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반일 외치면서
실질로는 숭상하는 경향에 부쳐
[푸른솔의 식물생태]3.1절과 식물학
    2019년 03월 01일 1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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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와 이에 저항했던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행사 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3.1 운동과 반일 독립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반일과 친일’ ‘일제 잔재의 극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기고 글 하나를 게재한다. 식물과 관련한 특정 언론의 기사인데, 오해와 오독이 가득하다는 게 필자의 지적이다. 부득이 기사의 내용 하나하나를 짚어가면서 비평을 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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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맨이 널 두렵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 네가 다 컸다는 걸 보여줘.” (Don’t let the bogeyman frighten you; just show him you’ve grown up.”) – 영국 동요 “부기맨이 나타났다” (Here comes the Bogeyman) 중에서

짧은 기사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실과 어긋나고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는 것일까요? 사실조사가 사라진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크게는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여전히 일제와 그 당시 식물연구를 주도하였던 나카이 다케노신의 시각에서 머물려 있다면, 그것은 말로는 반일을 외치면서 실질은 여전히 일본과 나카이 다케노신을 따르고, 나아가 숭배까지 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사의 내용 별로 그에 대한 진위 여부와 도대체 어떤 경위에서 저런 내용을 싣게 되는지를 살펴봅니다.

■ 이 기사의 원문 : 우리꽃에 일본 침략자 이름이…일제에 뺏긴 식물 이름

■ 같은 기자의 13년 전 기사 원문 : 식물이름 속 일제 잔재 아시나요


금강초롱꽃/ 경기도

기사 내용 : 우리꽃에 일본 침략자 이름이…일제에 뺏긴 식물 이름

사회 각 분야에서 일제 잔재가 지워지고 있지만 식물 이름만큼은 흔적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식물 이름은 학명(學名), 영명(英名), 국명(國名) 등 세 가지로 불리는데 아쉽게도 학명은 국제적인 약속이어서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다. 27일 산림청 국립수목원 등에 따르면 한반도 특산식물 527종 중 327종의 학명에 ‘나카이'(Nakai)라는 일본 식물학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맞습니다. 맞구요.

​​▶ 그런데요. 일본인이 한반도로 밀려 들어오기 전에 러시아 식물학자 파리빈(I. V. Palibin)이 1901년에 완성한 ‘Conspectus florae Koreae‘(조선식물관견)를 통하여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103과 393속 635종 20변종을 연구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 이미 1901년에 한반도 분포식물 중 총 655종을 발표하였고, 이미 구미 열강의 식물학자들과 채집가 수십 명이 조선을 다녀갔는데, 이 책에 실린 한반도 분포 식물 채집이나 분류를 도왔거나 협력한 조선인은? 당시에 이 책의 내용을 보기라도 한 조선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비극의 출발입니다. 일제강점기만 주구장창 이야기한다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도 않고 보일 수도 없습니다. (뱀발; 그래서 일제강점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니 오해 없으시길)

기사 내용 : 학명은 국제규약에 따라 식물 종류, 발견지역, 발견자 순으로 표기되는데 우리 특산식물 상당수는 일제 강점기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Nakai Takenoshin)이 이름을 붙였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에서 한반도에만 있는 식물인데도 여전히 일본인 학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거나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는 실정이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 린네의 식물분류학에 근거한 학명에 대한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은 속명(genus) + 종소명(epithet) + 명명자를 라틴어로 붙이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식물종(epithet??)를 먼저 쓰지도 않고 발견지역을 표시하지도 않으며, 명명자는 종의 특질을 식별하고 그에 관한 발표논문을 기재한 사람을 적는 것입니다.

