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리들의 역사, 듣고 읽고 쓰다
"나는 녹음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책소개] 『나의 100년』(스터즈 터클/ 이매진)
    2019년 03월 08일 11: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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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하고 대화한 20세기 이야기꾼의 자기 삶 쓰기

평범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며 ‘쩌리’들의 삶을 기리다가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말로 푸는 역사’의 대가, 구술사 책을 내 퓰리처상을 받은 스터즈 터클이다. 시카고 사람 터클이 세상을 떠난 뒤 더블유에프엠티(WFMT) 라디오와 시카고 역사박물관이 협업해 만든 ‘스터즈 터클 라디오 아카이브’(https://studsterkel.wfmt.com/)에 정리된 1200건이 넘는 인터뷰 기록은 20세기 미국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삶의 연대기다.

45년 동안 사람들 이야기를 듣던 스터즈 터클은 아흔네 살에 ‘미국 출판계의 살아 있는 전설’ 앙드레 시프랭과 함께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람들’의 마이크로 살아온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책을 낸다. 컴퓨터를 못 다뤄 아끼는 낡은 타자기로 손수 썼다.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유머와 아흔 넘은 나이를 의심하게 만드는 놀라운 기억력 덕에 바로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환상적인 이야기꾼이라고 시프랭은 터클을 치켜세운다. 올리버 색스처럼,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우리는 내 앞의 한 사람이 곧 우주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려주며 듣고 읽고 쓴 ‘터클스러운’ 수다에 빠져든다.

타이태닉호부터 금융 위기까지, 낡은 타자기로 기록한 ‘나의 100년’

《나의 100년 ― 쩌리들의 위대한 역사를 듣고 읽고 쓰다》는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해 아들 이야기로 끝난다. 터클의 부모가 폴란드 비아위스토크에서 뉴욕으로 온 때는 1902년. 타이태닉호가 사라진 1912년에 태어난 터클은 20세기를 지나 2008년 금융 위기 때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운영한 하숙집과 소광장에서 만난 ‘쩌리’들 덕에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얻는다. 그 사이 법학을 공부한 터클은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거치며 뉴딜 때 진행된 구술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삶의 행로를 바꿔 연극, 영화, 방송,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르네상스형 지식인이 됐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칠 때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시당하고, 아내 아이다하고 함께 치열한 민권 운동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이성애자이면서도 ‘레즈비언과 게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백인이면서도 ‘흑인 작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특이한 사람이 됐다.

시카고 역사박물관 특별 상주 학자가 된 뒤에는 구술사에 기반해 미국 민중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2차 대전을 다룬 《선한 전쟁(The Good War)》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또 다른 대표작 《일(Working)》을 써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 곧 자기 자신이기도 한 ‘쩌리’들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쩌리’들의 위대한 역사가가 알려주는 잘 듣고 잘 쓰는 비결

이브 몽탕부터 앤서니 퀸까지, 페데리코 펠리니부터 우디 앨런까지, 테네시 윌리엄스부터 셸 실버스타인까지, 빌리 홀리데이부터 재니스 조플린까지, 버트런드 러셀부터 에드워드 사이드까지, 로자 파크스부터 수전 브라운밀러까지, 그리고 우리 시대의 많은 셀러브리티부터 더 많은 ‘쩌리’들까지. 터클은 1952년 1997년까지 45년 동안 〈스터즈 터클 프로그램〉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20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여러 이야기를 모아 책 12권을 썼다.

터클은 진보든 보수든 자기 삶과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인종, 계급, 성적 지향 등 모든 차별을 앞장서서 반대했고, ‘스스로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를 인터뷰의 기술로 꼽았다. 남다르게 잘 듣고 잘 쓰는 비결은 별다르지 않았다. ‘터클스러운’ 쩌리, 좋은 사람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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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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