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세력 위한 저출산·고령화 '사회협약' 비판
By tathata
    2006년 06월 20일 06: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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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위기감이 해를 거듭하며 그 강도를 더하더니 드디어 정부의 공식적인 대책이 일단락 지어지고 있다. 정부와 재계·노동계·시민사회단체·종교계·여성계 인사 등 32명이 참여하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20일, 지난 7일 발표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 시안을 바탕으로 ‘저출산·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이하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이제 남은 절차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기본계획 최종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보고하는 것뿐이다.

사실 기본계획 시안이 발표됐을 때 사회협약의 성사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이미 1월부터 연석회의에서 기본계획 시안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여성계와 재계가 부정적인 입장을 잇달아 개진했기 때문이다. “저출산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에 대한 해결책 제시가 미흡(여연)”하며, “출산연령계층과 고령자 고용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어 재고되어야 한다(경제5단체장)”는 견해였다.

그런데 우려 목소리를 내던 각계각층이 며칠 사이 합의에 이르렀다. 주목할 만한 내용도 있다. 국공립보육시설을 보육아동기준 30%로 확충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공공보육시설 보육아동기준 50% 확충 공약이 정책전문가와 언론으로부터 ‘실현가능성 낮은’공약으로 평가받았는데, 정부가 그 실현가능성을 예견해주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협약의 힘이라고 기뻐할 수만은 없다. 명칭 그대로 어떤 강제력도 없는 ‘협약’일 뿐이라는 게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결국 이 사회협약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따로 있다는 데 있다.

사회협약과 기본계획은 ‘정치적 모자이크’

이번 기본계획 시안에 포함된 총 230여개 사업 중 신규사업은 50개뿐이다. 나머지 180개는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이 확정된 정부 각 부처 사업을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이란 틀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 될 만한 모든 사업이 포함된 것은 아니다. 기본계획은 매우 정치적으로 구성된 모자이크에 더 가깝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 사회협약체결식에서 정부,재계,노동계, 시민사회단체,종교계 등 분야별 대표들이 협약서를 안치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가령 이런 것이다. 기본계획 시안 중 저출산 원인 진단 부분을 보면 계층별 출산중단 이유의 커다란 차이를 알 수 있다. 전국가구 평균소득 기준 150%이상 가구의 37.7%가 ‘자녀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든 반면 50%미만 가구 38.4%가 ‘소득과 고용 불안정’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고소득층과 달리 저소득층의 저출산 원인은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산 등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에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렇다할 대책은 기본계획의 한 조각을 차지하지 않는다.

사회협약에도 마찬가지다. 다른 저출산 ‘NG대책’-참여단체의 반대로 빠진 정책-인 동거 부부 자녀 지원 정책은 종교계의 반대로 포함되지 못했고, 미혼모 자녀 지원도 같은 이유로 빠졌다(머니투데이 2006.6.7일자). 기본계획이 장려하는 출산은 소위 ‘정상가족’에 한정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보육의 공공성, 여성고용 확대와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일·가정 양립 지원 등이 기본계획과 사회협약을 여성친화적으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계획의 관심 대상은 저임금 불안정 여성노동자나 생계를 위해 아이와 노인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빈곤 여성이 아니다.

전업주부를 유연한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상대적으로 고학력 전문직 여성노동자의 부담과 고용차별을 개선하여 이들의 출산을 늘리는 것이 초점이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라는 제목만 가리면 ‘경제성장을 위한 여성인력 활용’이라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와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옳은 말씀처럼 보이지만 기본계획과 사회협약은 결코 중립적이지도 모두에게 평등하지도 않다. 장려하는 출산, 시정하고자 하는 저출산 원인은 정치적으로 취사선택된 것이다.

정부와 재계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 기조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고, 결혼과 가족의 정상성은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제한하는 왜곡된 생명존중의 원리가 양성평등의 원리와 나란히 배치되는 모순도 사회협약 안에 있다.

