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 신주단지 그리고 감모여재도
[역사의 한 페이지] 그림을 통해 조상과 만나다
    2019년 02월 11일 10:1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전 회의 글 “정읍 청년 김남두가 한강다리 간 사연”

∙2012년 6월 11일 함경남도 신흥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인풍중학교 4학년 학생 한현경 양(14)이 폭우로 인한 산사태에 휩쓸려 사망했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 학생이 결국 화를 당한 것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챙겨 나오느라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 7월 초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 해안에서 2012년 12월 동해상에서 조난됐던 북한 대각봉호가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배에서는 북한 선원의 시신 6구가 발견되었는데, 그들의 품속에서는 하나같이 비닐로 싼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다.

∙2015년 7월 북한 노동신문은 불길 속에서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와 항일 투쟁 구호가 적힌 구호나무를 구해낸 뒤 불에 타 목숨을 잃은 함경남도 단천시 인민보안서 소속 윤광남(48)과 리선일(21) 두 경찰관을 영웅으로 칭송하였다. 윤광남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길 속 건물 안으로 뛰어올라가 초상화 등을 가져온 뒤 숨을 거뒀고, 리선일은 “세찬 불길에 살점이 익어 들었으나 손에서 피가 나도록 진흙을 발라 구호나무를 지켜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연합뉴스, SBS 보도 요약

몇 년 전 북한 주민들과 관련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사람들의 신념 체계는 무서운 것이어서 때로는 그 신념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남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는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그 무엇인 것이다.

북한에는 ‘당(黨)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는 “경애하는 수령의 초상화·동상·출판물을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위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그들의 믿을 수 없는 행동이 이런 당의 10대 원칙의 강압성 때문인지, 아니면 온전히 자발적인 것인지 여기서 따지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현재의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 가계는 신앙 그 자체라는 것, 그로 인해 그들의 초상화는 종교적 성화(聖畫), 즉 이콘(icon)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 2003년 8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남한을 방문한 북한 응원단이 비를 맞고 걸려있는 환영 현수막 속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보고, “장군님의 사진을 비에 젖게 할 수 있느냐. 길가의 가로수에 낮게 걸어놓을 수 있느냐”며 항의하며 눈물을 흘리며 떼어가는 장면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는 신앙 그 자체이다. 경북 예천에서 있었던 이 에피소드는 당시 남한 주민들에게 큰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중앙일보 사진)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지극히 소중하게 모시다가 목숨까지 버리는 위 사례들에 대해 쓸 수 있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신주 모시듯’ 혹은 ‘신주단지 모시듯’일 것이다. 이 표현들은 목숨처럼 소중하게 어떤 사물을 다루거나 간직하는 모양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즉 ‘중학생 한현경은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이런 식으로 쓴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들이 즐겨 쓰는 이 ‘신주단지 모시듯’, ‘신주 모시듯’이라는 말에 담긴 종교적 의미에 관한 것이다.

신주단지 모시듯? 신주 모시듯?

‘신주 모시듯’과 ‘신주단지 모시듯’이라는 표현은 일견 비슷해 보인다. ‘단지’라는 말이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쯤으로 생각되겠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뿌리를 따지자면 ‘신주단지’는 민간 신앙에서 나왔고, ‘신주’는 유교에서 나온 것이다.

먼저 ‘신주(神主) 단지’부터 살펴보자. 신주단지는 원래 성주단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주신이 깃들어있는 신성한 단지를 말한다. 성주신은 조상신, 삼신, 조왕신, 터주(터줏대감), 업신, 철륭, 우물신, 측간신 등 집안의 여러 신들을 통솔하면서 집안의 평안을 다스리는 신을 말한다.

