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비꽃의 이름 유래기①
    [푸른솔의 식물생태] 일본 이름??
        2019년 01월 18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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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푸른솔의 식물생태] “멀꿀과 옛사람의 정취”

    1. 글을 시작하며

    제비꽃<Viola mandshurica W.Becker(1917)>은 제비꽃과 제비꽃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얕은 산지에 들에서 자라며 4~5월에 보라색 꽃이 핀다. ​속명 Viola는 라틴어로 보라색 꽃을 뜻하고 최초 지칭된 제비꽃 종류가 보라색이어서 유래한 이름이다. 종소명 mandshurica는 ‘만주 지방의’이라는 뜻으로 최초 발견지를 의미한다. 제비꽃은 식물분류학적으로는 Viola mandshurica W.Becker(1917)라는 특정 종을 지칭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제비꽃과 제비꽃속의 식물(Viola)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중국명은 東北蓳菜(dong bei jin cai)인데, 중국 동북 지방에 분포하는 제비꽃(蓳菜) 종류라는 뜻이다. 중국명 菫菜(근채)의 ‘菫’은 ‘堇’(근)에서 전화된 것으로 옛적에는 투구꽃속 식물(Aconitum)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제비꽃속 식물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명 스미레(スミレ, 菫)는 스미이레(すみいれ)의 약자로 목수가 사용하는 먹줄통(墨入れ)을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 Makino(牧野富太郞) 이래의 일반적인 견해이나 그에 맞는 고어를 찾기 어려워 여러 논란이 있고 확정된 견해는 없는 모양이다.

    사진1. 제비꽃, 2013/4/30/ 경기도 청계산(사진 촬영자 : 숲속여행)

    국명 제비꽃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와 관련하여 제비꽃의 유래를 일본명에 잇닿아(?) 있는 이름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제비와 꽃의 합성어이다. ‘꽃이 물 찬 제비와 같이 예쁘다’는 뜻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정서에 그 유래가 잇닿아 있어 보인다. 본래 고유명칭은 오랑캐꽃이다.”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 2』(자연과 생태, 2016) 223쪽].

    ​정말 그러한가?

    2. 제비꽃이라는 명칭의 역사에 대한 고찰

    (1) 한국식물생태보감의 근거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일본 정서에 잇닿아 있다고 보는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제비꽃 명칭의 역사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을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 우리나라 전역에 흔하게 분포하는 여러해살이 제비꽃이지만, 19세기 이전 고전에는 우리 고유말 이름이나 자원식물로서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 제비꽃이라는 한글명은 1937년에 처음으로 불쑥 등장한다…(중략)…결국 제비꽃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이후에 생겼고, 그 이전까지는 오랑캐꽃이었다.. [이상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 2』(자연과 생태, 2016) 224~225쪽]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는 “제비꽃이라는 한글명은 1937년에 처음으로 불쑥 등장한다”는 것이 그 이름이 일본의 정서에 잇닿아 있다는 주장의 한 논거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1937년은 일제강점기하에서 조선식물향명집이 발간된 해이므로, 조선식물향명집에 제비꽃이 최초 기록되었다는 것이 제비꽃이 일본 정서에 잇닿아 있다고 보는 하나의 근거인 셈이다.

    사진2.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 『조선식물향명집』(조선박물연구회, 1937), 118쪽

    조선식물향명집 서두의 ‘사정요지’는 “3. 지방에 따라 동일 식물에 여러 가지 방언이 있는 것…(중략)…에는 그 식물 또는 그 방언에 가장 적합하고 보편성이 있는 것을 대표로 채용하고 기타는 ( )”로 표시한다고 하였다. 이 사정요지에 따라 위 조선식물향명집의 기록을 해석하면, 당시 조선명으로 오랑캐꽃, 장수꽃, 씨름꽃과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그 중 오랑캐꽃이 적합하고 보편성이 있는 이름이었고, 제비꽃은 지방 방언으로 존재하는 명칭이기는 하였으나 그다지 보편성 있는 이름으로 아니었던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조선식물향명집』(1937)은 그 사정요지를 통하여 당시 조선명을 어떤 방식을 기록하였는지를 명백히 밝혀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는 이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기록된 무수한 이름의 유래를 일본명 또는 일본 정서에서 찾고 있으므로 『조선식물향명집』(1937)을 그저 한반도 분포 식물의 한국명을 왜곡시킨 저작물에 불과하다고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 보다 타당하고 신뢰성이 있는 주장인지를 살펴보자.

