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당신에게 3·1운동은 어떻게 기억되나?
    [책소개] 『3월 1일의 밤』 (권보드래/ 돌베개)
        2019년 03월 02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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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운동에 가닿기 위한 10여 년의 기록
    16개의 시선으로 복원한 1919년 3월 1일

    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근대를 보는 지평을 넓혀 온 고려대 국어국문과 권보드래 교수가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간의 연구와 기록을 한 권에 담았다. 1910년대 전 세계로 무대를 넓히고 당시의 신문 및 잡지, 재판기록, 문학작품, 국내외 선학자들의 연구와 시각자료 등을 재료 삼아 1919년 3월 1일의 한반도를 복원한다.

    2000년 초 한 신문조서를 접한 것을 계기로 10년 넘게 변치 않던 3·1 운동에 대한 애정이 방대한 사료를 읽어내는 깊은 눈과 만나 거대한 서사를 일궈낸다. 특히 책을 지탱하는 16개의 기둥(선언, 대표, 깃발, 만세, 침묵, 약육강식, 제1차 세계대전, 혁명, 시위문화, 평화, 노동자, 여성, 난민/코스모폴리탄, 이중어, 낭만, 후일담)은 저자 스스로 3·1 운동을 쉽게 단언하거나 익숙한 틀로 접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다각도로 그날을 들여다보자는 제안이다. 당신에게 3·1 운동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충분히 마주한 적 없었을 이 질문에 더 늦기 전 한번은 답해야 하지 않을까? 1919년 봄, 100년 전 봉기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1910년대의 세계 그리고 1919년의 한반도
    한 권으로 읽는 3·1 운동의 세계사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전국 일곱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독립선언’을 상징적인 시작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표면적인 사건에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숨어 있다. 10년간의 식민지기, 평양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서」 발표, 고종 사망 등을 비롯해 제1차 세계대전과 파리평화회의 그리고 중국, 이집트, 헝가리 등 세계 곳곳에서 1910년대 내내 앞다퉈 벌어졌던 혁명들. 3월 1일 이후 수개월 동안 한반도 각지에서 불규칙적으로 이어진, 시작과 끝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봉기들까지……. 20세기 세계 전반을 가로지르던 정의·인도·평화,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가 조선에도 예외 없었다는 점까지 떠올린다면 이 모든 것은 3·1 운동을 설명케하는 연속되고 중첩된 ‘사건들’이다.

    『3월 1일의 밤』은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1919년을 만들어낸 전후 시간이 한 권 안에서 병치·교차되며 서술된다.「기미독립선언서」를 설명하다 미국, 아일랜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선언서로 옮겨가 비교하고(제1부 1장), 1910년 침묵으로 가라앉은 식민지기 서울에서 10년 후 역동적인 서울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하며(제2부 1장), 1919년 봄 ‘파리’에 모여든 각국의 대표들과 1919년 ‘한반도’에서 조직도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대표를 자임하던 이들을 동일선상에 두기도 한다(제1부 2장). 또한 고종 습의와 태극기를, 박경순, 정금죽 등과 같은 실존 여성과 이광수, 심훈의 소설 속 여성 주인공을, 1915년 10월 블라디보스톡의 조선 노동자와 1919년 10월 러시아의 조선 노동자를 종횡무진 연결시키며 3·1 운동의 세계사를 써내려간다.

    난폭하면서 고귀하고, 무지하면서 드높은
    3월 1일의 낯선 ‘밤’ 속으로

    “3·1 운동의 밤은 다채롭다. 3·1 운동 속 그들은 어스름녘 시내에서 전차에 투석하고, 어둠이 짙어질 때 뒷산에서 봉화 올리고, 밤 깊어갈 무렵 모여서 산 너머 주재소를 향하곤 했다. 그들은 잘 알려진 시공간을 벗어날 뿐 아니라 익숙한 인식론도 동요시킨다.”(들어가는 글, 11~12쪽)

    100년이 지난 지금도 3·1 운동은 유관순, 태극기, 민족대표 33인, 「기미독립선언서」 등과 같은 민족주의적 표상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련 연구자들이 꾸준히 자료를 발굴하고 논문을 발표해온 것과 별개로 3·1 운동 자체가 대중들에게 역사적 관심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권보드래는 3·1 운동이야말로 영웅화된 동시에 소외된 영역이어서 편견 및 무지와 싸우는 공부였다고 고백한다. 엇갈리는 기록과 기억들, 수면 위로 오르지 못한 사연들을 우열 없이 전달하는 작업이 가장 필요해 보였다. 가령 3월 1일 서울에서는 그 어디에도 태극기가 휘날리지 않았고, 3월 5일 학생들이 주도한 남대문역 시위에서야 여러 깃발이 등장했다는 점, 3·1 운동기 사망자수 집계가 553인에서 7,509인까지 자료마다 차이가 적지 않다거나, 독립선언서 인쇄 매수가 2만 1,000매인지 3만 5,000매인지 등에 대해 자신이 어떤 쪽이 맞다고 단언할 수는 없더라도 그 간극을 전하고 싶었다.

