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사노위로 책임 넘기며
    ILO협약 비준 공약 파기?
    문재인 정부, 합의사항 아님에도 사회적 대화 핑계와 노동법 개악 시도
        2019년 01월 15일 05: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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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법 개악’이 시도되고 있다. 노사 합의사항이 아님에도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로 넘긴 탓이다. 핵심협약 비준 공약의 파기를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한 책임을 경사노위와 국회에 떠넘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헌법33조위원회, 노동법률단체(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서비스연맹 법률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공동주최로 1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촉구 노동법률단체·국회 헌법33조위원회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모습(사진=유하라)

    발제자로 윤애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대외협력부위원장과 이동우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 사무관이, 토론자로는 양대노총 정책실장이 참여했다.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수근 교수가 사회를 봤다. 주최기관이 정부와 경총 관계자의 토론회 참석을 요청했으나 거부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정부가 ‘사회적 대화’ 뒤에 숨어 ILO 핵심협약 비준에 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논쟁적 사안마다 ‘사회적 대화’ 뒤로 숨는 문재인 정부
    노동공약인 ILO 핵심협약 비준도 경사노위로…
    “공약 불이행 책임 노사·국회로 떠넘길 것”

    우리나라는 8개의 핵심협약 중 강제근로 협약(제29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제98호), 강제근로 폐지 협약(제105호) 등 4개를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이 가운데 비준 여부를 둘러싼 쟁점은 노동기본권과 관련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이다. OECD 회원국 중 해당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우리나라뿐이다.

    국제사회는 우리 정부에 결사의 자유에 관한 핵심협약의 비준을 1996년부터 권고해왔다. 그러나 역대 정부들은 국제사회의 ILO 핵심협약 비준 요구에 대외적으론 응답하면서도, 대내적으론 노동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권고를 이행하지 않아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공약으로 노동기본권과 관련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고, 이후 국정과제에도 포함시켰다.

    문제는 정부가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로 약속한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노사정이 모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로 넘기면서 시작됐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사 거래 대상으로 비화했고, 현재로선 사용자 측의 반대로 비준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공약 파기의 사전작업 격으로 ‘블랙홀’인 경사노위로 이 문제를 떠넘긴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애림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었던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은 협약 비준 전 노동관계법 개정을 경사노위로 떠넘김으로써 사실상 이행하기 어렵게 됐다”며 “정부는 공약 불이행의 책임을 노사와 국회에 떠넘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은 기본인권 보장에 관한 문제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전제조건이 돼선 안 된다”면서 “이는 사회적 대화의 의제가 아니라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신속하게 집행해야 할 과제이자 국제사회와의 약속 이행”이라고 강조했다.

    이 정책실장은 “ILO 144호 협약에 따라도 3자 협의의 목적은 ILO 국제노동기준 관련 특정 활동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전 대표적인 노사단체의 견해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는 것일 뿐 노사정 합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해설하고 있다”며 “합의 도출에 실패할 경우 최종 결정은 정부가 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도 “ILO 핵심협약의 비준과 이에 관한 법제도 개선은 대한민국이 문명국가로서 공정한 민주사회의 기본질서를 세우는 것이며, 원칙의 문제이지 노사합의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ILO핵심협약 비준 논의…노동법 개악 도구로 전락
    경총, 파업·교섭권, 헌법까지 무시한 요구안 제시

    윤 부위원장은 “경사노위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국제노동기준에 미달하거나 심지어 국제노동기준에 위배되는 방향의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논쟁적 사안을 모두 ‘사회적 대화’라는 틀에 강제하면서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는 오히려 노동법 개악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30일 경총이 경사노위에 제출한 입법 요구안이 대표적이다.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폐지,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최대 4년),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강화, 단체교섭 대상 명확화(인사경영사항, 정치적 문제 교섭대상 제외 명확화), 직장폐쇄 요건 완화(예방적 직장폐쇄 허용)등이 골자다. 모두 국제노동기준에 위반하는 내용이다.

    이 정책실장은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합의를 협약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삼으며 정부가 책임과 의무를 방기함으로써 초래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유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노사정 합의가 필요하다는 명목에 내몰려 핵심협약 비준과 관계없는 사용자단체의 민원성 숙원 과제를 수용하는 노동법 개악 기도에 호응할 경우,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에 관한 ILO 핵심협약은 형식적으로 비준하면서 실질적으로 노동기본권을 후퇴시켰다는 국제적 망신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입법안으로 보이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은 “결사의 자유 협약에 부합하도록…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발표된 노개위 공익위원안은 물론 현행 노조법보다도 후퇴한, ‘개악’이라고 봐도 무방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해고자 등은 산별·지역별 등 초기업 노조의 임원·대의원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상급단체 및 초기업 노조 간부가 특정 사업장 출입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정엽 정책실장은 “80년대 외부 노동활동가의 노조활동 지원을 탄압하는 제도로 활용됐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의 부활”이라고 질타했다.

    이주호 정책실장 또한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공익위원 합의안에도 미달할 뿐아니라, 노조 활동에 대한 추가적인 제약까지 가하고 있어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사 합의 사항도 아닌 ILO 핵심협약 비준을 노사 합의 테이블에 올리고, 정부 입법안은 현행 노동법보다도 후퇴한 내용이 담긴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빌미로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 개정안으로 인해 하청·비정규·파견 노동자의 노조활동이 크게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애림 부위원장은 “파견·비정규·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의 노동자가 아니다. 이 조항이 통과되면 사내 하청 파견 노동자들은 해당사업장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아니기 때문에 노조활동에 있어서 사용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정규직 노조 활동에 엄청난 제약을 가하는 것”이라며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한다면서 어떻게 이런 내용이 들어갈 수 있나. 심지어 ILO에서 십수년간 권고한 내용은 전혀 포함돼있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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