    (2) 제비꽃은 1937년에 처음으로 불쑥 등장한 이름?

    사진3. 해주 흰솔, 『봄 이수(二首)』(동아일보, 1931. 5. 31.), 5쪽

    인터넷에서 제비꽃에 대한 뉴스기사를 검색하면 『조선식물향명집』(1937)이 저술되기 이전인 1931. 5. 31.자 동아일보 기사에 <사진3>의 ‘시'(詩)가 실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제비붓꽃<Iris laevigata Fisch.(1839)>에 한자명 ‘燕子花'(연자화)를 사용하였고, 이것이 우리에게 전래되어 이를 제비꽃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으므로 제비꽃은 ‘燕子花'(연자화)를 지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비붓꽃은 6~7월에 개화하는 습지식물이므로, 위 글은 봄에 문들네꽃(민들레꽃)과 함께 어우러져 들에 핀 꽃을 말하고 있으므로 제비꽃은 제비붓꽃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달리 봄에 민들레와 함께 꽃을 피우는 식물로 제비꽃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식물은 없으므로, 이 시에서 제비꽃은 제비꽃 또는 제비꽃과 유사한 제비꽃속 식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왕 옛 신문기사를 검색하였으니, 또 다른 옛 신문기사를 하나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 역시 『조선식물향명집』(1937)이 저술되기 이전인 1934. 6. 9.자 기사이다. 다만 아래 동요의 출처는 동아일보가 아닌 조선일보이다.

    냇물 곁
    언덕 위에 제비꽃 하나
    물새 보고 방긋 웃은 제비꽃 하나
    고운 얼굴 물속에 비치어 보며
    한들한들 춤추는 제비꽃 하나[문일평,『燕子花(제비꽃)』(조선일보, 1934. 6.9.자) 기사 참조]

    이 글은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었던 湖巖(호암) 문일평(1888∼1939) 선생의 1934. 6. 9.자 조선일보에 花下漫筆(화하만필)이라는 글에 실린 당시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의 가사이다. 문일평 선생이 언급한 위 동요에서 제비꽃은 현재의 제비붓꽃<Iris laevigata Fisch.(1839)>에 대한 한자명 燕子花(연자화)에 대한 명칭으로 현재의 제비붓꽃에 관한 내용을 실은 것이므로 현재의 제비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식물을 지칭하는 명칭이기는 하였지만, 우리말 이름을 문일평 선생이 기록한 것에 비추어 제비꽃이라는 명칭이 당시 조선인들이 사용하였던 식물 명칭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제비꽃은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처음으로 불쑥 등장하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1931. 5. 31.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하나의 식물명칭에 여러 가지 방언이 있는 경우 대표적이지 않은 식물명은 ( )로 병기한다는 사정요지에 취지에 맞게 『조선식물향명집』은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기록하였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아직 제비꽃이 일본 정서에 잇닿아(?) 있는 이름이라는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반박되지 않았다. 다만 『조선식물향명집』(1937)이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등재한 것이 아닌 것은 밝혀졌고,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은 당시(!) 민족지로 이름이 드높았던 동아일보와 역사학자이자 문화운동으로 독립을 꿈꾸었던 호암 문일평 선생이었므로,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가 지적하는 일본 정서와 잇닿게(?) 하였다면, 그 잇닿게 한 주범은 동아일보와 문일평 선생이라는 점이다.

    동아일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일평 선생은 역사 연구의 최종 결집으로 일원적 정신으로 ‘조선심(朝鮮心)’을 내세웠고 ‘조선심’의 결정(結晶)을 한글로 보았으며 ‘조선심’은 세종에 의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비록 대상은 달랐지만 일본 정서와 잇닿아(?) 있는 이름으로 식물명칭을 정하고 일본 정서에 잇닿아(?) 있는 동요까지 소개하면서 글을 썼을까?

