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활동 하지 마라"
    경사노위 공익안의 핵심
    노동개악 움직임 곳곳에서 드러나···노동부장관도 경영계 입장 두둔
        2019년 01월 25일 07:3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ILO 핵심협약 비준을 논의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개위) 사용자 추천 공익위원들이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의 요구안을 25일 제출했다.

    노조의 교섭요구, 파업, 조직확대 등 노조활동 전반을 전면으로 금지·제약하면서도, 노조탄압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용자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노동기본권을 국제기준에 따라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 논의가 ‘노조 말살법’ 논의가 돼버린 셈이다.

    이날 노개위에 제출된 공익위원안 마련을 위한 초안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권고했던 사항을 모두 누락한 채 경총 등 사용자단체의 요구안을 전면 반영했다.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유니온숍 조항의 삭제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쟁의행위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파업찬반투표 유효기간 등이다.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조항을 신설하는 근거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를 사용자로만 규정하는 것에 부당함을 들었다. 사용자 측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확보”한다는 관점에서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제도 신설의 필요성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조항엔 노조의 조직 확대 활동, 사용자단체에 대한 산별교섭 요구도 모두 노동자가 행하는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공익위원안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은 삭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다한 교섭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확대하고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 단체협약 해지도 가능하게 했다.

    노조의 파업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는 내용도 있다.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가 그렇다. 파업 찬반투표 요건도 크게 제약해, 가결 후 60일이 지나면 파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해당 공익위원안은 ILO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노동법 개정 전인 현행법보다도 후퇴한 내용이다. 문제는 정부가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 정부가 짊어져야 할 ILO핵심협약 비준이라는 의무를 노사 주고받기 문제 정도로 치부하며, 사용자단체의 요구가 전면 반영된 해당 공익위원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개위 회의 모습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날인 24일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노동계 요구인 단결권 문제를 해소하려면 (경영계 요구인) 교섭·쟁의행위 관련 사안도 같이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ILO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사용자단체가 요구하는 노동법 개악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국제사회는 1991년 우리 정부가 ILO에 가입하면서부터 미비준한 ILO핵심협약들의 비준을 권고해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법 개정 등을 핑계로 30년을 미뤄왔다. ILO핵심협약 비준은 양대노총을 넘어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한 국제사회의 요구라는 뜻이다.

    만약 정부가 이 안을 수용한다면 노정 갈등 격화는 물론,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정 중 경사노위 참여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한국노총이 이날 노개위 회의를 박차고 나와 사회적 대화 중단을 예고한 것을 단순 경고로 볼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관련 기사)

    당장 경사노위 참여를 결정하는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28일) 결과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날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노동계의 요구를 전달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노조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공익위원안이 노개위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민주노총 내에선 용납되기 어려운 지점이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공익위원안에 대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노조 할 생각도, 노조는 투쟁할 생각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ILO 핵심 협약 비준, 사회적 대화가 이렇게 논의된다면 차라리 모든 논의를 중단하는 것이 나을 지경”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ILO 핵심 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기본권’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노사정 협상의 대상도 아니었다”며 “스스로 공약한 ILO 협약 비준을 정부여당이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경사노위에 떠넘긴 사이, 노동개악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노개위의 노조법 개악 논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며 “애초부터 노사정 협상의 대상이 아닌 만큼 정부는 책임지고 ILO 협약을 먼저 비준하라”며 “그럴 생각이 없다면 ‘노동존중’ 수사는 걷어치우고 아예 공약 파기와 노선 전환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솔직한 행태”라고 질타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통해 “독재시대 회귀 쓰레기안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고 밝히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들의 개악안은 ILO에서 제시하는 국제기준은 둘째 치고, 노동자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 활동은 통제․탄압․처벌하고, 미약하나마 규제해왔던 사용자의 노조탄압과 노조파괴 자유는 마음껏 누리게 하겠는 범죄적 사고를 반영한 내용으로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또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탄압하고 독재시대로 부활하자는 쓰레기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논의하겠다면 이는 민주노총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것과 동일”하다며 “96년 총파업은 하늘에서 떨어져 벌어진 것이 아님을 경고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한국노총 또한 보도자료를 내고 “최종회의인 1월 31일에는 사용자 주장을 공익위원안으로 채택하려는 개악 음모를 드러내고 있다”며 “한국노총은 노조법 전면개정과 ILO협약 비준을 노동법 개악과 맞바꿀 수 없는 사안으로서 사회적 대화 중단을 경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달 말 긴급 상임집행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 중단을 논의할 계획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