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 만든 과학기술동맹을 해체시켜야 한다
        2006년 06월 13일 03: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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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11일 오후, 민주노동당 5층의 정책위 회의실에서는 과학 담당인 한재각 연구원과 의료 담당, 법률 담당, 그리고 필자가 참석한 비밀 회의가 열렸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대한 의문점과 의료윤리를 검토하고, 민주노동당 안팎에서의 대응 방안, 사회적 반향의 예측과 법률적 대비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그로부터 42일 뒤, <PD수첩>이 방영되고, 한재각 연구원은 밀물처럼 몰려드는 항의전화에 시달리게 된다.

    한재각이 황우석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이다. 당시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한국위윈회에서 일하던 한재각은, 황우석 박사를 생명복제기술합의회의 전문가 패널로 섭외한다. 그런데 한재각은 자신이 섭외하여 토론에 참석한 황우석 박사의 언행과 과학관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고, 본격적인 과학기술 민주화 운동을 펼치기 위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를 떠난다.

       
     ▲한재각 연구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과학 담당으로 일한 8년 동안의 연구와 운동의 성과를 모아 내놓은 것이 침묵과 열광,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후마니타스)이다. 물론 한재각이 황 교수만을 상대해온 것은 아니다.

    한재각은 생태환경, 아토피 같은 환경성 질환, 과학기술 정책, 과학기술 예산, 과학기술자 노동운동에까지 간여해왔다. 침묵과 열광은 황우석 사태를 계기 삼아, 한재각이 한국 사회에 던지려는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대안적 과학관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한재각은 책 제목에 ‘침묵과 열광’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부터 말한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는 황우석 교수 개인의 논문 조작 사건이 아니다. ‘황우석 사태’는 황우석 교수를 중심으로 맺어진 과학기술동맹,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정치권력까지 합세한 과학기술동맹이 전 국민을 체계적으로 기만한 것이다. 이 정치적 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황우석만 잘라내고 과학기술동맹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놔두고 있기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가 세상을 구할 것처럼 행세하고 다닐 때도, 그리고 그의 거짓이 밝혀진 오늘에도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동맹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황우석 사태는 ‘침묵의 동맹’이 빚은 결과이다.

    침묵의 반대편에는 ‘열광’이 자리하고 있다. 온 국민이 황우석의 ‘애국적 성과’에 열광하고,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도 좋다는 식의 반응까지도 나왔다. 이런 걸 파시즘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의 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성찰이나 자기 반성이 없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가게 된 배경이 이해되기도 한다. 국민들로서는, 아무런 희망이나 대안이 없는 팍팍한 삶에서 설혹 자기 기만일지라도 희망을 가지고 싶어 했던 듯하다.”

       
     

    그의 말마따나 황우석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황우석을 ‘장군님’처럼 떠받들던 언론인들, 황 교수와 사진 한 컷 찍으려 줄섰던 정치인들, ‘골목길을 배회하는 똥개’마냥 뭐 얻어 먹을 거 없나, 황우석을 졸졸 따랐던 작자들이 헛기침 한 번 하고, 의연하게 앉아 있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젠가 또 다른 황우석을 만들어낼 것이다. 어쩌면 이미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일본의 ‘토건동맹’이 있기는 하지만, 황우석을 둘러싼 과학기술동맹처럼 강력한 것은 처음이다.

    “외국에서는 황우석과 같은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세력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 BT(Biology Technology)였다. ‘황금박쥐’라 불리는 황우석 사단에는 과학계 뿐만 아니라, 기업·언론·정치권·관료까지 한국의 기득권 집단 전체가 참가했다.”

    대통령 노무현이 진두지휘한 기득권 동맹이 원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 정치의 전통대로라면 리베이트나 주가 조작이나 불법 정치자금이 숨어 있을 법하다. 증권가에서는, 386 실세 모모가 BT 주로 재미 좀 봤다는 식의 풍문이 끊이지 않았었다.

    “리베이트나 정치자금이 드러난 것은 없다. 정치 집단이 바란 것은 돈보다 더 큰 것이다. 정치권은, 과거에는 금전적 보상을 원했지만, 이 사건에서는 황우석과 함께 국민의 지지를 공유했다. ‘마술을 봤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상찬, ‘보배 중의 보배’라는 박근혜 대표의 찬사가 바로 그런 것이다. 과학기술동맹은 정치적 상징적 동맹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은 무죄인가? 파시즘이 히틀러 한 사람의 광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이 황우석 광풍 역시 과학기술동맹만의 작품은 아니지 않는가? 독일국민이나 한국민 전체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지만, 다중의 과오인 것은 분명하지 않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침묵조차도 범죄가 아닐까?

