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서울의 버스 운전수-20년 운전의 기록
    By tathata
        2006년 06월 17일 04: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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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기사의 ‘노동의 기록’을 담은 책 『거꾸로 가는 버스』(보리출판사)가 나왔다. 버스 기사가 자신의 노동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담은 글을 발표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글로 서술하는 일이 거의 드물고 꺼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인지 그래서 이 책은 의미는 남다르다.

       
     
      ▲ 거꾸로 가는 버스 (보리출판사)
     

    『거꾸로 가는 버스』의 저자 안건모 씨(49)는 버스 운전만 꼬박 20년을 한 버스 ‘도사’다. 그는 지난 1984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버스 핸들을 잡기 시작해 지난 2004년 12월 31일까지 서울 도심 곳곳을 버스로 유랑했다. 20년 동안 버스를 운행하면서 틈틈이 월간 『작은 책』과 <한겨레>에 기고한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시민의 발’인 버스는 장애인을 제외하고, 비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출퇴근길에 이용하게 되는 대중교통이지만, 이 공간은 딱딱한 익명성의 공간인 동시에 서민의 공간이다. 10미터 길이 남짓의 버스 공간안에서 빚어지는 서민들의 모습과 그 가운데서 홀로 노동하는 운전수의 만남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기사들한테 얘기하면 금방 아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 아주머니가 타는 곳은 꼭 정해져 있지 않다…무거운 떡을 가득 담은, 커다란 고무대야를 들고 타기 때문에 시간에 쫒기는 기사들이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다. 또 차를 타기만 하면 신발을 벗어 놓고 그 좁은 의자에 책상다리를 하고 꾸벅꾸벅 졸아 떨어질까 불안하다…손님들이 다 내리고 문이 스르릉 닫힐 때에 고무 대야를 들고 나온다. (100쪽)

    “아, 근데 그 또라이는 요즘 안 보이네.”
    “누구?”
    “왜, 거 증산동회에서 타는 놈, 멋쟁이처럼 하고 다니면서 괜히 시비거는 놈.”
    얘기하는 걸 보면 그 사람하고 안 싸운 기사들이 없다. 쉰 살도 넘게 보이는 아주 멋쟁이 신사인데 차만 올라타면 기사 뒤에 서서 깐죽깐죽 말을 시켜 시비를 건다. 그래 놓고 ‘불친절’로 신고를 하는 손님이다. 이사를 갔는지 요즘은 보이지가 않는다.(101쪽)

    버스만 타면 혼잣말로 “전두환이는 말이야. 정치를 어떻게 했는데…”라고 중얼거리는, 약간은 ‘정신이상’이 의심스러운 꽃장사 아주머니, 아침이면 맨 정신으로 공사판에 나가서 저녁이면 곤드레만드레 술이 취한 채로 버스에 올라타는 새까만 얼굴의 황소눈 아저씨, 회색교복을 단정히 입고 달님처럼 이쁜 얼굴로 인사하는 청순한 달님이도 ‘거꾸로 가는 버스’의 단골손님이었다.

    딘골손님의 인연은 이어져 다음주에는 초등학생 때 만난 꼬마손님 다섯 명이 스물네살의 숙녀가 되어 그를 찾아온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병을 오기도 하고, 결혼식이면 달려가 축하를 전하기도 한다. 인스턴트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줄로만 알았던 버스에서도 훈훈한 인연은 맺어지고 있었다.

    버스경력 20년의 ‘버스도사’는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그 ‘도’를 물어봤다.
    “일단 손님하고 안 싸우게 된다. 얼굴만 보고 손님이 대하는 태도만 봐도 대꾸를 해야 되는지, 우격다짐으로 맞짱을 떠야 하는지 척 알 수 있다. 또 운전이 편해지고, 버스정비에 대해 하나도 몰라도 어디쯤에 차가 이상이 있는지 감으로 느낀다.”

    물론 버스에서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교통지옥’ 서울을 ‘곡예운전’으로 누비는 버스 운전은 고된 노동 중에 하나다. 버스 노동자를 괴롭히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도로교통법이기도 하고, 임금체불을 밥 먹듯이 하는 버스운수업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회사와 결탁해 파업을 벌이는 ‘시늉’을 하고 버스요금을 올리는 것을 묵인하는 ‘어용노조’이기도 하다.

