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운 날은 춥고
    더운 날은 더운 곳, 학교
    [밥하는 노동의 기록] 육개장, 추운 속을 데우는 붉고 기름진 국물
        2019년 02월 13일 04: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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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 아니면 미세먼지의 계절이 돌아왔다. 추위에 유난히 약한 나는 입동 전부터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해 청명쯤 지나야 멈춘다. 사시나무처럼 떨어도 바닥에 불 때는 것은 돈을 태우는 일이니 해만 뜨면 집에 식구들이 다 있어도 보일러에게는 외출했다 뻥을 치며 산다.

    ‘난방’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 것은 국민학교 입학과 함께였다. 그 때는 조개탄을 땠다. 넉넉히 주지도 않아 우윳곽(우유갑이 표준말이지만 우윳곽이 글 뉘앙스에 맞아 고치지 않는다)과 함께 땠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을까 울을까 한다. 교실에 난로가 들어오면 다섯 명으로 한 조를 짰다. 200ml짜리 우윳곽 하나의 네 귀퉁이를 펴서 우윳곽 네 개를 접어 아래 위를 엇갈려 넣으면 딱 맞았다. 쉬는 시간마다 조개탄 반삽에 그걸 서너 개 씩 넣어 불을 살렸다. 우윳곽이 타며 곰곰한 냄새가 교실을 뒤덮으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지만 만 여섯 살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자리에 앉아있는 것 이외는 없었다.

    녹이 잔뜩 슨 난로는 벌겋게 달아올라도 교실은 계속 추웠다. 난로 반경 두 자리까지는 더워 죽었고 나머지는 추워 죽었다. 그래서 나는 보온메리에 얇은 옷, 거기에 솜을 누빈 옷을 껴입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입으면 화장실 한 번 가기도 귀찮아서 하루 종일 물도 안 마셨다. 조개탄을 가져오는 일은 남자아이들이 했고 재를 치우는 일은 여자아이들이 했다.

    조개탄은 ‘탄’일 때는 뭐 대단하게 한 일도 없으면서 ‘재’가 되면 존재감이 대단하여 아무리 조심스럽게 쓸어도 산산하여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빗자루는 자루가 길어 겨드랑이에 바투 끼고도 다루기 힘들었고 쓰레받기는 자루가 짧아 온 몸에 재가 내려앉았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1980년대 대한민국 국민학교 재학 여학생들은 치우는 일의 고단함을 일찌감치 알았다.

    중학교부터는 옷이 생존의 위협요소였다. 치마교복은 여학생 얼어 죽으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었고 나일론이 인류의 대단한 발명품이란 말은 나에게서 멈췄다. 아무리 두꺼워도 스타킹은 스타킹이지. 앉아있으면 추위가 발끝부터 기어올라 온몸이 얼어버릴 것 같아서 공부고 수업이고 개뿔이고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달려가 이불을 둘둘 감아 싸고 눕고만 싶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사는 빨간 벽돌 건물이었는데 담쟁이넝쿨은 없었지만 적당히 색이 바래 매우 고풍스러워 보였고 그 화룡점정은 동문들이 기부했다는 거대한 주물 교문이었다. 우리는 그 교문을 매우 사랑했으나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주물 교문 따위 먹지도 못하는 것, 그 돈으로 불이나 때주지 욕을 욕을 했다. 아기 돼지 삼형제 막내는 벽돌로 집을 지어 늑대에게 살아남았다지만 추위는 늑대보다도 더한 놈이고 삼한 후에 사한인 나날들 앞에서 벽돌은 지푸라기나 다름없었다.

    학교에선 이러다 얼어죽겠다 싶은 날이어야 물을 데워 라디에이터를 돌렸다. 등교할 때 교사 뒤편 굴뚝에서 허연 김이 뭉게뭉게 올라오면 있으나마나 한 라디에이터 고작 세 시간 돌려주면서 위세는 더럽게도 크게 하네 싶어 그렇게 서러웠다. 게다가 난방도 안해주면서 단정해 보이지 않는다며 학교 안에 있을 때는 외투도 못 입게 했다. 아무리 추워도 오줌은 누어야 하니 참고 참다 외투 입고 화장실에 가는 사람 불러 세워 넌 누가 시켜 여기서 외투를 입냐며 막대기로 어깨를 쿡쿡 찔렀던 그 교사는 양심도 없이 두툼한 패딩 겉옷을 입고 있었다.

    대학이라고 다를 것이 없어 모든 강의실은 빠짐없이 겨울엔 냉방이, 여름엔 난방이 잘 되었다. 캠퍼스에서 제일 낡은 건물을 찾으면 그게 학생회관이라는 말을 넘어서 학생회관 건물은 아예 난방 따윈 염두에 두지 않고 지어졌으니 더욱 어이없었다. 학생회관 이전에 대학원 건물이었다던데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는 학생이 어리건 늙건 간에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공간이어야 공부가 된다고 믿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럼 내가 그 동안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시원하게 공부했던 학원은 딴 나라에 있었나 싶어 아차 했다.

    대한민국의 제도권 교육기관은 피교육자에게 권력을 남용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강요한다. 돈을 쓰기 싫으면 싫다고 말이라도 할 것이지 별 같잖은 소리를 하면서 사람을 볶아친다. 아직도 기억한다. 절약정신이 중요해서 우윳곽을 같이 땐다고 했다. 그거 석탄가루 반죽이라 애초에 절약할 것도 없었다고. 춥다고 덥다고 공부를 못한다는 건 변명이라고 했다. 그럼 우열반 가려서 우반에만 냉난방한 건 어떻게 설명하실래요? 추위도 못 이기면서 무슨 일을 하냐고 했다. 추위를 이겨야 하는 이유부터 다시 생각해봅시다.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학교 운영 1원칙은 “추운 날 춥지 않게, 더운 날 덥지 않게”라서 냉난방비를 가장 중요한 지출항목으로 삼으셨다. 내게는 그것이 참으로 큰 위안이어서 내가 만나 본 모든 선생님 중에 이 분을 앞자리에 내세운다.

    육개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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