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파·재계 경제교과서 습격 사건의 숨은 속셈
        2006년 06월 13일 06:4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003년 한국의 반기업 정서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조사결과를 인용하면서 이는 경제 관련 교과서의 영향이 크다고 주장했다. 상의는 같은 해 교육인적자원부에 ‘경제교과서 개선을 위한 종합건의’를 해 다음해 신학기부터 사용되는 중고교 사회 및 경제교과서의 내용에 일부 반영시켰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뉴라이트 진영의 경제교과서 공격이 이어졌고 교육부는 2006년도 교과서에 전경련 등 경제단체가 지난해 10월 수정을 요구한 4백46곳 중 3백62곳을 뜯어고쳤다.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도 했지만,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준다’라고 주관적으로 평가된 부분을 수정했다.

       
    ▲2005년 4월 29일 서울 명지빌딩에서 열린 교과서 포럼 2차 심포지엄 "중.고등학교 <경제> 관련 교과서, 이대로 좋은가"에서 한 참석자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서울 =연합뉴스)
     

    교육부는 더 나아가 지난 2월 전경련과 초·중등 경제 교과서 개선 작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의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현행 경제 교과서를 수정·보완하는 ‘경제교과서 발전협의회’에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경총 등 5개 경제단체 추천자를 포함시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압력단체가 직접 교과서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재계와 우파진영이 이처럼 경제교과서를 공격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의 주장처럼 중고교 경제교과서는 반시장, 반기업, 좌편향적인 내용으로 일관돼 있는 것일까.

    진보적인 경제학회인 ‘한국사회경제학회’가 ‘중고교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13일 주최한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경상대의 장상환, 정성진 교수는 “경제교과서에 대한 우파들의 비판이 허구적”이며 “현재 교과서도 실제로는 지나치게 기업편향적”이라고 논박했다.

    우파들이 경제교과서에 시비거는 이유

    발제자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참교육 운동과 전교조의 발전 확산에도 불구하고 경제교과서의 시장 편향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우파들이 경제교과서에 대해 반시장적으로 좌편향되어 있다고 강변하는 것에는 몇가지 상이한 또는 상반된 배경이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현행 제7차 교육과정이 이른바 “수요자 중심” 교수 학습방법을 강조한 결과 제6차 교육과정과 달리 실생활 사례 설명 방식을 대폭 도입한 점이다. 그러면서 이해를 돕는다는 취지로 삽입한 사례, 지문들을 통해 시장경제의 모순된 현실이 집필 의도와 다르게 드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 소련․동유럽 블록 붕괴 이후 또 남북관계의 진전이 가속화되면서 체제수호 이데올로기로서 반공이데올로기의 약발이 떨어지자, 지배계급이 그 대체물을 경제교과서의 시장이데올로기에서 찾게 됐다는 점이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수명을 다하자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신자유주의 시장이데올로기를 전파, 확산하는 ‘경제교육’이 절호의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셋째, 최근 한나라당과 ‘뉴라이트’가 부추기고 있는 박정희 망령의 부활의 맥락과도 관련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행 경제교과서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없다”는 뉴라이트진영의 주장과 전경련 등의 반시장 좌편향론이 상충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경제교과서 소동은 제7차 교과과정에서 경제교과서가 검인정 방식으로 바뀐 후, 사범대 경제교육학 전공 교수 그룹에 빼앗긴 경제교과서 시장을 다시 찾으려는 미국 경제학박사 중심의 주류경제학자들 간에 벌어진 밥그릇 싸움의 성격도 띠고 있다고 발제자들은 지적했다.

    근거없는 좌편향 소동

    이런 배경에서 나온 우파들의 경제교과서 비판은 “고도성장 과정에 대한 평가가 부정확하다”거나 “반시장적”이라거나 “반기업적”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발제자들은 “노동자, 농민을 희생하고, 재벌 육성에 의한 정부 주도의 고도성장은 객관적 사실”이며 시장이 자유롭게 기능하는데도 효율적이지 못한 자원배분 상태가 초래되는 경우를 일컫는 ‘시장 실패’는 경제교육에서 핵심적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대부분의 경제교과서가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점에서 반기업적, 반시장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CSR)은 반시장적이기는커녕 탁월하게 친시장적”이라고 반박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양극화,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반자본주의 반세계화 운동이 전세계적 규모로 격화되자, 지배계급이 체제수호 차원에서 구사하고 있는 전술 전환에 다름 아닌데 “본질적으로 친시장적 시장경제 수호 이데올로기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조차 반기업적 반시장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자들은 “신자유주의 맹주보다 한 술 더 떠 선무당 춤을 추고 있는 우리나라 우파의 무지막지한 맹목적 시장근본주의와 시대착오적 반동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혹평했다.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로 역할할 뿐”

    현행 경제교과서를 분석한 발제자들은 우파의 주장과는 달리 경제교과서가 신자유주의 시장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경제교과서는 부르주아 경제학을 교육하는 데서 나아가 더 공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로 역할하는 것을 자기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 경제교과서의 검인정 기준인 제7차 교과과정 경제 편이 “경제 과목이 지향하는 민주시민 상은 시장경제의 경쟁 원리에 적응하여 효율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면서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 윤리적 경제인”이라고 분명하게 천명한 데서 확인된다.

    주류경제학에 맞서 그와 나란히 경쟁적 흐름을 형성해 온 마르크스경제학,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 네오슘페터주의 경제학, 제도주의 경제학 등 비주류경제학의 흐름은 현행 경제교과서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진보진영 경제교과서 작성에 나서야”

    장상환, 정성진 교수는 “경제교과서의 경우 국사교과서에 비교한다면 진보진영의 입김은 전적으로 부재”했다고 지적하고 “우익이 아니라 진보진영이 들고 일어났어야 마땅했다. 오히려 우익들이 그것도 부족하다고 소동을 부리게 된 데에는 진보진영 정치경제학 연구자들의 책임도 있다”며 진보진영의 자성을 촉구했다.

    발제자들은 기존의 교육과정과의 혁명적 단절과 새로운 교육과정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에 근거하여 경제교과서를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며 새로운 대안적 경제교과서를 작성하는 작업에는 정부와 교사단체와 학부모 단체뿐만 아니라 좌우파를 망라한 경제학계 및 대학생, 경제단체와 노동조합, 시민운동 단체 등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르주아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주입 도구일 뿐인 현행 <경제교과서>를 전면 폐지하고 이를 진보진영과 진보적 교육단체의 주도 하에 관련 이해당사자의 민주적 참여 하에 재서술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임무이기에 앞서 민주시민으로서 시급히 해결해야 미루어 둔 숙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