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정체성 잃으며 득표율만 높으면 무슨 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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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9일 03: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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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던 최병천 동지는 얼마전 <레디앙>에 실린 “내가 화장을 하고 선거운동 한 이유”(이하 ‘이유’)라는 글에서 자신의 선거운동을 “당의 ‘관성’과 싸우며 실험” 한 “의미있는 선전”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같은 성동지역위원회 당원이며 최병천 동지의 선거 운동을 옆에서 지켜봤던 나는 이런 평가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물론 ‘이유’에서 썼듯이 최병천 동지가 “가끔은 혓바늘이 심하게 돋고 입천장이 허물어져 밥을 먹지 못할 정도였으며, 신고 있던 구두 한 켤레는 안창이 완전히 구멍이 날 정도”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열심히 한 건 인정하지만, 문제는 선거운동 내용

하지만 강금실도 ‘72시간 마라톤 유세’를 했다. 문제는 선거운동의 내용이다. 그런데 내용으로 볼 때 최병천 동지의 선거운동은 우려를 자아낸다. 나와 몇몇 동지들은 이런 우려를 이미 선거 초반에 제기했다. 우리는 “중풍 든 어머니를 모시고 이 지역에서 30년 동안 살고 있다”를 내건 최병천 동지의 선거운동이 민주노동당의 색깔과 정체성에 걸맞지 않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당시 후보-당원 간담회에서 제기된 이러한 비판을 끝까지 수용하지 않던 최병천 동지는 “결과를 보고 평가하자”고 말했었다. 그리고 이제 ‘이유’에서 최병천 동지는“득표율 14.96%”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 결과는 다른 후보들이나 당 평균 득표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리고 나는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 그것에 이르는 과정을 빼놓은 채 결과만을 놓고 평가해서도 안 된다. 과정, 내용, 결과를 모두 종합적으로 볼 때 진정 올바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득표율이 모든 걸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대중이 한나라당이라는 반동적 대안으로 이끌리지 않도록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며 여당 이탈자들을 끌어와야 했다.

또 여당과 한나라당이 함께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적이고 친제국주의적 정책에 맞서는 투쟁과 대안을 제시하며 노동자 민중의 ‘계급 투표’를 끌어냈어야 했다. 그러나 최병천 동지의 선거운동 과정과 내용은 이런 방향과 처음부터 어긋났다.

최병천 동지는 어떻게 더 많은 표를 얻을 것인가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우리 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우리가 선거운동 기간 중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유’)이라는 이유로 간단히 무시됐다.

반면에 “30대~40대 주부계층”과 “어르신”들이 “핵심 표적 집단”이 됐다. 물론 이들의 편견과 상식에 도전하면서, 반신자유주의 선전을 한다면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병천 동지의 선거운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최병천 동지는 “(민주노동당을) ‘데모만 하는 정당’ … ‘구호만 외치는 정당’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당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응해 “날카로운 이미지의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다. 최대한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 위해서 … 화장을 선거기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이유’)

“어머니가 중풍이셔서 왼쪽 손과 발을 잘 쓰지 못 합니다”, “아내를 위해 담배를 끊는 평등하고 매력적인 남편, 그리고 33개월 된 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30대 40대 주부층과 코드가 일치한다”(지역신문인 <성동저널>과 인터뷰 중)는 것들이 강조됐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세상이 복잡할수록 인간의 됨됨이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지역신문 기자에게 “감성적인 접근이 아닌가”라는 질문까지 받았다.

득표 논리

물론 그는 나름대로 아토피 클리닉, 천기저귀 무료 대행세탁 서비스, 보건소에 산후조리원 설치, 노인주치의 제도,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 등의 정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중앙당에서 후보의 명함이나 공보물, 플래카드에 반영하라고 했던 3대 쟁점들 – 비정규직 철폐, FTA 반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 은 선거운동에 반영되지 않았다.

최병천 동지는 당원 간담회에서 이런 쟁점들을 선거운동에 반영할 의사가 있냐는 당원들의 질문에 분명한 거절의 뜻을 밝혔다. 이런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선전은 “부드러운 인상”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동유세 도중에 한 지역위 간부가 이런 쟁점들에 대해 연설하자 최병천 동지는 자리를 피하면서 “표 떨어지는 얘기”라고 했다고 한다. 해당 선거구에서 벌어지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집회에도 최병천 동지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한번도 결합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핵심적 의제인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도 “생활 정치적 이슈”와 동떨어진 “중앙정치적 이슈들, 개념어들”이라는 이유로 무시됐다. 선거 막판에 그는 ‘당보다는 인물이 중요하다’는 논리로까지 나아갔다.

이처럼 그의 선거운동은 어느 당인지 크게 구분이 안가는 내용들로 진행됐다. 실제로 최병천 동지의 선본이 자체 제작한 로고송에는 당명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최병천 동지는 이와 같이 민주노동당의 분명한 색깔을 흐리고, 이미지와 감성에 호소하고, 인물을 강조하는 선거운동을 통해 “사람들은 최병천 후보에 대해 ‘초록이’, ‘아토피’, ‘냇물’, ‘잔디’, ‘솜사탕’(로고송) 등의 이미지로 기억”(‘이유’)하게 했다. 그리고 15퍼센트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그의 “핵심 표적집단”이었던 “주부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으며 말이다.

따라서 나는 그 15퍼센트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당의 색깔과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사람들의 의식에 도전하고, 그것을 왼쪽으로 끌어오면서 얻은 15퍼센트와 그렇지 않은 15퍼센트는 결코 같을 수 없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울산에서 송철호 후보는 당보다 인물을 강조했고 43.1퍼센트를 득표했다. 그의 선거운동에서 민주노동당의 색깔은 드러나지 않았고 당시 민주당과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현재 송철호는 노무현 정부에 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 울산의 노옥희 후보는 당의 색깔과 정체성을 분명히 했고 25.3퍼센트를 득표했다. 나는 단지 득표율만 보고 노옥희보다 송철호의 선거운동이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최병천 후보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민주노동당의 후보들이 득표 논리만을 쫓아서 당의 색깔과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경향이 선거를 거듭하면서 더 강화되지 않도록 당원들의 견제와 비판이 필요하다.

우리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을 진보적, 좌파적 대안으로 이끄는 데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지 못했다. 성공적이고 강력한 투쟁이 건설되지 못해 온 것은 ‘계급 투표’ 성과의 저조로 나타났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의회 안에서 열우당과 개혁공조에 치중하는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손 잡고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친제국주의 정책에 맞서는 강력한 투쟁 건설을 통해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아닌 진정한 좌파적 대안으로 나서야 한다.

강력하고 성공적인 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자신감을 높일 것이고 그것이 ‘계급 투표’의 진정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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