기사내용 : ◇ 우리 특산식물 60% 이상에 일본인 이름

금강초롱꽃(학명: Hanabusaya asiatica Nakai)이 대표적이다. 금강초롱꽃 학명에는 국권 침탈 주역인 초대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이름이 들어 있다. 나카이가 자신을 조선에 파견한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부사에게 바쳤다. 당시 금강초롱꽃은 하나부사의 한문식 이름을 따 ‘화방초'(花房草)로 불리기도 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 일단 일본인 花房義質은 일본어로 하나부사 요시모토(はなぶさ よしもと)로 읽지 ‘하나부사 요시타다’로 읽지 아니 하구여~. 나카이 다케노신(中井孟 之進)을 조선에 파견시킨 사람은 동경제국대학의 마츠무라 진죠(松村任三)라는 식물학 교수이고, 조선총독부에서 나카이를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임명하여 한반도 식물조사를 허용한 사람은 조선총독부의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입니다. 금강초롱꽃에 속명에 Hanabusaya가 들어간 것은 일본 초대 공사로 강제 개항을 이끌었던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가 한반도에서의 그의 재임시절인 1883~1884년에 취미로 식물을 채집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나카이 다케노신의 연구작업의 기초자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 하나부사 요시모토의 정치적 행위 때문에 학명이 부여된 것이 아니라 표본 채집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랍니다. 당시 학명을 부여할 때 흔히 있던 사례들 중의 하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 나카이 다케노신의의 식물분류에 관한 학설은 이미 당대에 세계식물학계의 반박으로 혁파되었고 전후에 일본에서도 더 이상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보편성을 상실한 동아시아의 특수성만을 강조한 분류방법과 극단적인 세분론으로 엄청난 수의 속과 종을 과장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가 한반도 특산속으로 분류한 금강초롱꽃속(Hanabusaya Nakai, 1911), 금강인가목속(Pentactiana Nakai, 1917), 미선나무속(Abeliophyllum Nakai, 1919), 새양버들속(Chosenia Nakai, 1920), 개느삼속(Echinosophora Nakai, 1923) 등이 전부 한 속에 한 종밖에 없습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금강초롱꽃이 모시대나 초롱꽃과 얼마나 다르길래 속(genus)을 달리해서 분류했을까요? 제대로 연구해서 속을 통합해 버리면 간단하게 Hanabusaya라는 학명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왜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고 그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지 않을까요? 사실은 없앨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없애면 한반도 특산속이 사라지니까요.

그럴 리 없다구요? 나카이 다케노신이 버드나무속(Salix)에서 새양버들속(Chosenia)을 한반도 특산속으로 독립시키고 학명도 조선의 특산속이라는 뜻의 조센니아로 불렀던 그 새양버들속의 새양버들이 사실은 버드나무속에 속하고 중국 동북부에도 널리 분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식물학계는 새양버들에 대한 학명을 도로 원위치하여 Salix arbutifolia Pall.(1788)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나카이 다케노신이 분류한 그 새양버들속의 학명을 대한민국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은 여전히 고수하여 Chosenia로 표기하고 있답니다. 조센니아(Chosenia)는 자랑스럽고, 하나부사야(Hanabusaya)는 부끄러운 것인가요? 학문을 하지 않고 주의와 이념으로 계속 반일을 외치는 실체가 사실은 나카이 다케노신 숭배와 친일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사 내용 : 섬현삼, 섬기린초, 섬초롱꽃 등 울릉도와 독도에서 발견된 특산식물의 학명에는 일본인들이 독도를 부르는 ‘다케시마'(竹島)와 나카이가 붙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 나카이 다케노신은 1917년에 울릉도만 탐사했고 독도에 간 적이 없습니다. 나카이 다케노신이 학명에 사용한 타케시마는 울릉도라는 의미이지 독도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1910년대에 나카이 다케노신이 가지도 않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이름 붙여서 학명을 부여하였다면, 나카이 다케노신은 조선이 독립할 것이며 독립하고 나면 독도를 둘러싸고 영유권 분쟁이 일어날 줄 미리 예측하고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됩니다. 나카이 다케노신은 신이라도 되는 걸까요? 나카이 다케노신을 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나카이를 숭배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사 내용 : 미선나무(Abeliophyllum disdichum Nakai)는 1919년 학계에 처음 보고돼 한반도 대표 특산식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한국 식물학의 개척자인 정태현 박사가 1917년 충북 진천에서 처음 발견했으나 나카이가 자신의 이름만 학명에 넣은 뒤 일본식 이름인 ‘부채나무'(Uchiwa-no-ki)로 소개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 학명의 이명법은 명명자를 기재하는 것이지 발견자를 기재하지 않으므로 나카이 다카노신이 명명자로 되어 있는 것에 어떠한 하자도 없습니다. 정태현 박사의 제자인 이우철 교수는 1917년 측백나무의 자생지에 탐사하기 위하여 정태현 박사와 나카이 다케노신이 충북 진천에 갔다가 우연히 미선나무를 발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 나카이 다케노신은 신종 식물에 조선명을 명명한 적이 없습니다. 조선총독부로부터 촉탁을 받아 한반도 식물조사를 행하였기 때문에 일부의 식물에 대해 조선인이 부르는 조선명을 한글이 아닌 가나 표기로 기록한 적은 있어도(제주도 및 진도식물조사보고서, 지리산식물조사보고서와 조선삼림식물편의 있는 목본의 일부 식물이 그러함) 별도로 조선명을 만들어 신칭한 적은 없습니다. 1919년 나카이 다카노신의 일본 식물학잡지에 실린 논문에 나오는 우치야노키(ウケワノキ)는 일본명이지 조선명이 아닙니다. 일본 식물학잡지는 인터넷 검색이 가능합니다. 나카이 다케노신의 논문은 아주 짧습니다. 왜 찾아보지도 않고 이런 기사를 쓸까요?

