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들을 위해서라면 난 '삐끼'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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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9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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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참 많은 영화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엔 극장도 점점 많아져서 지금은 스크린수가 1,500개를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곳엔 볼만한 영화가 너무 없다. 심지어 모든 극장이 똑같은 영화들만 상영한다. 어쩌다 흔하지 않은 영화를 볼려면 그놈의 교차상영 때문에 시간 맞추기도 어지간히 어렵다.

극장들은 시내 중심부에서 주택가로 점점 가깝게 파고들고 있지만, 관객들에게는 그저 같은 영화만 보라고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부지런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가깝고 편한 극장에서 요즘 유행하는 영화를 볼 수 밖에 없다. 정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나마 우리가 찾아봐야 할 영화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독립영화 한편과 상업영화 한편을 비교하면서, 소개하고 추천하고자 한다. 사실 추천이라기 보다는 ‘삐끼성’ 유인글이 맞을지 모른다. 이번 영화들은 그래도 비교적 검증된(?) 영화들이라 할만하다.

최근 두편의 한국영화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봄 여성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모두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환대를 받은 경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쇼킹 패밀리>와 170개 스크린에서 화려하게 개봉했지만, 지금은 예술영화관에서만 상영하고 있는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다.

‘결혼과 가족’은 천인공노할 제도?

그렇다. 이 두편의 영화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족’은 그야말로 애증의 그 무엇이다. 따뜻한 보금자리와 일용할 양식을 마련해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인을 지우고, 일상적으로 개인을 침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니 존재이기 보다는 제도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까?

   
▲영화 <쇼킹 패밀리>의 한 장면 (사진=빨간눈사람 홈페이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그들은 한지붕에 살고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없으면 죽고 못살 것처럼 아둥바둥하지만, 개개인들은 그 제도에 억눌려 기를 못펴기 일수이다. 이것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딸도 피해가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참으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기가 막힌 제도이다.

<쇼킹 패밀리>는 가족이라는 관념과 현실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면서 어쩔 수 없이 그 테두리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다.

감독은 기획의도를 통해 “가족이라는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가장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문화의 총화이며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국가의 가장 튼튼한 하부조직으로서의 가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해볼까 한다. 따라서 그 기록은 대한민국의 가족이 좀 더 붕괴되고 해체되고 망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밑바탕에 깐 새로운 기록이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가족 더 붕괴되고 해체되고 망가져야"

이렇듯 도전적으로 작품을 시작했지만, 영화는 진지하고 무겁기 보다는 가볍게 할말 다하면서 주제에 접근한다. 가족이 좀더 붕괴되고 해체되기를 바라다니. 참 맹랑한 시도이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자못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구나 픽션이 아니라 독립 다큐멘터리로 이런 이야기를 엮어 내기 위해서는 그 영화에 얼굴 가리지 않고 참여할 증인들이 필요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 경순과 그의 딸 수림을 포함하여, 영화의 스탭인 촬영 세영과 스틸 경은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나마 붕괴되고 해체되고 있는 가족을 더욱더 해체시키고자 한다. 그들은 <쇼킹 패밀리>란 영화를 함께 찍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가족에 관한 영화를 찍는 스탭들이 영화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보는 ‘메이킹 다큐’처럼 보인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보면 약간 혼란스럽기도 한데, 감독은 그런 구조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중간 중간 사회의 여러문제들에 대해 발언한다. 호주제 폐지 반대 집회 장면이라든지, 수능합격을 위한 광적인 기도회 장면이라든지, 가족을 강조하는 나라에서 해외입양을 제일 많이 시키고 있다는 말이라든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문제를 사회와 연결지으면서 문제제기의 지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가족의 이름을 찬양하는 공익광고를 패러디해서 뒤집거나, 등장인물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면서 스스로를 이완시키고 보는 이들의 호흡을 경쾌하게 해주면서, 고민하면서 즐긴 건 즐겨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듯 하다.

먼저 딸 수림과 함께 사는 경순의 이야기. 경순은 딸과 티격태격 싸우지만, 딸의 머리카락을 마음에 안든다고 짤라버리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문득 가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딸의 말에 가족에 대해 다시한번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되기도 하며, 학교에서 아버지에 대해 묻는 질문지를 받아들고 아무렇게나 답변을 해버린 수림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획일적인 구조를 실감해야 한다.