    이왕 옛 신문기사와 논하였으므로 조선식물향명집(1937) 이전에 ‘씨름꽃’이라는 이름 역시 오랑캐꽃의 다른 이름으로 기록한 것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여 두도록 하자.

    사진4. 丁友海, 『幼年童話 꽃쟁이(下)』(동아일보, 1936. 6. 9.), 3쪽

    ​(3) 19세기 이전의 본래 고유명칭은 오랑캐꽃?

    – 19세기 이전 고전에는 우리 고유말 이름이나 자원식물로서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 그 이전 1921년(1922년의 오기로 보인다-필자 주) 모리(森)의 기록에는 오랑캐꽃이라는 명칭만 나온다…(중략)…이곳은(만주 지역)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여러 오랑캐 땅 가운데 한 곳이다. 올량합화(兀良哈花)[村川, 1932; 村川은 村田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 오기로 보인다-필자 주]라는 한자명도 그런 사실과 일치한다.

    – 결국 제비꽃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이후에 생겼고, 그 이전까지는 오랑캐꽃이었다.[이상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 2』(자연과 생태, 2016) 224~225쪽]

    이것이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가 “본래 고유 명칭”이 오랑캐꽃이라고 보는 또 다른 근거들이다. 그런데 짧은 몇 문단에 나오는 위 글은 정상적인 한국어로는 도무지 해석하기가 어렵다. 19세기 이전 고전에는 우리 고유말 이름이 없다고 하면서,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이 최초 기록된 것은 20세기인 1922년 일본인 모리 다메조(森爲三, 1884~1962)에 의하여 저술된 『조선식물명휘』라고 하면서도, 다시 19세기 이전까지 이름은 ‘오랑캐꽃’이었다고 하니 100년 시간이 영문도 없이 뒤죽박죽이 된다.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제비꽃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최초 기록되었고, 오랑캐꽃은 1921년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에 기록되었다고 하므로, 그 주장이 맞다고 가정을 하면, 겨우 16년 차이로 등장하는 이름인데 어떻게 100년의 간격이 생긴다는 것인가? 또한 16년의 시간 차이만으로 하나는 본래 고유명칭이 되고 다른 하나는 일본 정서에 잇닿아 있는 이름이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는 18세기 또는 19세기에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을 기록한 옛 문헌이 존재한다는 출처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만의 시간을 측정하는 셈법이 별도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상적인 한국어로는 이해가 어려우므로 일단 차치해 두자. 일제강점기 이전에 제비꽃을 기록하였거나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 동의보감(허준, 1613): 紫花地丁
    – 의림촬요(양해수, 1676): 紫花地丁
    – 순암집(안정복, 18세기 말엽) : 菫菜​
    – 마과회통(정약용, 1798): 紫花地丁
    – 광재물보(저자미상, 19세기 초엽) : ​紫花地丁/米布袋
    – 물명고(유희, 1824) : 菫菜, 紫花地丁
    – 임원경제지(서유구, 1827) : 菫菫菜
    –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 19세기 중반) : 如意草
    – 한불자전(F.C. Ridel , 1880): 오랑캐ㅅ곳(O-RANG-HKAI-KKOT)

    한글로 된 고유 명칭은 파리외방전교회(Les 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 소속 F.C. Ridel 신부가 프랑스 선교사들의 조선 선교를 위한 조선어 학습 교육 목적에서 1880년에 저술한 『한불자전』에 ‘오랑캐ㅅ곳'(오랑캐꽃)으로 기록한 것이 최초로 보인다. 그런데 한불자전은 ‘오랑캐ㅅ곳’에 대하여 “Esp. de fleurs roses un peu semblables à l’églantier”(들장미를 약간 닮은 장미꽃의 종류)라고 기록하여 있어 현재의 제비꽃 종류를 지칭하는지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근거로 19세기 이전의 본래 고유명칭이 오랑캐꽃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의 오랑캐꽃의 명칭에 해당하는 식물명이 19세기 말엽에 존재하기는 하였다.

