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퓰리즘·스트롱맨의 세계
    2019년 정세전망 ‘국제정치’ 부문
        2019년 02월 18일 0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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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진보연대의 “2019년 정세전망”(관련 링크) 중 국제정치 부문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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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을 누르고 마크롱이 승리를 거두자 일부 논자들은 인민주의가 정점을 지나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없기 때문에 유럽의 인민주의 정당이나 극우 인사의 명성도 쇠락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은 성급했다는 게 곧 사실로 드러났다. 2017년 9월 독일 총선, 10월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약진했고, 2018년 총선에서는 ‘좌파-포퓰리즘’으로 불리는 오성운동이 1위로 당선되어 보통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는 동맹(구(舊)북부동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7월 멕시코 대선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유비되는 오브라도르가 당선되었고, 10월 브라질 대선에서는 ‘브라질의 트럼프’라 불리는 보우소나르가 대권을 잡았다.

    1) 트럼프를 둘러싼 ‘파시즘’ 논쟁

    트럼프 당선 초기, 일부 논자는 그를 (이념적, 운동적 포퓰리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선거 기법으로서의 전략적 포퓰리즘이나, ‘수요기반’ 포퓰리즘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가 선거 캠페인 목적으로 과격한 언사를 내뱉었을 뿐, 공화당의 전통적인 보수주의 정책 틀 내로 회귀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정치적 독주는 강경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그는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의 연방정부 폐쇄를 불사했는데, 2018년 12월 22일부터 2019년 1월 25일까지 한 달여 지속되었다.

    또한 2018년 중간선거 결과도 트럼프의 패배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하원은 민주당 234석, 공화당 200석으로 민주당이 약진했으나, 상원은 공화당 52석, 민주당 47석으로 공화당이 우위를 지켰고, 주지사 선거 역시 민주당 23명 공화당 27명으로 공화당이 우세를 거두었다. 투표율도 49%로 최근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높은 편이었다.

    이렇게 트럼프의 독주가 지속되면서, 미국 내에서 그를 파시즘이라고 규정하는 흐름도 광범위한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신보수주의적 우파, 자유주의 주류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 아나키스트에 이르기까지. 이런 논자들은 트럼프가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트럼프를 파시즘과 동일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

    예를 들어 보자. 냉전파 자유주의자 스나이더: “아직 양자 간에 차이가 있지만 트럼프는 처음부터 분명히도 파시즘에 빚을 졌다. 그가 처음에 이민자를 성폭력과 연결했던 것부터, 지속적으로 저널리스트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네오콘 케이건: “이는 어떻게 파시즘이 미국에 도래했는지 보여준다. 목이 긴 군화나 거수경례는 없었지만, 텔레비전 장사치, 사기꾼 억만장자, 교과서적일 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인물이 있었다.” 생태마르크스주의자 포스터: “역사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체계적인 네오파시스트이며, 그의 전간기 조상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억압을 목표로 삼는다.” 특히 포스터는 트럼프를 인민주의자라고 모호하게 규정하기보다는 명확하게 네오-파시즘으로 규정해야지만, 민주당 주류(힐러리, 펠로시)가 트럼프의 대안이라는 사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솔리니, 히틀러와 비견해 볼 때, 트럼프의 미국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물론 무리가 따른다. 파시즘의 핵심은 지도자와 인민의 직접적인 결합이라는 명분으로 대의제를 부정하는 것, 곧 의회를 해산, 무력화는 것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의회 권한을 무시하는 행정부의 월권이 문제가 되긴 하지만, 의회를 해산한 것은 아니다. (물론 히틀러도 총선을 통해 의회에 진입한 후에야 의회를 무력화했기 때문에, 그것이 ‘트럼프=파시즘’ 규정에 결정적인 반론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1930년대 파시즘은 실제로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운동’의 형태를 띠었고, 따라서 조직과 간부가 있고 이데올로기가 있었지만, 트럼프는 조직, 간부, 이데올로기를 결여했다는 점에서 파시즘 운동을 창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원리상 파시즘 운동에서는 이데올로기와 간부를 통해 기존 지도자를 대체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트럼프에게는 그런 메커니즘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파시즘은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숭배를 동반하므로, 무솔리니나 히틀러를 대체하는 지도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에게서 파시즘의 원형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함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와 적의 구분, 적의 악마화, 원한의 정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 따라서 경제정책에서 경제학적 이론과 일관성의 결여. 이는 인민주의와 파시즘이 공유하는 사실상 ‘반(反)정치’의 핵심적 요소다.

