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한기에 공부를 하다
    [낭만파 농부] 네 번째 농한기 강좌
        2019년 01월 22일 11: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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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일 뒤 고산권벼농사두레가 마련한 <농한기 강좌>가 시작된다.

    농한기와 강좌, 얼핏 생뚱맞은 것 같은데 한 번 더 생각하면 참 괜찮은 조합일 것이다. 한갓지게 노는 것과 공부는 일단 형용모순 관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농한기라고 빈둥빈둥 놀지만 말고 뭐라도 배우면 좋지 않은가!’ 이러면 또 착착 감겨온다.

    실은 주먹구구 되는 대로 농사를 지을 게 아니라 근본을 갖춰 본때 있게 해보자는 뜻으로 시작한 일이다. 뭐, 거창하게 ‘과학 영농’을 들먹일 만큼은 아니고, 그럴 주제도 못 되는 농사 규모지만 적어도 알고는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벌써 5년 전 일이고, 강좌로는 이번이 네 번째다.

    올해 강좌의 첫 주제는 ‘쌀의 인문학’, ‘우리가 몰랐던 벼농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벼농사개론 쯤이 되겠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나 잘 못 알려진 내용을 다루자는 게 기획취지다. 어찌 보면 네 차례나 진행된 농사 강좌치고는 좀 가벼워 보이고, 퇴행적인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번 강좌가 손수 벼농사를 짓는 정회원보다는 뜻을 함께 하는 준회원이나 동네 사람을 겨냥한 대중강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격주로 다섯 차례 열리는 이번 강좌의 나머지 네 주제를 봐도 그렇다.

    로컬푸드만 있냐? 로컬영화도 있다!-우리동네 영화이야기.
    존중감, 그리고 평등 감수성 익히기.
    태극권 맛보기.
    퍼머컬처 농장설계.

    강사로 나서는 전문가들은 모두가 벼농사두레 회원들. 이렇게 보자면 우리 벼농사두레의 짱짱한 인재풀(?)을 가동해 지역사회에 재능을 기부한다는 것이 이번 강좌의 컨셉인 셈이다.

    사실 농한기 강좌를 처음 시작할 때는 벼농사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핵심취지였더랬다. 그 점에서 보면 과거 세 차례의 강좌로도 다룰 건 거의 다뤘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첫해(2015년)는 흙, 물, 씨 같은 키워드를 주제로 (벼)농사의 기초를 익혔고, 특히 우리 전통농업과 바이오다이내믹 같은 새로운 농법을 버무려 생태농업을 배우기도 했다.

    이듬해의 두 번째 강좌에서는 쌀과 벼농사의 가치, 유기농산물 유통망 구축방안, 농사꾼 건강관리와 건강 먹거리, 벼 자연재배의 원리, 농지확보 방안과 놀이판 짜기, 벼농사 협업체계 구축방안 같은 내용으로 범위를 넓히는 한편 현실의 과제도 함께 다뤘다.

    그 다음해는 분야별로 외부전문가를 불러 농업-농촌의 현실과 전망, 유기농 벼농사 한해살이, 쌀 수확 다음공정-건조 도정 가공 유통, 유기농 벼농사 제도와 정책, 유기농 채소농사, 여성농민의 노동과 삶, 토종작물과 자연농, 집락영농(공동체농사) 원리와 전망 같은 주제를 다루며 깊이를 더했다.

    이렇게 되돌아보니 새삼 가지가지 했구나 싶어진다. 물론 세상은 끝없이 변화 발전하고, 농사를 둘러싼 환경도 그에 따라 바뀌어 갈 수밖에 없으니 공부 또한 끝이 있을 수 없겠다. 그래도 학위 딸 것도 아니고, 시험 볼 것도 아닌 마당에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궁금해 할 법한 한 가지, 저리 다양한 공부(강좌) 주제는 어디서 끌어왔을까. 별거 아니다. 회원들이 궁금해 하는 것,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모은 것이다. 강좌에 들어가기 전에 해마다 ‘연찬회’라는 이름으로 한해를 평가하고 계획을 세우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강좌 주제는 이 자리에서 정해진다.

    올해는 그 연찬회가 서해 무창포에서 펼쳐졌다. 누군가는 필시 연찬회를 핑계로 겨울바다 나들이 다녀왔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요즘 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마당이니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굳이 그걸 부인할 생각도 없다. 그 연찬이라는 것이 1박2일 일정 가운데 고작 한 두 시간에 지나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수산시장 구경하다가 횟감을 골라 활어회 떠서 저녁을 먹고, 어둠이 내린 해변 모래사장을 거닐다가 조개구이에 소주 한 잔. 뻔한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두 시간의 연찬만은 저마다 앞 다퉈 강좌 주제를 제안했다. 그 하나하나가 버리기 아까운 것이라 여기에 소개해둔다.

    영화상영(시골살이, 농사 등을 주제로 한). 성평등 교육. 퍼머컬처 원리의 텃밭 디자인과 경영. ‘땅과 노동’을 주제로 한 노래 배우기. 고산 이야기(역사와 유래, 풍물 등). 태극권 또는 요가 배워보기. 요리강좌. 복고풍 야유회(음악 틀고 춤추는). 라이프스토리 나눔. 록음악의 역사. 뱅쇼(와인+과일 음료) 만들어보기. 다들 눈치를 챘겠지만 이번 강좌 주제는 이 가운데서 선택됐다.

    그나저나 첫 강의는 주제로 봐서 마땅히 벼농사두레 대표가 나서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발표자로 선정됐다. 반론도 궁하고, 마땅한 강사를 찾기도 쉽지 않을 듯하여 그러마고 했다. 처음도 끝도 없는 그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태산 같은 문헌자료를 뒤지고 있자니 후회막심이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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