전에 다운로드 받았다. 그 전에는 내 스마트폰으로 클로바를 불러낼 수 없었다. 달리 말해서, 인공지능은 스마트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에는 마이크와 스피커만 있을 뿐이다.

나의 음성 질문이 마이크로 입력되면 클로바 앱은 그것을 LTE 무선통신망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네이버 서버로 전송해준다. 인공지능은 거기에 위치하고 있다. 음성을 해독하여 의미를 파악하고 대답을 만들어내는 일은 서버 안에서 진행된다. 대답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다시 LTE 통신망을 따라 스마트폰으로 전송되고, 스마트폰은 그것을 스피커로 나에게 들려준다.

인공지능은 저 멀리,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클라우드 서버 안에 있다. LTE 통신망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의 질문을 서버까지 전달해주기 때문에, 이어서 서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대답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 LTE 통신망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대답을 나의 스마트폰까지 전달해주기 때문에, 나는 스마트폰이 직접 대답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애플이 처음으로 아이폰에 인공지능 비서 ‘시리’를 탑재한 것은 2011년이다. 그때부터 수많은 비서 앱이 등장하였다.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삼성 ‘빅스비’, 네이버 ‘클로바’, 카카오 ‘미니’ 등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가상비서 앱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모든 인공지능 비서들은 스마트폰 안에 있지 않고, 클라우드 서버 안에 있었다.

요즘 그것이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아예 스마트폰 안에 실어서 스마트폰 자체를 인공지능 로봇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애플은 아이폰8과 아이폰X 안에 인공지능 칩을 심었다. 같은 해 구글은 픽셀2에 인공지능 칩을 심었다. 이어서 수많은 스마트폰에 경쟁적으로 인공지능 칩이 장착되기 시작했다. 2020년경에는 새로 생산되는 스마트폰의 35% 정도가 인공지능 칩을 탑재할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에서 엣지 컴퓨팅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인공지능들 사이의 위계적 분업 시스템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간단한 주문은 스마트폰 안에 탑재된 작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해결할 것이고, 복잡한 주문은 지금까지처럼 클라우드 안에 있는 큰 인공지능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스마트폰 안에 있는 인공지능의 능력이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 클라우드 인공지능이 필요 없게 될 날도 오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에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앞으로 모든 기계는 저마다 인공지능 로봇으로 거듭날 것이다.

1-1-5. 인류사적 변화?

스마트폰이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불러일으킨 변화들을 과연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체로 사소한 변화들 아닐까?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말한다면 너무 과장된 말이 아닐까? 지금도 생활의 뼈대는 별로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스마트폰이 없을 때도 무선전화나 유선전화를 통하여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신문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데서나 현금출납기로 은행 일을 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었지만 이런저런 일을 해치울 수 있었고, 벌어먹고 사는데 별로 불편함이 없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스마트폰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존재야말로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들이 실은 별것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사소한 변화’와 ‘혁명적인 변화’를 구분할 수 있는 잣대가 없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을 잣대로 삼으면 좋을까? 나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변해야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노동과정의 변화’를 잣대로 삼고자 한다. 스마트폰이 나의 노동과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면, 나의 삶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아직 나의 노동과정 속으로 거의 침투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주된 노동은 노동교육 교안을 만들고 노동자 학습모임을 진행하는 일이다. 그 과정 속으로 스마트폰이 침투할 만한 곳은 별로 없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앞으로 나의 노동과정조차 스마트폰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면? 스마트폰이 나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나의 노동과정을 일일이 통제하고 감시하게 된다면?

이미 노동과정 속으로 스마트폰이 깊숙이 침투한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플랫폼 노동’ 또는 ‘긱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카카오 택시’라는 앱을 사용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대리운전 기사들이 ‘카카오 드라이브’ 앱의 지시를 받아서 노동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배달 라이더들이 ‘배달의 민족’ 같은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노동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스마트폰 때문에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스마트폰 때문에 바뀌게 될까?

