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성폭력·폭력 문제
‘주류권력 인적청산 핵심’
“메달지상주의 개혁···10년간 법·제도 작동하지 않은 건 사람 문제”
    2019년 01월 23일 10: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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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체육계 성폭력·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선 체육계 성폭력 근절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전수조사, 처벌강화, 신고센터 운영 등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대대적인 체육개혁 없이는 언제든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여성위원회 주최로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체육계 성폭력의 구조적 원인과 대처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체육개혁의 핵심은, 체육계 주류권력에 대한 인적청산과 선수의 인권보다 금메달을 더 중시하는 메달지상주의가 뿌리내린 체육계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따로 떼어서 볼 수 없는 지점이 있다. 한국 체육계 주류 권력이 금메달을 위해서라면 선수의 인권은 제쳐둬도 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고, 이런 인식이 체육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계 주류권력의 교체, 즉 인적청산이 중요하게 제기되는 이유다.

토론회 모습(사진=유하라)

권력의 정점은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체육개혁의 시작은 주류권력 교체”

내부 자정작용을 담당해야 할 스포츠인권센터 등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된 상태다.

전 테니스 선수인 김은희 코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은희 코치는 10살 때 코치에게 1년 6개월간 성폭행을 당하고 이후 스포츠인권센터에 신고했으나 스포츠인권센터는 이 사건을 테니스협회로 되돌려 보냈다.

통계 수치를 봐도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선수들을 위한 인권센터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는 1년간 국가대표 선수의 1.7%(10명), 일반 선수의 5.4%(58명), 총 68명의 선수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스포츠인권센터 신고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4년~2018년 동안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접수한 사건 수는 총 27건, 연평균 5.4건에 불과하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스포츠인권센터가 선수들의 신뢰를 전혀 받지 못하는 무용지물의 단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통계”라고 짚었다.

폐쇄적인 환경의 체육계 안에서 피해자가 용기를 내 신고를 해도 가해자 처벌은 요원하다. 스포츠인권센터에 신고된 전체 113건의 폭력 및 성폭력 사건 중 징계 처분을 받은 사건의 비율은 65%, 영구제명 또는 자격정지 5년 이상의 중징계가 이뤄진 사건은 각각 11건(9.7%), 8건(7.1%)뿐이었다.

이렇게까지 한국 체육계가 망가진 이유를 발제자인 스포츠 평론가인 최동호 소장은 체육계 주류권력에서 찾았다. 최 소장은 “체육개혁의 시작이자 완결점은 체육계 주류권력의 교체”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최 소장은 “법과 제도, 시스템의 정비로 문제의 대책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10년간) 똑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정비된) 법과 제도마저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문제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체육계 주류권력, 금메달 위해 선수 인권 유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최 소장은 우리나라 체육계 권력의 정점으로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을 지목하며 “(이기흥 회장과 같은) 사람들이 ‘경제 개발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은 유보할 수 있다’는 박정희 시대의 유해한 논리를 체육계에 그대로 가져왔고, 올림픽 메달을 위해 선수의 인권은 유보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성립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시대에 가르치고 배운 사람들이 체육계 주류와 권력으로 행사하고 있다. 인적청산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선 체육계의 만연한 성폭력·폭력 문제는 덮어둘 수 있다는 문화가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체육계 전반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주류권력으로 인해 스포츠정신이 완전히 제거된 채 메달지상주의만 남은 현재의 대한체육회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최 소장의 지적이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 10년,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기력만 남아

