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vs 김근태 같은 게 거의 없다
        2006년 06월 19일 01:16 오후

    Print Friendly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독자행보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김 의장은 지난 16일 광주에서 ‘대북송금 특검, 한나라당 대연정 제안’ 등으로 대표되는 노 대통령의 정치노선을 공개 비판한 데 이어, 18, 19일에는 여러 언론과 연쇄 인터뷰를 갖고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다른 사회경제 노선의 일단을 내비쳤다.

    김 의장측은 장차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노대통령과의 차별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그를 위한 주요 명분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한미FTA 등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둘러싼 ‘노-김’간 노선 갈등이 첨예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총론 : 좌파 신자유주의 VS 한국식 신자유주의

    노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경제 노선을 ‘좌파 신자유주의’로 명명했다.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은 이를 "말은 좌파로 하고 행동은 신자유주의로 한다"고 간결하게 정리한 바 있는데, 실제 현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은 경쟁과 개방, 시장의 자율과 투명성 등을 강조하고 주주자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가혹한 경쟁의 조건을 만들면서, 그러니까 경쟁의 열패자를 구조적으로 양산하면서, 세금을 걷어 이들을 부조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겠다는 것도 신자유주의적 발상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노대통령의 ‘증세’ 주장은 일각의 지적대로 ‘좌파’적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것에 가깝다.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19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김 의장은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저성장’과 ‘양극화’로 규정하고, ‘신자유주의’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김 의장은 ‘고성장’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 시장만능주의 정책에 대한 재검토와 정부의 역할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달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 행한 강연에서 "막연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닌 한국적 특성에 맞는 한국적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한다"며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대세라면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한국식 신자유주의라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한국식 신자유주의’의 강조점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한국식’에 있다.

    한미FTA : 내년 3월 타결 vs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미FTA는 노대통령이 추구해온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정점이자 총결산이다. 모든 경제 부문의 완전한 개방화, 완전한 시장화를 가져올 한미FTA는 신자유주의적 이상의 실질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은 한미FTA 협상을 내년 3월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시간표를 갖고 있다.

    김 의장은 한미FTA에 원론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미국이 정한 시한에 구속돼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그는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세계의 제도를 결정할 힘이 있는 미국과의 FTA 체결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보다 부담과 영향력이 더 광범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설혹 한.미 FTA가 국민경제에 도움이 된다 해도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분명치 않고 농업이나 금융 등 등 개개 영역과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미국이 정한 시한에 구속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정책 : 공통 – 종부세, 양도세 인하 불가, 아파트 원가 공개 이견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로 투기 소득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6억 이상 주택에 부과하는 종부세는 이 같은 정책의 골간이다. 김 의장은 18, 19일 인터뷰에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종부세 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현재 부동산 투기가 일정하게 꺾이고 있는데 이 기조를 흔들어선 안 된다"며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인하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둘의 생각이 두루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표적인 게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다. 지난 2004년 6월 노대통령과 김 의장은 이 문제를 두고 정면으로 치받을 뻔 했다. 노대통령이 여당의 총선 공약이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안을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뒤집자 김 의장은 "계급장을 떼고 토론하자"고 강력히 반발했었다.

    노동정책 : 비정규직 제도화 vs 비정규직 과도한 진전 막아야

       
    ▲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메모를 하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대통령은 노동유연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보호’ 조치는 비정규직의 ‘제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노동계가 비정규직 법안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김 의장은 노동유연화의 과도한 진전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지난 4일 상공회의소 강연에서 "(지금 우리사회는) 복지라는 재분배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홀로 힘겹게 양극화에 맞서고 있다"고 했다. 특히 선진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복지시스템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유연성만을 도입했다고 지적하고 "이 모든 것이 복지에 대한 고려 없이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따라 노동시장 유연화를 일시에 받아들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때문에 "노동자 서민들은 박정희체제보다 현 경제체제가 노동을 더 심하게 배제하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미 진행되어 중단하거나 돌이킬 수는 없지만 더 이상의 과도한 진전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세 vs 일자리 창출

    노대통령은 증세를 통한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을 강조하는데 비해 김 의장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확대를 한결 중시하는 편이다. 재벌정책에 있어서도 노대통령은 주로 경영투명성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반면 김 의장은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반복되는 ‘개혁’과 ‘통합’의 딜레마

    노대통령과 김 의장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김 의장이 자신의 소신을 강단있게 밀어붙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먼저 김 의장과 당내 실용파간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크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반기업적’, ‘좌파적’이라고 비난하는 실용파 의원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김 의장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문가지다.

    일각에서는 최근 실용파들이 김 의장의 화두를 ‘노선 전환’으로 간주하면서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서는 것도 ‘의도된’ 오해일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김 의장의 좌회전을 예방하려는 일종의 무력시위라는 것이다. 이들의 견제를 뚫고 김 의장이 자신의 소신을 당론으로 관철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김 의장측 관계자는 "소신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설득과 동의의 과정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토론을 통해 김 의장의 소신을 당내 다수의 흐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를 위한 로드맵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앞서 나가는 얘기를 지금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피해갔다.

    물론 다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당장 ‘통합’에 방해가 되더라도 길게 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김 의장 자신이나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조금은 더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기대하기에는 그가 갖고 있는 ‘통합’의 철학이 너무 뿌리 깊고 완강해 보인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