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겐 생업의 현장,
    누군가에게는 쉼터이기를
    [낭만파 농부] 정월대보름의 나들이
        2019년 02월 25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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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참…
    오곡밥에 보름나물은 드셨는지요.
    ‘비에 젖은’ 대보름, 게다가 쉬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걱정입니다.
    다행히 날이 개고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달집 태우고, 소원을 빌고, 불놀이 할 수 있게 되거들랑

    가까운 놀이마당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우리 벼농사두레가 주관하는
    대보름 잔치판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안 그래도 자주 일이 꼬이더니 하필이면 대보름날에 비가 내렸다. 다른 지역에는 눈이 왔다고 하는데, 남쪽이라고 날이 푹해서 그리 된 모양이다.

    온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논배미에 쌓아둔 달집은 온통 젖어버렸을 테고, 바닥은 질퍽질퍽 할 게 뻔한 노릇. 오후 늦게 날이 개고, ‘수퍼문’이라던 보름달이 떠오르긴 했지만 눅눅한 바깥공기는 영 마뜩치가 않은 상황. 괜히 심란하기도 하거니와 이래서야 일이 되겠느냐 싶어 가볼까 하던 이웃동네 잔치판도 단념하고 말았다.

    하긴 절기로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였다. 매화도 꽃망울을 터뜨렸으니 미처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봄이라는 놈이 스멀스멀 기어온 셈이다. 요즘 한창 농막을 짓고 있는 병수 형님은 “아직 춥다!”며 네 겹으로 껴입은 작업복 차림을 찍은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지만 세월의 흐름을 막을 장사는 없는 법이다.

    병수 형님이 동영상을 올리던 바로 그 때, 우리는 서해바다로 달려가고 있었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건 봄뿐이 아니어서 서울에 사는 벗들이 주말을 맞아 여섯이나 들이닥친 거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스며들든, 쳐들어오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들로서는 이번이 두 번째 방래이기도 하고, 핑계 김에 나도 ‘봄기운’을 느껴볼 요량으로 택한 것이 변산 나들이였다. 집에서 1시간 남짓 차를 몰아 처음 다다른 곳은 옛절 내소사. 공기는 쌀쌀했지만 햇볕은 부드러웠다. 능가산 아래 가람을 휩싸고 도는 하늘은 티끌 하나 없는 코발트 빛. 승방 앞 홍매화는 아직 벙그러지지(벌어지지) 아니 했지만 마음이 그래선가, 대웅보전 뒤꼍 누런 잔디 언덕 위에는 봄기운 완연했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절집을 빠져나오면 번다하게 늘어선 주막들이 길손을 끌게 마련이다. 그 유혹을 떼치지 못하고 자리를 잡았더니 눈 깜짝할 새 막걸리 서너 병을 비웠다. 가볍게 취흥이 올라 당도한 곳은 채석강. 기암괴석과 수 만권 책을 떠올리게 하는 퇴적암층 단애로 유명하지만 정작 우리 입길에 오른 건 이태백이었다. 이 해안에 채석강이란 이름이 붙은 건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 채석강과 닮았대서다. 민주화운동에 인생을 걸었던 대학시절, 엄혹한 독재체제 아래서 내가 쓰던 ‘가명’이 바로 태백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친구들은 박장대소를 날리던 것이다.

    변산 기행은 노을이 지는 해변 횟집에서 마무리됐다. 누군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이 썼던 ‘노처녀는 변산 바다 노을을 사랑합네’ 하는 대목을 들먹였다. 그러고 보니 일행 중에는 비혼의 ‘처녀’와 ‘총각’이 한 명씩 있는 거였다. 얘기가 수류탄 파편처럼 어지럽게 튀어 올랐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번 피어난 얘기꽃은 시들 줄을 몰랐다. 그저 옛 추억만 까먹은 건 아니었다. 다들 정년이 코앞이고, 이미 명퇴를 하고 백수가 된 녀석도 있다. 그러니 ‘여생’을 어떻게 살아낼지가 가장 큰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나이가 되어선가, 자정이 넘어서자 술판은 시나브로 허리가 꺾이고 말았다.

    가끔씩 도시에서 늙어가는 사람들 생각을 하면 짠해진다. 사방이 틀어 막힌 회색빛 공간에서 살아낸다는 건 오죽 답답할까 싶어서다. 해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만이라도 이따금은 탁 트인 시골 기운을 쐬고 활력을 되찾았으면 한다. 그렇게 다녀간 뒤 좋아라고, 다시 찾겠노라고 후기라도 남기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봄기운이 넘실대는 이곳이 내게는 생업의 현장이다. 그래도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쉼터가 될 수 있다면 그 아니 기쁘겠는가. 물론 도시민의 ‘식민지’ 신세라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쉬어가면서,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자연, 생태가 얼마나 소중한 지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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