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마가지나무의 이름 유래기
[푸른솔의 식물생태] 북상하는 햇볕, 이제 곧 봄이다
    2019년 02월 20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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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마가지나무란?

길마가지나무<Lonicera harae Makino (1914)>는 인동과 인동속(Lonicera)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 관목이다. 땅속에서 여러 줄기가 나오고 키가 낮게 자라며 2~3m 정도의 높이를 이룬다.

주로 한반도에서 자라고 일본에는 쓰시마섬에 분포한다. 한반도에는 제주도와 남부 지역에 주로 자라는데, 서해안과 동해안 일부의 해류를 타고 북상하여 바닷가 인근의 산지를 분포지로 하여 황해도와 함경남도까지 이른다. 앝은 산지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 꽃은 제주에서 2월경에 시작하여 내륙에서는 3~4월 사이에 피어난다. 꽃은 연한 노란색으로 좌우대칭을 이룬다. 열매는 장과로 2개가 1/2이상이 합쳐지며 5월경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얕은 땅에서 돋아나는 복수초 및 변산바람꽃과 함께 봄을 만들어 나가는 전령사이다. 남녘에는 벌써 봄이 시작되었고, 연한 노란색 빛깔이 높지 않은 산의 등산로를 따라 보이기 시작하였다.

<사진1> 2017. 4. 8 충남

2. 길마가지나무와 올괴불나무의 구별

길마가지나무와 비슷하게 생기고 비슷한 시기에 개화하는 식물로 중부 내륙지방에 주로 자라는 올괴불나무 <Lonicera praeflorens Batalin (1892)>가 있다. 흔히들 길마가지나무는 연한 노란색의 꽃을 피우고 올괴불나무는 연한 분홍색으로 꽃을 피우므로 이것으로 둘을 구별하기도 하지만, 꽃 색깔은 다소 변이가 있어 정확한 구별지표로 사용하기 어렵다. 둘은 꽃의 모양, 잎의 질감과 열매의 모양으로 구별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장진성 외 2인, 『한반도 수목 필드가이드』, 디자인포스트(2012), 351쪽 이하 참조]

<사진2> 길마가지나무와 올괴불나무의 구별포인트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2019)과 국가표준식물목록(2019)은 길마가지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로 숫명다래나무<Lonicera coreana Nakai(1915)>를 별도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극단적인 세분론자로 한반도 분포식물의 종과 속 등을 과장하여 발표한 일본인 나카이 다케노신(Nakai Takenohsin, 1882~1952)이 전남 장성 백양산(白羊山, Paiyangsan)에서 채집한 표본 하나에 근거하여 동경제대 연구실에서, 길마가지나무에 비해 잎 표면, 잎자루 및 어린가지 등에 털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별도 종으로 분류한 것이다[T. Nakai, “Plantae novae Japonicae et Koreanae IV”, Botanical Magazine(Tokyo) Vol.29, p6]Lonicera coreana Nakai를 길마가지나무<Lonicera harae Makino>의 개체의 변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이명으로 처리하고 별도로 분류하지 않는 견해가 유력하다[이러한 취지의 견해로 장진성 외 2인, 『한반도 수목 필드가이드』, 디자인포스트(2012), 356쪽; 김태영·김진석, “한국의 나무”, 돌베개(2018) 668쪽 참조].

  • 길마가지나무

<사진3> 길마가지나무의 꽃; 가운데 입술꽃잎이 있고 나머지 꽃잎은 갈라져 좌우대칭을 이룬다.

<사진4> 길마가지나무의 잎; 잎은 굵은 털이 있고 두텁다

<사진5> 길마가지나무의 열매; 열매는 2개가 1/2이상이 합쳐져 있다(사진 : 숲속여행님 제공).

  • 올괴불나무

<사진6> 올괴불나무의 꽃 : 입술꽃잎이 없이 꽃잎은 방사상으로 퍼진다.

<사진7> 올괴불나무의 잎 : 잎은 얇고 잔 털이 있다.

<사진8> 올괴불나무의 열매; 열매의 아랫부분만 합쳐져 있다

3. 길마가지나무의 이름 유래

<사진9>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1937), 152면

식물명에 ‘길마가지나무’라는 이름을 기록한 문헌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식물을 연구한 조선인 학자들에 의하여 저술된 조선식물향명집(1937)이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황해도 지방의 방언을 채록한 것으로 확인된다[이에 대하여는 정태현(1882~1971), 『조선삼림식물도설』 조선박물연구회(1943), 648쪽 참조]. 이보다 앞서 저술된 『조선삼림수목감요』(1923)는 전남 방언에서 유래한 ‘숫명다ㄹ.ㅣ나무’를 조선명으로 기록하였으나, 조선식물향명집(1937)에서 숫명다래나무를 Lonicera coreana Nakai(1915)에 대한 조선명으로 사용함에 따라 황해도 방언인 길마가지나무를 Lonicera harae Makino의 조선명으로 채택한 것으로 추론된다.

