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68혁명, 현재 진행형인 과거의 역사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정대성/ 당대)
        2019년 02월 23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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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역사학자로서 오랫동안 68혁명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저자가 ‘68혁명 5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마름질하여 한 권의 책에 앉힌 것이다.

    사실 68혁명이라는 사건이 지닌 세계사적 중요성과 대중적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국내 저자가 출간한 단행본은 겨우 몇 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맞춤하여 50주년을 맞아 발간한 이 책이 68혁명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의 구성

    책 내용 가운데 ‘문화혁명’을 다룬 장을 제외하면 ‘독일의 68혁명’이 중심에 놓인다. 독일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나란히 68혁명의 4대 핵심 국가에 속한다. 국내의 기존 논의는 프랑스 5월의 폭발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럽 68혁명은 독일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2월의 베를린 국제 베트남회의는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전세계 활동가들이 ‘68의 정신’을 느끼고 호흡한 출발점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열기와 궐기는 뒤이어 런던 같은 유럽 대도시로 퍼져갔다. 게다가 60년대 중반 서베를린 학생운동을 닻을 올린 독일 68은 이미 1967년 8월에 시위 대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일찌감치 폭발한다.

    그리고 이듬해 4월 바리케이드의 ‘부활절 봉기’를 통해 절정에 이르며 서구 대도시에서 연대 시위가 펼쳐지는 계기로 작용하고, 프랑스 5월혁명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독일은 ‘68세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68과 그 여파를 둘러싼 담론과 논쟁이 이후 치열하게 펼쳐진 나라이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문화혁명과 직접행동으로서의 68혁명

    제1부의 주제는 오늘날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한편으로 권위주의 정권과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는 작금의 민주주의 위기와,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참여가 투표행위로 국한되는 우리 시대의 정치에 대한 문제제기와 연결된다.

    우선 1장에서는 당대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독일 68이 어떻게 직접행동으로 대응하고 대결하는지 그려진다. 지금의 문제의식과 더불어 독일 68 속으로 들어가, 그 격동의 역사는 수놓은 몇 가지 핵심 프리즘을 통해 당대 민주주의 위기와 ‘의회 외부적인 비판’에 담긴 의미를 논한다. 독일 68을 대변하는 이름인 의회외부저항운동(APO)이 직접행동을 동반한 거리의 비판과 저항을 앞세워 국가폭력과 권위주의, 극우정당의 재정치화라는 위기의 시대를 항해하던 서독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전망을 열었는지 진단해 본 것이다.

    2장은 68의 ‘문화혁명’이 의례적인 투표행위에 갇힌 의회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정치의 의미를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혁명적 기획임을 밝히는 과정이다. 68에 대한 ‘통상적인’ 문화혁명 해석을 대변하는 아서 마윅(Arthur Marwick)을 비판하며, 68이 과연 ‘어떤’ 문화혁명이었는지를 탐색하고 그 근본적 의미를 되묻고 되새긴다. 68의 문화‘혁명’은 정치와 일상의 분리를 뛰어넘어 일상생활을 둘러싼 여러 공간에서 정치적 함의를 끌어낸 실로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68혁명, 언론 자유를 위해

    제2부의 주제는 언론자유를 위한 68의 투쟁과 그 전사(前史)이다.