"가장 정상적인 가정이 가장 쇼킹하다"

경순은 단둘이 살고 있지만 그에게도 아버지가 있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지만, 아버지에게 아직도 핀잔을 듣는다. 아버지가 상을 받는 자리에 옷을 갖춰입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자신은 의식하지 않지만 가족이라는 제도와 그를 둘러싼 사회현실은 그 옆에 따라다니고 있고 알게 모르게 자신을 옭죄거나 그의 생각을 위협하기도 한다.

   
▲영화 <쇼킹 패밀리>의 한 장면 (사진=빨간눈사람 홈페이지)

촬영을 맡은 세영은 혼자 나와 살지만, 가끔 집에 가서 엄마와 이야기도 나누고, 반찬을 얻어오기도 한다. 지금은 잔소리만 견디면 관계가 괜찮은 듯한데, 어린 시절 엄마에게 죽도록 맞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아무도 말려주지 않기에 더 공포스럽다. 이젠 벗어났지만 그 기억은 평생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자신이 엄마와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의 당혹스러움을 견디는 것도 힘겨운 일일 것이다.

스틸사진을 맡은 경은은 새벽부터 밥만 하다가 어린 나이에 이혼하고, 자유로운 독신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결혼 생활의 참담한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세 인물들은 자신의 일상안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안에서 어떤 쇼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때론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한다. 사실 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특별한 모습은 아니다. 이들이 특별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있게 카메라에 담았다는 점이다.

어떤 가족이 가장 쇼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지독히도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족이 사실은 가장 쇼킹하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적인 가족을 상상하면서 모든 가족이 그러해야 한다는 관념이 어느새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답변일 것이다.

자유롭고 이기적으로 살아갑시다

사실 한국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에게 지독한 희생을 강요한다. 아들, 딸을 위해 어머니가 희생해야 하고, 가족의 평화를 위해 아들, 딸이 희생해야 한다. 이런 제도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무엇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는 형성되기 힘들다.

<쇼킹 패밀리>는 어떤 가족이 이상적이라거나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 가족 자체가 갖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도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얼만큼 갖혀 살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경순은 가족이라는 제도는 물론 그 말조차 싫다고 했다. 다른 이름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경은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앞으로 좀더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밝히면서 관객들에게도 이기적으로 살 것을 권했다. 가족 제도의 문제들을 개인의 관점에서 경험적으로 그리고 주변사람들이 모습을 통해서 틀추어 내면서, 그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안들을 영화는 고민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구조 손쉽게 해체하기 

<쇼킹 패밀리>가 가족제도의 쇼킹함을 비판하고, 그 테두리를 넘어선 자유로운 개인들이 삶을 주장하고 있다면, <가족의 탄생>은 혈연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세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마치 옴니버스처럼 구성된 각각의 단락이 마지막에 서로 엮이면서 새로운 대안 가족에 관한 근사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사진=<가족의 탄생> 홈페이지

<가족의 탄생>에서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누나-남동생, 딸-엄마)은 지긋지긋한 애증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5년만에 누나를 찾아온 동생이 대책도 없이 20살이나 많은 여자를 데리고 온다거나, 불치병에 걸린 엄마에게 악담을 쏟아내고 떠나가려는 딸의 모습에서, 죽도록 미워하지만 떠날 수 없고 꼴도 보기 싫지만 내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김태용 감독은 이 모습에서 멀찌감찌 한발 나아가서, 혈연가족 주변의 인물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새롭게 관계맺고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구조를 손쉽게 해체시킨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이 그렇게 망가지고나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족의 탄생>이 영화형식을 넘어 내용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은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며,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영화의 새로운 영역 개척한 <가족의 탄생>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밑도 끝도 없이 자기 것을 퍼주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언제 돌려받을지 알수 없지만, 그들은 상처를 받더라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의 탄생>은 <쇼킹 패밀리>에서 그토록 비판하고자 했던 ‘가족’을 다른 형태로 부활시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혈연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대안적 형태의 삶을 희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의 가족을 다룬 영화들이 보여주지 못한 영역들을 개척해냈다.

이것은 <쇼킹 패밀리>에서 경순 감독이 자신의 작업실이며 집에서 그의 친구이며 스탭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과 작업방식의 차이에서 그리고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만큼의 거리에서 두 영화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 현재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족의 의미와 문제점. 그리고 각자의 결대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가족의 탄생>은 지금의 극장 시스템에서 밀려난 영화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몇개의 극장에서 조차 언제 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열악한 독립영화인 <쇼킹 패밀리>는 개봉을 계획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쇼킹 패밀리>가 정말 가족들만 보는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하루 빨리 개봉해서 가족해체 열풍에 불을 당겼으면 좋겠다. <레디앙> 독자분들도 두 영화 모두 보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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