이처럼 길마가지나무는 근대 식물분류학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조선의 민간에서 불리던 이름이었다.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에 의하여 확립된 근대 식물분류학은 번식의 최소단위인 종(species)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전의 전통적인 식물 인식 방법은 인간이 식물을 이용하는 관점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즉, 식용, 약용, 농업용, 목재용 및 화훼 등의 기능을 중심으로 식물을 인식하고 이해하였다. 전통적 방법에 따른 식물명도 대체로 이와 같은 기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으므로 그 유래도 대체로는 이와 궤를 같이 하였다. 물론 예외가 없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길마가지나무는 관목으로 자라고 가지의 속이 차 있기는 하지만, 여리고 강하지 않아 특별히 목재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길마가지나무라는 이름이 채록되었던 즈음에 정태현이 저술한 『조선삼림식물도설』(1943)은 길마가지나무의 용도로 ‘薪材'(신재)만을 기록하였다. 즉, 땔감으로 사용한다는 것만이 나타나 있다. 모든 목본식물은 땔감으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용도를 ‘薪材'(신재)로 기록한 것은 특별한 용도가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이다. 그런데 조선식물삼림도설(1943) 652쪽에 의하면 같은 속(屬)의 식물인 괴불나무 <Lonicera maackii (Rupr.) Maxim. (1859)>의 용도를 ‘薪材'(신재)와 더불어 ‘果實は食用'(열매는 식용)한다고 기록하였다. 이에 비추어 보면 길마가지나무의 열매도 식용하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최근에 국립수목원이 조사한 기록에 의하면 제주도에서 길마가지나무의 열매를 식용하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사진10> 정재민외 8인, 『한국의 민속식물; 전통지식과 이용』국립수목원(개정판, 2018), 1048쪽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길마가지나무라는 이름은 식용하는 열매와 관련하여 형성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조선삼림수목감요』(1923)에 기록된 ‘숫명다ㄹ.ㅣ나무’에 대한 정확한 어원은 불명확지만, 숫명+다래나무의 합성어로 분설해 보면 다래나무와 유사하다고 본 것으로 이 역시 열매와 관련된 이름으로 추론된다. 제주 방언으로 기록된 ‘꼬리볼레’ 역시 꼬리(尾)+볼레(보리수나무의 제주 방언)의 합성어로, 열매가 보리수나무를 닮았는데 2개가 붙어 꼬리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역시 열매의 이름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표준국어대사전(2019)은 길마에 대하여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안장’이라 하고, 길마가지(길맛가지)에 대하여 ‘길마의 몸을 이루는 말굽 모양의 나뭇가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조선어사전』(1920)도 길마에 대하여 ‘荷鞍’(하안) 즉, 짐을 싣는 안장으로 설명하였다. ‘길마’ 와 ‘길맛가지’의 옛 표현은 ‘기ㄹ.말'(용비어천가; 1447), ‘기르마'(석보상절; 1447), ‘기ㄹ.맛가지'(번역박통사 및 번역노걸대; 1517) 등이다. 이러한 옛 표현은 신증유합(1527)에서 ‘길마’, 물명고(1824)의 ‘길마’, 물명괄(19세기)의 ‘길마가지’, 명물기략(1870)의 ‘길마’, 한불자전(1880)의 ‘길마’를 거쳐 현재의 ‘길마’ 또는 ‘길맛가지’로 정착되었다.

<사진11> 길마,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의 소장(사진출처 : e뮤지엄==>상업적 이용금지)

소나 말의 등 위에 얹어 짐을 싣는 안장을 의미하는 길마는 위와 같이 생겼다. 길마에서 2개의 기본축을 이루는 부분을 굽어진 나무의 가지를 재료로 하여 만들 때 그 나무가지를 ‘길마가지'(또는 길맛가지)라 한다. 길마가지나무가 수정하여 열매 모양이 될 때 그리고 열매가 성숙하였을 때를 살펴보면 길마를 만드는 길마가지(길맛가지)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사진12> 길마가지나무의 열매; 2개의 열매가 합쳐진 모습이 길마를 만드는 길맛가지를 연상시킨다.