    1장에서는 독일 68의 핵심적 기획인, 슈프링어 언론제국에 맞서는 ‘반(反)슈프링어 캠페인’을 다룬다. 서독 언론지형의 1/3을 장악한 보수 언론출판그룹과의 대결과정 및 여파를 그리고 있다. 기존 연구자들의 해석과 달리 이 캠페인은 단순히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아니라 독일 68의 핵심진영을 포괄하는 체계적인 운동이었다. 학생운동의 대표조직인 독일사회주의학생연합(SDS)의 내부분열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68을 묶어주는 교차로 같은 기능을 수행했던 탓이다 게다가 ‘반슈프링어 캠페인’의 실패를 말하는 기존 연구와 달리, 심대한 타격을 받은 슈프링어 그룹은 이후 더 유리한 팽창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2장에서 다루는 ‘슈피켈 사건’은 68과 반슈프링어 캠페인의 전사(前史)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번에는 대결 상대가 국가권력이었다. 공권력을 앞세운 슈피겔 탄압에 맞서 서독 전역이 저항과 시위의 물결로 뒤덮이는 과정을 생생히 복원한다. 슈피겔 사건은 국가 공권력의 언론침탈이라는 점에서 비록 반슈프링어 캠페인과는 결을 달리하지만, 언론자유의 수호를 위한 저항과 동원이라는 점에서 독일 68과 그 캠페인의 전사로 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슈피겔 사건에서 분노한 학생과 지식인들이 불과 5년도 지나기 전에, 다시금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독점적 ‘언론제국’과의 투쟁에 나서기 때문이다.

    ‘68혁명의 사람들’

    제3부에서는 독일 68의 결정적인 순간을 각인한 두 인물이 등장한다.

    1장은 먼저 ‘부활적 봉기’라는 68의 절정을 가져오는 루디 두치케의 이상과 행동전략이 현실에서 발현되고 굴절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당대 두치케와 신좌파의 행동전략은 사람에 대한 공격이나 테러를 명백히 반대하지만 현실에서는 폭력과 뒤엉키며 경찰과의 대결 양상이 격화되고 운동이 급진화되는 데 일조했다. 뒤이어 체 게바라가 제3세계 해방운동을 위해 주창한 ‘포코 이론’과 관련해 두치케가 말한 메트로폴리스 ‘도시게릴라의 행동의 선전’이 의미하는 바를 논한다. 두치케가 체 게바라의 호소를 따라 서구 메트로폴리스 ‘도시게릴라 전략’을 주창함으로써 70년대 무장투쟁을 벌인 적군파의 길을 열었다는 주장에 대해 검토하고 비판한다.

    2장에서는 ‘독일 68의 순교자’라 할 대학생 베노 오네조르크가 주인공이다. 그의 죽음 및 추포 조형물에 담긴 으미와 이른바 공공역사(public hitory)의 가능성을 주제로 다룬다.

    1967년 6월 2일, 국빈으로 독일을 방문한 독재자 이란 국왕에 맞선 시위에서 오네조르크가 사살되는 과정을 먼저 상세하게 재구성한다. 그런 다음 세월이 흐르고, 오네조르크가 경찰의 총에 맞는 사건의 시발점인 베를린 독일 오페라하우스 앞에 세워진 조형물 <시위자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오네조르크 추모 부조는 ‘경찰 폭력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잘 내포한 공공역사의 형식으로, 독일 68의 결정적 전환점인 ‘6월 2일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형상화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 지구촌을 휩쓰는 테러와 폭력의 물결 속에서 ‘폭력의 역사’에 대한 고찰 기회를 제공하며 ‘역사의 기억’이 배움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도 이 부조의 현재적 의미를 드높인다.

    68혁명, 그 이후

    제4부는 68 이후 펼쳐진 정치문화의 지형에서 어떤 쟁점과 논쟁이 부각되고 오늘날까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1장의 주제는 ‘독일의 뉴라이트’이다.

    지금 유럽의 ‘난민 위기’가 독일에서 뉴라이트 정당의 돌풍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을 토대로, 뉴라이트가 등장하는 배경에서 시작해 그 탄생과 분화 그리고 현재의 성공까지 분석해 나간다. 뉴라이트는 당대의 ‘뉴레프트’ 68에 큰 영향을 받으며, 이 좌파 저항운동의 성공과 반향 속에서 사상적 조직적으로 새로운 정체성 찾기라는 도정에 오른다. 절치부심하던 뉴라이트는 2013년 창당된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다. 출발부터 뉴라이트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AfD는 2017년 가을 연방의회에 제3당의 이름으로 입성한다. 이렇게 작금의 난민 위기를 배경으로 전후 최초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성공과 인종주의의 득세가 우려되는 독일의 현실은 68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뉴라이트의 역사와 접점이 있다. 그런 대목에서도 뉴라이트의 급부상은 68의 의미를 놓고 격한 논쟁이 벌어진 배경 역할을 했기에 ’68 이후 논쟁‘의 전사로 살피기에도 적합하다

    2장은 68을 둘러싼 오늘의 중요한 논쟁지형을 보여준다.