    2) 동아시아 스트롱맨의 정치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의 지도자를 두고 ‘스트롱맨’이라는 표현이 통용된다. 보통 스트롱맨은 강제력(무력)으로 지배하며 독재정치, 권위주의 정권를 실행하는 경우를 뜻한다. 2018년, 러시아에서 푸틴은 4선 도전에 성공하고,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2018년 3월 18일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4선 도전에서 77%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었다. (투표율 68%.) 2위 러시아연방공산당 후보는 12%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푸틴은 2014년 크림 병합 이후 줄곧 8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푸틴은 선거일을 크림 병합 4주년인 3월 18일로 변경했는데, 러시아가 서방과 대립하면서 겪고 있는 고난을 이겨낼 강한 지도자로서 자신의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또한 푸틴은 3월 1일 국정연설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 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 러시아 전략무기 현황을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시연하기도 했다.

    2018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자회의는 시진핑의 ‘대관식’이라는 비유가 많았다. 국가주석 임기를 ‘2기 10년’으로 제한하는 헌법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또한 개정헌법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어 ‘시진핑 사상’을 명기했다. 중국 언론은 시진핑이 중국식 민주주의를 통해 집권 기간 거대한 발전을 이뤄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방송과 영화사는 시진핑 1기의 성과를 찬양하는 기록영화를 앞다투어 제작했다.

    이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한 권위주의적 지배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오히려 일본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규칙인 의회민주주의의 규범을 따르는 유일한 경우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스트롱맨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적 대결구도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3) 유럽, 인민주의의 확산

    [그림] 유럽 극우 성향 정당 득표율(2)

    2017년 9월 독일 총선에서는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정당 독일대안당(2013년 창당)이 90석(득표율 12.6%)을 차지해 3위 정당으로 급부상하여 드디어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기민당/기사당과 사회민주당의 의석수가 각각 65석, 40석만큼 감소했으며, 특히 독일 사민당은 전후 최저 득표율인 20.5%를 기록했다. 이제, 전후 유럽 국가 중 독일만은 극우정당의 연방의회 입성을 허용치 않는다는 역사적 신화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연립정부 구성이 난항을 거듭하다가 2018년 3월에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사민당 대연합정부가 구성되었다.)

    게다가 유럽에서 사민주의 정당의 지지율 하락 현상은 폭넓게 나타나고 있는데, 프랑스, 네덜란드, 체코, 그리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노르웨이와 영국만 얼마간 예외적이다. 현재로서는 이들 나라에서 사민주의 정당의 집권 가능성은 앞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또한 2017년 10월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정당 자유당(1955년 창당)이 집권당이던 사민당과 거의 동일한 득표(26%)를 획득하여 3위를 차지해 당수가 부총리로 입각했다. 또한 10월 체코 총선에서도 ‘프라하의 트럼프’라 불리는 바바시가 총리로서 연립정부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바바시는 <불만족스러운 시민의 행동당> 대표다.

    2018년에는 이탈리아 총선이 큰 관심을 모았다.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나 지중해로부터 난민이 유입되는 관문이 된다는 점에서, 총선 결과는 유럽통합의 미래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선거 결과, 오성운동 32%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오성운동은 최근 이탈리아 선거 중 처음으로 30%대 득표에 성공한 정당이 되었다. 집권 민주당이 19% 득표로 2위로 밀려났고. 동맹은 17%을 차지했고, 베를루스쿠니의 정계복귀와 함께 전진 이탈리아가 4위로 진입했다.

    오성운동은 남부지역에서 강세를 보였으며, 북부지역에서는 동맹을 위시로 한 우파연합이 절대 우위를 차지했다. 오성운동의 경우, 평균득표율 32%에 비교해 볼 때, 연령대로 보면 18-30세에서 44%, 31-44세에서 40%의 득표를 얻었다. 이는 곧 젊은 층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미래에 오성운동의 단독내각 수립도 가능하다는 전망의 토대가 된다. 직업별 지지도를 보면, 오성운동은 자영업자, 공공기관·사기업 노동자, 비정규직·일용직 노동자, 주부로부터 모두 30%대의 지지를 얻었지만, 특히 실업자의 50%, 학생의 49% 지지를 얻었다. 이는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이 프랑스, 독일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반영할 것이다.

