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왜 국가를 사랑하며
국가는 어떻게 시민을 지배하는가
[책소개]『시민종교의 탄생』(강인철/성균관대출판부)
    2019년 02월 03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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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키워드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해석해낸 이론적 연구이자 주제별 연구로서, 이에 관한 통시적ㆍ역사적 연구인 <경합하는 시민종교들: 대한민국의 종교학>과 쌍을 이룬다.

시민종교란 한 사회를 통합하고 도덕적으로 결속시키며, 그 구성원들에게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제공하는, 폭넓게 공유되고 합의된 가치와 신념 체계, 그리고 이와 연관된 상징ㆍ신화ㆍ의례ㆍ실천ㆍ장소들의 체계를 통칭한다. 정교분리된 대부분의 근현대 국가들에서 이른바 ‘국가에 대한 시민의 사랑’을 가능케 하는 묘약이 바로 시민종교로 압축되는 국가적 성(聖)체계다. 국가는 이를 활용해 시민 지배의 욕망을 작동시킨다.

저자는 다양한 국가적 상징 기제들에서 출발해 징병제ㆍ의무교육제ㆍ상훈제 등의 사회제도는 물론, 전사자 의례부터 화폐 디자인과 담배 이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시민종교를 구축하고 지탱해온 다채로운 사회문화적 인프라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우리 근현대사의 심층을 횡단한다. 보건대 해방 후 급속히 형성된 한국 시민종교들에는 무엇보다 식민성, 분단, 전쟁의 상흔과 트라우마가 뿌리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가 이 책에서 과거사청산 정치와 전쟁이 식민지엘리트를 매개로 한국 시민종교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주목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되묻는다. 이제 한국을 포함한 근대사회들이 시민종교 없이 생존할 수 없다면, 정교분리에 기초한 세속국가 체제가 시민종교 없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없다면, 나아가 그것 없이는 단단하고 심층적인 사회통합을 기대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민종교를 바람직한 것으로 상상해야 할까? 무엇보다 분단, 식민성, 전쟁을 극복하는 새로운 시민종교가 한국에서 등장할 수 있을까?

식민지엘리트와 과거사청산
대한민국 시민종교의 형성과 ‘48년 체제’의 탄생

저자는 먼저 대한민국 시민종교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네 가지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식민지 요인과 분단 요인의 중요성을 균형 있게 강조하는 것. 둘째, 식민지엘리트를 시민종교 형성의 핵심 주체로 주목하는 것. 셋째, 지배엘리트의 폭력성 과잉 현상과 시민종교와의 관련성을 규명하는 것. 넷째 시민종교 형성에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두 차례의 전쟁이 가진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 등이다.

해방 이후 남한 사회를 장악하며 국가ㆍ국민 형성의 핵심주체가 돼버린 식민지엘리트 세력들은 식민 지배와 관련된 과거사청산 압력에 장기적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보복ㆍ절멸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곤 했다. 저자는 이들의 멘털리티를 ‘과거사청산의 (비교)정치’라는 맥락에서 재해석하면서, 식민지엘리트가 시민종교 형성의 주역이 됨으로써 대한민국의 시민종교는 불가피하게 ‘약한 민족주의’라는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약한 민족주의는 쉽게 약한 시민종교로 이어졌다. 파상적으로 거듭되는 과거사청산 압력에 시달리던 식민지엘리트들은 존재 불안의 공포를 공격성과 과잉 폭력성으로 표출하면서 비청산―반청산―역청산으로 대응했고, 결국 이들은 대한민국의 시민종교를 ‘차가운 시민종교’로 몰고 가버렸다. 감시사회ㆍ불신사회의 다른 이름인 ‘사회자본 결핍사회’가 조성되었고, ‘연고주의적 능력-경쟁주의’가 확산되면서 이 땅엔 ‘윤리의 규율권력화’가 진행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배층으로 부상한 식민지엘리트들은 과거사청산 국면에서 자신들의 생존수단이었던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를 대한민국 시민종교 차원에서 중요하게 부각시키기 시작한다(이후 이 반공주의와 친미주의의 결합은 분단체제를 현실화하는 핵심 기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식민지엘리트들은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 수용 압력, 대중의 민족주의 열기, 남북한 정권 간의 정통성 경쟁, 그리고 민족주의 정치에 기초한 동아시아 갈등구조라는,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들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 결과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자 ‘이질성의 모순적 결합’인 ‘48년 체제’가 등장한다. 저자는 분단체제에 앞서 바로 이 48년 체제를 통해 대한민국 시민종교의 ‘원형’이 제시되었다고 본다.

만약 분단체제가 시민종교의 원형을 주조했더라면, 한국 시민종교는 식민지엘리트 그룹의 의도가 주로 반영된 ‘강한 반공주의와 친미주의, 약한 민족주의’를 특징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엘리트를 초월하는 요소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던 48년 체제에 기초하여, 한국 시민종교는 민족주의, 발전주의, 반공주의, 자유민주주의, 친미주의를 ‘5대 기본교리’로 하는 ‘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전쟁과 시민종교,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의 내면화

그런데 한국전쟁이 대한민국 시민종교의 기본 성격을 48년 체제로부터 ‘분단체제’ 쪽으로 되돌려 놓는다. 더구나 전쟁 후엔 이른바 ‘약한 민족주의’의 성격도 선명해져서, 한국 민족주의 자체가 과거사청산ㆍ평화통일ㆍ반미를 요구하는 ‘위험한-불온한 민족주의’와 반공 민족주의ㆍ언어 민족주의ㆍ스포츠 민족주의ㆍ경제 민족주의 등 ‘안전한-건전한 민족주의’로 분화되었다. 지배세력은 이 ‘안전한-건전한 민족주의’는 용인하고 때로 권장했지만, ‘위험한-불온한 민족주의’는 단호히 금지하고 처벌했다.

