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정의로운 전환
2038년 모든 석탄화력발전 중단 결정
[에정칼럼] 탈핵·탈석탄 동시에 어렵다고? 가능하다
    2019년 01월 30일 09:2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독일이 2038년까지 자국 내 모든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다. 독일이 탈핵을 하면서 대신에 탈석탄을 미루고 있다는, 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소문과 비판에 신선한 일격을 날리는 뉴스다. 또한 한국은 미세먼지 대응과 어려운 재생에너지 보급 여건 때문에 독일처럼 에너지전환을 할 수 없다거나 탈핵과 탈석탄을 동시에 이룰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도 현실적 근거를 크게 상실하게 되었다.

실제로 독일에게 석탄산업은 큰 딜레마였다. 서독의 루르지방은 오래도록 유연탄 산지로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끌어왔고, 구 동독지역에 풍부한 갈탄도 포기하기 어려운 자원이었다. 석탄은 서독과 동독에서 수많은 노동자 가족을 먹여 살렸고 이들은 정치세력의 든든한 기반이기도 했다. 통일 이후 갈탄은 경제성을 상실하여 급격히 위축되었고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로 유연탄 생산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지역사회와 노동조합은 이에 저항했다. 석탄산업은 지역과 노동자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의 원천이기도 했거니와, 독일 정부는 이 지역과 산업에 보조금을 투입해서라도 석탄산업을 유지해야 했다.

결국 독일 에너지전환의 한 축인 탈석탄은 고비를 맞았다. 2017년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3)에서 독일은 탈석탄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개최국의 모양새를 구겼고, 여러 나라와 지방정부가 참여한 탈석탄 동맹에도 끼지 못했다.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을 자처해 온 독일이지만 카메라는 메르켈 총리 대신 핵발전을 활용하며 석탄발전과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에 앞장서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비추었다.

독일 엔데 겔랜데의 노천탄광 점거 장면(toolsforaction.net/ende-gelande/)

이렇게 비난받던 독일의 방향 선회에는 기후행동계획 같은 제도적 배경도 있지만 광범한 사회운동의 압력이라는 배경도 작용했다. 독일의 탈핵운동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예를들어 엔데 겔랜데(Ende Gelände)라는 반핵-반석탄 기후행동 조직의 최근 활동은 무척 인상적이다.

이 조직의 이름은 “마지막 지대” 또는 “여기에서 더는 안 돼(Here and no further)” 정도의 의미로, 2015년부터 매년 3-4천명의 활동가들이 기후캠프를 진행하고 석탄화력발전소 반대 직접행동을 가져왔다. 2018년 10월에는 함바흐 노천탄광 지대에서 점거를 벌였다. 2038년까지 탈석탄 발전을 명시한 이번 결정에 대해 2030년까지 탈석탄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는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번의 탈석탄 시점 결정은 몇몇 연구자나 관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넓은 정치사회적 관심과 압력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탈석탄 권고안 이끌어 낸 탈석탄위원회

이번 탈석탄 권고를 만들어낸 것은 탈석탄위원회(coal exit commission)라는 기구다. 공식 명칭은 “성장, 구조 변화 및 고용에 관한 위원회”로, 독일 정부의 2050 기후행동계획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경제와 지역사회 고용을 함께 고려하며 실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문으로부터 출발했다. 탈석탄위원회는 석탄 산지의 경제적 전환 전망, 독일의 2030 기후 목표 달성 수단 보장, 석탄화력 발전 중단 시점에 대한 로드맵 합의 등을 임무로 했다. 탈석탄위원회는 원래 폴란드 카토비체의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4) 이전에 권고안을 제출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해를 넘겨 지난 1월 26일 탈석탄 계획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탈석탄위원회의 구성은 구체적인 이해당사자와 책임 있는 대변자와 실행 주체들을 망라하여 효율적인 논의와 결과의 실효성을 담보한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네 명의 총책임자 외에 8명의 연방정부 부처 대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리아, 작센 등 6개의 석탄산지 주정부 대표, 의결권이 없는 3명의 정당 대표가 포함되며, 이 외에 24명의 위원을 두었다. 여기에는 사회과학자와 시민단체 대표, 그린피스와 지구의 벗 같은 환경단체, DGB(독일노총), Verdi(공공노조), IG-BCE(광산노조) 등 노동조합, 녹색당 등 야당, 상공회의소와 경영자 조직, 에너지 회사, 지역 대학들이 포함되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이 2038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 중단, 그에 앞서 2022년까지 화력발전소 일부 조기 폐쇄, 퇴출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 지역에 최소 400억 유로(약 51조 원) 지원 등이다. 이 권고안은 영향을 받게 될 4개 주의 승인을 받아야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며, 논쟁도 남아있을 것이다. 녹색당은 탈석탄위원회가 경제적 측면에 너무 초점을 두고 파리협정의 목표 이행에 소홀했다고 비판했고, 좌파당은 구 동독지역이 제대로 대변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6개월간에 걸친 위원회의 논의 과정과 결과는 독일 에너지전환을 뒷받침할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고, 광범한 지역과 산업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에 큰 시사를 줌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 정의로운 산업 전환 논의 서둘러야

한국은 독일과 달리 석탄채굴산업보다는 발전산업이 쟁점이 되고 있다. 석탄채굴산업은 태백, 정선 등에서 1990년대에 진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규모 축소가 일단락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고통이 있었고 정선 카지노 지역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 시기에 독일의 탈석탄위원회 같은 과정이 있었더라면 갈등을 줄이고 고용과 지역사회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한국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과 함께 관련 산업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맞게 되었다.

발전산업의 전환에는 핵발전을 담당하는 한수원과 석탄화력발전산업을 담당하는 한전 자회사들뿐 아니라, 이와 연계된 가스발전과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용 터빈과 주기기 제조사, 연구기관과 대학, 지역의 건설업과 서비스업 등 매우 많은 경제사회적 주체와 지역들이 관련된다. 지역사회와 경제는 몇 기가와트라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으며, 따라서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총고용과 경제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게 사실이더라도 전환의 과정은 일정한 시간과 면밀한 배려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2년 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한수원 노동조합과 일부 핵발전소 입지 지역민들의 반발이 과도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정부의 자세 역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중단되거나 노후 핵발전소가 폐쇄될 경우 지역사회와 경제에 미칠 영향 전망과 해결 방안은 그러한 전환을 추진하는 정부가 내놓아야 하는 게 당연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방안을 얘기하지 않았다. 전기요금 인상도 안 하고 지역과 노동자에게 구체적인 조치를 해 줄 생각도 없는, 착하지만 안일한, 결국 골치 아픈 부담은 회피하는 나쁜 정부의 태도였다.

이런 모습은 결코 과거의 것만이 아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신재생에너지 3020 계획 발표를 끝으로 현 대통령 임기 내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다 끝난 것처럼 여기는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은 요원할 것이다. 기후변화 정책과 에너지 정책, 산업 정책이 부처마다 따로 노는 상황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각 부처의 목표마저도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의 탈석탄 발표가 주는 교훈은 기술적으로 탈석탄이 가능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기후-에너지정책, 지역 산업정책, 지역 고용정책 통합의 구상을 가져야 하며, 지역과 경제의 주체들도 함께 전환을 준비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