    “‘황빠’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방관하는 것이고, 방관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비판해야 한다.”

    한재각은 예전에도 원자력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포섭돼 있는 민주노조들과 투쟁한 전력이 있다. 황우석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기득권과의 투쟁일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

       
    ▲지난 1월 12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황우석 박사의  대국민사과성명발표에서 황우석 박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있다. (서울=연합뉴스)
     

    “황우석 박사에게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은, 법률적 근거와 합리적 선정 절차도 없이 ‘최고 과학자’에게 256억 원을 준다는 2005년 예산안을 비판한 2004년 10월이다. 정책위원회가 준비한 예산안 비판을 본 민주노동당의 어떤 의원은 ‘자살골’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이런 반대 분위기 때문에 ‘최고 과학자 예산’에 대한 논평이 늦게 발표되었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2005년 5월에는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고, 당 안에 찬반이 분분하여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PD수첩> 1부가 방영된 직후에는 ‘논평을 자제하라. 100번 낼 것 한 번 내라. 논평을 낼 경우에는 당 대표를 꼭 거쳐라’는 당 비대위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 김은진 비대위원 등이 황우석 박사 비판에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결국 권영길 대표가 중앙위원회에서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한재각의 ‘과학운동’에 대한 당 내의 논란은 민주노동당 역시 상식이라는 야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민주노동당의 야만스러움에는 시류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도 있고, ‘우리 민족 제일주의’ 같은 것도 있다.

    ‘아이러브 황우석’의 운영자는 ‘민족사상’을 남한 내에서 독자적으로 구성했다고 자처하는 운동권 그룹 출신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학생운동으로, 2002년의 월드컵 응원 열풍으로, 그리고 지금은 황우석 광풍으로, 그들은 긍정에서 부정으로 퇴보하고 있다.

    민족주의 뿐 아니라 사회주의도 과학기술 발전에 긍정적이다. 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에 있어 과학기술은 좋거나 나쁘다고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 역사 발전의 한 현상이다. 때로 사회주의 체제는 과학을 사회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적극 활용한다.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한재각의 ‘과학운동’은 러다이트(산업혁명기의 기계파괴운동)처럼 보인다.

    “그런 사회주의는 낡은 사회주의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기여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과학기술이든지 도움이 될 것인지 해가 될 것인지를 따져, 거부할 수도 수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성찰적 과학기술’을 주장한다.

       
     

    미래학자 제레미 레프킨은 ‘생명과학 시대’가 되기 위해서는 윤리 훼손·인체의 상품화·자연에 대한 태도 변화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지적인데,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손실이나 영향에 대해 균형 있게 평가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용하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멘델의 우생학과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복제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본질적으로 같은 것일지는 몰라도 두 기술이 불러올 사회적 파괴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과학기술 운동의 몫이다.

    과거에는 자연에 대한 과학기술의 조작력이 약했고, 인간의 과학기술이 자연계에서 교정되거나 흡수되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자연생태계가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인간의 조작력이 커진만큼 어떤 과학기술을 쓸 것인가를 판단하는 인간의 선택권도 커져야 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이종은 말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생명의 존엄성이나 인권 등 후기근대적인 문제의식은 ‘순박한’ 근대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을 넘어서는 중요한 디딤돌로서 민주노동당의 향후 이념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배아복제의 ‘공중의 이해’와 인터넷 공론』, 2005).”

    한재각은 ‘초록색 옷을 입히기 위해’ 민주노동당에 침투했다. 지금으로서는, 한재각의 목적이 잘 달성될지, 서이종의 다음 논문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다루어질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노동계급의 1%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라는 말에 이르는 데 대략 20여 년이 걸렸다는 점이다.

    추측컨대, 그 사회주의가 실천되거나 또 다른 사상으로 나아가는 데는 앞선 이행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한재각 연구원이 몸 담고 있는 민주노동당 최고의 비법, ‘버티기’만 잘 할 수 있다면, 미래는 꽤 밝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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