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대중 의식 북한대중 수준으로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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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5일 04: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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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이었다. 당시 프랑스혁명은 유럽역사상 천지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황제인 루이16세를 비롯한 왕가의 일족이 파리의 콩코드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신이 선택한 황제’를 인간이 처형한 희대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대륙의 왕족들은 단두대가 자신들에게도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인해 스스로 권력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로써 프랑스에서는 왕정이 영원히 폐지되고 화려함의 극치를 이뤘던 베르사이유 궁전은 주인을 잃고서 나중에는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 루이16세의 처형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왕정의 폐지는 계급의 폐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류역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물론 나폴레옹이 잠시 권력을 잡으면서 황제로 등극한 일은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역류할 수는 없었다. 이는 프랑스가 지금도 자랑스러워하는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얼마 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내 동생(현재 플로리다 주지사)이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밝힌 바 있다. 아버지에 이어 큰아들, 다음에는 둘째아들이 대통령이 되려는 비상식적인 야욕을 드러내었다. 또 세간에서는 그의 아내마저도 대통령이 되려 한다는 소리마저 새나오고 있다.

    미국, 민주국가인가 과두적 가족제국인가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 힐러리 상원의원도 다음 대선의 민주당 주자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은 선택된 몇 가족들에 의한 ‘황금분할’이 완료된 제국이 돼가고 있다.

    이들은 오래 전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왕조의 부활을 공공연히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의 민주주의 진영을 대표한다고 큰소리 쳐왔던 미국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하여튼 이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판의 소리를 의식해서인지 "능력이 되면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현대의 왕조국가들, "능력되면 못할 것도 없지"

    이 말은 절대 권력자들의 입에서 쉬지 않고 나왔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잡았다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준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나 아들을 차기 대통령으로 준비시킨다는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 사우디 왕조, 요르단 왕조 등 중동의 국가들, 그리고 반쪽의 같은 민족이 사는 북한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능력이 되면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나는 이 말을 김일성배지를 단 북한 노동당 당원에게서 직접 들었다. 지난 가을 시베리아를 열차로 횡단할 때였는데, 이들과 함께 만 하루를 꼬박 같은 칸에서 여행한 적 있었다. 처음에는 기막힌 만남에 서로 어리둥절했다가 나중에 분위기가 조금씩 무르익어가면서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얘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들의 입에서 당장 나왔던 말이 있다. "능력이 되면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지도자가 최상위의 위치까지 오른 자체로 지도자의 능력은 검증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유와 평등이 기본적으로 보장된 사회에서 밑바닥에서부터 노력을 통해 지도자의 위치까지 올랐다면 당연히 지도자로서의 개인적 능력은 검증됐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지도자의 아들이나 딸이라는 가족적 배경을 엎고서 정치적으로 성공했다면 이는 개인의 능력이라 할 수 없다.

    이미 2백 년 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왕정의 불합리성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조체제란 혈연을 나눈 가족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왕조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발전이 정체되고 부패한다는 점이다. 왕족과의 연줄이 사회관계의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게 되고 만사형통의 지름길이 된다. 당연히 왕을 중심으로 계급이 창출되며 왕족과 주위를 둘러싼 소수의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민주주의란 다수의 자유롭고 가난한 자들이 권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독재란 부자와 부자출신의 소수가 권력을 쥐었을 때를 말한다"고 민주주의를 정의했다. 고대민주주의가 꽃피웠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부자들에게서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지도자의 연임을 금지하여 권력에 의한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공산주의 몰락 가장 큰 이유는 소수들의 장기독재

    공산주의 사회가 망한 가장 큰 이유로 소수의 절대적인 장기독재를 들 수 있다. 소비에트의 정치체제는 바티칸을 모방한 듯 했다. 당서기장들은 바티칸의 교황처럼 한 번 선출되면 죽을 때까지 집권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했던 러시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다. 스탈린은 집권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당서기장자리에 앉아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당연히 스탈린의 정치체제를 따랐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도자들도 죽을 때까지 집권하는 사례를 보여줬다.

    사회주의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전혀 변하지 않는 절대 권력과 연줄만 유지하고 있으면 만사형통인 구조 하에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초기에 러시아 민중들이 보여줬던 혁명에 대한 열정적 지지는 러시아의 생산력을 가파르게 상승시켰다. 그러다 변화가 사라지고 절대 권력이 장기화되자 생산력은 끊임없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동구권이나 북한의 경제가 몰락한 것도 바로 정치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공산당은 스스로 내부의 권력 교체를 이룩했다. 이는 현재의 중국경제의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

    왕조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인류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무서운 향수병과도 같다. 독재체제도 사실은 왕정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변형된 왕정이랄 수 있다. 우리나라도 남북한 통틀어 왕정에 대한 향수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왕조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조금만 살펴봐도 왕조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왕조는 인류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무서운 향수병

    프랑스처럼 조선왕조가 민중들의 혁명에 의해 폐지됐다면 왕조는 민중들에 의해 깨끗하게 부정됐을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조선왕조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막을 내렸다. 당연히 민족적 정서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왕조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남아있다. 사라진 왕조대신 독재가 들어섰다.

       
    ▲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연합뉴스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을 국부로 여겼고 실제로 국부로 떠받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어김없이 국부로 비쳐진 게 사실이었다. 특히 지금도 육영수 여사는 전형적인 국모의 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지금 대권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박근혜 대표도 대중들 사이에서는 공주의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다.

    비운에 간 왕과 왕비를 대신하여 용감하게 선 공주의 이미지가 대중들의 향수를 불러왔고 정치적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더구나 아리따운 공주의 얼굴이 칼잡이의 손에 의해 난자당한 사건은 전 국민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여 정치적인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로 김일성 주석은 장기간 국부와 같은 존재로 대중들 속에 자리 잡았고 그 아들인 김정일 위원장은 왕자로 비쳐졌다. 당연히 북한 대중들의 큰 저항 없이 권력도 계승됐다. 이는 모두 대중들의 왕조에 대한 향수로 해석된다.

    왕조에 대한 향수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마약과도 같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 몰표를 몰아주는 대중들의 전근대적인 의식도 사실은 왕조시대의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선거철이 돌아오면 마치 1천5백 년 전의 신라, 백제, 고구려로 갈려졌던 삼국시대를 살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이외에도 남한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유를 든다면 다분히 전근대적이다. 국부로서 말을 너무 가볍게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국부는 다소 무게와 체통을 지닌 근엄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즉, 국부로서는 부적격자로 낙인찍혔다.

    노무현대통령을 싫어하는 전근대적인 이유들

    별로 해놓은 것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 무능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처럼 전쟁을 일으키고 살상을 저지르는 대통령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전쟁을 하고 살상을 일삼는 일을 개인적 능력으로 친다면 부시 대통령이 가장 능력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5.31 지방선거를 평가한다면 남한 대중들의 의식수준이 북한 대중들 정도의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만에 하나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그동안 남한 대중들이 비판해왔던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세습도 정당화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독재자의 아들, 남한에서는 독재자의 딸이 나란히 지배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당연히 세계에서는 민주주의란 말조차 꺼내기 부끄러운 민족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지금도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함께 여행했던 북한 노동당원의 관심어린 말이 기억난다.
    "박근혜씨는 잘 하고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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