기사 내용 : 매우 특별한 경우지만 식물의 학명은 먼저 발견된 식물과 같은 종이 확인되면 우선 원칙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백합 종류인 평양지모(Anemarrhena asphodeloides Bunge)의 학명은 ‘Terauchia anemarrhenaefolia Nakai’였다.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의 이름을 따 ‘사내초'(寺內草)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먼저 발견된 식물과 같은 종으로 확인, 현재의 학명을 사용하게 됐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 나카이 다카노신이 ‘Terauchia anemarrhenaefolia Nakai(1913)’라는 학명을 부여한 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평양지모의 학명 운운한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일제강점기에는 한약재로 사용하던 지모<Anemarrhena asphodeloides Bunge(1833)>를 평양에서 많이 재배하여 키웠던 모양입니다. 지모의 학명은 1833년에 부여된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나카이 다케노신이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종소명 anemarrhenaefolia가 지모속(Anemarrhena)과 잎이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 1912년에 평양에 근무하던 일본인 교사가 지모로 보이는 1개체의 표본을 채집하여 동경에 있던 나카이 다케노신에게 송부하고 종의 동정을 구하였습니다. 아마도 추론컨대, 평양에서 동경으로 표본이 송부되는 과정에서 표본 손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손상된 표본을 근거로 나카이는 기존의 지모와는 꽃의 형태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속(genus) 식물을 발견했다고 신속 Terauchia와 그에 대한 종 발표를 하면서 새 학명을 부여하였으며 일본이름을 Terauchiso(寺內草)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로 평양에서 재배하였던 한약재 ‘지모’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카이가 주장한 식물체를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조선식물향명집(1937)과 그 이후의 문헌은 이를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국가표준식물목록이나 세계 식물학계의 추세는 원천적으로 잘못된 분류이었으므로 이 학명을 지모의 이명(synonym)으로 취급할 뿐입니다.

박만규 교수라는 분이 1949년에 [우리나라 식물명감]이라는 책을 저술하면서-이 책도 스스로 확인하지 않는 엄청난 종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이 학명에 ‘평양지모’라는 한국 이름을 부여하기는 했지만, 그 책 정도에서 끝난 에피소드입니다. 그 이야기를 왜 저런 식으로 할까요? 황당한 분류학자로 나카이 다케노신을 바라보고 이를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한약재로 사용하는 ‘지모’가 사내초로 불리었다는 주장이라면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기사 내용: ◇ 무궁화 보면 눈병 생긴다?

학명과 달리 학계 등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영명’과 나라별로 부르는 ‘국명’은 우리 의지로 바꿀 수 있다. 소나무는 영명이 줄기가 붉은 일본 소나무란 뜻의 ‘재패니스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이었으나 2015년 ‘코리아 레드 파인’으로 바로 잡았다.

??? 무슨 황당한 이야기일까요?