‘위기 담론’굳히는 사회협약의 위험성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면 위험성은 더 커 보인다. 사회협약은 개별 정책의 적합성이 아니라 저출산 고령사회 위기 담론의 기반을 굳히는 데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 담론의 시작과 끝은 명쾌하다.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어 생산가능인구 감소, 노인부양에 대한 부담 증가, 성장경제력 저하를 가져와 경제성장과 국가 존속의 재앙이 도래하니 어서 출산율을 회복하고 고령사회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심각한가’ 혹은‘나의 삶과 미래가 정말 위기인가’라는 질문도 허용되지 않는다. 거스를 수 없는 위기 담론의 통제만이 강력하게 작동할 뿐이다.

여풍 신화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여성은 자신의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며, 평생 일 하되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거나 늦게 해서 출산율을 낮추는 데 일조해서는 안 되며, 아이가 생기면 낙태 예방에 힘써 무조건 낳아야 한다.

비혼을 택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면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분자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정 아이 키우기 부담되면 차라리 ‘다자녀 가정’이 되어 세금 혜택과 주택분양 기회를 노리는 것이 팔자 고치는 길이다. 모든 국민이 초등학생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인생의 가치관, 결혼과 출산, 노후 생활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기본 의무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출산율·노인인구 비율·혼인율·경제성장률 등의 통계 수치가 자극하는 극도의 위기의식 하에서 경제성장과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해 다해야 할 국민의 소임이 된다. 선택과 권리, 다른 대안이 끼어들 틈은 너무 좁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가족계획’이라는 출산통제 인구정책이 ‘강제’에 의한 통제였다면 오늘날 저출산·고령사회 인구정책은 ‘합의’에 의한 통제 방식을 택한다. 사회협약은 원인 진단에서 해결책까지 이러한 일련의 위기 담론에 고정용 스프레이 풀을 뿌리는 격이다.

노동계가 남긴 성과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저출산·고령화의 원인 진단과 해결책은 각계각층의 정치성이 각축을 벌이는 정치투쟁의 장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가 차라리 그 장내에서 자신의 고유한 정치성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저출산은 비정규직과 양극화,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 때문이라며 노동자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데 유리한 국면으로 원인 진단과 해결책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나. 그렇지만 노동계의 고민은 그런 수준에도 한참 못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초 사회양극화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의 의지에 우려를 보내면서 참가를 유보했던 연석회의 참여를 결정하면서, “정부의 진정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책위에 구체적인 내용이 있음을 확인됐고 그 내용에 한정해서 대응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레이버투데이 2006.4.13일자).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데 무게를 두기보다 의제를 가지고 대화하겠다는 것인데, 실제 양대노총이 가장 주력했던 과제는 ‘국공립 보육시설 50% 확충’이었다.

민주노총의 해석대로 연석회의가 노사정위와 유사한 사회적 합의기구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냥 합의기구가 아니라 ‘저출산 고령사회 위기 담론’과 그 정책의제의 틀을 짜는 기구였기 때문에 분명 다른 접근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정치적 성과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이를 뒷받침해 줄 성장주의·국가주의 담론의 국민 통제에 손을 들어주고 대신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을 얻어낸 것을 과연 실익을 챙긴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진보진영의 고민과 전략 부재가 문제

이는 민주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년간 진보진영 내에서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제기된 바 없다. 늘 관심 없었던 여성, 아동, 노인문제의 하나 정도로 여기는 경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정치성을 부각시키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적 합의라는 틀에 조용히 묻어가고 있는 형국은 연석회의에 참여하는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전혀 다른 방식의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문제들이 엉켜서 드러나는 하나의 현상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배세력과 함께 ‘위기 담론’에 빠져 허우적댈 게 아니라 진보진영은 그 현상을 발생시키는 문제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고유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작 대중들이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위기’는 먹고 살기 어려운 것, 직장일·가사일의 이중 부담에 짓눌리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탈출할 수 없는 빈곤이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투명한 일자리다.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은 이 모든 위기의 원인을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탓으로 돌리며 불만을 무마하려 하지만 그만큼 허술하기도 하다.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 정부의 저출산 고령사회 프로젝트는 늘 부족하고 늘 실효성이 의문스럽고 또 늘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실패한 프로젝트의 길을 이미 노정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그냥 두고 현상만 나무라면서 5년간 32조를 투자한다고 출산율이 갑자기 뛰어오르길 기대할 수는 없다. 지배세력의 위기 담론이 언제까지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이 점이 균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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