이상에서 살펴 것을 종합하면 길마가지나무는 근대 식물분류학이 도입되기 이전에 황해도 지역이 방언으로 형성된 것으로, 2개의 열매가 합쳐진 모양이 짐을 나르기 위해 소와 말의 등 위에 얹는 길마를 만드는 길마가지(길맛가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론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길마기나무’로 기록하거나[이춘녕·안학수, 『한국식물명감』 범학사(1963), 221쪽 참조], ‘길막이나무’로 기록한 것[리용재·황호준·우제득, 『식물분류명사전(종자식물편)』 백과사전출판사(2011), 212쪽 참조]이 발견된다. 이를 근거로 길마가지나무가 산길 가장자리에 가지를 무성하게 뻗어 관목으로 자라는 모습이 마치 길을 막는 것 같다고 하여 연상한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최근에 만들어진 이름으로 보이는 ‘길마기나무’ 또는 ‘길막이나무’에 대한 해석으로 적합할 수는 있을지라도, 근대식물분류학 도입 이전에 불리었고 그때 채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길마가지나무의 어원 또는 유래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명 쓰씨마헤우탄보쿠(ツシマヘウタンボク, 對馬瓢簞木)는 대마도(ツシマ)에 자라는 헤우탄보쿠(ヘウタンボク; 괴불나무 종류에 대한 일본명)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학명 중 속명 Lonicera는 독일의 16세기 수학자이자 식물자인 Adam Lonitzer를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서는 인동속을 의미한다. 종소명 harae는 길마가지나무의 표본 채집에 도움을 준 일본인 T. Hara(생몰연도 모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길마가지나무의 학명 Lonicera harae Makino(1914)의 명명자 Makino(마키노)와 관련하여 “일본인이 일본의 식물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남의 나라 식물을 함부로 조사하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키노가 자신의 이름을 학명에 넣은 식물은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것만 72종이다”라는 주장이 있다[이윤옥, 『창씨개명된 우리풀꽃』 인물과 사상사(2015), 166쪽 및 227쪽 참조].

위 학명을 일본인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 1862~1957)가 명명한 것은 맞지만, 마키노 도미타로가 조선의 길마가지나무를 조사하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마키노 도미타로가 길마가지나무에 대한 학명을 최초로 신칭한 일본식물학잡지[Botanical Magazine(Tokyo)]를 살펴보면, 표본을 일본의 쓰시마(Tsushima)에서 채집하였고 그것을 근거로 식물을 분석하고 학명을 부여한 것이 명확하다.

길마가지나무는 우리나라가 주된 분포지이기는 하지만 일본에도 분포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마키노 도미타로가 학명을 부여한 것인데 국제식물명명규약에 따른 선취권의 원칙상 그 학명을 우리도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학명과 국명(조선명)의 차이조차 이해하지 못한 황당한 주장은, 민족(?)에 기대어 책팔이 하는 것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식물학이라는 학문과 전혀 관련이 없고 식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진13> T. Makino, “Observation on the Flora of Japan”, Botanical Magazine(Tokyo) Vol.28(1914), p123~p125

4. 글을 마치며

“인왕산은 뒤뜰 되고 사직단은 앞뜰 되어 뒤뜰에는 자연 생태 그대로의 고산식물원을 만들고 앞뜰에는 조선산 식물을 모아다가 식물견본원을 설치하는 한편 얌전한 온실을 세워 교수와 연구에 필요한 열대식물을 재배하고 참한 못을 하나 파고 어류를 기르니 부유생물이 저절로 번식하게 된다. 밭은 1 내지 2.5보 가량 만들어서는 식물의 유전진화학적 실험을 하고 하기 휴가면 조선산야를 편답하여 식물채집과 조선명칭 수집에 힘쓰어 조선명으로 식물목록과 식물도감을 편찬하다가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에 놀라 깨니 남가일몽[이덕봉, 『학교 구내식물 이야기』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교지, 1926), 110쪽]

조선명으로 식물목록과 식물도감을 편찬하는 일이 한낱 헛된 꿈에 불과한 남가일몽이라고 변명처럼 되뇌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국권을 빼앗겨 제 나라 언어를 제대로 펼칠 수 없고 실력이 모자라 식물도감을 편찬할 수도 없었던 시기이다. 그 시기에도 배우고 익혀 학문에 필요한 기본적 내용을 정리하고 조선인임을 잊지 않아 우리말 이름을 기록하고자 한 노력이 지금 길마가지나무라는 이름을 찾아 볼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에 길마가지나무라고 부르는 이름은 그래서 더욱 뜻 깊다.

서 있는 발은 한반도의 구체성에, 눈은 저 멀리 세계의 보편성에! 다시 길마가지나무라는 이름을 불러 본다. 점점 북상하며 다가오는 햇볕이 한결 따사롭고 부드럽다. 봄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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