▶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등지가 주된 분포지인 소나무의 학명은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1842)이고 일본명은 아카마츠(赤松)입니다. 학명을 부여한 것은 독일인으로 1825년 일본에 와서 현대 의학을 전파했던 지볼트(Philipp Franz Jonkheer Balthasar von Siebold)입니다. 그가 일본에서 표본을 채집했고, 그것을 유럽에 귀환해서 1842년에 발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국소적으로 분포하지만, 세계적으로 Japanese red pine으로 알려졌습니다.

▶ 2015년에 바로 잡았다니?? 세계의 누구가? 세계 유수 식물단체가? 세계 식물 관련 업무를 보는 사람? 도대체 누가 Korean red pine으로 부른다는 것일까요? 우리끼리 바꾸자고 하면 영어 명칭이 하루아침에 바꾸어지는 것일까요?

▶ 한 가지 덧붙이지만 종래 옛부터 우리는 한글로는 솔/소나무, 한자로는 송(松)이라고 하였습니다. 적송(赤松)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일본입니다. 우리 옛 문헌에서는 약재 사용에서 아주 희귀하게 발견될 뿐입니다. Korean red pine라고 해도 Korean를 빼고 나면 실질은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기사 내용 : 일제는 국내 식물의 이름을 일부러 비하해 부르거나 이 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내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정원수로 많이 이용하는 단풍나무를 일본의 것은 참단풍(Acer japonicum Thunb)으로 부르고, 한국의 것은 노인단풍(Acer koreanum Nakai)으로 불러 차별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Acer japonicum Thunb.은 현재는 한반도에 분포하는 종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국가표준식물목록(2018)에 따르면 재배종으로 ‘일본당단풍’이라는 이름이 추천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전라도와 강원도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정태현 박사가 1943년에 저술한 조선삼림식물도설은 이러한 오해에 기반하여 Acer japonicum Thunb를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로 기록하였습니다. 조선삼림식물도설에 기재된 일본명은 하우지하카에데(ハウチハカヘデ)인데 한자어로는 羽団扇楓으로 표기하고 새털로 만든 부채 같은 단풍나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일제가 일본이라는 뜻이 들어간 Acer japonicum 종에 대하여 ‘참단풍’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Acer koreanum Nakai라는 학명은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태현 박사가 저술한 조선삼림식물도설(1943)에 기록된 학명입니다. 나카이 다케노신은 한반도 분포식물에 대하여 엄청난 수의 신종을 과장하여 발표하면서 종종 제대로 된 표본과 기재문도 없이 학명을 부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잘못된 학명인 셈이지요. 아마도 추론컨대 이 학명도 그러한 것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 학명에 대한 당시 일본명은 요키나하우지하(ヲキナハウチハ, 翁羽団扇)로 뜻은 노인을 닮았고 새털로 만든 부채 같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단풍나무를 닮았는데 열매에 흰털이 밀생한다는 이유로 별도 종으로 신칭되었고 그 흰털을 노인에 비유한 것입니다. 조선삼림식물도설(1943)에 기재된 조선명도 일본명과 유사한 ‘노인단풍’입니다.

아! 그러니 일제가 koreanum에 비하의 의미를 담아 차별하였다구요?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조선식물삼림도설에 단풍나무속(Acer) 식물 중에 koreanum​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또 다른 식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Acer pseudosieboldianum var. koreanum Nakai(1909)가 그것입니다. 당시 갓 식물학 석사과정 정도에 있었던 나카이가 표본만 가지고 당단풍나무 중에서 잎이 조금 좁다고 변종으로 분류했던 식물입니다. 이에 대한 일본명은 데우센하우지하카에데(テウセンハウチハカヘデ, 朝鮮羽団扇楓)로 조선에 분포하는 새털로 만든 부채와 같은 단풍이라는 뜻입니다. 조선명으로 ‘조선단풍’, ‘좁은단풍’, ‘참당단풍나무’ 등으로 불리우다 현재는 당단풍나무에 통합되어 별도로 분류하지 않은 식물입니다. koreanum이라는 이름이 2곳에 있으니 일본명은 하나는 조선의 뜻이, 다른 하나는 열매의 흰털을 특징으로 노인(翁)의 의미가 부가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노인’이라는 표현이 비하와 차별의 언어가 되었습니까? 설마? 그것이 진심은 아니신지요?

