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물 안' 활동가들에게 들려주는 충고
    By tathata
        2006년 06월 06일 1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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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 마창노련」의 저자 김하경 씨가 소설가로 돌아왔다. 소설집 「속된 인생」(삶이 보이는 창)을 들고 다시 작가의 길에 발을 내딛은 그는 이 소설집에서 철거민과 노동운동가, 그리고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면서 이 시대의 운동을 향해 화두를 던진다.

       
     
     ▲ 김하경 씨의 소설집 「속된 인생」
     

    운동을 하면 할수록 인간관계나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좁아지는 것 같았다. 조급해지고, 각박해져갔다. 심지어는 노동조합이 세상 전부인 것 같고, 세상이 노동조합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부정하면 화가 났고 그런 사람들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노동조합 이외의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노동조합 하나에만 빠져 산 것이다. 이런 걸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하는 걸까? (「젊은 날의 선택」, 151쪽)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외면 받는 지금의 현실에서 한 노동운동가의 자기 고백이다. 창원의 ‘일산중공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오직 노동조합만을 위해 앞으로 달려온 건이가 해고되고, 주위의 동료들과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동지의 정’보다 ‘차이의 벽’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주인공들은 노동조합의 전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믿었던 동료에게서는 하청업체 사장을 시켜준다는 회사의 유인책에 넘어가 회사 부품을 몰래 빼내는 배신마저 당한다.

    운동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에 빠져 살지도 않으니 말이다. 아니 그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산다고나 할까? (「젊은 날의 선택」,150쪽)

    “확실하게 살란 말이다! 운동도, 사랑도 어쩌다 하게 된 식으로 떠밀려서 억지로 하듯 하지 말고, 제발 확실하게 자신이 결단 내리고 자신이 책임지며 살란 말이다!” (「청비리」181쪽)

    노동운동가의 내면의 심경을 깊숙이 꿰뚫고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를 접할 때면 마치 자신의 마음을 들킨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가 르뽀집에 이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하게 된 연유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4일 소설가 김하경 씨(62)를 홍대부근에서 만났다.

    마산에 거주하며 마산과 창원지역에서「내 사랑 마창노련」(갈무리, 1999)을 텍스트 삼아 노동조합 강연과 교육을 틈틈이 하며 소설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고 그는 자신의 근황을 소개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마창노련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운동의 역사를 생생한 보고문학적 필치로 그려낸 ‘문학적 역사서’인 이 책은 여전히 노동운동가들의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마창노련이 사무실을 정리한 돈으로 1년의 기간동안 취재하고 기록을 남기고자 시작했던 작업은 5년이 훌쩍 넘어서야 작품의 탄생을 보게 됐다. 이후에 그는 경남도민일보의 논설주간으로 일하며 분주하게 1년을 보냈다. .

    하지만 사실의 서술이 문학작품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그에게는 내내 소설로 말하고자하는 욕망이 늘 떠나지 않았다. 리얼리즘으로 노동자와 민중, 운동을 그려내고자 했던 그는 다시 펜을 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 <실천문학> 봄호로 등단하고, 장편소설 「그 해 여름 」(1991), 「눈 뜨는 사람」(1994)을 출간한 바 있다. 이후에 쓴「내 사랑 마창노련」의 취재와 신문사 논설주간의 경험은 그에게 ‘지시적 언어’ 서술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다. 내면의 목소리인 문학적 언어의 목소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앉아 처음부터 다시 문학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리얼리즘이었죠. 사회주의 리얼리즘부터 마르께스, 보르헤스의 환상적 리얼리즘까지 읽었어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스탈린 시대의 문학적 형식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면, 그 때의 리얼리즘은 폐기되었을지 몰라도, 리얼리즘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고, 사라질 수 없는 없는 문학의 형식이죠.”