    [표] 유럽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최근 선거 성적과 주요 정책

    유럽 포퓰리즘의 최근 동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바는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의 수렴 현상이다. 과거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은 집중하는 정치적 소재의 차이가 있다고 간주되었는데, 우파 포퓰리즘은 주로 민족적(인종적, 종족적) 단일성의 보존을 강조했다면, 좌파 포퓰리즘은 경제적 분배정책에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이탈리아에서 오성운동과 동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 사실은 그 정치적 함의가 크다.

    우파 포퓰리즘은 ‘탈악마화’ 전략을 구사하며, 위의 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복지와 저소득층 면세를 비롯해 사회정책상 신축성을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대안당은 최저임금 인상을 내놓았고 프랑스 국민전선은 낙태 합법화와 동성애 수용 정책을 제시했다. (물론 이는 난민, 이민 지원과 같은 ‘불필요한’ 세금낭비를 줄여서 순혈적인 우리 민족에 대한 복지를 늘린다는 논리구조를 깔고 있다.) 다른 한편, 좌파 포퓰리즘은 점점 더 민족과 주권에 대해 호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시리자도 예외가 아닌데, 유럽연합이 재정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경제정책은 무엇보다 “민족과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된다.(3) 즉 유럽연합 경제정책에 내재하는 결함이나 모순보다는 외국인의 간섭이라는 측면이 전략적으로 부각된다는 뜻이다.

    그 결과,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립정부를 사례로 보면, 유럽연합 탈퇴(또는 조건부 탈퇴), 반이민, 조세 인하와 복지확대라는 정책패키지를 중심으로 좌우파 포퓰리즘의 수렴 현상을 예상할 수도 있다.

    4)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

    인민주의, 극우정당은 유럽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2018년 7월 멕시코 대선에서는 국가재건운동의 오브라도르가 53%의 득표율로 기존 주요정당인 제도혁명당, 국민행동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국가재건운동은 2014년에 공식적으로 창당한 정당이고, 오브라도르는 2000-2005년 멕시코 시장으로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국가재건운동은 자신이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성적 다양성을 지지하며 인권과 환경을 존중하는 좌파정당이며, 1980년대 이후 멕시코가 채택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멕시코는 이미 부유하다. 그러나 우리를 통치하는 자들이 우리로부터 부를 빼앗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1994년의 북미자유무역협정이나 2014년 민간투자자에 대한 에너지시장 개방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오브라도르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비견되는 좌파 포퓰리스트인가, 아니면 실용주의자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다. 그의 임기는 2018년 12월에 시작한 만큼 향후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2018년 10월 브라질 대선에서는 사회자유당의 보우소나루 후보가 노동자당의 아다지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룰라는 부패 혐의로 2심에서도 실형 선고를 받아 대선후보 자격을 잃었다.) 사회자유당은 1994년에 창당한 정당으로, 각종 인종주의, 여성혐오, 성소수자 차별적인 발언과 과거 우파 독재정권과 군부나 고문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 때문에, 극우 인민주의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카우디요(민중의 여망을 반영하는 군사지도자)라고 제시한다. 보우소나르 역시 2019년 1월 1일 임기를 개시한 만큼 그의 브라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5)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의 위기와 포퓰리즘 경제정책

    2019년 2월 중순까지도, 베네수엘라에서의 정치적 대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 1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웨덴 등 EU 주요국가들도 1월 26일 마두로 대통령에게 새로운 대선 계획을 8일 이내에 밝히라고 제시한 후, 마두로 대통령이 이에 응하지 않자 2월 4일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4)

    베네수엘라 의회는 2018년 1월 베네수엘라 물가 상승률(연율)이 268만%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1,000만%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엔 국제 이주기구에 따르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식량과 의약품 같은 생활 필수품이 부족해지면서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국민은 2014년 이후 300만 명을 넘어섰다. 2019년에는 난민 수가 500만 명 수준으로 급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왜 이런 극심한 혼란이 나타나고 있는가. 그 근본적 원인은 차베스-마두로 경제정책의 실패에 있다.(5)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는 천연자원 수출 부문의 높은 생산성에 기대어 다른 저생산성 산업들이 유지되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이후로 석유산업은 국유화되었지만, 국가는 석유지대를 이용해서 이중 구조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1980년대 이후 비석유부문 산업이 붕괴했기 때문이었다. 1974~1983년 사이에는 석유수입을 고정자본 투자에 활용했고, 국가가 직접 투자를 배치하여 전기, 통신, 지하철, 철강, 알루미늄, 석유화학 산업 인프라에 중점 투자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비석유부문 산업 경제가 스태그네이션과 절대적 생산성 저하를 겪었다.

