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평가·책임 논의 회피하는
    민주노동당의 이상한 공모구조
        2006년 06월 13일 0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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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득표 12.1%. 광역단체장 0석. 기초단체장 0석. 지방의원 81석.

    지난 2004년 원내에 진출한 이후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치른 전국단위 선거였던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거둔 성적표다. 민주노동당의 공식 목표(광역단체장 1석, 기초단체장 5석, 지방의원 300석, 정당득표 15% 이상)에 크게 대비되는 결과를 보였지만 웬일인지 선거가 끝나고 보름이 다 되어가도록 이번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보이지 않고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은 이에 대해 “객관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제대로 된 선거평가와 책임논의는 회피되고 있다”며 “평가를 두려워하면서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사실상 억압되었다는 사실은,…향후 민주노동당의 미래와 관련해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주간은 오는 14일 ‘한국 민주주의와 5․31 지방선거, 무엇을 남겼나’를 주제로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가 주관하는 월례포럼에서 발표할 발제문 ‘5.31 지방선거와 민주노동당 – 관찰자의 시각’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박 주간은 지난해 10.26 재보선 이후와 이번 선거 이후를 비교하면서 “두 사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거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며 “정확히 말한다면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가 훨씬 크지만 선거결과를 대면하는 양상은 너무나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울산 패배 이후에는 사태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고 결국 당 최고위원의 사퇴로 귀결되었지만 이번 선거 이후에는 “이상한 공모구조”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패배 인정 않으려는 강박관념과 공범의식이 만든 공모구조 

    “이상한 공모구조”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강한 강박관념 △공범의식을 자극하는 접근 △사태 설명의 외부화라는 세가지 담론으로 구성된다.

       
    ▲지난 4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5.31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강한 강박관념’은 “아주 어려운 조건 가운데 지난 총선에서 얻은 당의 지지도를 유지해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위상을 굳건히 유지한 것은 성과"(문성현 당대표)라거나 “실력대로 나온 것” 또는 “한나라당으로 간 표는 어차피 민주노동당 표가 아닌 중산층 표일 뿐”(평등파측)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공범의식을 자극하는 접근”은 자주파가 장악한 지도부는 평등파가 주도한 서울과 울산의 패배가 결정적이라 말하고, 반대파(평등파)는 ‘진보개혁세력 주자교체론’과 민족주의적 선거캠페인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서로 패배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상호견제적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또 "지역주의는 여전하고 부패 정당의 지역 독점은 더 강화됐다"(박용진 대변인)거나 당 후보들의 득표율이 높아진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나라당의 초강세 현상이 아니었으면 많은 당선자를 낼 수 있었을 것"(문성현 대표)이라며 외적인 요인이 강조되기도 한다.

    “노무현식 정치언어가 지배하는 민주노동당”

    박상훈 주간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일종의 알리바이”라고 규정하고 이는 “기본적으로 분열과 적대 때문에, 국민의식이 못 따라와서, 기득권층 반발 때문에, 조중동 때문에, 지역주의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노무현식 정치언어와 같은 종류의 담론에 민주노동당 역시 지배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 주간은 △평가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기하는 논의가 없다는 사실(의제의 부제) △논의를 이끌 책임 있는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주체의 부재) △토론과 논의, 갈등을 두려워하는 반민주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당 조직(참여의 부재) 등이 공모의 무책임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비합리적 공모가 가능한 것은 “작년 재보선의 경우 자주파 후보의 패배에 평등파 측이 일방적으로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데 비해, 이번 선거는 전체 결과에 대한 지도부의 책임과 서울과 울산 선거의 반대파 책임을 서로의 취약점으로 삼는 상호회피적인 일종의 치킨게임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박 주간은 해석했다. 그 결과 “정파 간 무책임을 상호교환 하는 선거평가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주간은 “더 크게 보면 제로섬적인 정파 대립구조가 만들어낸 한 특징이라 볼 수 있지만 극단적 정파구도 때문에 문제라면, 오히려 책임문제를 둘러싼 격렬한 공방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며 정파가 문제가 아니라 “정파의 존재가 갖는 폐해를 완화하고 통제하는 당내 갈등해결 체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중 위한 선거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위한 민중동원”

    박상훈 주간은 “민주주의가 민중을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도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위해 민중이 있는 식이 되는 경우 많다”며 “이 경우 선거는 엘리트 중심의 민주주의, 상층 중산층 혹은 전문가 중심의 민주정치를 정당화하는 기제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가난한 민중을 위해 선거를 했다고 말할 수 있나”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 8일 열린 민주노동당 최고의원·의원단 합동 워크숍

    민중을 위한 민주노동당 선거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선거를 위한 민중동원이라는 문법구조로 실천되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민중의 삶의 조건을 보살피는 당내 엘리트와 리더십이 아니라 거꾸로 지도부·후보를 위해 대중이 동원되고 개표 이후 상황에서는 당내 지도체제를 유지하고자 대중의 탈동원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주간은 “근본적으로 민주노동당 조직체계, 권력구조, 리더십체제가 갖는 작동불능의 비합리적 구조 때문에 만들어지는 문제”라며 “지도부의 이해관계 추구 욕구와 정당 조직 전체의 발전이 양립할 수 있는 조직 체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은 세대의 힘은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2004년 선거를 정점으로 소진됐다. “40대 전반의 80년대 학번 유권자가 상황을 이끌고 30대 민주화세대가 호응-동조하고, 운동의 경험은 없지만 반권위주의적 가치지향을 가진 20대가 뒤따르는 구도”를 보인 최근의 선거패턴은 2005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기점으로 해체되기 시작해 10월 재보선 선거에서 심화되고 이번 선거에서 전면적인 해체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변하지 않는 한 운동권 엘리트의 기득구조에 그칠 뿐”

    박 주간은 이같은 노무현 정부 하 운동권의 도덕적, 제도적 몰락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지금까지의 관성대로라면 민주노동당 역시 운동권 엘리트들의 기득구조에 그칠 뿐”이고 “이 경우 민주노동당의 진보언어는 도덕론 혹은 자신의 도덕성을 세일하는 상품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박상훈 주간은 “대안은 무엇보다도 민주적 책임성의 복원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지도부 내지 리더십이 책임의 주체로 나서고, 논의되고 검토되어야 할 의제를 제기하고, 광범한 참여를 개방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선거의 과정과 결과로부터 교훈을 얻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개선해가면서 대중참여의 제도적, 심리적 기반을 다져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를 둘러싼 협소한 논의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역량이 흩어지는 경로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근본적으로 정치의 방법으로 민주주의의 힘을 조직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의 정치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박상훈 주간의 발제문은 14일 오후 2시30분 성공회대 새천년관 4층 교수회의실에서 열리는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주최의 월례포럼(후원 : 레디앙, 오마이뉴스)에서 발표된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광일 박사(성공회대 민주자료관)의 발제와 함께 손혁재(참여연대, 정치학), 조현연(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정치학),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사회학) 교수의 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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