    그리고 20세기로 넘어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한반도 식물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와 동시에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던 명칭들에 대한 조사작업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 내용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사진5.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 『제주도 및 완도 식물조사보고서』(조선총독부, 1914), 65쪽

    ​현재 기록에 남아 있는 일본 또는 일본인에 의하여 한반도 식물을 조사한 기록 중에 제비꽃(V. mandshurica; 당시 학명 V. chinensis)에 대하여 가장 빠른 것은,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가 주장하듯이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1922)가 아니다.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동경제대 교수가 되는 나카이 다케노신이 제주도와 완도의 식물을 탐사하고 남긴 『제주도 및 완도 식물조사보고서』(1914)에는 “マルマヂャックル”이라는 조선명을 일본명 스미레(スミレ)에 병기하여 기록되어 있다. 일본어 가타가나로 표기된 “マルマヂャックル”을 발음대로 옮겨 보면 ‘말마장쿨’이고 이것은 현재 제주도에서 제비꽃을 부르는 명칭이다.

    사진6.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 1882~1976),『조선의 구황식물』(조선농회, 1919), 21쪽

    수원농림학교(현 서울대 농대)의 교수를 역임한 우에키 호미키가 1919년 저술한 『조선의 구황식물』은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보다 앞서 ‘오랑ㅋ.ㅣㅅ곳'(오랑캐꽃)을 기록하면서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사용하는 방언이라고 표시하였다. 또한 경북 지방에서는 ‘알ㅅ곳'(알꽃)이라는 명칭으로 불렀고, 경남 하동에서는 ‘안즌ㅂ.ㅣㅇ이ㅅ 곳'(이하 “안즌뱅이꽃”)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가 주장하듯이 오랑캐꽃이 본래의 명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는 전국적인 식물과 방언조사가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지금과 같은 표준어나 식물명칭에 대한 추천명 등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매스미디어가 발달하여 전국적으로는 식물명이 통일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랑캐꽃을 경기도 및 강원의 방언이라고 기재한 것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제비꽃 종류를 지칭하는 여러 이름 중에 하나이었고 각 지역마다 달리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르게 혼재되어 있었다.

    사진7. 모리 다메조(森爲三), 『조선식물명휘』(조선총독부, 1922), 254쪽.

    <사진7>은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가 본래 고유명칭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1922)의 제비꽃에 대한 기록이다. 한글명으로 앞서서 『조선의 구황식물』에 기록되었던 ‘오랑ㅋ.ㅣㅅ곳'(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한자어 紫花地丁(자화지정)에 대한 한글 발음 ‘자화디졍’이 기록되었는데 이것을 보면 당시 한자명을 한글화하여 부르기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식물명휘』에 기록된 한자명 蒲公英(포공영)은 흔히 민들레를 지칭하는 이름인데, 아마도 제비꽃이나 민들레를 모두 ‘앉은뱅이꽃’이라고도 하였기 때문에 이것에 기인하여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조선의 구황식물』 중 ‘안즌뱅이꽃’ 참조- 그러나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는 제비꽃은 앉은뱅이 축에도 들지 못한다고 하여 제비꽃을 방언으로 앉은뱅이꽃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조차 부정하고 있다-필자 주).