    차베스 정부에서는 석유로열티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 다시 점화되어 1997년에 32%였던 로열티는 2003년 75%까지 증가했다. 그에 따라 사회정책이 현저히 증가하여 두 번째 임기에 이르러 1인당 실질 사회지출이 1990년대의 5배로 증가했다. 과거 자본재 수입촉진을 위한 볼리바르화 고평가 정책과 유사한 정책이 강력히 추진되었으나, 소비재 부문의 수입업자나 베네수엘라에서 벌어들인 이윤을 해외로 송금하는 외국기업이 큰 이득을 보았을 뿐이었다. 비석유산업 부문은 심지어 달러를 구하기 어려워 자본재나 중간재 수입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그 결과 비석유산업 부문은 기존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때 국제유가가 하락하자 베네수엘라 경제는 다시금 심각한 위기 국면에 돌입한 것이다. 고유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포퓰리즘 경제정책의 막연한 낙관이 붕괴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6)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

    2018년 말부터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가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벌어진 광장시위 이후, 유럽에서 전개된 가장 인상적인 시위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노란 조끼 시위의 직접적 배경은 연료가격 상승이었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하여, 디젤의 세금은 1년간 14% 상승했고, 휘발유는 7.5% 상승했으며, 2019년 1월부터 추가 상승할 계획이었다. 이로부터 도시 중심부 외곽지역의 주민들이 큰 타격을 입었는데, 주택 난방이나 자동차 사용 비용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시위자들은 석유세 인상을 주로 개인에게 부담시켰다고 마크롱 정부를 비난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어떻게 출발했나. 센에마른 현의 여성이 2018년 5월 한 웹사이트에 청원을 개시했으며, 10월 중반 30만 명의 서명에 도달했고, 그로부터 한 달 후, 100만 명에 가까워졌다. 같은 현의 두 남성은 11월 17일, 페이스북 이벤트 “모든 길을 막자”를 개시했는데, 연료가격의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 집단이 제작한 영상은 급속히 전파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노란 조끼를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11월 17일부터 최근까지 매주 토요일 대규모 노란 조끼 시위가 개최되었다. 노란 조끼 시위는 특정한 정당이나 노동조합과 연결을 맺고 있지 않으며, 소셜 미디어에 의해 확산되었다. 운동은 지도자가 없이, 수평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비공식 지도자가 부상할 수 있지만, 일부는 다른 시위자에게 거부되었고 심지어 위협을 받았다. 일부는 정치인들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시위자 기층에서 부상하는 모든 부류의 정치 지망생”에 대한 증오로 확대했다.

    그에 따르면 노란 조끼가 제시한 목표 중 하나는 직접 발의권(direct initiative)의 획득인데, 달리 말하면, 법을 제안하거나 폐지하거나, 헌법을 수정하거나, 공직에서 공직자를 해임할 때, 언제라도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를 ‘시민발의 국민투표’라고 명명한 집단도 있다.

    운동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에 걸쳐 지지자를 모았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위자 중의 36%가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마린 르 펜(국민전선)을 지지했고, 시위자 중의 28%가 장 뤽 멜랑숑(불복하는 프랑스, 2016년에 창당한 ‘민주사회주의’ 정당)을 지지했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마크롱, 르 펜과 멜랑숑은 각각 24.0%, 20.0%, 19.8%를 득표했다. (결선에서 마크롱에 르 펜은 각각 66.1%, 33.9%를 득표했다.) 따라서 시위 참가자는 평균 득표율에 비교해 볼 때 르 펜, 멜랑숑 지지자가 많은 편이다.

    <르몽드>의 저널리스트 다섯 명은 노란 조끼의 42개 지침을 조사했는데, 그 중 2/3가 “급진 좌파”의 입장과 매우 유사하며 거의 절반은 “극우”와 양립 가능하며, 모든 것이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분석했다.

    초기 프랑스 노동조합은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하는 데 주저했는데, 노동조합이 전통적으로 대표하지 않은 사람들, 즉 기업소유자나 자영업자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며, 극우 요소의 존재도 CGT가 반감을 갖게 하는 요소였다.