​▶ 나카이 다케노신은 한반도 분포식물의 연구를 근거로 일본식물학을 서구 열강의 대열에 올리고자 했고, 그래서 황당한 세분론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기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학명에 korea가 들어가니 그냥 나카이가 잘못 분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살리고 싶은 걸까요? 나카이 다케노신이 학명에 korea, corea 따위를 붙인 것은 대개 극단적인 세분류로서 분류학적으로는 잘못된 분류인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에 새로운 식물이 많다며 세계에 가서 자신의 연구를 과장하고 부풀리기 위한 의도로 행해진 것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korea, corea를 써 주었으니 마냥 좋은 것일까요? 이것도 일본과 나카이 다케노신을 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나카이 다케노신에 대한 숭배이고 친일 아닐까요?

기사 내용 : 침엽수인 개비자나무(Cephalotaxus koreana Nakai)의 경우 굳이 개(犬)를 앞에 붙여 비하하기도 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 일본인이 조선명을 새로 창출한 경우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저술한 한반도 식물 관련 책의 대부분을 뒤졌지만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 식물명에 ‘개’를 사용하는 것은 조선에서도 오래된 풍습입니다. (1) 옛 문헌에도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개나리'(참나리에 대한 야생종의 의미), 개연꽃, 개버들, 개살구(狗杏), 개복숭아(狗桃) 등이 그러합니다. (2) 옛 문헌에는 없지만 지방방언으로 ‘개’를 넣어 사용하는 것이 조선인이 기록한 조선식물향명집(1937) 등에서 채록된 경우가 있습니다. (3) 종래 부르던 이름이 없어 새로이 신청하는 경우에 종래의 전통에 따라 유사하다는 뜻에서 개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4) 일본도 종래에 식물명에 이누(개)를 사용하는 경우가 우리와 비슷하게 존재하였는데, 새로 조선명을 신칭하면서 일본명과 유사하여 진 경우가 있습니다.

​▶ 개비자나무는 정태현 박사가 공저자로 참여한 조선삼림수목감요(1923)에 의하면 ‘ㄱ.ㅣ비자나무’로 전남 지역의 방언을 채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에 따르면 위 (2)의 유형에 속하는 사례입니다.

▶ 어쨌든 식물명에서 ‘개’는 야생이라거나, 쓸모가 덜하다거나,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어진 것들입니다. ‘개’를 직접적으로 비하의 의미로 사용한 뚜렷한 예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개비자나무는 실제 지방에서 사용하던 이름이 채록되었던 이름입니다. 그 뜻은 비자나무와 비슷하지만 쓸모가 덜한 다른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을 욕하는 것일까요? 그 이름을 실제로 사용한 조상님들 얼굴에다 침을 뱉는 것일까요?

기사 내용 : 무궁화는 의도적으로 눈의 피 꽃, 부스럼 꽃 등으로 불렀으며 이 때문에 무궁화를 보거나 만지면 눈병이 나고 몸에 부스럼이 생긴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 무궁화가 병의 근원이 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조선시대의 문헌에도 수차례 지적된 내용들입니다. 1850년대에 저술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木槿花。小兒忌弄。令病瘧 故俗名木槿爲瘧子花。木槿。一名裹梅花。有紅白二種。我東方言無窮花是也”[번역; 목근화. 어린 아이가 가지고 노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병과 학질에 걸리게 한다. 고로 목근을 속명으로 瘧子花(학자화)라 한다. 목근이라 하고 일명 裹梅花(과매화)라고도 한다. 붉은 것과 흰색 두 종이 있다. 우리 동방에서 무궁화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 무궁화에 대한 찬과 반에 관한 이야기는 옛 문헌에서 교차로 등장합니다. 무궁화가 국화(?)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숨겨야 하나요? 그것을 일본에게 떠 넘겨 놓으면 시쳇말로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민족적 자긍심이 무럭무럭 자라나요?

​기사 내용 : 장계선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며느리밑씻개, 복수초, 개불알꽃 등은 매우 예쁜 식물인데 일본어를 번역하거나 차용하면서 이름이 경박해졌다”며 “우리 식물을 아름다운 우리 이름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장계선 국립수목원 연구사님 말씀의 정확한 취지를 옮긴 것인지 매우 의문스럽군요. 기사 전체 취지 속에 놓인 기사의 일부분으로 보고 내용을 살펴봅니다.