    박제된 이미지가 조금씩 걷어지자, ‘밤’의 시간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실제로 3월 1일 이후 9일, 10일, 23일 등의 제법 큰 봉기가 밤에 이루어진데다 그 주축은 도시의 지식인들이 아닌 노동자들이었다. 한낮의 시내보다는 밤의 산등성이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대개 어둠 속에서 활활 타오르다가 동이 채 트기 전에 끝나곤 했다(제3부의 1장, 3장, 4장). 그리고 그 속에는 수많은 작은 주체들이 있었다.

    친구 따라 만세 한 번 불러본 게 다지만 종생 3·1 운동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그 어느 역사서에도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 누군가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삼촌이자 동생이었을 이들 말이다. 김승신, 유봉진, 양봉식, 주시향, 정재순, 황승흡, 김찬석 등 권보드래는 자신이 읽고 만난 존엄한 생과 그들이 꿈꿨지만 가려져왔던 어둠의 시간으로 이 책을 부지런히 채웠다. 감히 단언하자면 『3월 1일의 밤』을 읽고 난 후, 우리는 3·1 운동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고백하게 될 것이다.

    “북 치고 나팔 불고 노래를 부르며”
    식민지의 공론장과 문화정치

    3·1 운동은 대중들이 각성하고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이었다. 물론 유럽의 경우처럼 함께 모여 대화와 토론으로 붐비는 세련된 장은 아니었으나 다채로운 언어를 짓고 말과 행동이 하나 되는 식민지의 공론장을 개척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일부만 떼어내거나 이름만 빌리는 식으로 변주·변형된 선언서들을 만들었고, 몰래 구한 등사기에 인쇄를 하고 자발적으로 배포를 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며, 홀로 선언서를 쓰고 배포한 1인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만세 선창 시에는 도시에서는 쌀가마니, 고무신수레 등으로, 농촌에서는 산상(山上)으로 높은 곳을 찾아 오르고 올랐다. 1900년대를 소생시켜 전진의 곡조를 만들기도 했고 농촌에서는 “북 치고 나팔 불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3·1 운동을 두고 부재하는 중심, 직접성과 즉각성, 불확실성을 논하는 것은 이러한 시위문화에서 기인하기도 할 터인데 권보드래는 이 현상이 동시대 다른 국가의 혁명에서는 볼 수 없는, 유례없는 사건이라 평한다.

    『3월 1일의 밤』을 통해 1910~1920년대 발행된 잡지들과 문학작품들을 다수 접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각성회화보』, 『각성회』, 『자유신보』 그리고 『소년』,『청춘』『백조』, 『금성』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다종다양하다. 특히 이 책의 제4부 4장에서는 저자 본연인 국문학으로 돌아가 그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문학을 ‘퇴폐와 절망’으로 수식하는 데 물음표를 던지며 이광수, 채만식, 심훈, 김동인, 한용운, 임화 등을 다시 읽어낸다.

    천 개의 욕망과 평화의 꿈

    100년 전 사람들은 독립에 각인각색의 열망을 투영했으나 때로는 자신이 외친 만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뜻도 모른 채 경작할 땅을 되찾고 훈장이 될 수 있는 말을 믿으며 만세를 따라 불렀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어느 순간 옆 마을에서 만세성이 들리면 변소에 다녀오다가도 술 취한 귀갓길에도 습관처럼 외치고, 때로는 식민지도 죽음도 잊은 채 마을 축제를 즐기듯 빙글빙글 춤까지 추며 희열을 느꼈다. 결사대를 자처하고 만국의 공덕을 빌며 바닷가에 뛰어드는 일가 11인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이 누리던 모든 권력과 명예를 버린 채 러시아나 만주로 떠나는 이도 있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욕망과 결심을 제대로 설명하고 해석하기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기껏해야 모두 한 마음으로, 더 이상 지배와 폭력이 난무하지 않은 평화로운 새 나라를 꿈꿨다는 정도로 말할 수밖에.

    최근 3·1 운동에 대한 활발한 해석이 진행되며 3·1 운동에 혁명성을 주목하는 경향이 짙다. 또한 100주년을 맞아 3월 1일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도 풍부해질 것이다. 권보드래는 이러한 논의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다. 3·1 운동을 10여 년에 품고 완성한 『3월 1일의 밤』이 16개의 병렬적인 키워드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날을 한 문장으로 결론 내릴 수 없음을 진작 알았기 때문 아닐까. 대신 3·1 운동의 빛나는 나날이 그리고 이 책이 지금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가령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폭력의 반대가 비폭력인지 평화인지, 배제와 차별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저마다 다른 욕망을 지닌 채 모여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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