    1월 말부터 노란 조끼 시위에 참가한 일부 집단은 본격적인 제도권 정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노란 조끼’를 촉발시킨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50대 자클린 무로는 1월 27일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1월 23일에는 잉그리드 르바바쇠르라는 31세 간호조무사가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할 ‘노란 조끼’ 79명의 명단을 다음 달까지 확정하겠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 조끼 시위가 고조되자 12월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최저임금 인상, 초과근무에 대한 과세 면제, 저소득 연금수급자에 대한 일반사회분담금 납부 면제 등 대책을 발표했다. 또한 1월 13일 노란 조끼 사태 해결을 위한 대토론회 계획을 발표했다. 1월 15일부터 2개월간 전국 지자체 청사를 돌며 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수렴한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얼마간 반등하고 있다. 또한 노란 조끼 집단의 제도정치권 진입이 오히려 야당에 대한 지지율을 분점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종합하면, 프랑스는 현재 몇 단계에 걸쳐 기존 정당체계의 붕괴를 경험하는 중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크롱의 등장은 2018년 40세에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될 만큼 충격적이었는데, 그의 대통령 당선은 1958년 프랑스 5공화국 출범 후 공화당과 사회당이라는 거대 정당 소속이 아닌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1차 선거에서 단지 24%를 득표하여 2위를 차지한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과 3%포인트 차이를 보였을 뿐이었다. 이번 시위에 르 펜과 멜랑숑의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거나, 시위자 중 일부는 정치인 일반이나 운동의 정치화에 대대 혐오를 표출한다든가, 이런 특징은 새롭게 등장한 마크롱 정부 역시 지극히 취약하며, 정당체계의 붕괴의 한 계기라는 점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기존 정당체계의 붕괴는 그 자체로 사회변화를 향한 긍정적인 신호인가? 이러한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브렉시트 문제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다수자를 형성하지 못하고, 따라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정치적 무능력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시위참가자 중 일부는 ‘시민참여 국민투표’라는 이름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국민투표가 실제로 실시되는 경우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1970년대에는 1년에 3회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1년에 8회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유럽에 만연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라는 조건에서 경제적 쟁점들, 즉 세금이나 연금 문제, 이민 문제와 같은 각 사안을 국민투표에 따라 국민적 선호를 확인하여 정책을 결정하면 만사형통일 것인가. 곧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정책의 조합이 곧 장기침체의 해결책이 될 수 있냐는 문제다.

    7) 2019년 국제 정치 이슈

    2017-18년 유럽 주요국에서 선거의 물결이 있었다면, 2019년에는 아시아(인도,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나이지리아,남아공), 라틴 아메리카(아르헨티나)의 주요국에서 선거가 치러질 전망이다. (아래 표 참조.)

    [표] 2019년 주목해야 할 선거(6)

    특히 2019년에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유럽연합의 붕괴 가능성이 종종 언급되는데, 유럽연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과의 균열의 확대, 중부유럽에서 반(反)자유주의, 하드 브렉시트의 점증하는 가능성, 이탈리아의 재정정책을 둘러싼 유럽연합과의 갈등 조짐, 프랑스에서 정치적 불만의 고조, 유럽연합의 제도들을 회생시키려는 열정의 감소. 최근 유럽의 주류 정당들은 대륙 전역에서 인민주의 정당의 부상과 함께 침체에 빠졌으며, 그 결과 유럽연합 선거는 그동안 비주류라고 여겨졌던 인민주의 정당이 중심부에 진입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또한 얼마나 많은 유럽인이 투표권을 행사할지도 주목해야 하는데, 유권자는 5억 명에 이르지만 1999년 이후로 투표율은 50% 미만이었다.)

    8) 소결

    미국에서는 좌에서 우까지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에 걸친 논자들이 트럼프를 파시즘으로 규정할 수 있냐는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토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데, 이는 트럼프에게서 파시즘의 원형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함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와 적의 구분, 적의 악마화, 원한의 정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 따라서 경제정책에서 경제학적 이론과 일관성의 결여. 이는 인민주의와 파시즘이 공유하는 사실상 ‘반(反)정치’의 핵심적 요소다.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의 지도자를 두고 ‘스트롱맨’이라는 표현이 통용된다. 보통 스트롱맨은 강제력(무력)으로 지배하며 독재정치, 권위주의 정권를 실행하는 경우를 뜻한다. 2018년, 러시아에서 푸틴은 4선 도전에 성공하고,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한 권위주의적 지배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는 ‘스트롱맨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적 대결구도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최근 유럽에서 사민주의 정당의 지지율 하락 현상은 폭넓게 나타나고 있는데, 독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체코, 그리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이들 나라에서 사민주의 정당의 집권 가능성은 앞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반면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부상은 매우 인상적이다.