전쟁 후 시민종교 내부에선 반공주의와 친미주의가 초강세를 보이며, 이 둘을 중심으로 시민종교 신념체계가 재편되었다. 전쟁의 빈곤화 효과 탓에 발전주의가 시민종교의 중요한 부분으로 본격 등장한 때가 이 즈음이다. 무엇보다 식민지엘리트들이 선호하고 익숙하게 여겼던 반공주의는 영미식의 ‘자유주의적 반공주의’가 아니라 파시즘 국가들의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였다. 때문에 전쟁 후 한국 반공주의에 내장된 국가주의적 잠재력과 충동이 전면화하면서 시민종교의 (자유)민주주의 차원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 4·19혁명이 죽어가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되살려놓았지만, 군사쿠데타는 이 흐름은 재차 반전시켜버렸다. 선민-국민-반국민-비국민의 4층 체계로 구성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신(新)신분제’가 위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전쟁의 일상화’와 ‘일상의 전장화’가 빠르게 진척되었다.

아울러 반공 영웅과 전쟁 영웅들, 그리고 전사자 유가족들로 구성된 ‘성가정(聖家庭)’을 중심으로 ‘전사자 숭배’가 만개(滿開)했다. 현충일로 대표되는 전사자 의례, 국립묘지로 대표되는 전사자 거처, 다양한 형태의 전쟁기념물을 ‘전사자 숭배의 트로이카’라고 부를 만했다. 유일신 전통이 강한 그리스도교 국가나 이슬람 국가들과 달리, 동시에 조상숭배 전통이 강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비슷하게, 한국의 전사자 숭배는 ‘전사자의 신격화’와 ‘촘촘한 영적 안전망의 구축’이라는 특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공주의 신념체계는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내면을 잠식해갔다.

시민종교, 사회통합의 시멘트이거나 사회갈등의 촉매

시민종교 연구는 정교분리 질서의 세계사적인 확산에 조응하는, 세속국가의 성성(聖性)에 대한 탐구다. 근대사회의 사회적-정치적 통합을 도모하는 성스러운 방식에 대한 탐구일 뿐 아니라, 역사적인 정교분리로 등장한 세속국가의 자기 성화(聖化) 방식에 주목하는 접근이다. 그리하여 시민종교에 대한 수많은 학문적 담론들의 초점은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의 방식’과 ‘성화의 대상’이라는 두 가지로 집중된다. 저자 역시 이 책에서 우리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변곡점들에 주목하며, 때마다 다양하게 전개되었던 통합의 방식과 다채롭게 모색되었던 집단적 성화의 대상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물론 하나의 시민종교 우산 아래 ‘심층 사회통합’을 이룬 사회가 존재하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는 수십 년 동안 극심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양극화, 격렬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내전을 겪는 사회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회들에서 시민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가능성이 높거니와, 이 경우 시민종교는 사회통합의 시멘트가 아니라, 사회갈등의 촉매이자 사회분열의 고착화 기제로 기능한다. 대내적으로는 단단한 통합을 촉진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적대와 갈등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종교ㆍ종족ㆍ언어ㆍ문화 차원에서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들이 ‘복수(複數)의 시민종교’ 현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최우선 후보들이다. 이데올로기에 따른 분단사회들, 즉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과 한국, 1949년 이후의 중국, 1950~70년대의 베트남 등도 마찬가지이다. 시민종교의 이런 다기능성과 복수성에 주목하는 것 역시 이 책의 주요 관심사이자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하나의 시민종교가 둘 혹은 그 이상으로 쪼개지는 현상, 그와 반대로 서로 적대하던 시민종교들의 고차원적인 재통합이 일어날 가능성과 조건, 이 모두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중요한 쟁점들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시민종교 안에는 기존 지배질서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려는 ‘사제 진영’, 그리고 기존 지배질서를 비판하면서 변혁하려는 ‘예언자 진영’이 항상 존재해왔다. 양 진영은 48년 체제에 내재하는 모순적이고 이질적인 힘들을 각기 대표한다. 사제 진영이 대한민국 시민종교(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를 ‘반공-국가주의’와 ‘온건한 민족주의’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 했다면, 예언자 진영은 그것을 ‘민주-공화주의’와 ‘급진적 민족주의’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했다. 사제 진영이 남한의 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와 북한의 반미-사회주의(주체주의) 시민종교 사이의 대립과 적대를 지향했다면, 예언자 진영은 남과 북 시민종교 사이의 화해와 통합을 지향해왔다.

사실 한국 현대사는 시민종교 내의 두 진영, 두 세력 간의 부단한 대립과 경쟁, 길항으로 점철되어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 등장 그리고 1980년 광주 5·18 항쟁-학살 이후 사제 진영과 예언자 진영 간의 이질성은 더욱 심화되고 양자 간 대립은 격화되어 한국사회 자체가 ‘문화적-이데올로기적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다. 보건대 앞으로 한국 시민종교의 미래 역시 현재의 문화적-이데올로기적 내전이 어디로 귀결되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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