    버스바퀴와 인도 턱 사이가 50센터미터가 되어야 한다. 50센티미터가 넘으면 ‘정류장 질서문란’이라고 10만원 세금(?)을 물어야 한다…요즘 은평구청이나 서대문구청은 아주 신이 났다. 그런 정류장에서 인도에서 50센티미터 붙이는 버스들이 있나? 언제라도 나가서 사진만 찍으면 벌금 10만원이니 구청 수입이 여간 짭짤한 게 아니다…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벌금을 내라고 해야지 이건 뭐 조선시대 ‘삼정의 문란’ 때처럼 뱃속에 있는 애한테까지 받았던 ‘군포’ 같은 세금 걷는 것도 아니고 정말 ‘드러워서’ 못 살겠다 (26~28쪽)

    이번 파업은 다시 말하지만 결코 노동자들이 일으킨 파업이 아니다. 기사들이 말한 대로 ‘사업주가 파업한 것’이다….한국노총 밑에 자동차연맹, 그 밑에 서울버스지부로 되어 있는 지금 우리 상급단체는 우리들 조합비로 자기들 이익만 챙기고, 해마다 회사에 겁주는 파업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겁주는 ‘파업’을 무기로 ”파업 직전 극적 타결“했다고 연극을 하고 있다…사업주는 올해도 또 어김없이 버스 요금을 인상하기로 약속 받았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150~152쪽)

    버스운수 노동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은 사고다. 사고가 나서 다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그 만큼 일을 못해 돈을 벌지 못하고, 벌금 내고, 무사고 운전 경력도 깨지고, 벌금 점수가 많으면 운전면허 정지까지 당하게 된다. 그런데 사고의 책임은 버스 노동자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내 차만 해도 고장 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운전석이 고장 나 울퉁불퉁한 길을 가면 의자가 토끼같이 깡충깡충 뛰듯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서 정신이 없고…어떤 차는 센터 볼트가 나가서 차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게처럼 삐딱하게 나가기도 한다..버스 바퀴가 다 닳아서 바퀴를 갈 때는 두 짝을 한꺼번에 갈아야 하는데 버스 회사들은 타이어를 아낀다고 한쪽씩 갈아 줄 때가 많다. (165~166쪽)

    신문의 한 줄도 차지하지 못하는 버스회사의 내부사정이 노동자에 의해서 낱낱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버스회사가 비용절감을 이유로 버스정비에 소홀한 사이 사고의 책임은 고스란히 버스 기사에게만 떠넘겨지고, 노동자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떠안게 된다.

       
     ▲ 지난 1995년에 창간된 월간 <작은 책>은 올해
      로 창간 11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자신의 노동을 글로 남기게 됐을까. 그가 월간 『작은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96년이었다. <한겨레> 신문을 읽다가, 작은 줄 광고 한 줄에 ‘필’이 꽂혔다. “노동자가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 월간『작은 책』1년 구독료 1만원.”

    일단 값이 싸기도 했지만, “노동자가 어떻게 글을 쓰나, 글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만 쓰는 것인데…‘라고 여겼던 그는 호기심에 월간『작은 책』을 정기구독했다. 그리고 그의 삶에 조금씩 변화가 다가왔다. 그리고『작은 책』의 독자 투고를 알리는 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려도 좋습니다. 글을 보내주세요“라는 글이 다시 그를 사로잡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이오덕 선생이 주관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가게 됐다.

    글을 쓰게 되면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안 씨는 “회사가 겁을 내게 됐어요. 징계위원회 같은 게 열리면 그전에는 막말도 아무렇게나 하고, 무시하는 말들을 내뱉었는데 회의를 소식지에 기록하면서부터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죠. ‘저 놈들이 또 기록하면 어쩌나’ 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조심스러워하더군요.”

    노동자가 ‘생활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고발할 수 있는 ‘펜’을 가지게 되었음을 뜻하고, 그리고 그 글은 한 사람의 고발에 머무르지 않고 공명이 되어 함성으로 울러피지는 힘을 가지고 되었음을 뜻한다. 지금도『작은 책』의 글쓰기 모임은 계속된다.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30여명이 모임에 참여해 글쓰는 맛을 배우고 익히고 있다.

    안 씨는 버스운수 노동자에서 지난해 1월부터 월간『작은 책』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은 어떤 글을 쓰시느냐는 질문에 “글 쓰는게 영 시원찮다”며 그는 “몸으로 움직이는 노동이 제격이고, 그래야 글이 나오는데 펜대만 굴리다 보니 시간만 간다”며 푸념했다. 그래도 그가 온 이후로『작은 책』은 창간 11년만에 올 해 두 번이나 흑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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