    어쨌든 19세기 이전의 문헌에서 현재의 제비꽃 또는 제비꽃 종류를 지칭하는지 불명확하기는 하지만 『한불자전』에서 ‘오랑캐ㅅ곳'(오랑캐꽃)이 기록되었고, 일제강점기에 기록된 문헌에 따르면 제비꽃은 말마장쿨, 알꽃, 오랑캐꽃, 안즌뱅이꽃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오랑캐꽃은 그 여러 이름의 하나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옛 문헌과 일제강점기의 일본인이 기록한 문헌에 제비꽃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제비꽃은 일본의 정서에 잇닿아 있는 이름이 되는 것일까?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는 “우리나라 식물이름의 혼동과 정체성을 잃게 된 비탄은 20세기 초 일제의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에서 그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일본식 이름에 끼워 맞춘 식물명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형편이다”라고 한 바 있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자연과 생태, 2013), 785쪽]. 조선식물명휘에 기록된 것과 같은 이름이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되면 일본식 이름에 끼워 맞춘 식물명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것이 되고, 조선식물명휘와 다른 이름이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되면 그 이름은 일본 정서에 잇닿아 있는 명칭이 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또는 일본인에 의하여 이루어진 식물과 식물의 조선명에 대한 조사는 대개 식민 지배를 위한 사실 조사의 성격을 가지거나 식물학을 공부한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향토성 연구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정, 『식민지 조선의 식물연구(1910-1945)』(서울대학교 박사논문, 2012) 참조]. 그러나 이러한 조사와 연구는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본인에 의하여 수행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오류가 있었다. 『조선식물향명집』도 그 序(서)에서 “조선어에 생소한 내외선학들의 오전오기도 不少(불소)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 또는 일본인이 수행한 조사 기록의 오류를 시정하는 방법은 다양한 문헌에 의한 교차 조사, 일본명과 외국명과의 상관관계 검토 그리고 잔존하는 방언과의 대조 등 다양한 자료와 내용에 근거하여 종합적으로 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 번은 식물명의 혼동과 정체성을 잃게 한 주범으로 보았다가 또 한 번은 본래 고유명칭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그때그때의 주관적인 잣대로는 그 오류가 시정되거나 극복될 수 없다. 오히려 그 결과는 멀쩡한 우리 이름을 일본명으로 둔갑시키는 왜곡을 반복할 뿐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또는 일본인의 문헌이라고 하여 당시의 조선명을 정확히 제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실제 사용명의 누락이 있을 수 있다. 제비꽃은 『조선식물향명집』에서 기록하기 이전에 동아일보에서 그리고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문일평 선생의 글에도 나오는 이름이었다는 점을 다시 기억하자. 그리고 현재에도 남아 있는 지역 방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4) 방언조사에서 확인되는 제비꽃에 대한 이름들

    사진8. 국립수목원편, 『‘한국의 민속식물/전통지식과 이용』, 국립수목원(증보판, 2018), 794쪽

    사진9.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우리말샘 중 “제비꽃” 부분

    <사진8>은 국립수목원이 조사한 제비꽃에 대한 지방명을 조사한 것이고, 사진9는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제비꽃에 대한 각 지역의 방언에 대한 기록이다. 이 지방명(방언) 조사기록 중 특이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제비꽃은 제비취, 제비나물, 지비추리, 제비꿀, 제비플, 지비꽃 등으로 하여 그 형태가 지방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 조선식물향명집의 식물명 중 ( )에 병기되었던 장수꽃과 씨름꽃도 방언에서 현재에도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것이 모두 확인되고 있다.

    – 나카이 다케노신이 1914년 기록한 ‘말마장쿨’은 제주방언으로, 우에키 호미키가 1919년 기록한 안즌뱅이꽃도 여러 지역방언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 제비꽃과 그 유사한 이름이 오랑캐꽃보다 훨씬 더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제비꽃과 그 유사명 : 13회, 오랑캐꽃 또는 그 유사명 : 3회).

    먼저,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 이름이 인위적으로 창출된 이름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각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불리웠던 이름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조선식물향명집』도 제비꽃을 기록하였으나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이름은 ‘오랑캐꽃’으로 보았다(위 사진2 참조). 제비꽃을 추천명으로 한 것은 조선생물연구회라는 민간단체가 주도하여 발간한 『조선식물명집』(1949)이다(아래 사진 10 참조).