▶ 며느리밑씻개는 종래 사용하던 고유명이 보이지 않고 일본명 ママコノシリヌグヒ(継子の尻拭い)와 어형구조와 유사하기 때문에 조선식물향명집(1937)에서 신칭을 하면서 일본명을 차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의 향약집성방(1942년 증보판)에 반하를 ‘며느리목젱이밑’이라 했던 것으로 기록하였고, 이에 대한 일본명은 カラスビシャク(烏柄杓)로 검은색의 돌면서 불염포(不鹽脯)의 모양이 긴 국자(柄杓]같이 생긴 뜻이어서 며느리목젱이밑이라는 이름은 그 뜻이 일본명과 전혀 다른 점에 비추어 보면, 며느리밑씻개를 전적으로 번역이나 차용어로만 보기는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 복수초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이름이지만, 이를 기록한 것은 현대 문헌이고 반면에 일본은 17세기 이래 문헌에서 발견되는 이름이므로 일본에서 유래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옛 문헌 등에서 우리에게는 인식되지 않는 식물이었습니다. 그러한 영역에서 일본이름을 빌어서 쓰면 왜 경박해지는 것일까요? 해방 이후에 만들어진 이름으로 추정되고, 중국명 설련화(雪蓮花)의 번역어로 보이는 눈색이꽃(박만규; 우리나라 식물명감, 1949), 역시 중국명 정빙화(頂氷花)의 번역어로 보이는 얼음새꽃(한진건 외 3인; 한조식물명칭사전, 1982)으로 쓰면 경박해지지 않는 것일까요? 북한은 복수초를 복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래 우리 전통에 약용으로도 식용으로도 화훼용으로 사용하지 않은 식물이고 이를 새봄에 복이나 기원하거나 한해의 으뜸 되고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의 식물로 기념하는 풍습은 전적으로 일본에서 기인하는 것일진대, 복풀이나, 눈색이꽃, 얼음새꽃이라고 하면 뭐가 특별해지고 달라지고 일본과는 상관이 없게 되나요?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만들어 낸 한자어로 알려진 과학, 철학, 객관, 기계, 대통령 등등의 용어들도 대부분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래되었습니다. 이러한 용어도 다 바꿔야 하는 것이고,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 일본을 따른 것으로 경박해지는 것인가요?

▶ 개불알꽃은 난초과의 식물로 조선에서 실제 조선인이 사용하던 ‘개불알달’이라는 이름이 변형된 이름입니다. 당시 일본명은 아씨모리사우(アツモリサウ; 敦盛草)라 하고 꽃 모양이 일본 무사의 갑옷 등에서 등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아씨모리(アツモリ; 敦盛)을 닮았다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우리 이름과는 뜻이 전혀 다릅니다. 경박하다고요? 자신의 생각과 달라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부르는 것은 자유이지만, 조상님들 얼굴에다 침을 뱉어서야 되겠는지요?

일본이 밉지요? 저도 싫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점을 일본에게 떠 넘겨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우리의 자존감이 올라가고, 자연과 우리가 더 친숙해져서 함께 공존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거짓으로 쌓은 성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는 것 아닐까요? 거창한 반일의 구호 속에서 실질은 내심에서 나카이 다케노신 숭배와 친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식물에 대해 우리의 인식이 한걸음 더 나아가고 우리의 정서가 한 단계 더 높아지는데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일본 때문이 아니라, 기초적인 사실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또 다시 13년 전의 기사를 다시 재생하여 사용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행태가 바로 주범이 아닐까 합니다.

과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해서 결과물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공리입니다. 실제에 대한 조사와 탐구는 사라지고 그것을 주의와 이념으로 채웠던 그 모습이 바로 한반도 식물에 대한 조사조차 이방인에게 맡기게 된 원인이 아닐까요? 이미 죽었고 일본에서도 매장이 끝난 나카이 다케노신의 유령을 오늘의 우리가 한반도에서 여전히 불러내 그가 제시한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면 우리는 식물학에서 여전히 식민지의 피지배민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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