2018년 겨울, 카풀 앱의 도입을 둘러싸고 싸움이 붙었다. 12월 10일, 카풀 앱 상용화를 반대하면서 택시 노동자 한 사람이 분신하였다. 2019년 1월 10일, 또 한 사람의 택시노동자가 분신하였다. 스마트폰 카풀 앱의 대중화가 택시 노동자들의 삶에 심각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점을 이보다 더 웅변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일까? 카풀 앱 투쟁이 진정되고 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될까? 곧 화물차 기사들이 투쟁을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은행 노동자들도 곧 거리로 나서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스마트폰은 정교한 기계에 불과했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 휴대폰의 네 가지 장점도 실은 정교함의 산물이었다. 정교하기 때문에 휴대가 가능했다. 정교하기 때문에 이동통신이 가능했고,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줄 수 있었다. 정교하기 때문에 값이 싸질 수 있었고 대중화 될 수 있었다. 정교하기 때문에 하나의 기계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이 정교한 기계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지능을 갖춘 기계로 변모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우리가 상상조차 해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일을 해내게 될 것이다. 가상비서 앱만 하더라도 이미 대단한 물건이다. 기계가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 아닌가? 인공지능 기술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해나간다면, 앞으로 우리는 천지가 개벽할 일을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많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때쯤 우리는 2016년에 출간된 <인간은 필요 없다>는 책 제목을 다시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한숨을 쉰다면 너무 늦지 않을까?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혁명적’ 변화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스마트폰을 통하여 실감하기란 어려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사실 만큼은 누구나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기계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스위치, 운전대, 자판 등을 통하여 기계에게 명령을 입력해왔다. 2007년, 애플 스마트폰은 멀티터치스크린을 통하여 인간이 기계와 소통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대중화시켰다. 특히 두 손가락을 가위처럼 오므렸다 벌렸다 하면서 화면을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이른바 ‘핀치’(pinch) 기술은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인간-기계 소통 방식을 경험시켜주었다.

2011년, 애플 스마트폰은 인간-기계 관계에 또 한 번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인공지능을 탑재하여 음성 인터페이스 방식을 대중화시킨 것이다. 이제 기계가 인간의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자연어 음성을 인간-기계 소통매체로 사용하는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곧 성숙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와 더불어 지금까지 인간-기계 사이에 유지되어오던 모든 관계방식이 붕괴되고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관계방식이 형성될 것이다. 이처럼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출현한다면, 그것을 혁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문제는 인간-자연 관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닿아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까? ‘과학기술’이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방식을 가리킨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킨다”는 말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인터페이스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아테네 근교 라이리움 은광의 노예들, 코린트 도기 조각, 기원전 580년경, 베를린 고대박물관

저 옛날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게 된 이유도 인간-자연 인터페이스 문제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증언해주듯이, 노예는 “말귀를 알아들을 줄 아는 짐승”이었다. “땅을 파라”고 하면 그 말을 알아듣고 땅을 팔 수 있고, “베를 짜라”고 하면 그 말을 알아듣고 베를 짤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었다. 소나 베틀과 비교했을 때 인간은 소통하기에 가장 편리한 도구였다.

만약 소나 베틀이 인간의 말귀를 알아들었다면,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소에게 “밭을 갈아라” 하고 명령하니 그 말을 알아듣고 소가 밭을 갈았다고 치자. 베틀에게 “베를 짜라” 하고 명령하니 그 말을 알아듣고 베틀이 베를 짰다고 치자. 그래도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릴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 인류 역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음성언어는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해낸 최고의 인터페이스 도구이다. 인류의 모든 과학기술과 사회문화는 음성언어 인터페이스를 토대로 삼아 발전해왔다. 음성언어가 없었더라면 문자언어도 없었을 것이고, 과학기술도 인류문명도 애당초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성언어는 한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터페이스에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소나 베틀에게는 통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서 바로 이 한계를 극복해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는 음성언어를 사용한 인간-기계 인터페이스가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기술의 인류사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음성언어로 명령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뜻을 알아들은 뒤, 이어서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하여, 기계에게 전달해줄 것이다. 역방향도 마찬가지이다. 기계의 대답을 인공지능이 알아들은 뒤, 그것을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하여, 인간에게 전달해줄 것이다.

지금 내 손바닥 안에서 스마트폰이 보여주고 있는 혁명은 아직 매우 소소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매우 선명해 보인다. 그 방향을 따라 장차 더 큰 변화들이 잇따라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해볼 수 없는 거대한 혁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조만간 닥쳐올 거대한 변화를 눈치 채지 못 하는 사람들은 변화의 물결에 얹혀서 요동치며 떠내려 갈 것이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도 숱할 것이다. 거대한 물결을 헤쳐 나가자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틀어 나가자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홍수를 다수리는 우임금, 대우릉(大禹陵) 석판 그림

홍수는 거대한 재앙으로 될 수도 있고, 거대한 에너지로 될 수도 있다. 중국 신화를 따르자면, 하(夏) 나라를 세운 우(禹)는 여러 개의 인공 물길을 만들어 황하의 홍수를 다스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황하 주변의 거대한 황무지를 옥토로 바꿀 수도 있었다고 한다. 황하의 엄청난 파괴적 에너지를 엄청난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시켜낸 것이다.

짤랑~, 방금 나의 스마트폰이 페이스북 메시지 도착을 알려주었다. 혹시 저 멀리서 세상을 온통 뒤집어놓을 엄청난 홍수가 몰려오고 있는 소식을 전해주는 소리가 아닐까?

필자소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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