옛 사람들은 가택신인 이 성주신이 깃들 수 있도록 20~30Cm 정도 높이에 쌀 1되 정도 들어 갈 조그마한 단지를 만들어 집안이나 방안에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높고 깨끗한 곳에 소중히 안치하였다. 이것이 성주단지 또는 신주단지이다. 이 단지 속에는 볍씨를 넣고, 단지는 깨끗한 한지로 막고 실로 묶었는데 그 위에 고깔모양의 종이 모자를 씌우기도 하였다. 이 단지 속에는 조상신도 깃들어 있다고 하여 ‘조상(祖上)단지’, ‘시조단지’라 부르기도 하고, 또는 부처님이 들어 계신다고 하여 ‘세존(世尊)단지’, ‘제석(帝釋)오가리’라고도 불렀다. 이런 소중한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옛사람들은 이 단지를 정성껏 모셨던 것이다. 여기서 유래한 “신주단지(조상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은 조상들이 이 단지를 얼마나 소중하게 섬겨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왼쪽은 집안에 소중히 모셔진 신주단지의 모습이고(국립민속박물관 사진), 오른쪽은 신주단지 앞에서 소원을 비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사진출처:http://m.egloos.zum.com/jhminam/v/10087401)

지금은 거의 잊힌 이 성주신이 최근 대중의 친근한 관심을 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작년 여름에 개봉한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 2편 때문이었다. 1편의 1442만 관객 동원에 이어 2편도 1228만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는 사후 세계를 ‘저승 판타지’로 표현하여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 영화 속 주인공으로 3명의 저승 차사와 함께 등장했던 것이 ‘성주신’이었다.

영화에서 성주신(마동석 분)은 자신이 지키는 집의 주인인 노인 허춘삼을 손자 현동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만이라도 저승사자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결국에는 사람으로 현신하여 같이 생활하며 그들을 돕는데, 심지어 허춘삼 사후에 혼자 남을 동현이가 자립할 때까지 쓸 자금을 마련해주고자 중국 펀드에 들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 설정이 매우 과장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지켜주는 가택신으로서의 성주신의 역할만은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영화 속 성주가 성주단지가 깨지면서 힘을 잃는 장면도 나오는데, 성주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 성주단지라는 것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택신앙 대상인 성주신을 소재로 한 대중영화로는 이 영화가 최초일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주호민의 만화 [신과 함께]에서는 허춘삼과 현동이를 돕는 존재로 성주신과 함께 조왕신(부엌을 관장하는 신)과 측신(변소를 관장하는 신)도 같이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이들을 따로 등장시키지는 않았다.

[사진] 왼쪽은 가택신인 성주신의 모습을 그린 민화이다. 그림의 왼쪽 구석에 ‘성주대신’이라는 글이 보인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만화 [신과 함께]에서 재인용), 오른쪽은 영화 [신과 함께] 2의 포스터 중 하나로 성주신이 현신한 ‘성주’(마동석)가 보인다. 영화 제목 위에 ‘오랜 시간 인간들의 곁을 지켜온 가택신 성주신’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신주단지가 민간 신앙에서 파생되었던 것이라면, 그와 달리 ‘신주(神主)’는 유교식 조상 숭배 제례와 관련된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사람도 다른 사물처럼 기(氣)가 뭉쳐져서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그 기(氣)가 흩어진다고 보았다. 그런데 기가 흩어질 때 하늘로 흩어지는 것을 혼(魂)이라고 하고, 땅으로 스며드는 것은 따로 백(魄)이라고 하였다. 이를 합쳐 ‘혼백’이라하는데 우리가 흔히 ‘영혼’의 의미로 쓰는 그 혼백이다. 비유하자면 나무를 불에 태우면 연기가 되어 올라가는 것은 ‘혼’, 재로 땅에 떨어지는 것은 ‘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번 흩어진 기(氣)는 다시 뭉칠 수가 없지만, 다시 뭉칠 수 있는 때가 있다. 동기(同氣)를 공유한 부계 후손들이 모여 지내는 제사에서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죽은 조상들을 단순히 추모하는 의식이 아니라 후손들이 죽은 조상들을 만나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리학을 신봉한 양반들은 제사를 그렇게도 중시했던 것이다. 이 제사에서는 ‘조상의 기가 깃들 수 있는 나무패’가 사용되었는데 이를 ‘위패(位牌)’ 혹은 ‘신주(神主)’라고 한다. 신주는 대개 밤나무로 만드는데, 길이는 여덟 치, 폭은 두 치 가량이고,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나게 생겼고 그 위에는 죽은 조상의 이름을 썼다.

이런 점에서 제사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슬픈 행사가 아니었다.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을 다시 뵙는 자리였으므로 흉례(凶禮)인 상례(喪禮)와 달리 제례(祭禮)는 기쁜 행사인 길례(吉禮)로 분류되었다. 그렇기에 자식과 후손들은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성대하게 마련하여 기쁜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설날이나 추석 때 제사를 지낼 때 슬픈 표정으로 숙연한 분위기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상례 중에 지내는 제사는 길례가 아니니 주의할 일이다.