    그가 리얼리즘을 자신의 문학적 글쓰기의 한 축으로 잡고 놓지 않았다면, 내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난 수십년동안 경험한 철거민, 노동, 교육운동의 현장과 경험이 그에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학적 말 트기를 서서히 익혀갔고,「속된 인생」이 나왔다.

    그의 소설의 주된 소재는 운동 속에도 운동의 길을 묻는 이들이다. 그것은 때로는 전망을 찾지 못하는 운동가들의 내적 고민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지도부의 무능, 부패 그리고 운동가들의 이기심에 비롯되기도 한다.

    나는 왜 당에 뛰어들었는가. 과연 원칙과 기본방향에 동의하는 걸까. 단순히 인간적 안면에 이끌려온 건가.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식으로 따라다닌 건가. 그도 저도 아니면 단순히 우쭐하고 싶은 영웅심 때문인가. 그러나 지난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경쟁과 싸움을 보면서 이게 아니다 생각했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더욱 심해서 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부침했다. 운일은 당의 오류를 지적하고 동지의 불순한 탐욕을 비판했다. 그리고 당과 동지에 대한 실망과 후회가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 당을 떠났다. (「청비리」, 226쪽)

    주인공 운일은 노동조합 지도부의 비리에 실망하고, 당을 선택했지만 당에서도 조직 내부의 분열과 경쟁을 참지 못하고 떠난다. 이제 그에게는 ‘왜 운동을 하는가’라는 원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주인공은 다시 ‘공장의 노동자’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개인의 갈등에서 나아가 운동 전체의 전망의 부재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우리는 계급을 만들어 경쟁하고 있습니다. 부장 되면 국장되고, 실장 되면 위원장 돼야 하고, 총연맹 위원장까지 가면 성공한 운동가로 평가받는 우리 내의 위계질서 말입니다. 공장으로 돌아가면 퇴보한다고 생각하는 ‘선진 운동가’는 그래서 점점 대중과 섞이지 못하고 고립돼 갑니다. 운동과 삶은 유리되지 않고 자기 삶에서 운동을 해나가는 것인데, 운동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는 것이죠.”

    갈등은 때로 운동의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에서도 온다. 지금 당장에 이뤄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조금씩 이뤄나가야 하는가. 철거민 투쟁에서 보상비를 더 올려 받아 현재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철거촌 주민 수녕과 임대주택을 얻을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남아 싸워야 한다는 운동권 대학생 보배의 대화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벽창호야! 그건 당장 될 일이 아니니까. 주민들이 요구하는 건 당장 어떻게 할 거냐야. 내년이나 10년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살 거냐 이거야.”

    “그게 바로 기회주의라는 거야. 현실이니 대중의 요구니 하는 건 다 핑계고 변명이야. 사실은 싸우는 게 무섭고 싫은 거지. 돈 더 많이 받고 싶고 편하고 싶은 거 아냐? 적당히 싸우다 보상비나 타고 나가자 그거지. 핑계는 그럴 듯하지만 그게 다 기만이란 말이야.” (「속된 인생」40쪽)

    작가는 두 사람의 주장에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않는다. 임대주택이라는 ‘꿈’과 보상비라는 ‘현실’적 타협 가운데서 두 주인공은 끝내 의견의 일치를 보내 못하고 결별하게 된다. 두 주인공이 “혼자 꿈을 꾸면 몽상에 불과하지만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됩니다”라는 대사를 함께 읊조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꿈꾸기’를 강조한다.

    하지만, 작가가 던지는 ‘운동의 길’에 관한 물음의 답은 작품 속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현실처럼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할 뿐이다. 그래서 수녕과 보배는 끝내 만나지 못하고, 조합활동으로 해고된 상기는 자신의 진정한 적성이 무엇인지를 내내 고민한다. 운일은 십여년 가까이 운동을 해왔지만, 자신이 운동의 흉내만 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것은 ‘속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에 마주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맑고 깨끗한 복을 누리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너는 함부로 그런 것을 달라고 하지 말라.” ( 「속된 인생」, <서유구> 10쪽 인용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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