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묘약,
    황홀함을 만드는 것들
    [행복칼럼] 눈에 씌었던 콩깍지는?
        2019년 03월 07일 11: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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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던 일을 멈추고 온전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음악들이 있다. 오페라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 그 중에 하나다. 도니체티가 작곡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에 나오는 이 아리아는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명곡 중의 명곡이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는 동네 여지주인 아디나를 짝사랑하는 어리숙한 총각 네모리노가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던 중 사기꾼 약장수에게 속아 사랑의 묘약을 사서 마신다. 사실은 싸구려 포도주에 불과했으나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묘약 덕분에 주인공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여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랑의 묘약을 소재로 다룬 음악이나 문학작품은 많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이 그렇다.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정략적 결혼을 하게 된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가 결혼 상대의 조카 트리스탄을 사랑하게 된다. 독약인 줄 알고 마신 약이 사랑의 묘약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그들이기에 오페라는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로 끝난다.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낭만 희극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사랑의 묘약으로 인해 벌어지는 생기는 인간과 요정의 요절복통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랑의 묘약은 그리스신화에 뿌리를 둔다. 사랑의 묘약은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고 알려진 사랑 특효약이다. 사랑의 묘약이라 해서 반드시 약의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사랑에 빠진 경우를 큐피트의 화살을 맞았다고 빗대어 표현하는 것처럼 그리스신화의 에로스, 로마신화에서의 큐피트의 화살이 사랑의 묘약에 해당된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묘약을 써서라도 마음에 품고 있는 상대의 사랑을 얻고 싶어 한다.

    학자들은 사랑에 빠진 상태를 ‘이끌림(attraction)’, ‘도취(infatuation)’ 혹은 누군가를 향한 집착적, 강박적인 감정이란 뜻을 지닌 신조어인 ‘리머런스(limerence)’라고 부른다. 이때 느끼는 매혹의 감정은 흥분감과 더불어 상대에 대한 깊고도 신비로운 몰입의 상태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상대의 자아와 일체감을 경험하는 상태이다. 황홀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마취상태에 있는 연인들의 뇌 속에는 각성제의 일종인 자연산 암페타민(amphetamine)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도파민과 같은 페닐에틸아민이 뇌 속을 가득 채우면서 쾌감중추는 활성화되어 행복감이 상승되면서 넋 놓고 상대에게 몰두하게 된다. 즉 도파민 같은 페닐에틸아민이 바로 사랑의 묘약인 셈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포유류 특히 영장류는 특정한 대상을 좋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의 감각이 뇌의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그 결과 그 대상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니 특정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도파민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도파민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물질이다. 때로 도파민은 행복감을 넘어 때로 마약 중독 상태와 똑같은 황홀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인 동인(drive)에 가깝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로 조절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사랑에 중독’되기도 한다.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도 사랑의 묘약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각성, 에너지 상승, 식욕 감소, 주의 집중, 기억력 상승 등과 같은 효과를 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눴던 대화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기억되고, 표정이나 몸짓 등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도 노르에피네프린이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세로토닌 또한 흥분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교감신경계이 자극되어 뇌의 회전 속도를 가속화되기 때문에 기쁜 감정이 넘쳐나고 낙천적이며 사교적이 된다. 자주 미소 짓고 생기가 넘치니 당연히 예뻐 보인다. 1960년대에 유행했던 우리나라 가요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는 과학적 근거가 확실한 노래인 셈이다.

    사랑을 하면 감각인지도 변화한다. 이마엽이라고도 불리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진다. 상대에게 온통 관심이 집중되면서, 상대의 약점을 과소평가하고 좋은 점은 한없이 과대평가하는 핑크 렌즈(pink lens) 효과가 나타난다. 우리말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 상태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주 사소한 면면들에까지 관심을 두기 시작한 연인들은 ‘결정화(結晶化, crystallization)’라 부르는 과정을 거친다. 사랑하는 상대의 외모나 성격상의 장점들에 대해 거의 맹목에 가까운 찬사를 보낸다. 상대를 현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이상에 비추어서 보고 생각하는 ‘이상화(理想化, idealization)’와 달리 상대의 약점을 인지하기는 한다. 문제는 아무리 주변에서 뜯어말려도 단점들을 가볍게 여겨 무시하거나, 이런 결점들마저도 매력이라고 확신해 마지않는다.

    사람만 달라 보이는 게 아니라 세상도 전과 달라 보인다. 음악, 노래 가사, 시 등에 대해 예민해지고, 감각이 열리며 여태까지 봐왔던 풍경이 달라 보인다. 세상이 온통 빛나 보인다. 이런 상태는 정신과 증상의 하나인 비현실감(derealization)의 약한 상태와 다르지 않다.

    비현실감이란 심리적 증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 같은 느낌, 제삼자가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 등을 포함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증상이다. 비현실감은 이인증(depersonalization)과 함께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자신의 몸을 몸 밖에서 관찰하는 듯한 느낌, 자신과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주된 증상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낯선 느낌으로서,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외부 대상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게 인식되기도 한다. 사랑의 열병에 들뜬 연인들이 “세상이 전과 달라졌어요.”, “내가 나 같지 않아요.”라는 말을 하는 상태도 이와 같은 상태이다.

    비현실감이 심해지면 공부, 업무 등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직장생활을 비롯하여 일상적인 활동들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비단 이성 간의 사랑에만 비현실적인 경향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강력한 사랑의 하나인 모성애를 느끼는 상황에서도 이마엽의 기능이 저하되어 남들에게는 훤히 보이는 자식의 허물을 부모는 보지 못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랑에 푹 빠진 황홀한 상태는 영원히 계속될까?

    2016년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태양의 후예’의 남자 주인공의 인기가 상한가를 칠 때 항간에는 그 연예인이 나온 대학교 이름을 남자주인공의 성을 따서 바꾸는 게 아닌가 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인기 절정의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도취상태의 사랑 기간은 길어야 3년이다. 페닐에틸아민의 유효기한이 통상적으로 18개월에서 3년이기 때문이다. 화사한 봄날 같았던 강렬하게 황홀한 기분은 12~18개월 정도 지속된다. 이 기간이 지나면 눈에 씌었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슬슬 상대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고, 둘이 있을 때도 하품이 나오거나 딴전을 피우게 된다.

    이처럼 뇌에서 페닐에틸아민의 작용이 끝난 후에는 사랑의 열정은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그렇다면 사랑의 감정을 되찾기 위해 번번이 페닐에틸아민 수치를 높여줄 새로운 이성을 만나야 하는 걸까

    페닐에틸아민 수치를 일시적으로 높이는 방법이 없진 않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운동이 페닐에틸아민 농도를 높인다고 한다. 또한 연애소설을 읽거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로맨틱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페닐에틸아민 수치가 올라간다고 한다.

    다행히 조물주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두었다. 바로 옥시토신의 출현이다.(다음 글에서 다룬다)

    사랑이란 이성(異性)의 아름다움에 혹해 지나치게 그 생각에 몰입하는 데서 나타나는 일종의 타고난 고통이며,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서로를 안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 12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성직자 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Andreas Capellanus) –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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