    유럽 포퓰리즘의 최근 동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바는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의 수렴 현상이다. 과거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은 집중하는 정치적 소재의 차이가 있다고 간주되었는데, 우파 포퓰리즘은 주로 민족적(인종적, 종족적) 단일성의 보존을 강조했다면, 좌파 포퓰리즘은 경제적 분배정책에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이탈리아에서 오성운동과 동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 사실은 그 정치적 함의가 크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과거 베네수엘라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가 사회주의를 향한 새로운 대안으로 칭송을 받았으나,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락으로 경제가 침체, 붕괴에 들어서자 정치적 대위기가 발생했다. 멕시코의 경우는 차베스와 비견되는 ‘좌파-포률리즘’이, 브라질의 경우는 극우적 언사로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는 ‘우파-포률리즘’이 대권을 장악했다. 이는 세계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반영한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노란 조끼 시위는 프랑스에서 기존 정당체계가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시위 참가자 중에 르 펜과 멜랑숑의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거나, 시위자 중 일부는 정치인 일반이나 운동의 정치화에 대대 혐오를 표출한다는 특징은 그 방증이다. 그렇지만 기존 정당체계의 파열은 긍정적인 변화보다는 정치의 붕괴를 의미할 수도 있는데, 현재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 사례처럼, 어느 누구도 다수자를 형성하지 못하고, 따라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정치적 무능력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시위참가자 중 일부는 ‘시민참여 국민투표’라는 이름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지만, 유럽에 만연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라는 조건에서 경제적 쟁점들을 국민투표에 따라 결정하면 만사형통일 것인가. 포퓰리즘 정치는 그 말 그대로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정책을 조합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곧 경제의 붕괴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는 차베스-마두로의 베네수엘라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끝>

    각주

    1. Dylan Riley, What Is Trump? New Left Review 114, November-December 2018.
    2. 연합뉴스, 反난민’ 깃발 내세워 유럽 뒤흔드는 극우정당…스웨덴도 ‘돌풍’, 2018년 9월 10일.
    3. Andreas Pantazopoulos, The nation-populist illusion as a “pathology” of Politics: The Greek case and beyond. Telos 178, Spring 2017.
    4. 마두로는 차베스 사후 2013년 4월에 열린 선거에서 차베스의 후계자이자 베네수엘라통일사회당 후보로서 50.62%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의 임기는 베네수엘라의 사회경제적 침체와 맞물렸는데, 이는 범죄, 물가상승, 빈곤과 기아의 증가를 이끌었다. 베네수엘라의 생활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2014년부터 시위가 증가했고, 그 와중에 43명의 시위자가 사망하면서 마두로의 인기도 급락하기 시작했다. 2015년 총선에서는 야당연합 <민주통일원탁>이 집권당 <베네수엘라통일사회당>에 압승을 거두어, 총의석 167석 중 야당연합이 109석, 집권당이 55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2016년부터 마두로 소환운동이 전개되었으나, 마두로는 최고법원, 국가선거위원회, 군부와 같이 충성도가 높은 국가기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예컨대, 최고법원은 2016년 실시를 앞둔 소환 투표를 저지했다. 또한 최고법원이 의회의 권력을 몰수하여 헌정위기에 돌입하자, 2017년 수개월에 걸친 시위가 발생했고 최소 153명이 사망했다. 마두로는 2017년 7월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새로운 선거를 실시했다. 야권이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특별선거참여를 거부하면서 마두로 진영은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2018년 5월 마두로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으나, 서방 언론은 이것이 ‘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대통령선거의 공식 투표율은 46.07%였으나, 독립기관이나 야권세력은 17.32%에서 25.8%로 추산했다. (이미 미국은 2017년 선출된 제헌의회와 2018년 재선된 대통령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경제제재를 가했다.) 2019년 1월 마두로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의회는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권력의 탈환을 선언했으며, 과이도는 본인이 의회 정부의 임시대통령이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5. Fernando Dachevsky, Juan Kornblihtt, The Reproduction and Crisis of Capitalism in Venezuela under Chavismo, Latin American Perspectives, Volume 44 Issue 1, January 2017.6. James M. Lindsay, Ten Elections to Watch in 2019, December 12, 2018.https://www.cfr.org/blog/ten-elections-watch-2019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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