[사진]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모습이다. 이 제사를 통해 후손들은 조상들을 만났다. 제사상 뒤쪽에 조상의 영혼이 깃드는 나무패인 신주가 세워져 있다. 유교에서는 신주는 조상 그 자체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

제사를 지낼 때 옛 사람들은 신주를 모셔놓고 먼저 조상의 혼백을 불러야했다. 먼저 향을 하늘로 피워 올려 하늘에 흩어진 ‘혼’을 부르고, 모래 담은 그릇에 술을 부어 땅에 스며든 ‘백’을 부른다. 그러면 조상의 영혼은 ‘신주’에 깃들고 어엿하게 성장한 후손들을 보고, 그들이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조선시대 위패 혹은 신주는 양반들에게 조상 그 자체였고, 효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 때문에 이 신주는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쟁이 나면 정부에서는 제일 먼저 종묘에 모셔진 역대 국왕들의 위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일반 가정에서도 환란이 생기면 조상의 신주부터 챙겼던 것이다. 이는 유교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행위이자 국가 근간을 지탱한 도덕률이었으며, 그 시대 모든 사람의 일상을 지배한 생활윤리였다.

이런 의미를 가진 신주이므로, 신주를 지키고자 목숨을 저버린 조선시대 사람들이 한둘이었겠는가? 조선 명종 때 가평 군수였던 신여주도 조상의 신주를 지키고자 불 속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인물들 중 하나였다. 그의 묘지명의 일부이다.

가정(嘉靖) 무오년(1558, 명종13) 겨울에 가평(加平) 관아에 화재가 발생하여 군수 신여주(申汝柱) 공이 신주(神主)를 꺼내기 위해 화염 속에 뛰어들었다가 끝내 화를 당하고 말았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정려문을 내려 표창하고 그 자손들을 녹용(錄用)하였다. 이로 인해 공(公)의 효성이 한 세상에 드러나 아녀자나 어린아이들조차도 공의 효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효를 모든 행실의 으뜸이라 말하지만, 어린아이가 부모를 사모하듯이 하는 이는 진실로 적다. 더구나 목숨을 버리고 위험 속에 뛰어들어 효를 성취한 것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일이 아니겠는가…

-가평 군수 신공 묘갈명〔加平郡守申公墓碣銘〕

현종실록에 실려 있는 최유상도 비슷한 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황해도 재령의 최유상이 집에 불이 나서 허겁지겁 뛰어나오느라 미처 그 어미의 신주를 모시고 나오지 못했다. 유상이 거센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 신주를 안고 나오다가 심한 화상을 입어 끝내 죽고 말았다. 관찰사가 이를 보고하니, 정문을 세워주라고 명했다.

-[현종실록] 7년(1666) 3월 7일

조상의 신주를 구하다 불에 타 죽은 신여주와 최유상의 행위는 조선시대 신주가 가진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조선후기 정조 때 천주교 신자 윤지충이 제사를 거부하며 자신의 어머니 신주를 소각하여 정부로부터 참수 처벌된 신해사옥도 당시 신주의 의미를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배경으로 했을 때 ‘신주 모시듯’ 이라는 말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신주를 숭배하는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글 앞머리에서 언급했던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대하는 북한 주민들의 태도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신주단지나 신주를 소중하게 모시는 것과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소중하게 모시는 것은 경중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해 보인다. 사상체계나 신념체계가 다를 뿐 그들 모두는 신념의 강도나 열정은 결국 동일하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신념 체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기괴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렇다.