    우선 2장 1절의 주제는 독일 68의 폭발적 고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경찰 칼 하인크 쿠라스가 2009년에 동독 첩자로 밝혀진 사건을 기화로 벌어지는 ‘68 역사 다시쓰기’ 공방이다. 즉 1967년 시위 도중 경찰의 총에 대학생이 사망하는 ‘6월 2일 사건’의 유발자인 서독경찰 쿠라스가 동독 비밀경찰의 끄나풀이었음이 밝혀지며 벌어지는 논쟁의 경과를 다루고 있다.

    끝으로 2장 2절에서는 폭력문제를 둘러싸고 펼쳐진 ‘68의 논쟁지점’ 즉 폭력문제와 결부된 68의 비판과 반비판이 격돌하는 주요 전장이 다뤄진다. 68이 나치 청년운동과 유사하다는 ‘나치 후예론’을 놓고 벌어진 논쟁이 하나의 축을 이루고, 독일 좌파 테러주의의 대명사인 ‘적군파가 68이 급진화된 결과’라는 비판과 반비판이 대결한다.

    비판 진영은 68의 폭력성과 행동주의는 ‘나치의 후예’에 다름 아니라고 목청을 높였고, 그 폭력성과 과격성으로 인해 68은 결국 ‘적군파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갔다. 반비판 진영에서는 68이 폭력의 고조 속에서 운동 쇠퇴의 길을 밟았음은 인정하지만 독자적 역동성을 갖춘 운동으로, 나치 전체주의와 결부시킬 수 없다고 반박한다. 더불어 일부 인적인 연관성과 폭력적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적군파를 비롯한 좌파 테러주의와는 근본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립하는 주장의 논거와 논리를 검토하며 그 타당성이 평가될 것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보도블록 아래는 해변이 있다”

    프랑스 68의 유명한 슬로건인 이 말은, 보도블록이 다름 아닌 “정치·사회적 권력의 통상적인 진입로”를 의미하고, 그 밑의 모래가 바로 ‘해변’이라는 것이다. ‘권력의 진입로’인 보도블록을 벗겨내면 바로 거기, ‘자유로의 입구’인 해변이 있다고 생각하자는 외침이다. 즉 ‘권력과 권위와 억압’은 ‘자유의 해변’과 등을 맞대고 바로 그 너머에 있는 셈이므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어럽지 않다는 말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세상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거리의 함성과 확신으로 번져간 빛나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의 정치상황에도 일정한 유비가 가능한 지점이다. 주지하듯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의 헌정사상 유례없는 독단과 독선을 아우른 ‘권력과 정치의 사유화’가 결국 ‘평화 촛불혁명’이라는 광장과 거리의 함성을 앞세운 ‘의회 외부적인 정치’를 통해 비판되고 심판 받았다. 그 과정 자체가 바로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희망이 거리의 함성으로 피어나는 시간이었음이다. 한반도를 ‘촛불의 횃불’로 종횡무진 수놓은 눈부신 ‘시민적 궐기’가 없었다면 탄핵의 깃발을 고사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과감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이기 어려웠을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촛불은 1968년 미국의 민권운동에서 처음 시위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어둠을 밝히는 수단이었던 촛불이 저항을 발하고 정의를 밝히는 상징으로 주먹과 나란히 솟아오른 것이다. 68의 핵심이 지구촌 곳곳을 수놓은 ‘의회 외부’에서의 저항과 분노였고, 실제 독일 68의 핵심 조직은 스스로 의회외부저항운동(APO)이라 칭했다. 그러한 68의 궐기와 비판정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 촛불혁명의 바람과 정신은 그래서 50년 전 68에서도부터 길게 볼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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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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