10년 전인 2008년에도 체육계 성폭력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KBS는 피해 선수들과 가족들의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인터뷰 등을 보도했었다. 당시에도 정부는 체육계 성폭력·폭력을 근절할 대책을 내놨지만 지난 10년간 선수들은 여전히 같은 문제를 폭로하며 대한체육회가 아닌, 여론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KBS는 심석희 선수의 폭로 이후 당시 같은 문제를 담은 다큐멘터리 재방영을 계획했으나 결국 방송 계획을 취소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는 당시 증언을 했던 피해 선수들에게 재방영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피해 선수에게 “방송을 안 해주셨으면 한다.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정 기자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2008년 당시 상황과 전부 똑같다”며 “문체부, 교육부, 인권위 모두가 (10년 전과) 똑같은 얘기를 하고 똑같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 당시에도 1년간 대책위를 꾸려서 활동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도 선수의 인권과 금메달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을 들었는데, 10년 만에 또 똑같은 질문에 마주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10년 뒤에도 똑같은 질문과 답변을 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심상정 의원은 이번 사건을 “체육계의 ‘도가니’와 같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심 의원은 “2008년도 초선의원 시절에 박찬숙 전 농구 국가대표 감독과 함께 당시 체육계의 성폭력, 성차별 문제와 싸워왔다. 2013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던 일”이라며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계속 누적되어온 것은 제도가 없거나 개선방안이 없어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과주의에 집착하고 우리 선수들을 도구화하며,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며 체육계의 기득권을 향유하는 기득권 구조가 문제, 즉 사람이 문제”라며 “아주 단호하고 과감한 인적 청산 없이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것이 저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정 기자는 체육계 성폭력·폭력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 학교체육의 정상화를 꼽았다. 학생선수가 전혀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찾겠다고 하는데, 그 근본적 대책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며 “70년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전체 학생의 1%도 되지 않은 학생 선수는 운동기계로, 99%의 학생은 입시기계로 길렀다. 이 같은 학교 체육의 비정상적 운영으로 문제가 곪아왔다. ‘학교체육의 정상화’라는 근본적 대책 말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정 기자는 “최저학력제도를 통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도록 하는 학교체육진흥법이 있고, 이를 운영할 학교체육진흥회도 출범했다. 대학 입시문제 해결을 위한 기구도 출범한 상태다. 이 시스템 만드는 데에 10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더 이상 헤매지 말고 학교체육진흥법에 근거한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개혁 대상인 대한체육회에 ‘개혁의 칼’ 쥐어주나
과거 대책 답습하는 정부의 무능 비판 잇따라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바뀐 것이 없다.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폭로로 어렵게 마련된 체육개혁의 기회가 이번에도 문체부의 잘못된 대처로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 인권 침해 예방을 위한 정책 제안’으로 출발한 선수 인권문제와 관련한 대책들은 이후 인권위(2011년), 문광부·교육인적자원부·대한체육회(2008년), 문체부(2019년)의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최 소장은 “체육계 성폭력 방지 대책이 지난 10여년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것은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선수의 인권이 짓밟힌 책임에 문체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석희 선수 사건으로 이기흥 회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 현 시점에도 문체부가 방관자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6일 문체부는 이기흥 회장 사퇴와 관련한 질문에서 대한체육회가 국가올림픽위원회 지위와 기타 공공기관이라는 지위 때문에 정부가 이기흥 회장 사퇴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 이후 이기흥 회장은 빙산연맹을 대한체육회에서 퇴출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최 소장은 “(정부의 발표로) 개혁의 대상인 대한체육회가 개혁의 주체로 떠올랐다”며 “인권위에서 방안을 마련하고, 문체부를 비롯한 정부기관이 합동으로 대책들도 결국은 대한체육회가 집행을 해야 하는 정책들이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칼을 휘두르게 되는 꼴이다. 여태 보아온 성폭력 등 체육계 문제가 답습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폭력과 관련한 정부의 실현 가능한 대책안은 내달부터 쏟아질 것이고, 적어도 성폭력과 폭력으로 인한 선수들과 국민들의 상처는 아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주류권력이 교체되는 체육개혁이 이뤄지지 않고선 언젠가는 재발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10년째 반복하고 있는 정부의 대책, 무능한 대처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정재용 기자는 “인권위가 전수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전수조사로 실태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성폭력은 전수조사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10년 전 방송에서도 음성변조 이상으로 음성 대역자까지 쓴다고 해도 (피해선수들이) 안 된다고 했었다”며 “전수조사 한다고 나서는, 국가가 이 문제 대처하는 방식이 너무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주무부처인) 문체부 장관은 보이지도 않고 체육국장이 나와선 ‘대한체육회는 정치적으로 건들면 안 된다’, ‘손댈 수 없다’고 하는 정부에 뭘 기대할 수 있겠나. 문체부와 체육회는 똑같은 책임선상에 있다”고 질타했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당면한 사건들이 합리적인 방안으로 처리하고 처벌하려면 내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의 증언이 중요하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그런 목소리들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고 당연히 정책에 반영되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 집행위원은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선수들이 목소리 낼 수 있도록 ‘2차 가해에 대해 처벌을 분명히 하고, 피해 선수들을 보호하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이라도 해달라”며 “그렇지 않으면 피해 선수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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