다소 비약이 되겠지만, 그래도 조선시대 사람들은 8도 가리지 않고 신주나 신주단지를 숭배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나, 2010년대 말을 살아가는 지금의 한반도를 보면 남북 양 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숭배하는 대상이 너무 달라 앞으로 남북이 제대로 통합될지 지레 걱정이 된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숭배하는 것을 남쪽 사람들은 광신도 집단으로 보는 것처럼, 물신 숭배의 남쪽 주민들을 북쪽 사람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든 집단으로 보지 않겠는가? 이 극단적인 신념과 가치체계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도 남북이 공존과 통합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공존과 통합이 정치 체제나 국토의 통합 만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감모여재도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 ‘신주단지’, ‘신주’ 이야기로 옛 사람들의 신앙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수년 전 경매에 나온 것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는 그림 한 점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이 그림은 설과 추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그림인데, 마침 며칠 전이 설날이라 시기도 적절하기 때문이다. 수집품은 세로 78cm, 가로 42cm 크기의 족자 형태로 되어있는 그림이다. 위쪽 두 곳에 구멍을 뚫어 줄을 매달아 놓았는데, 어떤 의식을 행할 때 걸어 놓고 사용한 것일 것이다. 오랫동안 사용했던지 그림과 줄은 비교적 낡은 상태이다. 평소는 두루마리 형태로 말려있어 잘 펼쳐볼 일이 없는 수집품으로 명절 때가 되어서야 이런 그림이 있었지 하고 가끔 떠올리는 그림이다.

둘둘 말린 족자를 펼치면 그림의 중심에 푸른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한가운데에는 흰 색의 여백으로 비워져있고, 여백 위쪽에는 무엇인가를 붙이고 떼고 한 흔적이 보인다. 건물 뒤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건물 앞에는 꽃병이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는 소박한 필치의 그림이다.

정체불명의 이 그림은 무슨 그림이고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일까?

조선 시대 이런 류의 그림을 보통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 민화의 범주로 분류되는 감모여재도는 공간적 구성만 조금씩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는 그림마다 거의 동일하다. 감모여재도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사진] 푸른 색의 지붕과 소나무, 꽃병 등이 그려진 조선후기 민화풍의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감모여재도라고 부른다. (박건호 소장)

왜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런 류의 그림을 그렸을까?

앞에서 언급한 ‘신주’ 이야기로 Come back!

유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신주’는 그것이 귀중한 만큼 아무 곳이나 모실 수 없었다. 모시는 장소도 성리학 기본서인 『주자가례』에 엄격히 규정되어있다. ‘성주단지(신주단지)’는 대청 한구석에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신주’는 집안의 한 쪽에 사당(祠堂)이라는 별도의 건물을 지어 그 곳에 따로 모셔야했다. 그래서 조선 중기 이후 양반집에는 안채와 사랑채 말고도 별도로 죽은 자를 위한 가묘(家廟) 공간을 마련하고 그 곳에 사당을 지은 것이 일반적이었다.조선후기 양반 가옥 구조에서 가묘와 사당은 유교에서 중시한 조상 숭배의 일상적 실천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당의 건립은 재력 있는 양반집에서나 가능했지, 가난한 양반이나, 초가삼간에 살았던 일반 백성들은 엄두를 낼 수 없는 법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생활공간도 마련하기 힘든 사람들이 죽은 조상들의 공간을 따로 만들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사진] [주자가례]의 첫 페이지에 실려 있는 가묘 그림이다. 부유한 양반들은 이 책의 가르침에 따라 주택의 뒤편에 이러한 제사 공간을 마련했다. 가묘 공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 사당이다. 이 그림에서 제일 큰 집이 사당이다.

사람들은 이럴 때 지혜를 발휘한다. 사당을 그림으로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이름 하여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이 그림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사당을 짓지 못했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제사에 참여할 수 없을 때에 그것을 대신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일종의 휴대용 사당인 셈이다. ‘감모여재’의 뜻은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모습은 실제와 같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제사를 받들면 조상을 뵐 수 있다는 선인(先人)들의 정성스런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감모여재도 대부분은 보관하거나 휴대하기 쉽도록 족자 형태 아니면 작은 병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유하지 못하거나 사정상 집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이 사당을 가지기에 이 보다 더 경제적인 방법이 있었겠는가?

다시 필자가 수집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그림 가운데 푸른 기와 건물이 사당(祠堂)임은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이 그림은 감모여재도의 일반적 특징과 형식을 갖추고 있다. 다만 보통의 감모여재도와 달리 사당 앞에 제사상을 그리지 않았다. 또 보통의 감모여재도에는 연꽃과 모란이 화병에 꽂혀 사당 옆을 장식하거나 제사상 위에 올려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나, 이 그림의 경우 지붕 꼭대기에 연꽃 하나가 그려져 있고, 사당 앞에 모란 대신 국화꽃으로 보이는 꽃이 사당 정중앙 화병에 꽂혀있다. 아니면 모란꽃을 그렸는데 국화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당 뒤로는 송수천년(松壽千年)의 장생을 상징하는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를 그린 것은 다른 감모여재도와 동일하다.