    그 비슷한 시기에 공적 기관인 문교부에 의하여 출간된 박만규, 『우리나라 식물명감』(1949)은 여전히 지배적인 조선명을 ‘오랑캐꽃’으로 하였고, 문교부 등 공식기관에서 제비꽃을 추천명으로 채택한 것은 1965년에 편찬된 『한국동식물도감 제5권 식물편』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공적기관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은 1965년에야 비로소 가능했고 이때에는 이미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시기이므로 지방명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고 그렇게 정착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은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인위적으로 창출된 명칭으로 보기 어렵게 한다,

    ​둘째, 제비꽃과 더불어 조선식물향명집에 ( )안에 기록된 장수꽃과 씨름꽃의 방언이 여전히 발견된다는 것은 『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에서 “3. 지방에 따라 동일 식물에 여러 가지 방언이 있는 것…(중략)…에는 그 식물 또는 그 방언에 가장 적합하고 보편성이 있는 것을 대표로 채용하고 기타는 ( )”로 한 것이 당시의 언어 사용의 현실과 부합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 또한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장수꽃 및 씨름꽃과 함께 ( )로 표시되었던 제비꽃 역시 당시 사용하였던 방언이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셋째, 『조선식물명휘』(1922) 이전에 조선명을 기록한 나카이 다케노신의 1914년의 ‘말마장쿨’과 우에키 호미키가 기록한 1919년의 ‘안즌뱅이꽃’이 방언으로 지금도 여전히 지역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오랑캐꽃’이 본래(?)의 명칭이 아니라 여러 방언 중의 하나로 본 우에키 호미키가 저술한 『조선의 구황식물』(1919)의 기록이 실제 당시 조선의 언어 사용의 현실과 부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만 『조선의 구황식물』에 기록된 “알꽃”은 현재의 방언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는데 최초 잘못 채록되었거나, 채록 이후에 사용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넷째, 제비꽃과 그 유사한 형태의 명칭이 오랑캐꽃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는 것은 ‘오랑캐꽃’이 실제 지방에서 사용하였던 고유명칭이기는 하지만 처음 또는 어느 시기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은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조선식물향명집』(1937)은 오랑캐꽃과 제비꽃을 모두 기록하였으나 오랑캐꽃을 추천명으로 하였고, 『조선식물명집』(1949)은 제비꽃과 오랑캐꽃을 모두 기록하였으나 제비꽃을 추천명으로 하였다. 이것과 위 방언 조사의 결과를 대조하여 보면 『조선식물명집』(1949)의 기록이 현실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에 비추어 보면 제비꽃이라는 명칭을 실제 조선인 사이에 보편성이 있는 대표적인 이름으로 사용하였던 시기는 1949년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10. 정태현·도봉섭·심학진, 『조선식물명집』(조선생물연구회, 1949), 86쪽

    (5) 소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제비꽃이라는 이름은 당시 일간신문에 나타나므로 『조선식물향명집』에 최초로 불쑥 등장한 이름이라는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제비꽃은 문화운동으로 독립을 꿈꾸었던 역사학자 문일평 선생조차 사용하였던 이름이라는 점에서 일본 정서에 잇닿아 있다고 보는 것은 근거가 없다.

    – 제비꽃은 문헌상 기록된 역사는 길지 않지만, 최근의 방언조사에 비추어 실제 민간에서 조선인이 널리 사용하였던 이름으로 추론할 수 있다.

    – 옛문헌, 일제강점기의 문헌과 최근의 방언 조사 기록에 근거할 때, 오랑캐꽃은 제비꽃에 대한 여러 명칭 하나이며 본래 명칭으로 볼 근거는 없다.

    한편 제비꽃에 대한 일본명 스미레(スミレ, 菫)는 제비(燕)라는 의미가 없고, 제비(燕)에 대한 일본어 쯔바메(ツバメ) 또는 쯔바쿠라(ツバクラ) 역시 우리말 제비와는 어형과 발음에서 현저히 달라 식물명칭 자체로 일본명 또는 일본어와 연관을 찾기도 어렵다.

    * 이하의 내용은 ‘제비꽃의 이름 유래기(2)”에서 계속됨

    3. 제비꽃을 둘러싼 민속문화

    4. 제비꽃의 이름 유래기

    (1) 씨름꽃의 유래
    (2) 오랑캐꽃과 장수꽃의 유래
    (3) 제비꽃의 유래

    5.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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