이제 사당의 가운데 여백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할 차례이다. 무언가를 붙이고 뗀 흔적이 보인다고 했던 그 부분이다. 이 부분은 위패 즉 신주 자리를 표시한 것이다. 사당 건물이 신주를 모시는 건물이라면, 이 사당 그림에도 신주 공간이 제일 중요하게 표시되어야 되지 않겠는가?그런데 신주 자리만 그려져 있고, 정작 신주는 그려져 있지 않고 빈 여백만 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감모여재도는 신주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첫째는 제사 지낼 조상이 한 두 명이 아니기 때문에 신주 역시 그 만큼 필요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2차원의 평면 그림에 3차원의 나무 신주를 붙여 놓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방’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신주를 대신하여 약식으로 만든 종이 신주를 지방(紙榜)이라고 한다. 지금도 명절날 제사를 지낼 때 많은 가정에서 나무로 된 신주 대신 간단하게 사용하는 그 지방이다. 나무 신주를 약식인 지방으로 대체하면, 평면 그림인 감모여재도에 부착할 수도 있고, 제사 지낸 대상이 바뀔 때마다 지방도 그림에 바꿔가며 붙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림 속 비어있는 위패 자리는 다름 아닌 지방을 붙이는 자리였다. 실제 밥풀로 지방을 여러 번 붙였다가 뗀 흔적이 완연히 남아있다. 제사 대상이 바뀔 때마다 여러 번 지방을 교체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보니 그런 흔적이 남는 것이다.

[사진] 조선후기 다양한 감모여재도의 모습이다. 사당 건물, 제사상, 지방 붙이는 자리 등 그림의 전체 구성은 동일하다. 첫 번째 그림 위에 ‘感慕如在圖(감모여재도)’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인터넷 사진)

감모여재도!

이 소박한 그림 한 점을 통해 우리들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조상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함께 이런 저런 이유로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를 그림 한 장으로 대체했던 그들의 지혜 한 자락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제목도 제사의 본질적 의미를 제대로 담았다. 조상을 지극히 추모하고 그리워하면 이 자리에 정말 실제와 같이 나타난다는 ‘감모여재(感慕如在)’. 그 모습이 정말 실제와 같이 나타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 아니겠는가?

절실하고 지극한 마음!

조상을 섬기고 추모하고 기억하는 소중한 마음!

<사족>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코코]라는 영화가 있다. 리 언크리치 감독이 만든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신과 함께]처럼 사후 세계를 다루고 있다. 다만 [신과 함께]가 그린 사후 세계가 생전에 지은 죄를 재판하고 처벌하는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면, [코코]에서 그린 사후 세계는 화려하고 유쾌한 망자들의 세계였다.

영화 [코코]는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Dia de los Muertos)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죽은 자들의 날’은 해마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멕시코 전역의 공원과 건물, 가정에 제단을 차리고 죽은 이들을 기리는 명절이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멕시코인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1년에 한 번 가족과 벗을 만나러 산 사람들의 세상에 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날 가족과 친지가 서로 방문하고 제단을 차려서 추모하는 행사를 가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삿날과 같은 것이다. 이 영화가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은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 행사가 우리의 제사 풍습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When there’s no one left in the living world who remembers you,

you disappear from this world”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 널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면, 넌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야)

영화 [코코]의 대사 중 영화 주제를 가장 잘 담은 대사이다. 산 자의 세상에서 추억하고 있어야만 죽은 자의 세상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산 자의 세상에서 더 이상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죽은 자의 세상에서도 사라진다. 사후에도 누군가 자기를 기억하고 추모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멕시코인들이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우리들이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안 보셨다면 한번 보시길 권한다.

[사진] 영화 [코코]는 사후 세계를 다루고 있다. [신과 함께]가 보여주는 사후세계가 무섭고 어둡다면 [코코]가 보여주는 사후세계는 밝고 경쾌하다.

<참고한 책>

이종서, 한국사탐험대7-가족, 웅진주니어, 2006

송기호, 이 땅에 태어나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

주호민, 신과 함께, 애니북스, 2012

필자소개
박건호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강남대성학원의 역사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